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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고린도 사역의 마무리와 귀환 과정의 교훈
사도행전 18:12~23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의 고린도 시에서의 사역 후반부에 일어난 고린도의 총독 앞에서의 재판에 대한 내용을 보게 됩니다. 이 사건은 늘 도시마다 사도 바울이 겪어왔던 일 중에 하나이긴 합니다.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부추겨서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고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을 사법 당국에 고발하여 감옥에 집어 넣기도 하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일어났던 경우에는 시의 치안 판사 앞에서 내린 결정이기도 해서, 그 재판의 효력이 그 도시 안에만 미치기 때문에 재판의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고린도에서의 재판은 아가야라는 광대한 지역의 재판이기도 하고, 고린도의 총독이 내리는 재판은 일종의 로마의 법적 효력을 지난 판례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훗날 가이사랴의 베스도의 법정에서 로마의 황제 네로에게 상소하는 길을 택하였던 것도 이번 고린도의 총독 재판의 결과를 보고 용기를 얻은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재판을 하게 된 과정을 잠시 살펴보고 그 영적 교훈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 법정에 서게 된 계기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12절과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하다 하거늘”
유대인들은 갈리오라는 사람이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하는 시기를 사도 바울을 재판에 넘길 기회로 삼았습니다. 새 총독은 아직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자기에게 접근하여 뇌물도 주고 친근감을 보여주고 영향력을 끼치는 세력에게 유리하게 판단할 수 있으니까 유대인들은 새 총독이 들어서니까 그 기회를 타서 사도 바울을 범법자로 몰아세우고 신흥 종교 세력으로 급부상한 기독교회를 무너뜨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인들은 유대교가 로마 제국 내에서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자기들의 합법적 지위를 지키면서 새로 일어난 기독교는 사이비 종파로서 로마 법 체계에서 불법 종교라고 확실한 낙인을 찍으려고 법적 공세에 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갈리오 총독의 법정 앞에서 사도 바울을 향하여 고발하기를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율법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노모스’라는 단어는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로마법의 법률’을 가리키는 단어로 이해해야 맞는 해석입니다. ‘노모스’라는 단어 자체가 나라의 법률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는 평범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이 맥락에서는 로마 법률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이 가르치는 복음의 가르침이 구약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가르치는 성경의 율법 해석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로마 법체계를 위배하는 불법적인 종교적 활동을 하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의 이러한 고발이 받아들여지면 유대교는 합법화된 종교로서 보호받지만 기독교는 불법 종교, 반사회적 종교로 규정되면서 로마 경찰의 단속대상이 되고 사도 바울의 전도 활동에는 커다란 장애물을 가로놓이는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법정의 재판장인 갈리오 총독을 통하여 기이한 결정을 내리게 인도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고발하는 말을 듣고 마음을 단단하게 먹고 속으로 기도하면서 갈리오 총독 앞에서 변론하려고 일어서려 할 때인데, 갑자기 갈리오 총독이 그 재판을 거부하는 신속한 결정을 내립니다. 14절로부터 16절까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옳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내니”
갈리오는 사도 바울을 고발한 원고인 유대인들을 향하여 그들이 제기한 재판 내용이 유대교와 기독교 간의 내부적인 언어와 명칭과 법의 해석 문제라고 치부하면서 너희들 내부에서 서로 처리할 문제라고 하면서, 이것은 사법 당국, 행정 당국에서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일종의 정교 분리 원칙을 선언한 것입니다. 기독교가 유대인들이 제기한 고발 내용처럼 사회에 위해를 가하거나 사회 혼란을 일으키는 불법 종교적 요소가 전혀 없다고 갈리오 총독은 판단을 내리고 기각한 것입니다. 유대인들로서는 이러한 갈리오 총독의 결정은 최악의 상황이 되었고 기독교로서는 최고의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 결정은 아가야 전체 주에 그 효력이 있는 결정이고 로마 전체 시도에서도 이와 같은 사안이 법정에서 제기될 때에 갈리오가 내린 이 결정은 효력 있는 판례가 되어 동일한 결정을 내리도록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과 성도들이 그 후 일정 기간 동안 공권력의 방해 없이 복음 전도에 힘을 기울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네로가 변질되어 기독교를 로마 시를 불 지른 집단이라고 거짓말로 기독교회를 박해의 대상으로 지목하는 주후 64년 경에 이르기 전까지 로마 당국은 유대인들과 지역 토착민들의 기독교회 박해로부터 교회를 지켜주는 우호적인 세력이 되어주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초대 교회와 사도 바울의 복음 전도 활동을 돕기 위하여 섭리적으로 도와주신 귀한 사건입니다.
