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력 '완장'
대형아파트 앞을 지나다 잉어빵 장수를 보았다. 1,000원---두마리. 거대한 성같은 대문곁에 뭔가 어울리지않는다는 선입감이 들었다.
아파트 사람들이 잉어빵을 먹을라나? 집값 떨어진다고 비켜나가라고 하지는 않을런지. 그게 누구엔가엔 절박한 삶의 현실이다.
그런데 잉어빵은 붕어빵에서 언제 창씨개명을 했을까? 외관은 변함없는데 신분만 그런 것 같다.
요즘의 대형아파트는 주로 대로변이나 강과 바다가 보이는 곳에 거대하게 들어섰다. 아파트도 완장의 표식에 따라 사람들의 줄서기도 길이가 달라진다.
그래서 같은 규모 빵틀의 붕어빵도 몸부풀리기 차원에서 잉어빵이라는 완장으로 바꾸어 차고나섰다.
오래전 조형기씨가 주연을 맡았던,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어느 작가의 작품을 드라마한 '완장'이 있었다.
'땅투기에 성공한 최사장의 저수지 양어장관리를 맡은 건달 종술(조형기), 적은 급료였지만 완장을 차게 해준다는 말에 관리인으로 들어갔다.
'감시원'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의 그 완장, 권력을 찬 종술은 낚시질온 사람들에게 기합을 주고, 초등학교 동창 부자를 폭행하기도 한다.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두르고 거리를 활보했다.
'완장...' 결국 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술은 저수지를 지키다가 물고기들이 연달아 떼죽음을 당하자, 가뭄 해소책으로 물을 빼야 한다는 수리조합 직원과 경찰과도 부딪히게 된다.
결국 종술은 완장의 허황됨을 일깨워주는 작부 부월이의 충고를 받아들여 떠나버렸고, 다음날 소용돌이치며 물빠지는 저수지 수면위에 종술의 완장이 떠다녔다.
누구든 권력을 쥐면 어깨를 펴고 싶어하는 인간의 속물적 근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오늘따라 날씨가 덥다. 길을 걸으니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나무 그늘 아래서 중늙은이 셋이서 큰소리로 서로의 과거를 뽐냈다.
아! 그 완장? 젊은시절 잘나가지 않은넘 있나? 아니라고? 그래도 꿈은 있지 않았었나?
피식 웃으며 그들을 지나치니 문득 젊은시절 그분의 모습이 떠올랐다.
두번째 보임지에서의 일이다. 당시 총각인 나의 직속 상급자는 정년 1년이 채 안남은 고참 상병(?)이었다. 당시의 직장 그연령층 만년 병장들은 예측한 계급장을 달고 정년을 맞았었다.
그런데 낼모레가 정년인데 병장도 못달고 제대를 하게되면 평생 기죽는 여생이 되지않겠는가?
그래서 회사에서 늦게나마 그점을 배려하여 진급을 시켜주었고, 그걸 얼마나 감격스러워 하는지 우리는 뒤돌아서 웃었다.
고짱고짱한 성격으로 거친 직장생활은 그분에겐 인고의 세월이었으리라. 고대했던 진급, 그때부터 더욱 근엄해졌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책임감도 늘어 중요하다시피 생각한 부분은 묻고, 또묻고...할일은 많고 은근히 성질급한 나와 충돌도 있었지만, 타고난 성격이니 어쩔수 없었다.
퇴근시 대개는 먼저 사무실을 나서는데 그날따라 축하주가 있었다. 같이 길을 걷는데 호주머니 위에 자랑스런 명찰이 달렸었더라.
"00장님! 명찰 달렸습니다."
"어허! 이사람아! 달렸으면 어때서..."
달렸으면 어때서? 앗차! 가만히 생각하니 그 얼마나 사무치게 그립고 자랑스런 완장이었을까?
가문의 영광, 퇴근 버스안에서도 달고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길지않은 정년, 그렇게 완장을 벗어야했다.
그래도 젊어선 동네에서 한가닥 하셨을텐데... 가장이란 완장은 오랫동안 차고계셨을 것이다. 살아계실까? 갑자기 보고 싶고, 막걸리잔 나누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