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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순이의 죽음, 그리고 회상
나이 일흔을 넘기면서부터 친구들의 부음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지난해에는 남자동창 세 명이 잇따라 타계하더니 올해 들어 세 명의 여자동창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습니다. 친구들은 아직도 이들의 죽음에 대해 얘기할 때 ‘어느날 갑자기’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일흔 살이 넘어 죽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지난 8월 15일, 한옥순이의 부음을 접했습니다. 옥순이는 초,중,고교 동창이었으니 성별을 떠나 꽤나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옥순이는 초등학교 때 핸드볼선수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건강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건강을 과신한 게 잘못이었습니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갑자기 신장 기능이 떨어져 1997년부터 이틀에 한 번씩 혈액투석을 해왔습니다.
투석을 1회 하는 데는 약 서너 시간이 소요됩니다. 투석할 때마다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하니 얼마나 진저리나겠습니까. 게다가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고, 활동하는 데 제약이 많으므로 삶의 질이 엄청나게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모 의료기관에 신장이식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드디어 2013년 9월에 신장이식 차례가 되었습니다.
2013년 여름이 끝나가는 8월 어느 날, 그녀가 저에게 울먹이며 전화했습니다. 신장이식 수술을 하기 전에 으레껏 실시하는 건강검진에서 유방에 종양이 발견되어 항암치료를 받게 되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어렵사리 얻은 신장이식 수술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흔히 이런 상황을 두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표현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가리켜 ‘지지리도 복이 없는 X’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옥순이를 간병하던 남편이 신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옥순이는 어쩔 수 없이 투석치료가 가능한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 요양병원에 찾아갔을 때, 간병인에 의해 휠체어에 실려오는 옥순이의 참혹한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올해 들어 옥순이의 몸 상태가 급작스레 나빠졌습니다. 남편이 요양원에 간 것이야 그렇다 치고, 치매까지 걸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몇 달 전에는 침대에서 떨어져 다리를 크게 다쳤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몇 달 전부터는 통화할 때마다 ‘지지리도 복이 없는 X’이라는 말을 버릇처럼 입에 담았습니다.
옥순이가 죽기 한 달 전쯤 통화했을 때, 시력이 좋지 않아 며칠 뒤 백내장 수술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수술 경과가 어떤지 묻기 위해 전화했습니다. 그런데 신호음이 한참 만에 떨어지더니 딸이 전화를 받아 “어머니가 상태가 좋지 않아 중환자실로 옮겼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일 뒤 결국 옥순이가 숨을 거뒀다는 부고를 접했습니다.
옥순이의 장례는 ‘무빈소 가족장’으로 치렀기에 마지막 가는 길에 조문조차 못했습니다. 하기야 유족으로서는 부친이 요양원에 있는 상황에 격식 갖춰 장례 치르기 어려웠을 겁니다. 스스로 ‘지지리도 복이 없는 X’이라고 한탄했던 옥순이는 오랫동안 투석하면서도 의연하게 버텼는데, 좋지 않은 일들이 겹치면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끝내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옥순이가 떠난 뒤 일기장과 동문회 카페를 뒤적여 그녀의 발자취를 뒤쫓아 보았습니다. 옥순이는 <우정>이란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동창들과의 모임에 참석하여 노래 부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노래를 즐겨 불렀습니다. 기실 저는 <우정>이라는 노래를 슬픈 노래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자리에서 옥순이가 부른 <우정>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뒤돌아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일을 회고하며 동문회 카페에 <아! 