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내가 조금 바쁘니까 당신이 짐 좀 챙겨 줘!”
여름 휴가 전날까지도 나는 무척 바빴다.
겨우 거래처에 사정하여 3일간의 휴가를 떠날 수 있게 되었고
떠나기 전날까지도 밤을 새워야 할 일이 밀려 있었다.
겨우 얻은 시간을 미리 예약해둔 한 리조트로 떠나기로 하고
집에 전화해서 내일 아침 떠날 짐을 챙겨두라고 아내에게
말하고 있었다.
사실 휴가마저 못간다면 가장의 권위는 물론
두고두고 원성을 들을 일이기도 했다.
전화를 받은 아내는 그나마 출발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짐까지 꾸리라고 한다는 불만이 있었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긍정도 부정도 아닌
이상한 대답을 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 중에 한가지 기억나는 아내의 대답은 이러했다.
“무조건 다 싸면 돼요?”
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다음날 새벽에 집에 들어가니
모두들 깊은 잠에 빠져있고 방 한쪽 구석에 가지런히 정리해둔
짐들이 보였다.
알아서 잘 정리했으려니 하는 생각과 먼길 운전할 일도 걱정되어
얼른 잠자리에 들었다.
* * *
“뭔 짐이 이리 많아?”
아침에 차에 짐을 싣는데 짐의 규모가 만만치 않아 아내에게 물으니
아내는 그냥 히죽 웃고 만다.
저렇게 말없이 웃는 것은 알면서 왜 묻냐는 반문이기도 하고
또한 한번 더 물어보면 힘자랑을 하겠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사람마다 성격은 다르겠지만 아내는 짐을 꾸릴 때
필요가 있을 지 없을 지 구분이 가지 않는 짐은 일단 가져가고 보는
스타일이다. 안쓰면 그만이지만 없으면 얼마나 아쉽겠냐는 생각이다.
얼마전 오지여행가 한비야의 책을 보니 배낭을 가볍게 꾸리는 법에
대해 나오는데 그중에 첫번째가
가져갈 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하는 짐은 일단 뺀다는 것이다.
그래야 배낭이 가벼워진다는 뜻인데 지금의 이 경우와 대치시켜보니
매우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만약 아내 같은 성격을 가진 가진 사람이 장기간 배낭 여행을 떠난다면
배낭을 트럭에 싣고 그 트럭을 들고 여행을 다녀야 한다.
그나마 아내는 힘이나 있지 성격은 아내와 비슷한데 체격이 작고
힘이 없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지 원....
하지만 내가 아는 아내는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있어서 안쓰는 것이 없어서 아쉬운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필요와 불필요의 효율보다는 있어서 든든한 마음의 안정이 아내에게는
가장 중요한 모양이다.
어떤 것이 더 좋은 성격인지, 어떤 것이 더 옳은 방법인지
굳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생각나는 것은 아내는 아내답게 살아야 만사가 형통할 것이라는
근거없는 생각뿐이다.
휴가지에 도착해서 확인한 준비물들,
그러니까 아내가 준비해온 2박3일간의 짐을 소개한다.
<일정 2001년 7월 19일~21일, 장소 : 무주리조트>
아내가 준비해온 물건 내역 -
- 피복 및 유아용품
아이들 옷 : 윗옷 7 X 아래옷 7 X 2명 = 28
양말 : 인원 수 X 일자 수
손수건 : 아이들용 10개, 어른용 2개
턱받침 등 다수
어른 옷 : 각 5벌씩
속옷 : 인원수 X 일자수
슬리퍼
모자
수건 2개
기저귀(약 일주일 사용 분)
분유 (깡통 채로 가져옴)
젖병 5개
우유 1리터 1개, 500밀리리터 1개
두유 5개
- 음식류
쌀(성인 4인이 약 일주일간 먹을 수 있음)
라면 4개
컵라면 4개
풀무원 냉면 2인분
참치캔 2개
식빵 1개
김치 4포기(거의 항아리 채 가져왔음)
열무김치 조금
오이지
김
낙지젓
깻잎
커피믹스 낱개 6개
- 음료수류
아침이슬 1.5리터 1개(집에서 먹다 1/3쯤 남은거)
오렌지 쥬스 1.5리터
팬돌이 4개
매실 원액 (물에 섞으면 100명분 정도 나옴)
캔커피 4개
집에서 끓인 보리차 1.5리터 PET 병으로 4개
- 과일류
복수박 1개
토마토 20개 (대부분 갈아서 쥬스로 만들어 먹음)
- 건어류
마른 오징어 5마리
쥐포 큰 거 4마리
- 장난감류
축구공 2개 (우리 집 애들 장난감은 심플하다)
- 가전제품
카메라
요쿠르트 만드는 기계 및 그에 딸린 컵 11개
믹서 1대
핸드폰 충전기 1개
전자 모기향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