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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땅끝문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영일
개와 고양이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당시에 영어를 가르치던 박유창 선생님은 영어에서 습관적으로 쓰이는 관용구(慣用句)를 좋아했는데, 가령 ‘It rains cats and dogs.’ 가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유독 이 관용구를 발음할 때는 선생님의 평소 영어에 대한 확신과 긍지가 미세한 침의 파편들로 허공에 튀겨 나왔다. 게다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다’는 말을 그냥 ‘It rains heavily’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개들과 고양이들처럼 내린다’고 표현했는지 너희들은 아느냐, 은근히 우리를 무시하면서 자신만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 은밀한 내막을 자신의 이름만큼이나 유창하게 설명해 주시는 거였다. 일명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의 1막이었다.
“개는 기분이 좋을 때 꼬리를 위로 치켜든다. 고양이와 사귀자고 꼬리를 치켜들고 접근하면 고양이는 개가 자기를 공격해오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고양이는 발톱을 세우며 으르렁거리면서 방어 자세를 취하며 잔뜩 긴장하고, 급기야 서로 물고 할퀴는 대혈전이 벌어진다. 반대로 고양이는 기분이 좋을 때 꼬리를 내린다. 같이 놀자고 꼬리를 내린 채 개에게 접근하면 개는 그 순간, 고양이가 자기를 향해서 공격해 오고 있다고 판단한다.”
선생님의 해설은 장황하게 이어졌다.
“그래서 개와 고양이는 웬만해선 어울릴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상대방의 부드럽고 유쾌한 제스처를 마치 싸움을 걸어오는 것으로 오해를 하니 한데 어울릴 수가 없다. 어울리려고 접근하는 순간 평화는 깨지고 만다. 한 마리가 아니고 개떼와 고양이떼가 그렇게 만수산 드렁칡처럼 엉겨 붙어 집단 패싸움이라도 벌였다고 상상해 봐라. 지붕을 강타하며 억수같이 내리는 빗소리를 방에서 듣고 있으면 마치 개와 고양이가 싸우는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에 이렇게 관용구로 표현한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비만 올라치면 오늘은 또 뉘 집 개와 고양이가 엉겨 붙어 싸울지 엉뚱한 상상을 하곤 했다.
“조 소위! 조 소위! 조 소위, 어딨어! 이 새끼 빨리 안 나와?”
다짜고짜 내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호통장의 불호령이 떨어진 것은 야간 경계근무를 마치고 아침을 먹은 소초(小哨, 군대에서 중요한 지점의 경계 임무를 맡은 소대(小隊) 단위 이하의 경계 부대)원들이 근무 취침에 막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청천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30여 명이 넘는 소초원들이 이부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침부터 호통장이라 불리던 대대장이 불시에 들이닥쳤으니 일개 사병들이야 놀라고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무실 출입문 옆에 조그마한 다락방처럼 붙어 있던 소초장(小哨長, 경계임무를 맡은 소대 단위의 지휘관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소대장에 해당) 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소초장(小哨長)은 멋도 모르고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순간 대대장인 것을 확인한 소초장은 민첩한 동작으로 문 앞에 나와 대대장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소위 조기웅, 근무 중 이상 무!”
“근무 중 이상 무라고? 헛소리하고 자빠졌네. 조 소위! 사실대로 말해라. 니가 시켰지?”
“무슨 말씀이신지……”
“니가 소초원들한테 나를 쏴 죽이라고 시켰잖아! 이 새끼가 사병들에게 하극상(下剋上)을 사주(使嗾) 해?”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대대장님!”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지켜보니까 네놈 소초가 근무태도도 가장 불량하고, 군기도 제일 많이 빠졌는데, 오냐 오늘 잘 걸렸다!”
대대장은 지체 없이 조 소위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기 시작했다. 전혀 영문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일이 이렇게까지 번지랴 싶었던 소초장은 이미 때가 늦었음을 직감했다. 대대장의 기습에 그것도 사병들이 뻔히 보는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구타를 당했다. 날아오는 주먹에 얼굴을 감싸 쥔 소초장은 복부에 파고드는 군홧발에 급기야 땅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내무실 바닥에 엎드린 조 소위의 몸뚱이에 가해지는 대대장의 발길질은 이미 브레이크가 파열돼 멈추지 못하는 폭주차량처럼 한 동안 계속되었다.
