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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성령의 열매 맺는 달☜
모든 생명의 양식(복음)을 등한히하면,사탄의 표적되어 영생의 기쁨을 빼앗기게 됩니다.
창12:10-20절) 신앙의 실망
우리는 친했던 사람에게 큰 실망을 해서 마음이 아플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아주 친한 친구를 믿었는데, 그가 거짓말한 것을 알게 되어 실망할 때도 있고, 또 돈을 빌려 달라고 해서 빌려줬는데, 약속한 때가 되었는데도 돈을 갚지 않을 때, 친구에게 실망하게 된 적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에게 실망할 때가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네가 싫어졌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만나든지 하면, 굉장한 배신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대개 친했던 사람에게 실망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 사람과 관계를 끊고, 더 이상 만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에게 실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 예수 믿을 때, 우리는 마치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미래를 행복하게 해주실 것이며, 내가 드리는 기도를 다 들어주실 것이라는 엄청난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가족 중에서 누군가가 큰 병에 걸렸는데, 아무리 기도를 해도 병이 낫지 않고, 결국 돌아가시게 되면 *하나님이 기도하면 다 들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왜 내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으셨을까? 하는 실망을 하게 됩니다.
혹은 대학 입시나 취직을 앞두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또 기도도 했는데, 시험에 불합격 되면, 우리는 기도의 능력이나 하나님에 대하여 실망을 하게 됩니다. 아마 우리 중에서 이런 식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실망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일본을 여행해 보면, 자판기(自販機)천국이라고 할 정도로 곳곳에 자판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자판기 종류도 다양한데, 도시락이라든지, 우산이라든지, 라면이라든지, 심지어 꽃까지도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자판기에서 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하면서 마치 알라딘의 램프나 커피 자판기처럼 요구하기만 하면, 척척 복(福)이 쏟아지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알라딘의 램프나 커피 자판기처럼 누르기만 하면, 요구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복을 주시겠다*고 하면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란이라는 곳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오게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가나안 땅에는 큰 흉년(凶年)이 들어서 그 땅에 살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하나님을 믿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자기 부인(婦人)사라를 누이라고 속이게 되었는데, 그 일로 결국 아브라함은 애굽 왕 바로에게 자기 부인(婦人)을 빼앗기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난관(難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우를 당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았는데, 도저히 지금 이곳에서는 생활을 할 수가 없고, 그래서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더 심한 최악의 경우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의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왜 이렇게 최악의 경우를 만나게 되는 것일까?
Ⅰ.아브라함의 실망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해서 거기에 있는 고향과 동맹(同盟)한 사람들과 심지어는 가족이나 친척들까지 다 내려놓고, 생전 살아본 적도 없는 가나안 땅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아마 아브라함은 처음에 가나안의 생활을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가자말자 복(福)을 받아서 점점 많은 땅을 구입하고, 또 많은 종들을 사서 거의 나라를 형성할 정도로 부자(富者)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아무 복(福)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곳에는 아브라함이 소유할 수 있도록 준비된 땅이 전혀 없었습니다. 거기에다가 가나안 땅에 흉년(凶年)이 드는 바람에 도저히 그 곳에서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순종해서 가나안 땅에 왔는데, 어떻게 복(福)이 오지 않고, 흉년(凶年)까지 들어서 도저히 그곳에서 살 수 없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실망하게 되고, 또 의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면, 모든 형편이 더 좋아져야 하는데, 어떻게 더 나빠질 수 있으며, 심지어는 흉년(凶年)까지 들어서 굶어 죽을 지경까지 될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현실과는 맞지 않으니까 일단 현실을 붙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일단 먹고 살기 위해서 양식(糧食)이 있는 애굽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아브라함의 인생은 완전히 내리막길 인생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한번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한순간에 인생 밑바닥, 즉 최악의 지경까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12:10절)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라함이 애급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 붙들고, 가나안 땅으로 내려갔을 때, 아브라함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축복(祝福)에 대한 많은 기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네가 복이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아브라함에게‘너는 큰 나라를 이룰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아브라함은 이제 이 약속의 땅에서 이전보다 더 넓은 땅을 가지게 될 것이며, 엄청난 물질적(物質的)인 복(福)을 받아서 많은 