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 코리아, 모든 측면에서 선구자"…추모 물결
등록 2021.02.14 10:07:04수정 2021.02.14 19:57:45
[서울=AP/뉴시스] 칙 코리아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칙 코리아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슬픈 뉴스다. 나는 2년 전 영광스럽게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서 그를 봤다.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매혹적인 공연 중 하나였다. 그는 진정으로 음악을 공유하는 사람이었다. 멋진 선물이었다. (그를 잃은 건) 정말 손해다."(샘 스미스)
"비할 데 없는 독립적인 사람, 기술의 대가, 모든 측면에서 선구자, 온화한 거인. 오늘날 세계는 거대한 음악적 힘을 잃었지만, 칙이 남긴 유산 때문에 끝없이 풍요롭다. 우린 참 운이 좋다. 정말 고마워, 칙"(제이콥 콜리어)
80세를 일기로 지난 9일(현지시간) 세상을 뜬 미국의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를 추모하는 물결이 온라인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샘 스미스와 제이콥 콜리어 외에도 '포플레이'의 베이시스트 네이선 이스트, 일렉트로닉 뮤직 듀오 '디스클로저' 등 장르를 불문하고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코리아에 대한 존경심을 아낌 없이 드러내고 있다.
최근 희귀암 진단을 받은 코리아는 키스 재릿, 허비 핸콕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로 손꼽힌다.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재즈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가 지난 9일(현지시간) 최근 발견된 희귀암으로 사망했다고 그의 마케팅 매니저 댄 뮤즈가 11일 밝혔다. 향년 79세. 코리아는 마일스 데이비스, 허비 핸콕 등 거장들과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총 23개의 그래미상을 받은 바 있다. 사진은 2017년 5월 15일 코리아가 모스크바 콘서트에서 연주하는 모습. 2021.02.12.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로 손꼽히는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를 거쳤다. 1960년대 말 핸콕을 대신해 이 밴드에 투입, '인 어 사일런트 웨이(In a Silent Way)'(1969), '비치스 브루(Bitches Brew)'(1970) 등 퓨전 시대의 개막을 알린 앨범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1971년에는 전설의 퓨전 재즈그룹 '리턴 투 포에버'를 결성했다. 색소폰 연주자 겸 플루티스트인 조 패럴, 타악기 연주자 에어토 모레이라, 베이시스트 스탠리 클락 등과 뭉쳤다. 이 팀은 히트작 '스페인(Spain)', '500마일스 하이' 등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비브라폰 연주자인 게리 버튼과 협업도 코리아 음악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다. 두 뮤지션은 1972년 처음으로 팀을 이뤄 '크리스탈 사일런스(Crystal Silence)'를 세계적인 재즈 레이블 ECM을 통해 발매했다. 버튼과 작업에서는 고요하면서 명상적인 음악을 추구했다. 이후 두 사람은 다양한 작업을 오랫동안 펼쳐나갔다.
코리아의 실험은 멈추지 않았다. 1980년대에는 당시 퓨전 재즈 전문 레이블로 자리매김한 GRP 레이블과 계약, 새 그룹 '일렉트릭 밴드'를 결성했다. 이 레이블은 스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데이브 그루신이 운영했다.
[서울=AP/뉴시스] 칙 코리아
2000년대 뉴욕 블루노트에서 공연한 코리아는 과거 뮤지션들과 재결합 콘서트, 회고 프로젝트를 병행했다. 동시에 상반된 성격의 새로운 작업도 이어나갔다.
2010년대에는 젊은 음악가들과 혁신적인 음악을 시도한 '더 비질(the vigil)', 베이시스트 크리스찬 맥브라이드와 드러머 브라이언 블레이드와 함께 어쿠스틱 트리오로 활약했다.
말년까지 활동을 이어온 코리아는 약 90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그래미 어워즈'는 무려 23차례나 받았다.
오는 3월14일 예정한 '제63회 그래미 어워즈'에서도 '올 블루스(All Blues)'가 '베스트 임프로바이즈즈 재즈 솔로(best improvised jazz solo)', '트리올로지 2(Trilogy 2)'가 '베스트 재즈 인스트러멘털 앨범(best jazz instrumental album)'에 노미네이트돼 사후에 그래미 어워즈를 추가할 가능성도 있다.
[서울=AP/뉴시스] 칙 코리아
지난 2006년에는 미국 재즈 음악가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국립 예술 기금 재즈 마스터'가 됐다.
코리아는 퓨전 재즈 운동이 상징처럼 됐지만, 그는 생전 음악 장르를 구분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활동 후반에는 모차르트, 쇼팽과 같은 클래식 음악 작곡가의 작품을 녹음하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뉴욕 필하
모닉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도 협업했다.
코리아는 1983년 타임과 인터뷰에서 "음악을 분류하는 데 관심이 많은 것은 기업과 언론이다. 음악에는 항상 여러 종류의 융합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살아 생전 "나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배우는 학생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코리아(Corea)라는 이름 덕분에 한국 팬들이 친밀하게 대했다. 19994년 팔러먼트 슈퍼밴드로 처음 내한했고 이후 MBC '수요예술무대', 재즈 페스티벌 등 다양한 무대에 솔로·밴드 형태로 10여차례 내한공연했다. 지난 2018년 롯데콘서트홀에서 연 솔로 콘서트가 한국에서 마지막 무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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