“이 새끼가 어디서 굴러들어 온 개뼉다귀 같은 놈이야? 감정을 그딴 식으로 풀면 내가 모를 줄 알아?”
갖은 욕설로 인신모욕을 하고 구타를 가하던 대대장이 동작을 멈춘 건 바닥에 엎드린 소초장이 꿈쩍도 않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처참하게 개처럼 얻어맞기는 했지만 설마 죽기까지 하겠냐며 내심 방심한 채 나는 구타현장을 목도하고만 있었다. 하지만 꿈쩍도 않고 축 늘어져버린 소초장의 몸뚱이를 보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대대장은 아직도 분이 덜 풀렸는지 씩씩대면서 멍하니 보고 있던 사병들에게 소초장을 침상에 눕히라고 지시했다. 그리고는 사병들을 쭉 훑어보더니 공호철 상병을 호출했다.
“공호철이 어딨나?”
“상병 공호철!”
“이리 나와!”
호출이 떨어지자 공 상병은 눈앞에서 벌어진 난리굿의 진원지가 공 상병 자신임을 소초원들 앞에서 자백하려는 듯 모든 것을 각오한 표정으로 대대장 앞에 섰다.
“니가 공호철이냐?” “예 그렇습니다!”
“너 어젯밤 내가 순찰 중이었다는 거 알았나? 몰랐나?”
“……”
“이 대대장 말이야. 너희들 같이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빨리 대답해라!”
“……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노리쇠를 풀었지? 나를 진짜로 죽이려고 그랬나? 그러면 포상휴가라도 갈 줄 알았나?”“아닙니닷!”
“누가 시켰나? 소초장이 그랬나?”
“아닙니다! 저는 단지 순찰자가 세 번이나 암구어(暗口語, 기밀을 유지하기 위하여 당사자끼리만 알 수 있도록 문어(問語)와 답어(答語)로 꾸민 소통용 단어나 표지(sign). 일종의 암호)에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근무수칙대로 조치한 것뿐입니다!”
“근무수칙? 그래. 니가 근무수칙을 근거로 나를 위협했다고 치자. 그러면 내가 호락호락 제압될 줄 알았나?”
“아닙니다! 결단코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대대장님!”
“이 자식들이 잡아떼는 데는 다들 도통한 놈들이구만!”
금방이라도 공 상병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칠 것 같은 기세였다. 깊게 눌러 쓴 방탄모 밑으로 뱁새처럼 좁게 찢어진 대대장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공 상병은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치시려거든 어서 치시지요.’라고 주문(注文)하는 듯 대대장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대대장의 폭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무실에 찬물을 끼얹은 듯한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흘렀고, 모두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대대장은 싱겁게 상황을 종료시켜 버렸다.
“공호철! 앞으로 조심해라. 특별히 너를 지켜볼 것이다.”
한마디의 경고를 내뱉고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내가 근무하던 부대가 진달래 유난히 붉던 봄날, ○○오피에 투입돼는 과정에서 부대원들은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수없이 경험했다. 그래서인지 이날 소초장이 대대장에게 당한 구타사건도 가벼운 에피소드 정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단지 장교든 사병이든 본인이 미친 개에게 물리지만 않으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그런데 훈련장이나 근무지가 아닌 내무실에서 미친 개에게 물린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부대원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것도 사병들이 보고 있는데도 소초장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것은 호통장이 어떤 사람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오피에서 근무하는 경계부대의 특성상 해가 지기 1시간 전에 초소에 투입돼, 해가 뜨고 1시간이 지나서야 철수하는 야간근무는 누구에게나 고역(苦役)이었다. 초소(哨所, 보초가 서 있는 곳이나 경계하는 이가 근무하는 시설) 근무자가 밤샘 경계를 하며 유념해야 할 사항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전방에 세워진 이중 철책선을 계속 예의(銳意) 주시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매일 밤 순찰을 도는 중대장과 대대장 순찰조를 맞닥뜨리는 일이었다. 철책을 경계하는 일이야 경계 부대의 당연한 임무이지만, 불시(不時)에 일어나는 순찰조와의 조우(遭遇)만큼은 근무자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종기의 고름짜기였다. 그래서 우리끼리 있을 때 전자의 경우를 외부의 적이라 부르고, 후자를 내부의 적이라 부르기도 했다. 적이 두 개 있는 셈이었다.
