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민속마을 [樂安邑城民俗─]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조선태조 6년(1397)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아 방어에 나섰고
300년 후, 인조 4년(1626) 충민공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현재의 석성으로 중수했다.
지금도 91세대(2001년 기준)가 실제 생활하고 있는 살아 숨쉬는
민속 고유의 전통마을로서, 민속학술자료는 물론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용인, 제주 민속마을과 같은 전시용이나
안동 하회마을과 같이 양반마을도 아닌,그저 대다수의
우리 서민들이 살아왔던 옛 그대로 의 모습이기에 조상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 친근한 정감이 넘친다.
태백산맥 문학관
식사 후에는 보성군 소속으로 문화해설을 해주시는 김성춘 해설사의 설명으로
태백산맥문학관과 현부자네 등 『태백산맥』의 소설 속 무대들을 답사하였습니다.
↑조정래 선생의 삶과 태백산맥의 문학세계를 담아 전시하고 있는
문학관 건물은 건축가 김원 씨가 설계한 것으로
태백산맥의 정신을 승화시켜낸 건축물입니다. 1
↑ 문학관 옆에 세워진 옹석벽화
역시 소설 『태백산맥』의 높은 문학성과 질곡의 역사에 묻어나는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상징화한 인상적인 작품입니다2.
↑해설을 맡아준 김성춘 씨는 벌교가 고향인 분으로 벌교에 대한 애향심과
소설『태백산맥』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3
↓소설 태백산맥의 주요인물
↓ 소설 태백산맥의 주요 줄거리
↑ 현부자의 집
중도 들녘이 내려다보이는 제석산 자락에 우뚝 세워진 이 집과 제각은
본래 박씨 문중의 소유이다. 이 집의 대문과 안채를 보면 한옥을 기본 틀로 삼았으되
곳곳에 일본식을 가미한 색다른 양식의 건물로, 한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꽤 흥미로운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현부자네 집으로 묘사되었다.
「그 자리는 더 이를 데 없는 명당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풍수를 전혀 모르는 눈으로 보더라도 그 땅은 참으로 희한하게 생긴 터였다......(태백산맥 1권 14쪽)」
소설 「태백산맥」이 문을 여는 첫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는 집이다.
조직의 밀명을 받은 정하섭이 활동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고, 이곳을 은신처로 사용하게 되면서
현부자와 이 집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펼쳐지게 된다.
↑ 소화의 집
「조그만 하고 예쁜 기와집. 방 셋에 부엌 하나인 집의 구조......
부엌과 붙은 방은 안방이었고, 그 옆방은 신을 모시는 신당이었다.
부엌에서 꺾여 붙인 것은 헛간방이었다」 소설 태백산맥(1권 17쪽)에 나오는
무당 소화네 집의 모습이다. 당시의 무당집은 실제로 제각으로 들어서는
울 안의 앞터에 있었다. 집 둘레로는 낮춤한 토담이 둘러져 있었고,
뒤로는 풍성한 대나무 숲이 집을 보듬듯 하고 있었다.
뒤란으로 도는 길목의 장독대 옆에는 감나무 도 한 그루 서 있는,
소설에서 그려진 소화의 모습처럼 정갈하고 아담 한 그런 집이었다.
그런데 1988년 무렵 태풍에 집이 쓰러졌고, 토담의 일부와 장독대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밭으로 변했다.
그 후 주차장으로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소화의 집은
아예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고 말았던 것을
2008년에 보성군이 복원하였다. 소설 태백산맥은 이 집의 신당에서
정참봉의 손자 정하섭과 무당 월녀의 딸 소화가 애틋한 사랑을
시작하는 것으로 길고도 아픈 이야기를 시작한다.
↑횡갯다리(홍교)
홍교는 벌교 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교량으로 세 칸의 무지개형 돌다리이다.
원래는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뗏목다리가 있었는데 서기 1728(영조4년)에
선암사의 초안선사가 보시로 홍교를 건립했다. 현존하는 아치형 석교 가운데
그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워 보물 제304호로 지정되어 있다.
벌교(筏橋 : 뗏목으로 잇달아 놓은 다리, 우리말큰사전․한글학회 지음)라는 지명은
다름 아닌 ꡐ뗏목다리ꡑ로써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보통명사다.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바뀌어 지명이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므로 뗏목다리를 대신하고 있는 이 홍교는 벌교의 상징일 수밖에 없다.
소설에서도 이 근원성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여러 사건을 통해서 그 구체성을 은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범우는 홍교를 건너다가 중간쯤에서 멈추어 섰다......
그러니까 낙안벌을 보듬듯이 하고 있는 징광산이나
금산은 태백산맥이란 거대한 나무의 맨 끝가지에 붙어있는
하나씩의 잎사귀인 셈이었다. (태백산맥 1권 257쪽)」
↑ 우리가 벌교를 방문한 다음날부터 꼬막축제가 벌어진다고 하니
꼬막철에 맞춰 방문한 덕에 싱싱한 꼬막을 맛볼 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행운이었지요.
- -감사합니다 --
첫댓글 가을을 한아름 잔뜩 담아 오셨네요
정성들인사진 감사히 즐감합니다
깊이있는 가을의 표현에서
촬영 포인트를 배우고있으며
못다 담은 아쉬었던 영상들,
이곳에서 다 채우고있습니다
낙안읍성의 모든것을 사진으로 보여주셨네요. 또한 태백산맥의 무대까지도...
마지막 사진 벌교 꼬막축제의 팻말과 쌓여있는 꼬막자루의 크로즈업은 쎈스있네요.
낙안읍성과 태백산맥의 여러무대와 자세한 내용까지 멋있는 사진과
편집으로 알려주십니다. 항상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 되세요.
낙안읍성 구석구석, 태백산맥문학관의 코너들까지 세심하게 포착하는 신봉공주님의 시선을 따라 둘째날의 발자취를 따라가 봅니다.
아름다운사진으로 복습 잘 했습니다. 감사.
이번 여행의 완결판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