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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26-30절) 하나님의 황금 사슬
우리가 보통 사슬(alink)이라는 말을 쓸 때는 좋은 의미보다는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일 때가 더 많습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쇠사슬인데, 주로 죄수들이 도망을 치지 못하도록 손과 발을 묶어두는 용도로 사용됩니다.
개나 맹수 같은 짐승들은 달아나거나, 사람을 해치지 못하도록 쇠사슬로 목을 매어 놓습니다. 사슬 중에서 묶어 두는 용도가 아니라, 아주 귀하고 아름답게 사용되는 사슬이 있습니다. 금 금목걸이나, 진주목걸이처럼 귀금속을 황금으로 된 사슬로 연결시켜서 목에 달고 다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 우리는 죄와 정욕의 쇠사슬에 매인 비참한 죄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사슬에 매여서 하나님의 목에 달고 다니는 귀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황금 사슬에 매였다는 것은 다시는 하나님의 손에서 달아나지 아니하고, 끝까지 붙드셔서 구원을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 얻은 구원이 완전한 구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 위험 속에 들어 있으며, 자칫 잘못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기만하면, 우리는 절대로 중간에 길을 잃거나, 버림당하지 아니하고, 틀림없이 구원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들이 겨울에 높은 산에서 조난을 당했다고 합시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의 힘만으로는 절대로 그곳을 벗어날 수가 없고, 그냥 그대로 두면, 반드시 얼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다행히도 구조본부와 연결되어 아주 숙달된 구조대원이 그들에게 오게 되었다면, 그들은 구조대원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거의 100% 구조되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위험 지역을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온 것은 아닙니다.이것이 곧 오늘날 우리들의 상태입니다. 현재 대단히 안전한 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많은 위험이 우리 주위에 도사리고 있고,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장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안내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이 곧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보혜사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목에 거는 황금 사슬입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이 오신 이상 절대로 하나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 없으며, 언제나 하나님의 가장 귀한 자로 매달려 있게 됩니다.
아직 우리 주위에는 매일매일 무서운 위험과 사탄의 무시무시한 도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을 거역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것입니다. 성령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 곧 말씀에 순종하는 이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귀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Ⅰ.성령의 도우심
보통 우리가 보석을 목에 달 때에 금으로 된 사슬에 매어 목걸이를 만들어 다는 이유는 그냥 매달면,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으시기 위해 강한 끈을 연결시키셨습니다. 그것이 곧 성령의 끈입니다.
8:26절)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가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 세상에서 구원받았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보석을 깊은 장롱 속에 넣어두지 아니하시고, 황금 사슬에 매달아 하나님의 목에 거시고, 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때 우리를 하나님의 목에 걸게 하는 황금 사슬이 곧 성령님이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축복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과거의 모든 죄가 다 지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지은 죄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의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하지만 예수 믿는 자들에게는 놀랍게도 모든 죄가 다 지워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 우리의 죄가 다 처리되었기 때문입니다.이 세상에서도 죄가 있는 사람은 떳떳하게 살 수 없고, 언젠가는 죄가 폭로될 때, 얼굴을 들지 못하고, 감옥으로 붙잡혀 가는 것을 많이 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그렇습니다. 즉 지금은 모두가 숨어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붙들려 갈 운명입니다. 왜냐면 모든 죄가 하나님 앞에 다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구주로 영접하여 믿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붙들어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새로운 삶을 살 자격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 하나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 마음에 오시는 것에 대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려면, 죄 용서만 받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힘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십니다. 가장 먼저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성령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한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 중에서 성령이 짓지 아니하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놀라운 창조의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죄가 파괴시켜 놓은 모든 아름다운 형상들을 치료하고, 회복시키는 일입니다. 죄가 우리 안에 한 것은 마치 휘발유를 뿌려서 속을 완전히 불살라 큰 화상을 입혀 놓은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불에 타서 큰 화상을 입으면, 어떻게 될까? 겉모습이 너무 많이 변해서 원래의 모습을 도저히 알아볼 수 없습니다. 죄가 우리에게 끼쳐 놓은 것은 너무나도 흉측합니다. 우리 안을 완전히 비틀어지게 했고, 비비 꼬이게 했으며, 너무나도 무감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즉 시기와 질투의 마음으로 만들었으며, 분노와 의심으로 마음을 냉랭하게 만들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가장 먼저 하신 것은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게 하는 이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는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 합니까? 우리 마음과 내면세계의 아주 깊은 곳까지 말씀으로 찾아가 세밀한 부분까지 치료하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속사람을 하나씩 하나씩 아름답게 치료하십니다.