갈리오가 이렇게 재판관으로서 신속한 결정을 내리고 재판 자리에서 일어나서 관저로 돌아가고 법정 관리들이 모인 사람들을 다 나가라고 몰아내니, 이번 일로 기독교를 제압하려고 몰려들었던 고린도 시의 많은 유대인들은 큰 충격을 입고 넋 나간 듯 허탈한 마음으로 힘없이 나갔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런 행동을 했습니다.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하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모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사람들이 유대인들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회당장 소스데네는 예수님을 회당장이었다가 당시에는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신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그 법정에 참석하며 총독 갈리오가 내리는 결정을 지켜보는 고린도 사람들, 일반 헬라인들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 헬라인 고린도 사람들은 갈리오 총독의 결정을 듣고는 그 동안 고린도 내에서 유대인들이 패쇄적인 집단적 행동을 하는 것을 늘 좋지 않게 여기고 있었는데 갈리오 총독이 그 유대인들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고서 흥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재판을 주도했던 유대인 회당장 소스데네를 붙잡아서 집단 구타를 함으로써 유대인들에 대한 평소에 가졌던 반감을 풀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행정 장관이요 질서 유지 책임자였던 갈리오가 그러한 집단 구타 현장을 보고서도 상관없이 그 자리를 떠난 것은 그가 유대인들에 대한 인종적 혐오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여하튼 하나님께서는 비록 갈리오라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그를 통하여 이렇게 유대인들의 핍박의 기세를 꺾고 교회의 전도 활동을 보장해주는 지극히 복된 결정을 내리도록 사용하셨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종종 하나님은 믿지 않는 이들을 하나님 백성과 교회를 위한 협력자로 사용하시곤 합니다. 구약 시대 유대인들을 압제하던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세우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페르시아 왕국을 건설하도록 특별히 세웠던 고레스 왕 역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신론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고레스가 바벨론을 점령하여 유대를 해방시키기 전 150년에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의 탄생과 그의 유대인 해방의 큰 일을 예고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일지라도 주의 백성들을 돕고 교회를 돕기 위하여 준비시켜 주시고 때가 되어 우리를 돕는 자들을 붙여주시곤 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을 무조건 마귀 자식이라면서 적대시 하지 말고 우리가 보냄받은 자리에서 그들을 늘 축복하고 할 수 있는 한 그들과 화평하게 지내며 잘 돕고 협력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과 교회를 돕는 데 사용하신 갈리오 총독에 대하여 잠깐 살펴본다면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그 당시 최고의 철학자로 온 로마 제국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던 세네카라는 사람의 친형이었습니다. 세네카는 스토아 철학의 대가로서 정치계에서도 대단한 영향력을 가졌던 명문가였습니다. 그래서 세네카는 그의 탁월한 연설 능력과 지적인 박식함과 탁월한 작품들로 인하여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심지어 성경의 가이오 황제 곧 미치광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갈리쿨라라는 별명의 황제에게서 견제를 받아 너무 연설을 잘한다고 자살을 강요당할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그가 당시 천식이 심해서 황제의 정보원이 황제에게 그는 죽이지 않아도 천식으로 곧 죽을 운명이라고 말함으로써 벌금형으로 감해져서 간신히 살아났습니다. 세네카는 늘 작품을 써서 대중과 지성인들의 존경을 받다가 클라우디오 황제 다음에 황제 자리를 계승한 네로의 스승으로 발탁되어 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네로가 젊은 시절에 황제가 되어서는 그의 총명함과 스승 세네카의 지혜로움과 덕스러움이 조화를 이루어서 로마 제국이 평안하고 안정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네로는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악한 본성의 노예가 되어 결국은 자기 어머니도 죽이고 자기 아내도 죽이고 온갖 추악하고 괴기한 일을 일삼다가 결국 자기 스승 세네카도 자살을 강요하였습니다. 결국은 세네카 때문에 그의 형 갈리오도 주후 65년 경에 황제 네로로부터 자살을 강요받고 결국 목숨을 끊고 맙니다.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교육도 잘 받고 지극히 총명하고 인품도 지극히 훌륭하여 인망을 많이 얻고 출세도 하였으나 칼리쿨라 황제의 견제도 받고 간신히 모면하여 나중에 네로 황제의 가정 교사까지 되고 나라를 통치하는 실질적인 최고 권력을 누리고 많은 부도 누리고 최고의 존경도 받았지만 세네카와 갈리오는 결국은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죽음으로 그 일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갈리오와 세네카의 가문의 삶의 궤적은 하나님 없는 세상 영광의 쓸쓸하고 비참한 뒷모습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렇게 출세 가도를 밟아가던 주후 51년도에 갈리오는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하여 당대 최고의 또 다른 지성인이요 특별히 영적인 최고의 스승이라 말할 수 있는 사도 바울과 재판석에서라도 만나 얼굴을 서로 보고 대화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갈리오의 내면 세계의 중심 자리에는 힘과 권력과 부와 사람들의 박수 갈채와 인간의 지성과 지혜와 육신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이 세상이 차지하고 있었으니, 그의 세계를 넘어선 더 깊은 세계를 알고 경험했던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영적 세계에 대하여 전혀 무관심했고 바울을 그냥 지나쳐 지나가고 만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세네카와 갈리오 형제와 그 가문처럼 이 세상의 성공과 행복을 지향하며 달음질집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은 덧없음, 비참함, 쓸쓸함의 모습을 맞이하곤 합니다. 