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크로아티아어로 번역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약간 문제가 생겼다. 알고 보니 세르비아어로 번역해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 하기 전에 로마문자로 쓰는지 키릴문자로 쓰는지 물어봤지만 로마문자로 쓰고 크로아티아어 같다기에 그렇게 했는데, 사실 세르비아어는 공식적으로는 키릴문자로 쓰지만 로마문자도 쓴다는 사실을 그 쪽에선 몰랐던 것이다.
세르비아어와 크로아티아어는 언어학적으로 분류하면 사실상 같은 언어라 볼 수 있지만 종교와 문화적으로 달라 서로를 다른 민족으로 다루고 이제는 나라도 다르며 철자를 조금 다르게 쓰고 어휘도 약간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언어로 보기도 한다. 크로아티아어와 세르비아어 철자를 자동으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없는 관계로 일일히 철자를 다시 바꿔야 했다. 이번에는 양이 별로 안 많아서 그리 시간은 많이 안 걸렸지만 전에 포르투갈어로 번역을 했을 때는 양이 많았는데 의뢰자가 브라질식임을 얘기 안 해서 나중에 좀 애를 먹었던 적이 있다. 글로 쓰는 경우에도 브라질어와 포르투갈어의 차이는 나름대로 상당히 크기 때문에 주의를 해야 하는데 이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이처럼 표준어에서도 변이형이 있는 경우는 주의를 해야 한다.
영어, 독어, 불어, 스페인어의 경우 표준어로만 본다면 위에 언급한 언어보다는 나라마다 그리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간혹 다른 식으로 해달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나 브라질어, 포르투갈어의 경우와 달리 표준어의 변이형이 완전히 확립된 경우가 아니라 약간 당황스러운 적이 있었다. 영어의 경우도 영국과 미국식이 철자에서 좀 다르고 용어가 좀 다른 게 있다고는 하지만 굳이 돋보기를 갖고 들이대면서 따지지 않는다면 표준어의 경우 전체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지금은 북한에 대한 수요가 별로 없기 때문에 좀 그렇지만 만약 통일이 안 된 채로 혹시 북한이 경제 성장을 해서 번역의 수요가 늘어나면 따로 북한어로 번역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표준어로만 본다면 이미 북한어와 남한어도 철자 등 여러 차이가 있고 용어상의 거리도 상당하기 때문에 통일이 되든 안 되든 이런 문제의 조정과 조율이 필요할 것이다. 유럽연합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시아도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여건이 되면 베트남어나 몽골어 등도 포함해서) 등 사이에 국제적인 전문용어 정리 작업이 필요한데, 이에 앞서 남북한의 전문용어 정리 작업이 반드시 있어야 하겠다. 이러한 작업은 범위가 상당히 넓어 개별 번역자가 따로 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므로 국가적 차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Korterm (전문용어언어공학연구센터) 같은 기관이 지금보다 더 나은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좀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받았으면 한다.
첫댓글 무더운 여름 소나기처럼 시원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