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가 얼마나 소비 지향적인 도시인지는 쿠알라룸푸르 여정의 기착지인 KLIA공항을 보기만 해도알 수 있다. 대부분의 공항이 도착 게이트 쪽에는 면세점이 없는 데 반해, KLIA는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면세숍들의 호객행위가 쏟아진다. 끈적이는 쇼핑 유혹에 한껏 달아오른 관광객들은 차로 1시간 남짓 거리의 시내 호텔에 채 짐을 풀기도 전에 대형 쇼핑몰로 달려가 참아왔던 쇼핑 욕구를 토해낸다.
소비의 카타르시스를 발산하는 그곳이 만약 한국의 어느 백화점이었다면 다음 달 당신은 감당 못할 액수의 카드 명세서와 함께 한동안 주린 배와 두통을 껴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메가 쇼핑이 시작되는 7월에서 9월까지의 쿠알라룸푸르(이하 KL)라면 최소한 ‘빈털터리 된장녀의 비참한 최후’는 모면할 수 있다.
기자가 말레이시아 땅을 밟은 지난 7월 5일, 메가 세일이 시작된 KL의 첫날밤은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다. 부킷빈탕 거리의 대형 쇼핑몰인 파빌리온 입구에 대형 쇼핑백 모양의 세트가 설치되고, 메가 세일을 알리는 플래카드와 함께 광대와 밴드들의 작은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밤 11시까지 연장 업무를 개시한 유명 쇼핑몰이 뿜어내는 조명들 때문에 KL의 밤하늘은 백야를 연출했고 쇼퍼들은 빛을 받아 움직이는 태양열 로봇처럼 쉬지 않고 거리를 활보했다. 금요일 저녁, KL의 밤은 잠들지 않았다.
부킷빈탕의 메인 스트리트에는 물담배와 시원한 맥주를 즐길 수 있는 야외 펍들이 생겨났고 뒷골목 사이마다 말레이시아의 간식거리를 맛볼 수 있는 포장마차들이 빽빽이 들어찼다.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이다. 말레이시아를 구성하는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를 비롯해 휴가를 맞아 건너온 중동의 무슬림계, 아시아 및 서양의 관광객들까지 다양한 계통의 사람들이 한곳에 모인다. 컬러 오브 말레이시아라라는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다.
KL에는 지난 몇 년 새 파빌리온을 비롯한 대형쇼핑복합문화시설이 줄줄이 오픈했다. 매년 7월이 되면 말레이시아 전역의 크고 작은 숍들이 일제히 메가 세일에 들어가는데, 할인율은 10~70% 수준이다. 매장에 따라 1+1 행사를 벌이거나 구입 수량별로 할인율에 차등을 두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혜택을 제공한다.
같은 브랜드라 할지라도 쇼핑몰에 따라 보유하고 있는 아이템의 종류나 수량이 다르기 때문에 많은 곳을 둘러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KL의 크고 작은 쇼핑몰을 모두 둘러보는 건 시간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불가능한 일이다. 쇼핑에 앞서 미리 구입하고자 하는 브랜드와 아이템을 체크해 최대한 쇼핑 동선을 줄이는 것이 효율적이다.
입점 브랜드 변동이 잦은 쇼핑몰의 경우 층별 가이드북을 구비하지 않은 곳이 종종 있기 때문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미리 출력해 가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