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알파 = 유주영 기자] 바야흐로 보딩스쿨(Boarding School, 기숙사학교)의 시대다. 이는 한국교육평가원이 내놓은
201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를 보면 뚜렷이 드러난다. 1•2등급 이상 비율에 있어서 기숙학교의 선전이 눈에 띈다. 기숙사학교가 학원 과외
같은 사교육의 도움을 받기 힘들다는 점에서 자기주도학습을 토대로 한 공교육시대가 정착되는 조짐으로 받아들여진다.
전국 2342개 고등학교의 1•2등급 비율은 7.5%다. 이 중 기숙사를 보유하고 있는 학교 883개의 1•2등급 비율은 9.8%다. 반면
기숙사가 없는 고교는 1459개로 1•2등급 비율은 6%다. 기숙사의 유무에 따라 무려 3.8%포인트 차이가 나는 것.
베리타스알파가 취재한 수능 ‘1•2등급 비율 톱100’ 중 기숙사를 가지고 있는 학교는 71개에 달했다. 특히 톱20에는 대원외고 한영외고
명덕외고 안양외고등 4개의 외고만이 기숙사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고, 나머지 16개 학교가 기숙사학교였다.
유형특성상 전국단위 모집학교는 기숙사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 톱100에는 전국단위 모집하는 자사고와 자율학교가 상당수 포함됐다. 전국단위
자사고는 7개교가 톱100에 랭크됐다. 민사고(3위) 상산고(4위) 현대청운고(11위) 하나고(26위) 포항제철고(47위) 북일고(51위)
광양제철고(71위)였다. 통상 일반고로 분류되지만 전국단위로 모집하는 자율학교도 기숙학교다. 한일고(15위) 공주사대부고(31위)
거창고(41위) 풍산고(45위) 거창대성고(64위) 익산고(82위) 남해해성고(87위) 영양여고(90위) 등 8개 학교가 톱100에 들었다.
광역자사고 가운데서도 기숙사학교의 선전이 눈에 띄인다. 자립형 사립고 출신인 해운대고가 35위. 비평준화시절부터 명문이었던
안산동산고가 42위였다.
외고 국제고 부문에서도 기숙학교의 선전은 두드러졌다. 서울 경기 수도권 외고들은 애초부터 기숙사를 짓지 않은 대신 공립인 지방 외고들은
대부분 기숙학교이다. 서울 경기 지역 외고도 전통 강호답게 수능실적이 나쁘지 않았지만 기숙사학교인 지방외고도 나쁘지 않았다. 톱 20가운데
기숙사를 가진 지방외고는 6개교가 포함됐다( 6위 김해외고 7위 대구외고 13위 수원외고 16위 성남외고 17위 대전외고 19위 강원외고)
외고보다 모집단위가 커서 준전국단위로 분류되는 국제고역시 대부분 기숙학교다. 톱20 가운데는 인천국제고(9위) 부산국제고(18위)
서울국제고(20위) 3개교가 올랐다.
수능 1•2등급 톱100에서 기숙사를 가진 일반고(2010학년 입학 당시)는 모두 23개였다. 2010학년 이후 자율학교나 자율형공립고로
유형이 바뀐 곳도 있지만 대부분 비평준화지역 일반고들이다.
자율학교를 제외한 일반고에서 돋보이는 진성고(40위), 수지고(45위)는 비평준화지역의 기숙사학교들이다.
기숙사학교는 그 특성상 공교육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학교마다 2~4주에 한 번씩 정해진 날에만 집에 갈 수 있어 원천적으로
사교육을 받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교육전문가는 “사교육과의 단절은 사람들의 인식과 다르게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기숙사에 기거하는 학생들은 사교육을 받기 힘들다. 대부분 학생이 당연시 여기는 학원, 과외수업을 학교에서 실시하는 방과후학교와 야간자율학습으로
대체한다. 학교 교사들의 질 좋은 수업과 학생 중심의 자기주도학습은 학원 수업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인성교육의 측면에서도 기숙사학교는 장점을 드러낸다. 민족사관고 학생들은 ‘신성’과 ‘혼정’을 아침과 저녁에 각 실시한다. 날이 저물면
자식이 부모님의 이부자리를 정리해 드리는 것을 혼정, 새벽이 되면 부모님의 낯빛을 살펴 드리는 것을 신성이라 한다. 민사고는 아침에는 검도 수련
전에 체육 선생님께 큰절을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에는 사감 선생님께 큰절을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큰절로 대표되는
예절교육이 정신수양에 한 몫 하는 것.
한일고는 ‘침대선후배’제도로 공동체의식을 배운다. 한일고는 8인1실의 기숙사를 사용하는데, 매년 신입생은 2학년 선배가 쓰던 침대를,
2학년은 3학년 선배가 쓰던 침대 자리를 물려 받는다. 이렇게 엮인 세 사람은 ‘형제’가 되어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준다.
호텔식 기숙사 vs 정겨운 기숙사
인천하늘고는 2011학년도에 개교하면서 ‘호텔식’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깔끔한 기숙사를 지었다. 4인1실의 기숙사 내부는 그 어느 학교의 기숙사보다도 독립성이 강조된다. 수납장을 침대와 침대 사이에 배치해
각 학생의 사생활을 존중해줄 수 있다. 청심국제고와 용인외고, 대일외고도 깔끔한 호텔식 기숙사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대일외고는 일체화된 책상과
이층 침대를 사용해 학생 각각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공주한일고와 공주사대부고, 양서고는 대표적인 ‘정겨운 기숙사’ 학교다. 공주한일고에는
‘침대선후배’제도가 있으며, 양서고에는 기숙사 부적응 학생을 위한 선배들의 또래상담이 진행되고 있다. 학습 및 생활지도와 인성지도 측면에서
기숙사는 활용도가 높다. 호텔식 기숙사는 깔끔하고 독립성이 있는 반면, 정겨운 기숙사는 학생들이 살을 부대끼며 생활할 수 있다. 물론 정겨운
기숙사도 각자의 침대를 사용한다.
기숙사비 vs 사교육비
기숙사비는 학교별로 천차만별이다. 가장 비싼 곳은 식대를 포함해 월 약
80만원으로 청심국제고가 차지했다. 식대는 보통 20만원 선이라 기숙사비만을 계산한다고 했을 때 약 60만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은 대일외고로 한 달에 약 49만원이다. 대일외고는 학생 중 집이 먼 160명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에 위치한 사립고인 관계로
기숙사비가 다소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저렴한 곳은 강화고와 포산고로, 기숙사비는 무료다. 그밖에 대구외고가 3만원, 청주외고가
8만5000원 등으로 저렴하다. 대부분 학교의 기숙사비는 식대를 제외하고 월 15만원 안팎이다.
그렇다면 기숙사비와 사교육비를 비교했을 때 어떤 선택이 이득일까. 통계청이 발표한 ‘2012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고교생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는 22만4000원이다. 전문계고교 학생을 제외한 고교생의 월 평균 사교육비는 26만5000원이다. 이 비용은 점점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추세라면 비용 면에서도 저렴하고, 수능 실적에서도 좋은 기숙사학교가 더 이득인 듯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