8:29절)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이 계획이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느냐? 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다 보니까 우리를 만나서 자녀로 삼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아시고 예정하셔서 우리 삶에 조금씩, 조금씩 찾아오셔서 믿게 하신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같아지는 이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외모가 멋지고, 지식이 많고, 돈이 많이 있으면,*저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칭찬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한 꺼풀만 벗기고 속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우주인 같은 괴물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런 내면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겉모습만 보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괴물의 행복함 밖에 되지 못합니다. 인간들의 매끄러운 피부 속에는 너무나도 끔찍한 일그러지고, 녹아 버리고, 비틀어진 흉측한 모습이 치료받지 못하고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소망은 무엇일까? 곧 성령이 인간에게 오시는 이것입니다. 고장난 인간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이 오셔야만 괴물같은 우리 속사람을 천사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고쳐 주십니다.
Ⅱ.성령의 탄식
8:26절)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여기서 *보혜사*라는 성령님의 특별한 칭호를 우리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4:16절)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성령님은 언제나 계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신약 시대에 믿는 자들 안에 오시는 성령님만 특별히 구별해서 *보혜사*라고 부르십니다.
*보혜사(保惠師)*라는 이름은 평소에 잘 사용하는 용어가 아닙니다. 우리가 단어의 뜻을 살펴보면 *옆에서 돕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옆에서 꼭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서양에서 집에 혼자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베이비시터*라고 해서 아이들을 돌보아주는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먹을 것을 챙겨주고, 위험한 곳에 가지 않게 하고, 옷을 입는 것이나, 몸을 씻는 것을 도와줍니다.
요즘은 중증 장애인들을 위해 많은 자원봉사들이 찾아가 먹는 것을 도와주고, 목욕하는 것을 도와주는 일을 합니다. 또 운동선수들에게는 코치가 있어서 시합에 대한 제반 사항을 다 챙겨줍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이나,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담자가 있어서 어려움을 들어주고,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사람은 *보호자(保護者)*입니다. 특히 부모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주고, 양육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시면서 기뻐하시거나, 좋아 하시기보다는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돕는 것을 힘들어 하시거나, 기뻐하시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말할 수 없이 좋아하시며, 기뻐하십니다.
이렇게 놀라운 성령님도 때때로 우리 안에서 힘들어하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진리를 거역하고, 욕심대로 나아갈 때, 성령님은 답답 해하시고 탄식하십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 답답해하시는 성령님의 한숨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완전할 순 없습니다. 자주 넘어지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탄식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가 넘어지기도 하고, 운다고 해서 한숨을 쉬거나, 쉽게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다 알 만한데도 끝까지 떼를 쓰거나, 억지를 부리면,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 사랑을 전달하거나, 표현할 수 없어 한숨이 나오는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성령님은 우리가 단순히 실수하고, 말씀에 불순종한다고 탄식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다 알 만한데도, 끝까지 욕심을 버리지 아니하고, 억지를 부리거나,오래 침체되어 있을 때, 사랑하기는 하지만, 알릴 방법이 없어서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했는데, 어떤 연약함일까? 죄에 대해 너무나 약하고,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이것입니다. 즉 우리는 세상의 죄를 좋아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에 대해 무지하거나, 자신감을 가지지 못합니다.
성령님이 보시기에 죄를 담대하게 거부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당당하게 은혜와 축복을 간구하면, 좋을 텐데,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령님은 억지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끌고 가지는 않으십니다.우리를 설득해 가셔야 하는데, 이 점에서 우리가 너무나도 자신감이 없고,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곧바로 책망하거나, 심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기도를 자꾸 드리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8:27절)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하나님과 성령님의 일치되신 생각이 곧 우리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워지는 이것입니다. 우리 안에 창조의 능력이 있지만, 이것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늘 새로운 성령의 부으심과 충만한 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성령의 두 가지 은혜가 언제나 필요합니다.
하나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세밀한 부분을 일일이 찾아서 상처가 나고 병든 부분을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즉 우리 안의 열등감이나, 의심이나, 분노가 치료될수록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게 됩니다.그때 우리 속은 완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성령이 새롭게 부어질 때, 말할 수 없는 감동과 능력으로 충만해지게 됩니다. 우리 속에 늘 성령이 계시기만 하면, 새롭게 부어져서 충만하게 됩니다.
엡5:18절)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술 취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술 취하는 것과 성령에 충만한 것과 반대되는 점에서 비교할 만 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사람이 술에 취하면, 변하게 됩니다. 즉 기분이 굉장히 좋아지고, 갑자기 힘이 생기는 것 같고, 용기가 끓어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술 취한 것의 문제는 *이것이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진짜로 변한 것이 아니라, 가짜로 변한 것이며, 진짜로 기쁜 것이 아니라, 가짜로 기쁜 것이며, 용기가 생기는 것도 가짜 용기*입니다. 즉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가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시면, *진짜 변하게* 됩니다. 즉 *진짜로 성격이 변하고, 새로운 능력이 임하며,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세상을 살아갈 새로운 용기가 생깁니다.*성령의 이런 은혜는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새로운 성령의 부으심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자꾸 성령의 은혜를 부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이 있다면, *변하여 새 사람이 되는 이것이며, 새로운 용기가 생기는 이것이며, 새로운 믿음과 감동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도, 믿음이 자라는 것에 따라 용량(用量)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처음 믿을 때는 그릇이 작기 때문에 작은 은혜로도 금방 충만해집니다. 그래서 성경 한 구절로도 은혜를 받고, 찬송가 한 절로도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믿은 시간이 지나 갈수를 그릇이 커지게 되는데, 담기는 은혜는 예전과 같을 때, 마음이 컬컬하고, 답답하며, 하나님이 나를 덜 사랑하시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예전보다 더 많이 하나님을 가까이해야만,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할 수 있는데, 이때 충만한 것은 처음 믿을 때에 비해서 훨씬 더 위력이 있는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겉 사람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속사람이 아름다우면,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죄로 인해서 심한 화상을 입은 부분들이 치료되어 되살아나고, 또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있을 때, 하나님과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고, 내 뜻이 하나님의 뜻이 될 때, 이것보다 더 귀하고 능력 있는 축복은 없습니다.
