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 바닥에 그려진 여러문양 중에 절 만자
출가하여 절집 승가에 들어와 배운 절 만자를 별 생각 없이 보고 익혀 왔다. 그러다가 인도 성지순례를 하면서 만자 무늬가 불교와 절의 상징으로만 알고 있다가 인도 땅에서 보고 만난 놀라운 게 바로 이 만(卍)자다. 인도에서는 힌두 사원이나 자인교 사원뿐 만이 아닌 집집마다에, 대문이나 어떤 신상 밑에건 곳곳에서 이 절 만자를 그려놓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미 고대 인도의 종교 철학 유구한 역사 문화에서 쓰여 오는 상서로운 무늬인 것이었다. 한국의 절에서만 쓰는 고유한 글자가 아니었고, 의미로는 인도나 한국이나 상서로운 문양으로써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중국을 다니다보니 불교 사원뿐만이 아닌 인도에서처럼 곳곳에서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인도에서 쓰는 식이 아닌 차이로는 만자가 오른쪽으로 구부러지는 우만(右卐)이 아닌 왼쪽으로 그려진다. 불교도에서는 이것을 좌만(左卍)이라고 새긴다. 이 문양이 부처님의 덕(德)과 길상(吉祥)을 나타낸다. 그러나 대승불교도 지역에서만 쓰이고 남방 전통 근본불교도에서는 쓰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가 파키스탄 모헨조다로(Mohenjodaro) 유적을 보고, 박물관에서 이 절 만자를 보면서 정말 놀랐다. 흙 도장으로 쓰였나본데 전시관 유물에서 보게 되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다시피 인류 사대문명의 발상지인 인더스 강, 이미 인류가 오천년 전에 이 절 만자를 쓰고 왔던 것이다. 후에 찾아간 중부 파키스탄의 라호르 근처 하랍빠(Harappa) 유적지에서도 바로 이 문양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필자야 전문 사학자도 아니고 단순히 여행과 호기심으로 옛 유적을 둘러보다가 우연하게도 눈에 뜨인 게 바로 또 이 절 만자였다. 참고로 산스크리트어로는 스바스티까(Svastika)라고 불리며 영어표기는 스와스티카(Swastika)다. 훗날 알고 보니 이 문양이 인도를 중심으로 페르시아 그리이스, 또 멀리는 아프리카 소수부족들과 아메리카의 원주민들까지 널리 사용되어 왔었음을 알게 되었다.
» 십자가와 절 만자가 함께 있는 문양
몇 해 전 동유럽을 빙 둘러보면서 어느 초창기 기독교 교회 발굴 현장을 우연히 가게 되었다. 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Ohrid) 호수 전망 좋은 언덕배기였다. 4세기에 건축된 초기 교회란다. 정식 이름은 스웨띠 클리멘트 판테레즈몬(Sveti Kliment Pantelejmon)이라고 쓰여 있는데 필자가 어설프지만 우리말로 풀어쓰면 성 클레멘스 기념 신전 정도이리라. 교회사에서 클레멘스는 초기 기독교 순교자로써 어느 기독교 나라에서나 이 분을 성인으로 추앙하며 곳곳에 성 클레멘스 교회 이름이 많기도 하다. (활동연대는 약 30년 - 110년). 특히 로마 카톨릭이 아닌 러시아 정교회 쪽 나라엔 더욱 클레멘스란 이름을 띤 성당이 많은 것을 여행 중에 알게 되었다. 교회 터는 천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기에 이미 한참 밑으로 지하가 되어있었는데 교회 바닥이 모자이크로 예쁘게 되어있으며 중간 중간에 여러 가지 동물 꽃 화초 등등을 정성스럽게 만들어져 있다. 여기서 놀라게 된 것이란 바로 비잔틴 유적 모자이크 바닥에 십자가와 함께 바로 이 절 만자가 나란히 새겨져있는 것이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필자로선 참 감동적이었다. 생각해보지만 이 절 만자가 변해서 훗날 십자가가 되었는지, 십자가가 변해서 훗날 절 만자가 되었는지 필자의 천박한 지식으로는 헤아릴 수가 없다. 사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자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이 절 만자가 우선 종교를 떠나 동서양에서 상서로운 문자로 공통으로 쓰여 졌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여행 중에 우연히도 거둔 필자만의 즐거움이었다. 발굴하는 옛 교회당 옆에는 새로 지은 성당이 있는데 마침 신부를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신부도 왜 이 절 만자를 초기 교회에서 쓰였는지는 대답을 못했다.
» 발굴터의 한쪽에 새로 지은 조그마한 예쁜 교회
이 나라 마케도니아의 수도는 스코피에(Skopje)라고 불리는데, 뜻밖에도 돌아가신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태어나신 고향땅이었다. 그런 상식도 없이 수도에 들어갔다가 횡재를 만난 격이다. 당연히 기념관을 참배했고, 그 옛날 1987년 처음 칼카타에서 만났을 때의 영감을 떠올리기도 했다. 필자로선 적어도 이 지구상에서 만난 여성 성직자로서 최고의 성녀임을 확신한다. 만난 순간의 영적인 체험을 어떻게 표현 할 수가 있을까.
작년 봄 빠리의 루브르 박물관 이집트 유물 전시실에서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미 고대 사회에서 지역을 불문하고 이 절 만자를 쓰고 있었다는 증거가 한 인물 토기 상에 선명한 문양으로 그려져 있는 이 절 만자를 보게 되었다. 이전에도 두 번이나 이 박물관을 둘러봤는데 그 때는 왜 이걸 못 봤을까.
이렇듯 이 절 만자 문양이 세계 곳곳에서 먼 오랜 옛날부터 우리 인류가 써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이 상서로운 종교적인 무늬가 상업화로 엉뚱한 곳에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돈이 되는 반지나 목걸이 시계 등등 하찮은 물건에 상품화로 전락된 것이다. 쉽게 말해 이런 걸 지니면 행운이 오고 사업도 잘 되고 하는 둥, 하긴 종교도 이미 상품화가 된 마당에 이까짓 문양에 장삿속이란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 루브르 박물관 에집트 전시관에 있는 토용, 목에 절 만자를 그려 놨다
이런 모습의 연장선상에서 필자는 늘 한심스러워 한다. 때 되어 행하여지는 모든 신전의 종교행사는 이미 매너리즘에 빠져 버려 영혼이 떠나버린 형식만 남는 껍데기에 불과하지 않는가. 이런 종교 예식은 헌신과 청빈, 절제와 세속화를 포기하지 않는 한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성직자라며 잔뜩 폼만 잡는 사람들이 경전의 문자적 의미에만 복종하여 자신의 팔다리를 기계적으로 놀리며 판에 박은 말이라니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 진리의 샘에 들어가서 그 맑은 생명수의 맛을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일생 헛짓만 하다가 이 귀하게 받은 몸과 시간을 허비해버리는 꼴이기에 아쉽기만 하지 않은가 말이다.
2013년 1월.
천축국 눈 덮인 히말라야 비탈길 다람쌀라에서, 비구 청전 합장.
첫댓글 제가 보기에는 위의 있는 십자가는 교회의 십자가하고 좀 다릅니다. 교회의 십자가는 좌우로는 짧고 위아래는 긴 편인 만큼 위의 십자가는 좌우상하의 길이가 같은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우리 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요??? 온 공간과 시간에 꽉 찬 진리를 말해주는 것처럼요. 감사합니다. 아미타불_()_
소국님 청천스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_()_
"卍...부처님의 덕(德)과 길상(吉祥)을 나타낸다"...소국님~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