潮来の女 Misae Enomoto (榎本美佐江)
Actress
https://www.youtube.com/watch?v=nzSnOC5MBjQ
1.
あやめ 咲いても あなたは 来ない
아야메 사이테모 아나타와 코나이
붓꽃이 피어나도 당신은 오지않네
せめて 逢いたい 一目でも
세메테 아이타이 히토메데모
절실히 만나고 싶어요 한번만 이라도
どうせ 叶わぬ 夢なのね
도오세 카나와누 유메나노네
어차피 이룰수없는 꿈이라네
紅の 匂いも 身にしみる
베니노 니오이모 미니시미루
연지 향기가 몸에 사무쳐요
あぁ 恋の 潮来の 泣いて 別れた
아아 코이노 이타코노 나이테 와카레타
아아 사랑의 이타코 울면서 헤어진
雨情橋
우죠오바시
비오는 정든 다리
2.
利根の流れよ おしえておくれ
Tone no nagare yo oshiete okure
흐르는 토네강아 가르쳐다오.
男のこころの 奥の奥
otoko no kokoro no oku no oku
남자의 마음 깊고 깊은 곳
いいえ お酒のせいじゃない
īe o sake no sei janai
아냐 술 때문이 아니야
燃えた二人に 噂は無い
moeta futari ni uwasa wa nai
불타는 두 사람에 소문은 없어
あぁ 恋の 潮来の 青い灯影の
a~a koi no Itako no aoi hokage no
아아, 사랑의 이타코 푸른 등불빛
三味線(しゃみ)の音
shamisen (sha mi) no oto
샤미센 소리
* 利根川(とねがわ) は、大水上山を水源として
関東地方を北から東へ流れ、太平洋に注ぐ一級河川。
3.
泣くも 笑うも 計算 づくで
나쿠모 와라우모 케이산 즈쿠데
우는것도 웃는것도 계산이 돠어
生きて いるのが 嫌になる
이키테 이루노ㅇ가 이야니나루
살아 있는것이 싫어지네
それも 人生 なんだよと
소레모 진세이 난다요토
그것도 인생 이라고
抱いた あなたが 何故他人
다이타 아나타ㅇ가 나제타닌
안겼던 당신이 어째서 타인
あぁ 恋の 潮来の 女悲しい
아아 코이노 이타코노 온나카나시이
아아 사랑의 이타코 여자 슬픔에
ひとり酒
히토리자케
혼자 마시는 술
*潮来、いたこ、이타코 ㅡ
茨城이바라키현 潮来市이타코시 의 지명
*菖蒲、あやめ、붓꽃(창포)
利根川河口と銚子市、神栖市波崎地区中心市街、銚子大橋空撮
https://auctions.yahoo.co.jp/jp/auction/q1235420691
https://music.apple.com/jp/album/%E6%BD%AE%E6%9D%A5%E3%81%AE%E5%A5%B3/1814770438?i=1814770688
'歌唱法、天性の美貌、日本調美人歌手‘ 榎本美佐江
榎本美佐江(えのもとみさえ:1924年~1998年 ,本名 榎本ミサエ)은
埼玉県 川口市 出身으로 家勢가 貧困하여 1934年, 浅草의 劇場主에게로 奉公에 나섭니다. 1938年, 石川県의 能登에서 妓生이 되고, 1940年에 東京으로 移徙한 後에 作曲家 大村能章(おおむらのうしょう)의 日本歌謡学院에서 노래를 배워 戦争中에는 工場이나 軍隊를 慰問 等에 나섭니다.
1946年에 テイチク에 入社하고 日本調 歌手로서 市丸의 代役으로 부른 「十三夜」(戦前에 小笠原美都子가 히트시킨 曲의 revival )를 히트(当時record化되어 있지 않다)하지만 服部良一나 笠置シヅ子 等의 ブギウギ가 世中에 流行하던 時代로, 하나도 時流를 탈 수 없었습니다.
1947年, 新東宝「ぼんぼん」의 家政婦役으로 映画에 데뷔-, 以後 많은 映画에 出演합니다. 1949年、ビクター로 移籍하고 1950年、하와이興行에서 妓生 모습으로 노래해 많은 喝采를 받고, 以後 이것을 살려 또 朝鮮特需로 正確히 久保幸江를 中心으로 お座敷 붐이 다시 찾아와 흐름이 바뀝니다.
1952年、鶴田浩二와 デュエット한 「弥太郎唄旅」가 히트, 1953年에 東映映画「女難街道」의 主題歌「お俊恋唄」가 크게 히트하고 그 해에 「初恋おぼこ娘」에서 映画主演을 맡습니다.
그는 방울을 울리는 것 같은 歌唱法과 天性의 美貌에 日本調 美人歌手로서 人気를 누리고 있었지만 1955年에 プロ野球選手 金田正一 (카네다 마사이치, 한국명 김세우, 야구선수 400승 투수)과 同棲生活로 들어가고 芸能界를 隱退하고 1960年에 正式으로 結婚(그때 까지金田는 帰化하지 않아 籍에 넣을 수 없었지만 前年에 帰化해 日本国籍을 取得했기 때문)했지만 다음 1961年에 金田가 愛人인 宝塚歌劇団 卒業生・雅章子과의 사이에 아이가 있음을 알게 돼 이것이(榎本・金田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음)原因이 되어 1963年에 金田와 離婚하고 芸能界에 復帰합니다.(그러니 金田는 그 後 雅章子와 再婚하여 지금에 이릅니다)
그의 復帰에는 매스컴도 同情的(金田에게 猛非難이 일어났습니다)이며 吉田正나 市丸가 後援하였는데, 復帰 第一弾으로「後追い三味線」은 훌륭하게 대히트 합니다. 그 後에도「三味線一代」等의 히트曲을 내고, 1965年에는 滿盤의 準備를 갖추어 「十三夜」을 吹込하고 昭和40年代의 懐メロ붐에도 活躍하였는데 所謂 "懐メロ歌手" 中에서 그 人気가 유달리 높아, 그에 礼遇는 淡谷のり子 等과도 同格의 待遇였습니다.
晩年에는 스테이지/라디오/텔레비전出演을 繼續하다가 1990年에는 心臓病을 알아, 1998年에는 大腸癌을 앓게 되고, 同年9月23日 死亡했습니다. 享年75(満74歳没)
癌闘病中에 因縁의 前男便・金田도 榎本를 數次例 問安했는데 死亡後, 金田는「(榎本は)終生大事な人でした」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代表曲으로는「お俊恋唄」「十三夜」「後追い三味線」「舞妓はんブギ」「お別れさのさ」「皆さんちょうだいお手拍子」等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