하인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전부 이루어주시는 축복(祝福)의 삶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경험했던 것은 그의 기대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많은 돈을 벌지도 못했고, 땅이라고는 한 평의 땅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싫어하니까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 안에서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심한 기근(飢饉)이 들어서 먹을 양식이 없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마음에 큰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현실과 이렇게 다를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복(福)을 받아서 다른 모든 민족들도 아브라함의 복(福)으로 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순종해서 가나안까지 왔는데, 왜 하필이면, 가나안에 흉년(凶年)이 드느냐? 는 것입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아직 하나님의 축복(祝福)의 비결(秘決)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생각으로는 내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했는데도 살 수 없게 되었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어려울 때는 잠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접어놓고, 세상을 따라가서 일단 살고나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이론적(理論的)인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현실로 나아가더라도 실제로 말씀의 능력은 잘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현실의 엄청난 벽만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일단 먹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해서 너무나도 쉽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뒷전에 둘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은 현실에서 실패하기 쉽습니다.여기서 우리가 또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엄청난 복(福)을 약속하셨지만, 복(福)부터 먼저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비밀(秘密)을 터득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 외(外)에는 소망(所望)이 없게 만드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모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살아도, 어려움은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은 내 믿음이 잘못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대한 믿음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연단(鍊鍛)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Ⅱ.인간적 방법의 결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지 못하고, 애굽으로 내려가기로 했을 때, 아브라함에게는 큰 걱정거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애굽 사람들의 소행(所行)이었습니다.
12:11-12절)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라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아브라함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었던 모양인데 애굽으로 가는 도중에 너무나도 불안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애굽으로 내려간 가나안 사람들이 애굽 사람들에게 부인(婦人)을 많이 빼앗긴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여인(女人)들을 노리고 있다가 만약 결혼하지 않은 딸이 있으면, 돈을 주고, 딸을 데려가고, 여인에게 남편이 있으면, 그 남편을 죽이고, 부인(婦人)을 빼앗아 간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양식이 없어서 다른 나라에 먹을 것을 구하러 가는 난민(難民)에게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은 바로 여인(女人)들입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은 딸 같은 경우에는 부잣집의 첩이나 하녀로 빼앗기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남편이 있는 부인(婦人)들조차도 매춘(賣春)을 시키기 위해 납치를 하거나, 빼앗아가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 북한(北韓)에서도 먹을 것이 없어서 탈북한 사람들 중에 여성들은 인신매매(人身賣買)하는 사람들에게 팔리는 경우가 아주 많다고 합니다.
아마 아브라함은 이 소문을 듣고, 너무나도 불안하고,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고민하다가 목숨이라도 건지기 위해서 사라에게 자기를 남편이라 부르지 말고, 오빠라고 부르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이 말은 설사 우리가 애굽 땅에 가서 애굽 사람들이 사라를 빼앗아간다면, 사라를 빼앗기는 일이 있더라도 자기는 죽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애굽의 소문을 듣고, 얼마나 겁을 집어먹었고,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 부부를 지켜주실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한번 믿음에서 떠나게 되니까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믿음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것도 아브라함이 혼자서 생각한 것은 아닌 것 같고, 같이 애굽에 내려가던 가나안 사람들이 그렇게 조언(助言)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에게‘당신 부인은 상당히 미인인데 당신이 살고 싶으면 부인이라고 하지 말고 누이라고 하시오. 그래야 목숨이라도 건지지, 그렇지 않고 정직하게 당신의 부인이라고 하면 어느 순간에 죽을지 모른다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자기 부인(婦人)을 누이라고 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아브라함은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두 번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나서 그 믿음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기근(飢饉)이라는 벽이었고, 다른 한번은 애굽 사람들의 악(惡)한 행실(行實)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거짓말을 하고, 또 거짓말을 가르쳐주는 것을 배울 때가 있습니다.
