곗돈 떼어먹고 달아난 미용실 원장을 찾아 한동네 사는 여성들 4명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걸 스카우트]는,그러나 재미가 없다. 돈을 되찾으려는 목적으로 모인 4명의 여성들이지만, 각각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그들 사이의 관계도 매끄럽게 처리되지 않았고, 캐릭터의 개성적인 차별화도 뚜렷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성들 사이의 연대도 없고, 각 세대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4명의 여성들이 모였지만, 이야기의 화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배우들의 튀는 개인기뿐이다.
이혼하고 주식 투자나 옷가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테크를 시도하지만 늘 뒷북치거나 손해만 보는 30대 여성 미경 역의 김선아, 손자 재롱 볼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마트에서 노가다하는 할머니 이만 역의 나문희,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몸으로 두 아들 키우며 안해본 것 없이 온 몸 던져 일하는 40대 봉순 역의 이경실, 그리고 폼 나게 살아가느라 빚은 늘어만 가지만 그래도 로또 대박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20대 강은지 역의 고준희 등 4명의 여성들을 중심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20대와 30대, 40대 그리고 6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계층이 모인 여주인공들의 구성원이나 캐스팅은 나쁘지 않다. 문제는 이야기가 너무나 천편일률적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그동안 흔하게 접한 소재에 상투적으로 전개되는 극적 구조는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한다. 김상만 감독은 데뷔작을 만들면서 자신의 독창적 칼라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배우들의 개인기만 눈에 들어 오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3년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김선아다.
[내 이름은 김삼순](2005년)은 아마도 김선아의 연기 일생동안 따라다닐 작품이겠지만, 그것은 그만큼 삼순이의 캐릭터를 독창적으로 훌륭하게 그녀가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시사회에 나온 김선아의 모습도 삼순이의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얼굴살은 몰라 보게 빠지고 몸매도 삼순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날렵해진 김선아는, 꽉 끼는 청바지 차림의 간편한 복장으로 무대인사에 나섰지만 예전보다 훨씬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화합이 필요한 작품인데 촬영하는 동안 배우들과의 화합이 아주 잘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웃고 힘을 낼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선아는 자신의 촬영한 사진으로 달력을 제작해서 촬영 현장의 스텝들에게 돌렸다. 김선아는 예전 [몽정기]를 다 찍고 난 뒤에도 스텝들에게 장미꽃을 돌린 적이 있다. 현장 스텝들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의 한 사람이 김선아다. 김선아는 호탕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지만 지난 3년동안 그녀를 중심으로 생산된 여러가지 루머들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기를 보냈다. 영화 [목요일의 아이] 촬영과 관련된 송사에 휘말렸고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스캔들의 주인공이되기도 했다.
[영화를 찍는동안 너무나 행복했다.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일하는 즐거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현장에서의 고마움을 어떻게 전할까 생각하니까, 고생하는 스텝들 생각하니까, 가슴이 뭉클해진다. 영화는 참 힘든 작업인데,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정이 그 어려움을 이기게 해주는 것 같다]
이동건과 함께 MBC-TV의 월화 미니시리즈 [밤이면 밤다다]를 찍고 있는 김선아는, 이제 3년만에 본격적으로 대중들 앞에 돌아와 연기활동을 시작한다. 6월 16일부터 방송될 [밤이면 밤마다]를 위해 현재 그녀는 밤샘 촬영을 하면서 [걸 스카우트] 홍보를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피로가 겹친데다가 목이 많이 부어서 소리도 잘 안나오고, 링거를 맞으며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다.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 [걸 스카우트를 선택했다. 처음 대본을 읽을 때의 느낌과 영화 촬영이 완료된 시점의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다른 것은 시나리오보다 3배는 빠른 속도감으로 찍혀져 있다는 것이다. 관객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내가 배우로서 일할 수 있는 힘을 다시 나에게 되돌려준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러나 완성된 [걸 스카우트]는 김선아의 바램을 완전히 충족시켜주지는 못할 것 같다. 삼순이 이미지, 그러니까 주변상황의 불리함에 굴하지 않고 당차게 인생을 살아가는 캐릭터는 여기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김선아가 맡고 있는 30대 여성 역의 김선아는, 영화 후반부에는 딸이 납치되면서 모성을 발휘하는 연기도 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추격씬 등 몸을 던지는 액션씬이 많아서 그 어느 작품보다 힘들게 찍으며 고생했지만, 이야기는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는다. 4명의 개성이 다른 여자 배우들이 모였지만, 시너지 효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전개되는 상황이 너무나 상투적이다.
여성 영화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는 역할이나 비중이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각 세대를 대표하는 4명의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걸 스카우트]는 아쉽게도 여성들만의 문제점을 특별하게 다루지도 않는다. 여성들의 삶에 대한 성찰이나 사유 없이 여성 4명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이유를 나는 알 수가 없다. 영화 제작의 근본적인 시점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다만 김선아나 나문희 등 좋은 배우들의 연기가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