그 부모가 자기 자식들을 당시에 가장 훌륭하게 키워서 최고의 길을 갔지만 그들은 질투심 많고 미치광이와 같은 당시의 황제 가문의 계속적인 견제를 받다가 다들 비참하게 자살을 강요받고 모두 죽게 되는 멸문지화를 당하였으니, 참으로 인간 세상의 임금과 주권자들을 섬기는 자들의 삶은 이렇게 쓰라리고 슬픔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왕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은 그 삶은 참으로 지극히 복스럽고 영광스럽습니다. 그는 결코 자기 종들을 버리지 아니합니다. 그는 탁월한 종이라고 해서 질투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네로처럼 변덕스럽지 않습니다. 그는 가장 존경스럽고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영광스럽고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어 자기 종들을 멸망에서 살려내시는 섬기는 왕이십니다. 그는 자기 종들에게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동참하도록 이끌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과 우리의 온 가문은 지극히 선하고 자비로우시며 자기 종들을 지극히 위하시며 자기 생명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섬기시는 영원한 영광의 임금이신 우리 구주 예수님을 위하여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영원히 섬기도록 합시다. 그리할진대 우리는 참으로 후회가 없고 슬픔이 없고 죽음의 순간에도 지극히 큰 소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 이렇게 재판의 결과를 통하여 유대인의 공세를 하나님의 은혜로 잘 넘긴 사도 바울은 담대하게 고린도에서의 복음 전도 사역을 계속합니다. 그래서 아무런 방해받음 없이 그 고린도에서의 사역을 다하고 제 2차 전도 여행을 최종 마무리하고 귀환하려고 작정하고 고린도를 떠납니다. 이 과정을 18절 이하에서 의사 누가는 간략한 필체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바울은 아마 그 재판 후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역에 전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사역을 마무리할 때가 왔음을 알고 배를 타고 수리아 곧 안디옥 교회로 돌아갈 것을 계획하고 배를 타고 돌아가고자 고린도 시의 동편 항구인 겐그레아로 떠납니다. 고린도 형제들의 열렬한 환송 속에서 바울이 겐그레아 항구로 갔을 때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함께하였습니다. 여기서 슬쩍 아굴라보다 브리스길라의 이름을 앞서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이름 순서는 그 후에도 바뀌지 않습니다. 아마도 아굴라의 아내 브리스길라가 주님의 일을 위하여 매우 주도적이고 헌신적이고 사랑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과 누가를 비롯한 모든 선교단원들을 위하여 이 두 부부가 행한 모든 헌신은 전도 여행의 고단함 속에서 큰 위로와 기쁨과 힘이 되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이는 그가 일찍이 서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니 곧 나실인의 서약을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사역하는 도중에 했던 것입니다. 나실인의 서약은 평생 나실인도 있고 기간을 정하고 행하는 기간 나실인 서약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간을 정한 나실인의 서약을 했던 것입니다. 누가가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고린도에서 나실인의 서약을 한 동기는 아마도 고린도에서의 하나님의 보호해주심과 재판 과정에서의 도우심에 대한 감사의 의미에서 행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께 자기 몸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일정 기간 동안에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온전한 감사를 드리고자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의 사역 과정에서 간절한 소원을 담아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자 나실인의 서약을 지켜 몸을 드렸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나실인의 서원할 정도의 소원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사도 바울이 그 마음 속에 동족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한 간절한 바람이거나 혹은 당시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이방인 기독교인들과 점점 더 벌어지는 거리감을 해소하고 하나 되는 연합을 이루어 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소원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머리를 한참 동안 일체 칼을 대지 않고 길러서 머리칼도 수염도 마치 도사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을 사도 바울이 이제 날짜가 차니까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기 전에 그 길던 머리칼과 수염을 싹 다 밀어서 대머리처럼 깨끗하게 깎고 배에 올라탔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금은 과거 유대인들처럼 나실인의 서원을 그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께 자기의 마음과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일정한 기간 동안 작정하여 기도하고 소원을 아뢰거나 감사의 일환으로 하나님께 우리를 일정 기간 드리는 것은 주님 보시기에 귀하게 여기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께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빌거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진실하고 뜨거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기간을 작정하여 세상적인 것들과 거리를 두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하며 간절하게 기도하는 헌신을 일생을 살아가면서 종종 행하시는 아름답고 복스러운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19절로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사도 바울은 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에베소에 들렀습니다. 