이종진, 그 슬펐던 마지막 생일잔치>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일기장을 뒤적이며 걸어온 발자국을 따라가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발자국을 따라 걷다 보면 까마득히 잊었던 옛일들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글씨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어 내려가다 보면 당시의 일들이 마치 오늘의 일인 양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5년에는 종진이의 신병이 깊을 대로 깊어져 회생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해 11월 1일 저녁나절에 종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이 언제 세상을 떠나게 될지 몰라 평소 가까웠던 친구들을 초대하여 마지막 생일을 함께 보내고 싶으니 꼭 내려오라는 전갈이었다. 이미 체력이 모두 소진되어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그즈음 문병을 갈 때마다 "엄살 그만 떨고 빨리 일어나 술 한잔 하자"는 농담을 해왔지만 이날 만큼은 종진이의 죽음이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터라 너스레를 떨 수가 없었다. 종진이의 생일이었던 1995년 11월 4일은 토요일이었다. 오후 5시에 왕십리에서 김용균, 성현희, 장규환, 최순철과 만나 장호원엘 내려갔다. 이종진.유윤희 부부가 점동의 <화림가든>에 생일상을 차려놓고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리들 외에 고복희, 권순강, 김석만, 안동춘, 윤희상, 이상익, 이영자, 이윤재, 이종설, 이진성, 정종구, 조인희, 최명선, 한옥순 등 친구 20여명이 둘러앉아 종진이의 마지막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말이 생일축하였지 분위기는 마치 납덩어리를 매달아 놓은 듯 처음부터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종진이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손뼉을 치며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 우리들은 목이 메었다. 밤공기가 차다며 온몸에 두터운 솜이불을 두르고 마지막 만찬을 맞은 종진이의 초쵀한 모습을 보며 우리들은 뒤돌아 눈물을 감췄다. 우라질! 세상에 무슨 놈의 생일잔치가 이토록 슬플 수가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옥순이가 <우정>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오 사랑하는 친구 즐거웠던 날들. 꽃 피고 지는 학원 꿈같이 지냈네. 세월은 흘러가고 작별의 날이 왔네. 젊은 새처럼 높이 다 같이 날으네. 우리들의 우정을 깊이 간직하자. 행운을 빌며, 안녕~ 친구여 안녕~” 노래를 따라 부르는 동안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 모두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윤희의 등을 토닥이며 종진이의 건강이 곧 좋아질 거라고 위로하면서 우리는 그것이 괜한 헛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내년 생일날 또 만나자”는 공허한 말을 남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며 또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로부터 어느새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가끔 지난 일기장을 들춰볼 때마다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종진이의 족적을 발견하고는 슬펐던 그의 마지막 생일잔치를 떠올린다’
그리고 2006년 8월, 내가 동문회 카페에 올린 글에서 옥순이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7년 전, 송년회에 대한 회고>라는 제목의 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998년 11월 28일에 우리 동아리들은 장호원 읍내에서 멀찍이 떨어진 나래리 들녘의 <이천관광농원>에서 송년회를 가졌었지. 그날은 기온이 뚝 떨어져 초저녁이 되면서 밤바람이 차갑기 그지없었어. 땅거미가 짙게 깔리기 시작할 무렵 52명의 동아리들은 촛불 하나씩을 켜 들고 밖으로 뛰어나가 농원 마당에서 둥글게 원을 그리며 길놀이를 시작했지. 촛불놀이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마치 하늘의 별을 따다 뿌려놓은 듯했어. 그리고 권수만 회장이 마당 가운데 높이 쌓아놓은 소나무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는 오프닝세리머니로 송년회의 시작을 알렸어. 그리고 <G선상의 아리아>가 백뮤직으로 고즈녁히 깔리는 가운데 신명희가 낭낭한 목소리로 <이 해를 보내면서>, <불아, 타올라라>, <숨바꼭질> 등 세 편의 시를 낭송하는 동안 동아리들은 숨을 죽이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지. 마침 그날은 그믐밤이어서 달조차 뜨지 않았어. 어둠이 짙어올수록 캠프파이어의 불꽃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없었지. 시낭송에 뒤이어 남명애가 고운 목소리로 <무인도>를 부르며 꽁꽁 얼어붙은 동아리들의 흥을 돋우었어. 그리고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송년회 분위기도 점차 무르익어갔지. 박병희와 황순자, 그리고 한기원이의 노래가 얼마나 멋들어졌었는지 아직도 귀에 아련하다니까. 우리 동아리들은 손에 손을 잡고 모닥불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어. 어둠 속에 불을 밝히고 추위도 잊은 채 얼마나 신명지게 놀았는지 몰라. 밤이 이슥해지면서 밤안개가 내리기 시작했어. 그리고 모닥불이 점차 사위어가고 잉걸불마저 꺼져갈 즈음 한옥순이가 피날레로 <우정>이라는 노래를 부르자 동아리들은 모두 어깨 곁고 입을 모아 합창했지. 그리고 아쉬움 속에 나래벌의 밤은 속절없이 깊어갔어. 바로 엊그제의 일 같은데 뒤돌아보니 어느새 7년이 흘렀네. 그런 거야. 세월이란 그렇게 덧없이 흐르는 거야’
