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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 시인의 시창작특강 8>
사물은 늘 가까이 있다
송 진(시인)
제 八, 모든 것 진리로부터 나오다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 어떤 사람이 三천대천세계에 가득한 七보를 가지고 널리 보시했다면 이 사람이 얻는 복덕이 얼마나 많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아주 많사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 하오면 이 복덕은 본체적인 마음의 복덕성福德性이 아니기 때문이오니 그러므로 여래께서 복덕이 많다고 말씀하신 것이 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에 네 글귀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남을 위해 말해 주었다면 그 복이 다른 복덕보다 더 뛰어나리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다 이 경으로부터 나온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이른바 불법이란 곧 불법이 아니니라.”
<「금강반야바라밀경」/요진 삼장법사 구마라습 역/ 선문출판사>
우리는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좋은 일을 하면 복이 온다고 합니다. 성내는 것보다 웃는 게 마음이 편하고 악을 행하는 것보다 선을 행하는 게 지혜롭게 살아가는 일일 것입니다. 복을 받는다 복을 받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름이 그런 것일 뿐입니다. 복은 본래 없는 것이므로 그저 이름으로 복을 많이 받는다 라고 하겠습니다. 주고도 주었다는 생각이 없는 무보시가 가장 큰 복입니다. 어떤 상相도 없이 텅 빈 마음이 가장 복 받는 길입니다 텅 빈 마음도 그저 이름이 텅 빈 마음일 뿐입니다.
사물(책상)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이 사물(책상)은 나에게 복을 많이 갖다 줄까요. 사물(책상)을 복으로 보면 복 생각이 납니다. 사물(책상)을 사물(책상)로 볼 때 사물(책상)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책상>
책상은 기어오르지도 날아가지도 않는다 책상은 향기를 맡지도 울지도 않는다 책상은 텔레비전만 보고 있다 그는 기어오르지도 날아가지도 않는다 그는 향기를 맡지도 울지도 않는다 그는 텔레비전만 보고 있다 강은 기어오르지도 날아가지도 않는다 강은 향기를 맡지도 울지도 않는다 강은 텔레비전만 보고 있다
<가위>
무화과를 좋아하는 가위는 무화과 열리는 거위 집에 놀러가는 것을 좋아하는 가위는 무화과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가위는 무화과 열리는 거위 집에 놀러가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가위는
<손목시계>
할머니가 유령의 집을 지키고 있다 길목에 수선화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 계곡에 무지갯빛 물이 콸콸 목청을 높였다
⁍ 사물을 관찰하여 문장 쓰기
<레깅스>
너는 소나무 가지에서 조르르 내려왔다 나를 한 번 힐끔 쳐다보고는 다른 소나무 가지로 조르르 올라간다 조르르 조르르 네가 지나가지도 않는데 나는 네 단추소리를 듣는다
<리코더>
목이 긴 자루 속에는 머리카락이 짧은 물결소리가 산다 차르르하고 부르면 토르르하고 대답을 하지 않는다 차르르하고 부르면 토르르하고 대답할 때까지 목이 긴 자루를 참나무로 내리친다 목이 긴 자루 입술 바깥으로 파란 피가 쏟아진다
<누드 냉장고>
토막 난 닭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가장자리로 옮겨 다닌다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 구름이 떠다니는 푸른 하늘이 보고 싶어요 그런 말을 공기라고 배운 닭은 곰 구름가족이 사는 하늘을 보여주려는 친절한 아빠의 손에 이끌려 하늘을 보러간다 그런 날은 가장자리를 서로 차지하려는 토막 난 닭들의 비명이 사시나무가시나무주목나무 천 개의 가지에 야윈 초승달처럼 매달려 오물쓰레기통 속 어제의 달력의 깃털처럼 나부낀다
<직접 쓰는 시간입니다>
• 사물을 관찰하여 문장 쓰기
‣ 버터:
‣ 변기:
‣ 북:
⁍ 사물의 말씀을 온 몸이 귀가 되어 들어봅니다
혹시 펄펄 끓는 보리차의 말씀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물이 끓기 전에는 아무 말씀 없이 조용히 물 위에 떠 있던 연갈색의 보리들이 물이 섭씨 100도로 끓기 시작하면서 사그르르르 사그르르르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파랑波浪이 일기 시작합니다 물의 빛깔은 점점 무화과처럼 무르익어가고 알맞은 빛깔과 맛을 지니게 됩니다. 이때 물을 끓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자의 할 일은 물이 맛있게 익어갔을 때를 눈어림으로 보고 물을 불에서 내리게 하는 일입니다 그 불은 연탄불일 수도 가스불일 수도 장작불일 수도 버너불일수도 전기를 이용해 사용하는 불일수도 있습니다 어떤 불이든 불 옆에 선 자의 할 일은 물을 불의 마차에서 내리게 하는 일입니다. 가장 물이 맛있게 익었을 때를 알고 말입니다. 펄펄 끓는 보리차는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말씀을 합니다 빛깔과 소리로 말이지요 우리는 보리차의 거룩한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보리차에게 천 개의 눈길을 보내고 천 개의 귀를 활짝 열어야 합니다. 물을 끓이는 일이나 시를 쓰는 일이나 모두 같은 일입니다 한 가지 일이지요 시는 보리차나 물이나 불이나 불을 지키고 서있는 자나 공기나 불빛이나 주위에 어슬렁거리는 나방이나 펄펄 끓는 보리차의 목소리이거나 펄펄 끓지 않는 목소리이거나 이제 끓어 오르려하는 목소리이거나 모두 한 가지입니다 여여如如합니다.
