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滸誌),
혼돈의 시대를 이끌다
1권 일탈하는 군상 (39)
제 8장 야승과 산도둑
오래잖아 장원 주인의 명령대로 머슴이 고기 한 소반과 채소 서너 접시를 탁자로 날라 왔다.
노지심(魯智深)이 허리띠를 풀고 앉자 다시 술 한 동이와 잔이 왔다.
노지심은 한번 사양하는 법도 없이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었다.
잠깐 사이에 한 동이 술과 한 소반의 고기가 다 없어졌다.
주인이 넋을 잃고 그 모양을 보다가 다시 머슴을 불러 저녁상을 차리게 했다.
노지심(魯智深)은 그것도 남김없이 먹었다.
"스님께서는 바깥채에 있는 방에서 쉬십시오. 밤에 바깥이 떠들썩하더라도 내다봐서는 아니 됩니다."
상을 물린 뒤에 주인이 노지심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제야 노지심(魯智深)은 아직껏 그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를 물어보고도 대답을 듣지 못한 걸 기억해 냈다.
이번에는 제법 예의까지 갖춰서 물었다.
"감히 묻습니다만, 오늘 밤 이 댁에 무슨 일이 있는지요?"
"이미 출가하신 스님께서 간여하실 일이 아닌 듯하니 굳이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주인이 그런 대답으로 오히려 노지심의 궁금증을 키웠다.
노지심(魯智深)이 슬쩍 수를 썼다.
"어째 어르신네 얼굴이 좋지 않아 보이십니다그려. 혹시 제가 무슨 걱정을 끼쳐 드릴까 봐 그러십니까?
제가 자고 먹은 값이라면 마음 놓으십시오. 내일 아침에 깨끗이 셈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주인이 펄쩍 뛰며 털어놓기 시작했다.
"스님께서 잘못 아셨습니다. 저희 집은 늘 절에 재(齋)를 올리고 시주도 많이 하는 편이지요. 그런데 스님 한 분 공양한 걸 가지고 그럴 리 있겠습니까?
다만 오늘 밤에는 제 딸이 시집을 가게 되어 있어 그 때문에 좀 걱정이 될 뿐입니다."
"남자가 크면 장가를 들고 여자가 크면 시집을 가는 것은 인륜의 대사요, 다섯 가지 떳떳한 예의 하나가 아닙니까? 그런데 어르신네께서 무엇 때문에 그리 걱정하십니까?"
노지심(魯智深)이 크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주인이 더욱 어두운 얼굴이 되어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스님께서는 모르시니까 하시는 말씀이십니다. 이 혼인은 저희가 바라서 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더욱 이상하지 않습니까? 바라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사위로 맞으신단 말입니까?“
노지심(魯智深)이 더욱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노인이 다시 한번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며 사정을 모두 털어놓았다.
"이 늙은이에게 딸이 있는데, 올해 열아홉입니다. 한창 꽃같이 피어나는 나이지요.
그런데 이 마을 근처에 있는 도화산이라는 곳에 도둑 떼가 들면서 일이 생겼습니다.
근래 저희끼리는 대왕이라고 부르는 도둑의 우두머리 둘이 나타나 산채를 든든히 하고 졸개들을 모으니 무리가 오륙백이나 되는 큰 도둑 떼로 자란 것입니다.
그것들이 집을 부수고 재물을 털기 시작하자 청주(靑州) 관아에서 잡으려 했으나 세력이 커서 어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저희들은 하는 수 없이 도둑들에게 재물을 바치고 화(禍)를 면하는 형편인데, 그 우두머리 중에 하나가 제 딸을 보고 그만 반해 버렸습니다.
그 자는 금 스물네 냥과 붉은 비단 한 필을 보내 예물로 삼고 멋대로 날을 받아 정혼을 했는 바, 오늘 밤이 바로 그날입니다.
이제 밤이 늦으면 그자가 내려올 것인데 이 늙은이가 무슨 힘으로 그와 맞서 싸우겠습니까? 마음에 없어도 딸을 내주는 길밖에 없지요.
그 일로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이지, 스님이 온 것 때문은 결코 아닙니다."
그 말을 듣자 노지심(魯智深)은 그 도둑의 우두머리에 대해 불같이 화가 났다.
그러나 주인이 워낙 겁을 먹고 있어 싸우겠다고 나섰다가는 일이 제대로 될 것 같지 않았다.
부글거리는 속을 누르고 능청스레 말했다.
"일이 원래 그랬었구려. 제게 그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을 좋은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마음에도 없는 곳에 딸을 시집보내지 않아도 될 것이니 어떻겠습니까?"
"그자들은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 하는 악귀 같은 것들입니다. 스님께서 어떻게 그런 자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단 말씀입니까?“
주인이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노지심(魯智深)이 여전히 시치미를 떼며 대답했다.
"저는 오대산의 지진 장로 밑에서 불가의 인연에 관해 설법을 많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비록 쇠나 돌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도 제 말을 들으면 마음을 돌리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
오늘 밤 따님은 다른 곳으로 보내고 저를 따님의 방으로 보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그자를 인연으로 달래 마음을 바꿔 먹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했다.
얼른 대답을 않고 망설였다.
"그것도 좋기는 합니다만, 자칫하면 호랑이의 수염을 뽑는 꼴이 되지 않을런지......"
"전들 목숨이 아깝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말고 제가 하는 대로 믿고 기다려 보십시오."
노지심(魯智深)이 한 번 더 그렇게 능청을 떨자 주인도 드디어 마음을 정한 듯 말했다.
"좋소이다. 스님 뜻대로 그렇게 한번 해 보지요. 내 집에 복이 있어 이렇게 활불(活佛)이 오셨다고 믿겠소!"
그러자 곁에서 듣고 있던 머슴들은 모두 놀라고 겁먹은 얼굴이 되었다.
아무리 봐도 노지심에게 그런 신통력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까닭이었다.
"더 드시고 싶은 건 없습니까?“
모든 걸 노지심에게 맡기기로 한 주인이 호의로 물었다.
노지심(魯智深)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밥은 먹을 만큼 먹었습니다. 주시려면 술이나 좀 더 마시게 해주십시오."
"술이야 있지요, 얘들아!“
주인이 얼른 머슴들을 불러 잘 익은 술 한독과 찐 오리고기를 날라 오게 했다.
그리고 노지심에게 큰 술잔을 내주며 마음껏 마시게 했다.
큰 잔으로 서른 잔이나 퍼마시자 노지심(魯智深)도 어지간히 술배가 찼다.
노지심이 선장과 계도를 챙겨 일어나는 걸 보고 주인이 머슴들에게 먼저 신방(新房)을 치우게 했다.
"어르신, 아직도 따님께서 피하지 않으셨습니까?“
노지심(魯智深)이 그렇게 묻자 주인이 대답했다.
"딸은 이미 이웃집으로 옮겨 놨습니다.“
"그럼, 저를 그 방으로 안내해 주십쇼."
주인이 그런 노지심을 데리고 딸의 방으로 갔다.
노지심(魯智深)이 그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며 말했다.
"그럼 다른 분들은 모두 가 보십시오."
이에 주인과 머슴들은 바깥 마당에 잔치 자리를 마련했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수호지 - 이문열 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