에베소는 당시 항구도시로서 소아시아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에베소에 들렀고 사도 바울은 거기에 부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머물도록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대인 회당을 찾아보고 그 회당 사람들과 변론하였는데 그 사람들은 머리를 깎은 사도 바울을 보고 그가 유대인으로서 경건을 추구하는 사람인 줄을 알고 그가 전한 복음을 잠시 전해 듣고 더 깊이 말씀을 듣고자 오래 있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일정이 빠듯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그 때 예루살렘의 명절을 맞춰서 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에 예루살렘의 사도들도 모일 것이기에 그들에게 가서 선교 여행에 대하여 보고도 하고 이방인 교회의 성장에 대하여 예루살렘의 사도들도 더욱 마음을 합하여 기뻐하며 마음의 후원을 바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개인적인 용무로는 유대인 관례상, 나실인의 서약으로 길렀던 머리를 자른 것은 성전의 제단에 올려드려 불로 사른다고 하니, 아마도 그 일도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회당 유대인들의 요청을 받았으나 더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만 이렇게 그들에게 대답하고 떠납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에베소에 돌아와 사역하겠다는 사도 바울의 이 짧은 말 속에서 삶의 철학이 담겨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자기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고자 힘썼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가 에베소에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오리라는 그의 말을 했을 때에 그는 그 순간 지난 이년 전 이차 선교 여행을 하던 도중에 사도 바울이 이곳 소아시아 지역으로 와서 전도하려고 했었을 때에 성령께서 그의 계획을 막았던 일도 상기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차 전도 여행의 핵심 지역을 소아시아 곧 에베소 지역에 들어와서 전도하고 싶었는데 성령께서 그 때에 막으셔서 들어오지 못하고 바다 건너편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가서 전도하게 하신 일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시 전도여행을 오게 되면 꼭 소아시아의 중심지인 이 에베소 시에 와서 사역하고자 바라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점을 뼈속 깊이 알기 때문에, 그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면서 행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도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의 삶에 있어서 미래의 계획도 세우고 삶의 목표도 세워가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만이 우리 삶에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잠언 16:9 말씀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고 하였고, 잠언 19:21 말씀에서도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삶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항상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에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의 손길에 우리의 모든 계획과 진로를 지극히 겸손하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공손히 내어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에서 나와 그가 예루살렘을 들렀다가 그를 처음 파송한 시리아 안디옥 교회로 가서 얼마간 쉽니다. 22절로부터 23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사도 바울을 태운 배는 에베소 항구에서 떠나 가이사랴에 도착합니다. 가이사랴는 예루살렘에 가까운 항구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로 향합니다. 성경에 예루살렘으로 갈 때에는 항상 ‘올라간다’는 표현을 씁니다. 실제 고도가 약 700미터에 가까우니 내내 올라가는 길이기에 올라가기도 합니다만 예루살렘은 당시에도 성전이 있었기 때문에 올라간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래서 22절에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간다는 표현에서 예루살렘이란 지명은 안 나오지만 당연히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그곳에 가서 유다 교회의 안부를 물었으니 이는 성도의 교제를 사도가 중히 여긴 것을 보여줍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은 이차 전도 여행의 결과를 사도들에게 보고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곧장 시리아 안디옥 교회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부르기아 땅을 다니면서 제자들을 굳게 하였는데, 그곳은 사도 바울이 일차 전도여행 때 교회를 세웠던 곳이고 이차 전도 여행 때에도 다녀갔던 곳인데 재차 차례로 방문하면서 주님의 제자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한 것입니다.