-송 진 「보리차의 말씀」
도심의 소 한 마리가 밤 열두시 삼십분에 왜 강아지 사료는 팝콘이 안 될까 수학의 정석을 펴들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드디어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실험에 들어갔는데 온 몸이 얼룩달록 얼룩소가 되었다 도심의 소 한 마리는 운동을 하기 위해 운동화를 신고 집 밖을 나섰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일층 남편의 남편이 몰라보게 예뻐졌군요 얼룩말 전신 가죽을 언제 구입하셨나요 얼룩소도 아니고 얼룩말이라니 이상한 일이군 도시의 소 한 마리는 알록달록 도깨비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을 구입했다 아름다운 얼룩말님 이 생수는 원 플러스 원이니 한 병 더 가져가세요 도심의 소 한 마리는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길을 걸었다 배롱나무 꽃들이 비에 젖은 보도블록위에서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고 하얀 무궁화 꽃들은 보랏빛 무궁화 꽃들과 길 건너 담장 줄장미가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도심의 소 한 마리는 생수를 마시며 걷고 걸었다 생수 속에 들어간 얼룩소 한 마리와 생수 속에 들어간 얼룩말 한 마리가 서로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도심의 소 한 마리는 신발도 없이 송전탑이 있는 산등성이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 송 진 「화상의 형식- 황령산」
⁍ 풍경의 사물을 기억하기 그리고 문장 쓰기
예문)
‣ 길을 걸을 때 배롱나무 꽃이 나의 어깨를 쓰다듬어주고 있는 느낌을 씁니다.
- 배롱나무야, 혀를 길게 늘어뜨리고 머리를 땋고 있구나 외출 하니? 배 고프지 않니?
‣ 물이 끓는 모습을 떠올려서 그림을 그리듯이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씁니다
- 비행운이 우주에 번지고 있어 행운의 비눗방울들이 넘치고 넘쳐 미지의 잠재력의 이마를 밀치고 들어갈 거야
<직접 쓰기>
‣ 한 가지 사물을 보고 마치 사람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집중하여 씁니다
- 자동문:
- 광고풍선:
※ 내가 쓴 문장들이 숨을 쉬고 핏줄을 따라 움직이고 말을 하고 물을 마시고 밥을 먹는다고 생각합니다.
• 왜 시를 쓰나요? (이 근원적인 고민의 깊이)
묻고 싶습니다 왜 시를 쓰는지... 그냥 쓰고 싶어서 쓸 수도 있고 좋아해서 시를 쓸 수도 있습니다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지요. 시로서는 재물을 모을 수도 없으며 권력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를 쓰는 것은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는 초자연적이 의문이 내면에서 자꾸 뭔가 말을 하고 있어서입니다. 그 말을 받아쓰면 문제가 하나 해결된 듯이 잠시 편안해지지만 다시 내면은 고요를 떠나 잔잔한 물결이 일렁입니다. 그러면 또 내면에서는 수없이 많은 의문을 제시하고 말을 합니다. 그 말들을 사물과 합일하여 또 한 편의 시로 써내지요. 쉽다면 아주 쉽고 어렵다면 또 어려운 길입니다. 늘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내가 왜 시를 쓰지? 이 의문은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권력도 재물도 없는 이 길을 평생 걸어갈 준비는 되어있는지, 시인이라는 이름표를 가지고 싶은 것인지, 시에 대하여 어느 정도로 자신을 불태울 준비가 되어 있는지, 시가 내 일상의 중요한 지점에 닿아있는지 그런 생각들... 사소하자면 사소하고 중요하다면 중요한 문제들을 때로는 거리 한복판에 놓여있는 동으로 만든 거대한 피노키오 조각상들처럼 때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어오는 봄바람에 흔들리는 부드러운 물방울무늬 스카프처럼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시인의 명찰을 원하는 사람은 명찰 맞춤집에 가셔야 합니다. 돈을 원하시는 분이나 여가선용을 원하신 분들은 거기에 맞는 자리를 찾아가셔야 합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오직 시만 생각할 것’ 그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언어의 칼을 시퍼런 강이나 바다처럼 갈고 닦는데 온 몸의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것입니다. 오랜 세월 그렇게 하면 자신이 원하는 언어, 문장, 시의 세계로 들어가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입니다. 사물과 함께 말입니다.