또한 그녀가 병마와 싸운지 8년이 되던 해, 나는 옥순이를 문병하고 온 뒤, 동문회 카페에 그녀의 소식을 알리려 <옥순아, 일어서렴. 이제 후반전을 준비해야지>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1997년 11월 13일(목)에는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나절에 한 친구로부터 옥순이가 급성신장염으로 한양대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옥순이는 초등학교 다닐 때 핸드볼선수로 활동했기에 누구보다도 건강했고, 또한 늘 웃는 모습으로 만났으므로 입원 소식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권현상에게 소식을 전하고는 퇴근 후 한양대학교 교문 앞에서 만나 함께 문병 가기로 약속했다. 저녁나절이 되면서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그치고 비바람에 떨어져 쌓인 은행잎 때문에 한양대학교 캠퍼스가 온통 노란 빛으로 가득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현상이와 함께 한양대학병원 2022호실로 옥순이를 찾아갔다. 병실에서 만난 옥순이의 표정이 너무 밝아 마치 꾀병을 앓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쁜 일은 함께 몰려온다고 했던가? 앞서, 남편이 암에 걸려 입원해 있는 동안 병수발을 위해 바쁘게 오가는 옥순이의 얼굴빛을 보고는 의사가 정밀진단을 받아 볼 것을 권하더란다. 그리고 검진 결과 콩팥이 많이 상해 치료가 급하다고 해서 서둘러 입원했단다. 뒤늦게 후회한 들 무엇하랴! 그 동안 미욱스럽게도 지압치료를 받는다고 쓸데없이 돌아다니면서 오히려 병을 키운 모양이었다. 옥순이의 얼굴을 보니 마치 초등학교 다닐 때 핸드볼 경기를 하면서 전반전을 마치고 조금 지친 모습으로 후반전을 준비하고 있는 듯한 옛 모습 그대로였다. 그때 옥순이는 자신의 병이 얼마나 위중한지도 모르고 남편의 병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 그리고 그렇게 말했었지. "곧 좋아질 거야"......’
그리고 긴 글의 끝을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한옥순이가 투병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새 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좋아지기는커녕 병마와 싸우느라 몹시 지쳐버린 옥순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듯 아픕니다. 그리고 동아리 모임이 있을 때마다 옥순이가 빠진 빈자리를 보면 늘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옥순아! 일어서렴. 이제 후반전을 준비해야지’
그렇습니다. 옥순이는 영영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오랫동안 고통 속에 지내다 이제사 비로소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됐습니다. 내겐 옥순이 사진이 별반 없습니다. 다만 내가 무슨 상을 받을 때 권현상이와 함께 꽃다발을 가져와 축하하는 사진 두어 장이 있을 따름입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옥순이가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르고, <우정>의 마지막 소절을 노래하던 옥순이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 것입니다. "행운을 빌며 안녕~ 친구여 안녕~~~"
<모놀로그>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지. 우리 나이에는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을지 누구나 불안해. 나 또한 그렇고. 우리 모두 그럴 거야. 어쩌면 살아가는 내내 그렇겠지. 그러니 어쩌겠어. 다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잘 지내"하고 가볍게 인사라도 하고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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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비오님!
옥순이에 관한 이야기들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옥순이는 워낙에 호탕한 성격인지라
환자티를 안내고
우리 여러 친구들이 찾아가 만날 때면
웃는 얼굴로 너무나 반가워하며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싱글벙글 좋아했지요.
엄마를 보살핀다고 홀로됨을 선택한
막내딸을 늘 안타까워했었는데.....
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없는 숙명이라고 여기기엔 마음 한 켠이 몹시도 아려 옵니다.
늘 건강하세요.
항상 감사합니다._()_
이글을 읽어보고 또보면서
많은생각을 합니다
기나긴 그런소설같은 글을 보고또 보면서 1415역사를 보았읍니다
무슨 할말이 있겠읍니까
떠나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그저 한숨만 휴ㅡ
하고 나올뿐입니다
1415 역사교과서 입니다
아주 잘보았읍니다
긴글 쓰고 올리시느라 고생이 많았읍니다
어제 모처럼 영화를 보았읍니다
경주기행 .
딸의 죽음을 복수하려는 어머님 늦은 한마디
나는 겁나고 두렵다
그놈을 용서할 생각이날까봐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