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빙어회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어 오른다. 갯가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민물고기를 먹을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특별한 맛으로 입맛을 당기게 한 것도 더더욱 아니었기에.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추운 겨울이면 쌉싸래한 빙어회가 먹고 싶어진다. 지난 11일. 십여 년 전, 친구들과 겨울 빙어를 먹으러 다녔던 그 추억이 떠올라 만사를 제쳐두고 빙어회를 먹으러 산청 생초로 차를 몰았다. | ▲ 경호강 얼음을 뚫고 유유히 흐르는 경호강. 왠지 쓸쓸한 모습이다. | ⓒ 정도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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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번 고속국도 생초 IC를 빠져 나오면 경호강 다리를 건너고, 우회전 하면 민물고기를 주 메뉴로 하는 식당거리가 나온다. 식당 이름을 단 간판도 큼직하고 화려하다. 최근 정비를 한 듯, 산뜻하고 깨끗한 모습이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식당가 바로 앞으로는 이곳에서 파는 민물고기의 산지라 할 수 있는 경호강이 흐르고 있다. 경호강은 진주, 산청, 함양에 걸쳐 있는 남강의 상류부에 해당하는 하천으로 약 32km의 물길을 이루고 있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물은 남쪽으로 흐르면서 지류인 덕천강과 합해져 진양호로 유입되고 있다. 강변 언덕에 올라 강줄기를 내려다보니 춥다는 느낌보다는 시원함이 가슴 뼛속까지 파고드는 기분이다. 겨울이라 그런지 유량은 많지 않다. 곳곳에 녹지 않은 잔설은 하얀 얼음장으로 변해 아름다운 정취를 풍겨주고 있다. 이곳은 3번 국도와 35번 고속국도가 지나가는 통로로 많은 여행자들이 들른다. 식당을 찾아 나서는데, 어느 한 식당 수족관의 큰 고기 한 마리가 눈길을 끈다. 카메라를 꺼내들고 다가가 보니…. 대형 쏘가리가 아닌가. 바다고기 대구는 큰 어종에 속하는 편이다. 그런데 웬만한 대구만한 크기의 쏘가리다. 이렇게 큰 민물고기를 직접 보는 것도 처음이다. 이리저리 사진을 찍으니 주인장이 나와 말을 건넨다. | ▲ 쏘가리 쥔장의 말에 따르면 "1년에 2~3마리 정도 밖에 잡히지 않는다"는 쏘가리. 자그마치 45cm에 2kg이나 된다고 한다. | ⓒ 정도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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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쏘가리가 엄청 크죠. 이 크기의 쏘가리는 1년에 겨우 2~3마리 정도 밖에 잡히지 않습니다." "얼마나 크죠?" "잡은 사람이 그러는데 45cm라고 하네요. 횟감으로 최고급이죠. 그런데, 아직 주인이 나타나고 있지 않네요." "킬로그램에 얼마나 합니까? 이 정도는 얼마에 먹을 수 있습니까?" "쏘가리회는 킬로그램당 15만 원입니다. 이 쏘가리는 2킬로그램 조금 안되는데, 손님이 드신다면 킬로그램당 13만원에 해 드리겠습니다. 매운탕과 다른 것은 서비스로 더 드리도록 할게요." "…."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다. 주머니 사정을 봐도, 적절한 핑계를 둘러댄다고 해도, 그 비싼 쏘가리회를 먹을 수는 없는 형편이다. 민물고기 중에서 쏘가리가 최고의 횟감으로 쳐 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 비싸리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계나 단체 같은 모임이 아니면 개인적으로는 먹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 ▲ 쏘가리탕 '꿩 대신 닭'이라고, 비싼 쏘가리회는 먹지 못하고 쏘가리탕으로 대신해서 먹었다. | ⓒ 정도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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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쏘가리회 대신 2만5천 원짜리 빙어회 한 접시를 시켰다. 오래전 맛봤던 쌉싸래한 맛이 되살아나고 있다.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작은 빙어 한 마리를 젓가락으로 잡아 초장에 찍어 먹기란 쉽지 않은 일. 초장이 튀어 옷에 묻어도 맛만 있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당초 빙어회를 먹으러 왔지만, 쏘가리를 보니 쏘가리회가 먹고 싶은 이 마음 어찌할까나. 그래도 '꿩 대신 닭'이라고 했던가. 쏘가리회는 못 먹었지만, 쏘가리 매운탕으로 그 맛을 대신 할 수밖에 없었다. | ▲ 생초 식당거리 산청군 생초면에 있는 민물고기 식당거리. 깨끗하게 정비돼 있는 모습이 참으로 좋다. | ⓒ 정도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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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채웠으니 이제 구경거리를 찾아 나서야겠다. 예까지 와서 특별히 찾아가 볼만한 데가 있다면 모를까, 없다면 고민할 필요는 없다. 식당거리에서 100여 미터 인근에 있는 '산청박물관'에서도 좋은 구경을 할 수 있기에. 산청박물관을 소개하는 유인물은 이곳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산청박물관은 생초국제조각공원 내에 위치해 있으며, 생초고분군과 어외산성에 연접해 있어 산청의 선사 유적과 세계적인 현대 조각가들의 작품이 어우러져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 산청박물관 산청군 생초면에 있는 산청박물관 | ⓒ 정도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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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청의 인물 산청의 인물. 박물관 내부라 플래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 ⓒ 정도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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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는 '산청의 이해' '산청의 문화관광' '가야의 혼, 그 흔적을 따라' 그리고 '기획전시실' 등 4개의 전시실로 나뉘어져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은 조용한 박물관은 평온한 느낌으로 가득 차다. 가진 것이 시간인 게 전부인 나. 시간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홀로 유유자적 박물관 관람에 빠져 보는 것은 오랜만의 일. 박물관 내부에 새겨진 글자 하나하나 빠짐없이 읽고 머리에 저장하는데 온 시간을 보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호강은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인 채,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강줄기를 보듬듯 흐르게 한다. 생초국제조각공원은 새천년 밀레니엄 사업으로 기획돼 2001년 조성됐다고 한다. 2만여 평의 산지에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만든 품격 높은 작품 27점이 공원에 전시돼 있다. 조각품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유명한 작품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예술을 이해해 보겠다는 자세만큼은 의지에 불타는(?) 전사의 모습이다. | ▲ 물의 영혼 페루 작가인 LUIS ANGEL S. GONZALLES의 작품 | ⓒ 정도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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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으로 보이는 일행이 조각품을 열심히 관찰하고 있다. 뭔가 나름의 이해를 한 듯한 모습이다. 싸늘한 겨울바람이 언덕을 타고 미끄러지듯 내 품에 안긴다. 그 바람의 끝자락을 붙잡고, 산청을 흐르는 경호강 물줄기를 깜빡하는 찰나의 눈동자에 담았다. 앞으로 보이는 질주하는 차량의 고속도로가 나를 부른다. 집으로 가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