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AP Photo)
아웅 산 수 지와 그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가 이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2015년 11월 8일 자유 총선에 승리하리라는 사실은 몇 년 전부터 예측된 일이다. 어제 외신에 따르면 NLD는 전체 14개 주 가운데 4개 주 전체 의석 164석 중 154석(93.9%)을 휩쓸었다. 그리고 이에 한국을 비롯한 여러 서방의 언론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버마의 봄’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추이를 적극적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한국은 예전부터 여러 차례 지배한 군부세력과 이에 맞서 싸운 민주화운동을 한 버마의 현대사에서 한국의 모습을 투영해왔다.
그래서 버마에 민주주의가 도래했는가? 섣부르다. 다음의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선거에서 NLD가 이겼어도 ‘총’을 쥐고 있는 것은 군부세력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전망하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1990년의 선례가 있으며, 군부의 비정상적 행보 등을 비춰보았을 때 이들이 또 쿠데타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처럼 국제사회는 또다시 ‘권고’만 늘어놓을지 모를 일이다.
1962년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는 소련과 국제사회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고립된 상태에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실시했고, 모든 공기업을 국유화했다. 1986년 시장 경제체제를 표방했지만 군부는 기업을 내놓지 않았고 천연자원과 무역의 열쇠도 여태껏 군부가 쥐고 있다.
버마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불교국가이다. 국민 중 89%가 불교신자로 군부와 민주세력 할 것 없이 불교는 이들의 기본 배경이고 질서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버마의 무슬림 혐오/차별은 당연시되어왔다.버마엔 불교 윤리를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 찾아가 폭력을 일삼은 일이 수차례 있었다.
세계적으로 142만 명 정도 되며 버마 라카인에 80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로힝야족은 이슬람을 따르며 자기들의 언어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48년 해방 이후 로힝야족은 자신들의 정당을 만들어 무슬림 자치국가를 만들겠다 선언했찌만 군부는 이들을 탄압했고 버마의 운동세력도 이들을 반기지 않았다. 현재 방글라데시와 손잡은 무자헤딘도 세력이 상당하지만 로힝야족의 1/8에 해당하는 11만 명은 버마와 같은 불교국가이자 역사적으로 버마의 원수인 태국 국경에 있는 난민촌에 머물고 있다.
버마에서 로힝야족들은 어딜 가나 탄압의 대상이었다. 2012년 라카인주에서는 불교도와 무슬림의 유혈충돌이 있었다. 영국 로힝야족 기구는 로힝야족 650명이 살해되고 1,200명이 실종됐으며, 8만 명이 피난을 떠났다 밝혔지만 군부는 78명 사망, 87명 부상, 5만2천 명 피난이라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군부는 로힝야족 탄압을 강화했고, 로힝야족은 ‘버마 국민이 아니다.’라고까지 선언했다.
(로힝야 보트피플 / 출처 : time.com)
이것은 선언만이 아니었는데 1982년에 제정된 버마 제정 국적법과 2008년 헌법에 명시된 로힝야족의 권리는 처참하다. 이들은 주민증이 아닌 임시등록증인 화이트카드를 받아 생활한다. 토지를 소유할 수 없으며, 정부 허가 없이는 해외여행을 할 수 없는데다, 자녀를 둘 이상 가질 수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로힝야족들은 이웃나라인 방글라데시나 인도네시아로 가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보트피플이 되었다.
총선에서 승리한 아웅 산 수 지와 민족민주동맹은 이 일에 침묵하고 있다. 이들은 로힝야 무슬림의 선거권 문제 역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남아있는 로힝야족들은 이번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라카인주에서는 현지 소수민족 불교도 정당이 12석, NLD가 5석을 차지했다. ()
(수 지는 내년 3월 대선 출마도 선언했다. 대선은 의원 간접선거로 열리며 현지 현행법상 수 지의 출마는 불가능하다. )
NLD의 이번 총선 준비는 철저히 아웅 산 수 지 중심적으로 이루어졌고 로힝야족은 물론이고 88년 민주화운동으로 정치에 입문한 신세대 정치인까지 선거에서 배제했다. 이들은 ‘버마-불교중심주의-아웅 산 수 지-구세대’로 이들의 선거를 치렀다. 아웅 산 수 지는 군부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국회의장과 손을 잡았으며, 1945년생으로 나이가 적지 않다. 이번 선거는 그녀 이후 버마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철의 난초'라는 그녀가택연금 해지 이후 지금까지의 정치적 행보와 로힝야족에 대한 침묵은 그녀가 이제는 더 이상 투사가 아니며 흔한 '민주화 운동 출신 정치인'에 불과하다고 여기게 만들 뿐이다.
따라서 나는 공리적이든 정치적이든 버마의 민주주의 같은 건 아직 오지 않았다 생각한다. 그래서 ‘버마의 봄’이 왔다는 어느 언론사의 표현에 냉소하며 보트 위의 로힝야족을 떠올린다. 아직까지 버마는 불교 없이 정치 할 수 없고 군부 없이 지배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번 일로 군부는 한 발 뒤로 물러나게 되었으니 버마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진보했다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번 총선 승리는 딱 그 만큼의 의의만 지니고 있다.
그럼 ‘입춘’ 쯤으로 해두자. 5월은 되어야 봄이다.
첫댓글 우리 카페의 "젊은 피" 난파 님이 좋은 글을 올려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제목을 <버마의 봄은 오지 않았다 (미얀마 총선 분석)>으로 해주시면
검색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공부가 됐습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