여기서 본문 말씀에서는 특별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러 사도의 편지와 정황들을 볼 때에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서둘러 고린도에서 출발하여 에베소에서 오래 있지도 않고 서둘러 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주된 목적이 당시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유대의 기독교회와 이방인 교회 간의 거리감을 해소하고자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 지역 전도하면서 계속 피부로 느낀 것은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지독히 미워하면서 부정적인 말을 함으로써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교회들과 성도들까지도 사도 바울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들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감지했을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이방 교회와 유대 교회 간에 아무런 차별이 없는 완전한 하나 됨의 교회관을 피력하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점점 부담스러워하는 보수적인 의견이 지배적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복음에 온전히 충실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 유대인 형제들에게는 못마땅하고 매우 급진적인 견해로 느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분위기를 잘 알기에 이렇게 유대인 교회 지도자들인 야고보나 다른 사도들과 만나 조율하고 또 이방 교회들에게 그들을 도와 마음을 열게 해줄 수 있는 구제 헌금을 모아 전달해줄 일들도 구상해보려는 취지로 예루살렘에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짧은 구절 속에서 다 추측할 수 없지만 사도 바울은 이차 전도 여행 후에 예루살렘에 방문했을 때 그렇게 달가운 환영을 받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며 헌신하였지만 마땅히 충분한 협조와 격려를 전해주어야 할 동료 사역자들로부터 아무런 격려와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예루살렘을 떠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게 동료 사역자들로부터 아무런 위로와 격려의 말을 받지 못한 채 시리아 안디옥 교회로 돌아갔으나 다시 심기 일전하고 안디옥에서 얼마 쉰 후에 다시 떠나 3차 전도 여행을 떠나 이미 세웠던 교회에 들러 세운 지역 사역자들을 만나 격려하고 성도들을 성령으로 격려하며 복음의 진리를 다시 한번 굳게 전달하면서 힘을 내어 자기에게 주어진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사명을 감당해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섬길 때에 이 세상에서 사람들로부터 모든 칭찬과 인정을 다 받으려 하지 맙시다. 주님께서도 이 땅에서 자기 백성들로부터 배신당하고 가족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셨고 그가 세운 제자들로부터 배신당하였고 버림당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 한분을 바라보며 그 사명의 길을 끝가지 걸어가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하였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며 살아갈 때에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다 받으려 하지 말고 묵묵히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계속 가는 자가 됩시다. 사도행전 20:24 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바를 우리도 마음에 둡시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우리도 우리의 남은 생애를 사명의 길을 끝까지 완주하는 것으로 목표를 삼읍시다. 날 위하여 생명을 아낌없이 내주신 주님의 그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주님을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아가는 자가 됩시다. 주님이 불러주신 교회를 잘 받들면서 내게 주신 부름의 섬김의 자리를 변함없이 잘 지켜가는 자가 됩시다. 주님이 내게 붙여주신 사람들을 믿음과 사랑으로 끝까지 잘 섬기면서 복음을 전하며 중보 기도하면서 섬기는 자로 삽시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에 맡겨진 사명 잘 감당했다고 주님 앞에 인정받고 이제 편히 쉬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사랑괗 위로와 칭찬을 듬뿍 받는 복된 사명자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