다들 절실한 밤을 보내고 있었다
트렁크는 멀어지고
자개농 열쇠구멍에 꽂혀있던 나비노리개는
빨간 수실의 길을 따라 흔적을 잃었다
(트럼프는 한국을 몰라)
트렁크는 질질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발을 디딘다
(트럼프는 로열티를 받는다)
센텀롯데백화점 후문 115번 버스를 기다릴 때마다 눈앞에 커다랗게 서 있는 트럼프 월드
트렁크는 지퍼가 3개 매달려 있다
서해의 돌을 담아오는 수련체험학습의 마지막 날 불꽃놀이
멋있다고 한다
(트럼프 금발 아래 흰머리는 멋있다)
교장선생님의 뒷짐에 들려있는 휴대폰은 안전하다
(날개노리개가 붉은 수실을 따라 걸어간다네)
하얀 날개를 만나면 망고
노란 날개를 만나면 아보카도
절실한 밤 속에 쌍둥이 밤이 탄생한다
(트럼프의 귀도 쌍둥이다 콧구멍도)
노란 콧수염이 길게 흘러나와
질퍽한 코흘리개 소년의 소녀의
유난히 유년스러운 더운, 미세먼지의
-송 진 「황사 봄밤」
너의 연기는 압권이었어 너의 순진한 염소 같은 눈을 클로즈업하는 감독의 재치라니 가만.. 가만... 재치.. 그 정도의 말은 오히려 그 영화를 욕되게 하는 거겠지 감독의 깊이라고 할게 너의 눈동자에서 뭔가를 발견한 거야 오래전부터 짝사랑한 아이의 몸짓을 흘깃흘깃 바라보듯이 그건 자연히 끌리는 거지 순진한 염소의 눈동자에서 분노한 곰의 눈동자까지 푸르고 노랗고 불그스름하게 다가가는 고성능 카메라의 렌즈 밀착될 때마다 빠르게 흩어지는 수천수만 개 필름의 입자들 누가 읽을까 내가 읽었어 감독은 알고 있었지 지독한 사랑에 빠진 영화광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좌석 하나를 슬쩍 잃어버린 지갑처럼 비워둔 거야 간이의자도 서너 개 있었지 모두 왔냐고 그럴 리가 있나 개 같은 성질이 달라질 리가 있겠나 여전히 개성대로 영원히 개성대로 진행되었지 인생을 진주처럼 사랑하는 법에 대해 배우지 못한 간이 의자들은 영화가 끝나자 허기진 허리가 접혀 직원들의 부드러우면서 억센 손가락 마디의 힘에 이끌려 질질 무대 밖을 나갔지 진정한 투쟁의 시간이 시작되었다고 할까 삶의 이탈자처럼 가장 큰 쾌감을 맛보는 순간들이지 서글프면서도 원하기도 했던 것 같은... 그러나 막상 다가오면 왜 나에게만... 인종차별 성차별 같은 생각에 빠져 잠시 상사화처럼 흔들리는 그럴 때면 꽃무릇을 생각해 꽃무릇의 꼿꼿하게 서있는 아름다운 붉은 무릎을, 부드러운 이슬 같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있다 보면 감독의 지긋지긋한 사인도 지나가고 배우의 지친 어깨도 지나가고 어쨌든 클로즈업 되는 너의 눈동자는 붉게 물든 염소의 눈동자 무대 위 분홍 볼캡을 쓴 감독은 보이지 않았지만 철제 하얀 테이블과 의자는 무릎을 펴고 당당하게 서 있었지 영원한 제복을 입은 군인처럼 군인과 영화와 감독과 무대와 배우와 그리고 관객 음악이 빠질 수 없지 싸구려 와인도 그리고 에스프레소와 믹서커피와 맹물까지 영화를 위해 건배 클로즈업 될 때까지 빠르게 지나가기 빨주노초 물들기 때로는 흑백으로 때로는 뿌연 쌀뜨물처럼 흐려지기 멋진 미장센이야 슬프고도 아련한 과거의 아득한 지점에 데려다주는
- 송 진 「미장센」
⁍ 좋아하는 영화 감상 후 써보도록 합니다.
1. 떠오르는 단어 오십 개 쓰기
2. 떠오르는 문장 열 개 쓰기
3. 떠오르는 시 한 편 쓰기
(봄호에 계속됩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독자가 직접 쓸 수 있는 공간을 비워두었습니다. 저는 ‘날마다 쓰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환경과 능력에 맞춰 십 분이든 이십 분이든 날마다 쓴다면 생각이나 글의 흐름이 자유로워지고 생각보다 글이 쉽게 잘 써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필자)
송 진
1999년 《다층》 제1회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지옥에 다녀오다』, 『나만 몰랐나봐』, 『시체 분류법』, 『미장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