Ⅲ.하나님의 황금 사슬
우리는 믿는 다고 하면서도 자주 불순종하고, 때로는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서 빠져 나갈 수는 없습니다. 이것에 대해 하나님은 두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 아주 옛날 전부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부터 이렇게 만드시기로 결정하습니다.
찬송가 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또 하나는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의 손에서 빼앗아 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치 우리는 *뛰어난 토기장이의 손에 붙잡힌 진흙 한 덩이와* 같습니다.
아무리 빠져나가려고 해도 일단 토기장이의 손에 붙잡힌 이상 최고의 그릇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발로 짓이기기도 하고, 불에 넣어 굽기도 하지만, 결국은 최고의 그릇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8:28절)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많은 곡절을 겪었습니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방황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전부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고, 온전한 축복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빚으시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인생에 물을 붓기도 하시고, 발로 짓이기도 하시고, 때로는 틀에 올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돌리기도* 하십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몇 번씩이나, 불에 넣어 불 시험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어내십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자기 마음대로 잘 되는 것 같지만, 결국 오지 그릇을 만들어 철장으로 깨트리실 것입니다.
지금 *내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고, 무엇인가 나를 칭칭 휘감을 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이때 해야 할 일은 *몸에 힘을 빼고, 한번 죽을 각오를 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이것입니다.즉 *굶어죽을 각오를 하고, 세상에서 유명해지지 못할 각오를 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할 각오를 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굶어죽을 각오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손가락질 당할 각오를 하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에스겔의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즉 발목까지 오던 성령의 역사가 얼마 있지 않으면, 무릎까지 오고, 그 다음에는 허리까지 오고, 그 다음에는 성령의 역사에 떠밀려가는 체험을 할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성령님의 파도를 타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이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올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황금 사슬(alink)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8:30절)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심지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아셨고, 귀한 백성으로 만들어 귀하게 쓰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물론 처음에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고, 때로는 우상을 섬기면서 때로는 학대를 받으면서 불행하게 살아오기도 했습니다.
이때는 마치 어두운 터널을 걷는 것 같고, 밤중에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하나님은 우리 옆에 계셨습니다. 단지 우리가 몰랐을 뿐입니다. 어느 때, 지하 술집에서 술을 마실 때나, 너무나도 절망해서 자살하려고 할 때나, 어느 무서운 죄에 빠질 뻔했을 때에도, 옆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난 과거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분명히 옆에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분이 곧 주님이십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순간 나의 모든 죄는 모두 다 씻겨지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인생을 받게 됩니다.
또한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서 죄가 남긴 모든 오물들을 다 씻고, 죄의 흉터를 치료하시는 일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수록 하나님의 영광이 내 안에 충만하게 됩니다. 그리고 육신을 벗은 후에 완전한 상태에서 빛 가운데 하나님을 직접 만나며,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위험 속에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구주로 만나고, 성령님이 오심으로 우리는 분명히 죄와 심판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 세상에 있고, 사탄과 악의 무리는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이때 모든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는 길은 더 거룩해지고, 더욱 영광스러워지는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할 수 없는 성령의 은혜가 강물처럼 부어지며, 우리가 성령 충만한 은혜 가운데 능히 헤엄을 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복음송 1298장 *성령이여*
알림(정착의 해17회)
▣ 교갱원 소속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12월 대심방(세례식(천주교인 포함)과 셀(cell)현장 점검을 위해 장소, 날짜, 시간을 스마트폰으로 소통해야 소속이 될 수 있으며, 만약 정착하지 않고*특권과 의무*를 실천하지 않는 셀(cell)의 무관심이 *생명의 양식*촛대를 옮기고. 전체 삭제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이유는 변하지 않으려고 굳게 결심한 목석(木石)은 새해 계획이 무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리더(leader)1명을 뽑아 *필수과목*을 필하고,예배 인도 등 본원과 계속 소통해야 안전할 수 있습니다(직분자 임명도 동일).
※ 매일 새벽 기도로 시작하고, 저녁 기도로 하루를 마치는 습관을 가집시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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