즉‘이런 것은 모두 다 이렇게 하는 것이다.’하는 말로 거짓말을 가르쳐준다거나, 혹은 상대방이 뇌물(賂物)이나, 더 악(惡)한 것을 요구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거부했다가는 완전히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 그는 아무 것도 믿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사라를 포기할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애굽의 왕(王)인 바로의 귀에 사라가 미인(美人)이라는 소문이 들어가면서 바로가 신하를 보내어 사라를 첩으로 데리고 가버린 것입니다.
12:14-16절)이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 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아브라함이 걱정했던 대로 사라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라를 본 애굽 사람들은 사라를 바로 앞에서 칭찬을 했기 때문에 바로는 사라를 자기 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여기서 바로가 아브라함에게 양이나 소나 노비를 많이 주어서 후대했다는 것은 그냥 선물(膳物)을 준 것이 아니라, 사라를 후궁(後宮)으로 받아들이는 대가로 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사라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칠십 오세였고, 사라가 육십 세가 넘었을 텐데, 어떻게 육십이 넘은 여인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사라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젊고, 아름다웠다는 것 같습니다. 즉 사라는 요즘처럼 보톡스(Botox) 주사도 맏지 않았는데. 진짜 나이보다 이십 세 이상 젊어 보였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서 실망해서 애굽으로 내려온 후에 완전히 인생 밑바닥 상태까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하나님의 복(福)은 고사하고 자기 부인(婦人)까지 빼앗기고,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권력(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무력(武力)을 가지고 바로와 전쟁(戰爭)해서 사라를 찾아갈 힘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브라함이 바로를 찾아가서‘사실은 내가 거짓말을 했노라’고 이실직고(以實直告)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라를 포기하고, 혼자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로부터 많은 소와 양과 노비를 보상 받은 것은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아브라함의 정신상태는 최악(最惡)이었습니다. 현실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과는 너무나도 먼 거리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깊은 웅덩이에 빠졌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거기서 빠져 나올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았다 해서 당장 하늘에서 복(福)이 홍수가 오듯 쏟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는 것은 이제 고통스러운 훈련의 시작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드는 믿음의 용사가 되는 훈련(訓練)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서 세상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복음(福音)을 들고 나가서 외치기만 하면, 베드로가 했던 것처럼 하루 삼천 명씩 회개하게 하고, 사도 바울처럼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 부딪쳐보면, 일단 나를 쓰려고 하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훈련(訓練)받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상대를 해야 하는 사람은 애굽 왕 바로였습니다. 바로는 애굽을 권력으로 지배(支配)하고 있었고, 아브라함의 아내를 강제로 거의 빼앗다시피 데리고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절대로 바로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나가보면, 싸워야 하는 것들이 모두 다 이런 것들입니다. 거대한 현실 앞에서 우리의 믿음은 너무나도 보잘 것 없고, 초라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권력(權力)을 가지려 하고, 돈을 가지려고 머리가 터지도록 싸우는 것입니다.
