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사랑은 신호 없이 온다.
발자국 소리 하나, 조그만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사랑은 와서 순식간에 우리들을 쾌락과 고통, 혼란과 후회의 불 속으로 집어던져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둘을 만들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노을을 만든다.
그리고 그 고뇌는 달콤하고, 그 슬픔은 즐거우며, 사랑의 불에 타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사랑은 다만 사랑 하나를 가짐으로 해서 지금까지의 모든것을 잃어버리게 한다.
끝없는 상실 끝에 열리는 창이다. 마침내는 단 한점의 착의도 없이 자신을 완전히 내던졌을 때에 비로소 갖게 되는 우주인 것이다.
이렇게 쟁취한 우주는 그렇지만 자칫 변하기 쉽고, 잃어버리기 쉬운 가변성이있다.
사랑이 신호도 없이 달려와서 우리를 태워버렸듯이, 우리들은 그 사랑이 우리들을 언제 떠나버릴까에 대한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절절한 우리들의 사랑. 비록 사랑을 했음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해도, 전혀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잃은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열 배, 아니 수천 배 낫다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사랑을 제거해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의 주성분은 사랑이다.
창밖의 나뭇가지가 푸른 물이 오르고, 하늘빛이 짙어가듯이, 어느 맑은 날 우리들은 사랑의 물이 오르고 분홍빛 복숭아의 사랑스런 여자가 된다. 첫사랑의 소롯하고 싱싱한 신록이 되는 것이다.
첫사랑 !
밉고 지친 목소리가 아닌, 신선한 콧소리로 첫사랑이라고 그 신록을 발음하고 싶다.
어느 심리학자는 어린 아이가 엄마의 젖을 만지는 것에서부터 최초의 사랑에 눈을 뜨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본능적인 것으로부터의 발상은 제처놓고서라도 우리들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사랑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 부모나 형제간, 혹은 친구간의 일상적인 정의 교환이 아닌, 가슴이 흔들리고 온몸이 뜨거워지는 그런 사랑의 경험 말이다.
초등학교 1학년 학예회 때의 일이 생각난다. 키가 작고 몹시 귀여운 우리반 반장 아이와 나는 신랑과 각시로 분장을 하고서 학예회의 첫 대목에 무대 인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그것이 죽도록 부끄러웠다, 속으로는 은근히 기뻤지만 학급 아이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얼레꼬레요.얼레꼴레요, 아무개 각시래요'하고 놀려대는 것이 괴롭고 부끄러워서 견딜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나의 신랑으로 분장한 남자 아이가 놀림을 당할 때는 미안하고 수치스러워서 속으로 마구 울었다.
그리고 짝을지어서 유희를 할 때에 그 애의 ㅗㄴ을 잡을 차례만 되면 작은 손이 마구 떨리면서 덥게 젖어오던 땀방울의 감촉, 이런 것을 내 사랑의 출발이라고 할까?
밤이면 나는 몰래 기도를 올리곤 했다. 나는 공주였고 그 애는 하늘을 나는 담요를 가진 페르시아의 왕자였다. 전능한 나의 왕자가 나는 담요를 타고 와서는 말발굽을 울리며 맘씨 착하고 어여뿐 공주를 괴롭히는 간신들을 모조리 쳐부수는 그런 꿈의 기도였다.
나중 일(?)이 무서워 회충약도 못먹고, 엄살을 부리고, 풍선이나 캐러멜이 관심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던 작은 아씨의 꿈이 이토록 농밀하리라고는 아마 아무도 상상 못했으리라.
그리고 그즈음 나는 공중 목욕탕에 가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욕탕 앞 어둑한 골목에서 나의 신랑을 만나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내 나의 기도 속의 왕자로 자라났다.
이렇게 내 사랑의 출발인 첫 페이지는 솜사탕처럼 떠 오른다.
그리고 또 그 후엔 반바지를 멋지게 입고 말을 조리있게 잘해내는 이웃 교실의 눈이 까만 남자애가 마구 좋았다. 그 애는 모범생이었으며 공부를 썩 잘하여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곤 했다.
어느 해질 무렵 늘 푸른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서 내 친구랑 고무줄 넘기를 하고 노는데 그 애가 뜻밖에도 다른 서너명의 남자 아이를 끌고 와서는 고무줄을 마구 쥐어뜯어 버렸다.
그리고 나에게 플라타너스 이파리를 잔뜩 뿌려놓고 달아나버렸다.
그 애가 달려간 넓고 큰 운동장을 바라보며 속으로 하얀 기쁨에 가슴은 설레였던 것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할수 있다.
그리고는 갑자기 조금은 낡은 나의 꽃신이 밉고 싫어져서 엄마에게 새로 사달라고 졸라대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던 것도 말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 후에 나에게 휘몰아친 폭풍우에 비하면 물론 아무것도 아닌것이었다.
예방주사만도 못한 것이었다.
아니 사랑에는 어떤 예방주사도 소용이 없는 것이긴 했다. 그때마다 최초였으며, 그때마다 아프고 괴로웠으며, 출발이었으며, 생의 전부를 휩쓸어도 시원치 않은 무서우 활화산이었다. 사랑은 언제나 유치하게 서툴게 시작되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뒤 추억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그림이 바로 사랑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되고 끝났을 때에 나는 사랑이 인생의 어느 교사보다도 우월하게 나를 키워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이렇게 동화 속의 어린 왕자들 속에서 나는 예쁜 소녀가 되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죽음이나 슬픔 같은 단어도 생각하게 된것이다. 어른들은 유치하다고 전혀 이해해주지 않는 일들이 모두가 밉고 그리고 슬펐다.