즉 돈이 있고, 권력(權力)이 있어야 이 세상에서 큰 소리를 치지, 믿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Ⅲ.하나님의 방법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저버리고, 애굽으로 갔다가 큰 낭패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때 애굽에서 아브라함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다시 붙들고, 죽자고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빼앗기고 나서 그가 한 일은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복(福)을 여는 비결(秘決)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현실에 부딪치게 되고, 최악의 지경에 빠지게 되었을 때, 그때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늘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본문에는 아브라함이 기도했다는 말은 없지만, 그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해 일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12:17절)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라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그런데 바로 이런 어려운 상황 중에 있을 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위하여 조용히 일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즉 바로가 사라를 데려간 그 순간부터 바로의 궁(宮)에서는 어떤 질병(疾病) 재앙이 돌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결국 이 질병(疾病)때문에 바로는 사라를 가까이 할 수 없었고,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바로 왕궁(王宮)의 제사장들이 이 질병(疾病)의 원인을 나름대로 알아보니까 바로 새로 들어온 사라라는 여자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그 여자 때문에 바로의 왕궁(王宮)사람들은 신(神)의 진노(震怒)를 입고 있었고, 신(神)은 더 진노(震怒)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갑자기 아브라함을 불러서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물었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이며, 어떻게 해서 너는 바로의 왕궁(王宮)에 재앙(災殃)이 일어나도록 거짓말을 했느냐*고 따졌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계속 실수를 했고, 그런 실수 중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사라와 아브라함을 지키기 위해서 바로의 왕궁(王宮)에 질병(疾病)의 심판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바로에게 다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바로는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되 돌려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왕(王)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불려가서 죽임을 당할 줄 알았는데, 바로는 몇 마디 불평을 하고 난 후에는 사라와 아브라함의 머리털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나가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현실 앞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좌절합니다. 또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믿지 않는 자들에 비해서 불리할 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자기 목적(目的)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거짓말도 할 수 있고, 악(惡)한 방법도 쓸 수 있지만, 믿는 자들은 그런 악(惡)한 방법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 좋지 않은 방법을 썼다가 탄로가 나면, 더 큰 망신(亡身)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능력(能力)이 많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편이십니다. 우리가 어려움 중에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그 위기에서 건져내주십니다.
아무리 바로가 이 세상에서 대단하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힘으로 모든 어려움을 다 이겨 내라고 이 세상에 살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계속적으로 개입(介入)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감히 바로를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바로를 움직일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움직이셔야 우리는 이 현실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이 세상 사람들의 손에서 지켜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직장과 집을 가지면서 우리의 거처(居處)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처음 예수 믿고,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모든 것들이 마음먹은 대로 척척 될 줄 압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한 발을 잘못 내디뎠을 때, 끝을 알 수 없는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지게 됩니다.
이때 끝까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죽을 각오를 할 때, 하늘 문이 열리면서 기도 응답을 받고, 부흥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비법(秘法)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가나안의 흉년(凶年)과 부인(婦人)을 빼앗는 애굽의 악(惡)한 풍습(風習)과 바로라는 시험을 준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은 생명의 말씀대로 믿는 것이 가장 경제적(經濟的)이고, 가장 편하게 믿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서 탈선(脫線)해서 엄청난 구렁텅이에 빠져들었다는 생각이 들 때부터는 모든 동작(動作)을 그만두고, 다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끝까지 견디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절망(絶望)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시고, 다시 믿음의 길을 걷게 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실패를 통하여 크게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은 절대로 자판기(自販機)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 실패하는 순간부터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訓練)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 훈련(訓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아무리 내 생각과 달라도 철저하게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굶고, 고통을 당하고, 아주 심한 절망의 순간이 오더라도 말씀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그 고난을 겪은 후에 아브라함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었던 것입니다. 이 후부터 아브라함은 어떤 일이 있어도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기게 하실 때까지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이때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 사람들의 유혹하는 말을 들으면 않됩니다.우리는 하나님이 한번 약속하셨으면,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순종하므로 승리하는 각 셀(cell)공동체와 가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찬송가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 예배 8월 14일(주일)
오늘의 묵상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37:5-6)
*매일 새벽 4-5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오늘의 기도제목 ▣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주님! 셀(cell)공동체, 예배공동체, 선교공동체로 부흥.성장케 하옵소서.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하신 주님! 내게 맡겨주신 재물과 나의 생명 주님께 드려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 교갱원의 엄격한 규칙을 지켜 낙오자 없이 모두 성숙한 복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 癸卯年 *신실하고 충성된 일꾼 세워 성장하는 해* ※후반기는 필(必)히 행정서식을 작성제출해야 교갱원소속 A급셀(cell)로 새출발 할 수 있습니다. 교갱원카페. 카톡.천국백성이 은혜받고 감사하며, 기도로 화답하는 것은 필수.기본상식. 후원계좌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내용)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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