그렇다 . 나는 긴긴 눈물을 흘릴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눈물은 슬품의 첫 페이지에 흘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첫 페이지에 흘리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창밖에 지는 낙엽을 보곤 반드시 감상만은 아닌 자연의 이차 같은 것이 문득 밀려와 전율하기도 했다. 꿈속에서 나는 분홍빛이나 크림 빛깔의 커튼이 걸린 방을 만들었으며 레이스가 달린 하얀 드레스를 입고 기다림에 목이 긴 여인이 되었다.
그리고 또 권위나 횡포를 미워했으며 지폐 몇장 때문에 우리들의 꿈과 욕망이 좌절당해야 하는 까닭을 , 그 슬프고도 신경질나는 현실의 이유를 밤을 꼬박 새워가며 생각해보기도 했다.
사랑은 앓고 있었다, 사랑은 아직 소녀인 나에게 어느새 찾아와 그 아름답고도 서글픈 손목을 꼬옥 쥐어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더욱 빛나고 어여쁜 소녀였다. 아름다운 설렘이 내 가슴속에 살고 있어서 그곳에서는 밤마다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그즈음 나의 주변에는 라일락 꽃잎 냄새가 나는 이상한 편지를 받고 고민하는 친구가 늘어갔으며, 겉으로는 무심한 척하면서도 왜 그런 편지가 나에겐 오지 않을까? 왜 나는 버스에서 내려서 따라오는 남학생이 생기지 않을까? 고민하는 친구가 늘어갔다.
언니들의 화장품을 기웃거렸으며, 일기장을 가족들 몰래 감추기 시작했으며 어느 날 갑자기 한달에 한번씩 입어야하는 이브의 핑크 팬티를 입게 되버렸다. 핑크 팬티! 초경의 그 경홀은 죄의식과 당황함과 함께 시작되었다. 여인들만 가지는 원죄의 공모자가 되는 것이다.
아담을 홀려서 사과를 따먹게 만든 에덴의 신화가 바로 나의것이 된 것인양 실은 좀 우쭐하기도 했다. 나는 남학생들 앞에서 더욱 새침한척 폼을 잡았다.
제법 자존심이란 단어까지 들추어가며 감히 사랑이든가 결혼이든가 하는 말들을 입에 꺼내어 말음하기조차 쑥스러운 저속한 것으로 치부해버렸다.
그런 내 앞에 그는 불쑥 나타났다. 나타나선 나를 부쩍 어른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느새 여학교의 교복을 벗을 즈음이었다. 머리가 부스스하고 소탈한 청년, 그는 처음부터 내 앞에 제왕으로 군림했다. 아주 어린애 취급을 하여 나를 약오르게 해주는가 하면 바가지 잘 긁는 여자를 보고는 넌지시 '넌 나중에 그래선 안되'하며 엄청나고도 무서운 말로 나를 사로잡아버렸다.
나는 그 앞에 서면 너무나 하찮고 보잘것 없는 여자가 되버렸다. 나는 장미도 백합도 하다못해 국화도 아닌 아주 작은 돌 섶의 저비꽃이거나 그보다도 못한 패랭이꽃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어느날 서점에 들러 안톤 체호프의 단편집을 골라 막 값을 치르고 있을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키 큰 그가 성큼성큼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그것을 빼앗아 도로 진열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아주 의젓하고도 담담하게 명령했다.
"그 책 나한테 있어. 한집에 같은책 두둰씩이나 둘 필요없잖아"
그것은 실로 명령이었다. 정말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가 미웠지만 진실로 미워지지 않았으며, 마치 자석에 ㅣ끌리듯 한없이 끌리어갔다. 나는 이미 눈멀어버린 한 마리 새에 불과했다. 이렇게 사랑은 아무것도 아닌 순간에 순간에 소리없이 찾아와서 우리들의 생을 완전히 흔들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전제도 용납하지 않았다. 돈이 많은 부자니까 라든가, 얼굴이 잘생겼으니까, 혹은 좋은 집안의 태생이니까가 아니라 '그냥' 좋을 뿐이었다. 아니 , 오히려 그런 전제조건에 부합되지 못하고 갖춘 것이 없는 그가 더욱 안타깝고 빛났으며 위대해 보이기조차 했다.
사랑에는 출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원한 출발이 있을뿐이었다. 매일매일 새로이 태어나서 새로이 출발하는 것이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서로를 들여다보아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이었다.
서로에 대해 서는 두 눈을 꼭 감을수록 좋았다. 그리고는 다만 같은 방향을 쳐다보아야했다.
사랑할 일이 없다면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이유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우리들은 어느 한 순간도 사랑을 멈춘적이 없는것 같다.
지금도 나는 사랑하고 있다. 지금도 뜨겁게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불량기이고 화냥기라면 나는 단연코 불량기를 사랑하겠다.
어린시절 나의 꼬마 신랑에서부터 눈이 까만 소년이나 숱하게 스쳐간 검은 제복의 남학생들 하며 키크고 잘생겼던 청년이 나에겐 사랑이라는 하나의 대상으로 요약된다. 그러니까 나는 다만 사랑 하나를 사랑했던 셈이다. 그러므로 나는 영원한 사랑의 실연자이다.
승화하고 성공한 사랑이란 죽음으로 끝맺는 것이거나 , 사랑의 순간에 영원히 이별하는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의 결과에 대하여 생각지 말 일이다.
사랑하는 것도 재능인가보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인생에 있어서의 성공자임이 분명하다. '왜 그대는 사랑하는가'라고 묻지마라, 사랑은 영원한 우리의 생리이며 숙명이 아닌가.
---떨림 중 문정희 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