우리 부대에서는 그를 대대장보다는 ‘호통장’이라고 불렀다. 물론 사석(私席)에서만 통용이 가능한 사병들끼리의 암호이자 별명이었다. 사병들을 만나면 위로하거나 격려하기보다는 꼬투리나 빌미를 잡아내서 십중팔구 호통부터 쳐대는 대대장의 성질머리를 빗댄 이름이다. 대대장의 아니 호통장의 호통이 시작되면 장교라 할지라도 그 앞에서는 꼼짝도 못한 채 주눅이 들어야 했다.
사실 오피에 투입되기 전 3개월 동안 진행된 ‘투입준비교육’에서 그의 깐깐하고 매몰찬 성격은 전 대대원들을 몸서리치게 했다. 경계 중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처요령을 숙지하지 못하거나, 상황 브리핑이 서툴거나 버벅대면 바로 이어지는 게 버럭버럭 질러대는 호통이었다.
“이렇게 안이하고 썩어빠진 정신상태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어떻게 너희 같은 조무래기들에게 비무장지대를 맡길 수 있겠나! 정신 똑바로 차리지 못해!”
엄동설한에 자정이 넘도록 투입준비와 교육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였다. 지긋지긋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언제든지 다용도로 사용가능한 기계로 개조(改造)하는 작업과도 같았다. 준비 기간 3개월이 전체 군생활보다 길게만 느껴진 것은 나 혼자만의 과장이나 엄살은 아니었다. 차라리 후방에서 유격훈련을 하라고 하면 모를까, 최전방 오피의 경계부대로 투입되는 것만큼은 꿈에서라도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런 시간을 거친 후에 투입이 되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과 피로도(疲勞度)는 더 쌓여만 갔다. 게다가 대대장이 순찰 때마다 사병들에게 은근히 스트레스와 중압감을 주고 다녔기 때문에 긴장의 강도는 세질 수밖에 없었다. 신참 때 고참들에게 무용담(武勇談)처럼 들었던 얘기와는 사뭇 달랐다. 철책선에서 근무를 서고 있으면 대대장이나 중대장이 순찰을 도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순찰자는 사병들에게 눈깔사탕도 주고 따끈한 커피에다 가끔은 초코파이까지 주고 간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의 호통장이 부임하면서 그런 얘기들은 벌써 옛 전설이 되어 버렸다. 오늘 아침에 발생한 구타사건도 따지고 보면 평소에 호통장이 사병들에게 얼마나 증오와 원망의 대상이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實例)였다.
여느 날처럼 어젯밤에도 자정이 지날 무렵에 호통장과 수행원인 통신병이 각 초소들을 순찰하고 있었다. 호통장이 순찰을 떴다고 소초 상황실을 통해 각 초소로 전달되면서부터 근무 나간 병사들은 긴장하기 마련이었다. 벌써부터 머릿속에는 몇 시쯤, 어느 초소에서 호통장 순찰조와 조우(遭遇)할 것인지를 계산하는 가상 시뮬레이터가 가동되었다. 희망사항이라고 하면 제발 순찰조를 만나지 않고 소초로 돌아오는 것! 그저 그뿐이었다.
새벽 3시경, 오뚝이초소를 순찰하고 나오던 대대장 순찰조가 독수리초소 10여 미터 앞에까지 다가왔을 때였다. 독수리초소에서 경계를 보던 공호철 상병이 수하(誰何, 보초 근무시 피아(彼我)의 식별을 위해 ‘누구냐?’ 하고 신분을 밝히도록 묻는 일 또는 대화)를 했다.
“손들엇!”
그 순간 호통장 일행은 이동로 한 가운데에 멈칫 하고 섰다.
“움직이면 쏜다!”
그리고 공 상병은 암구어(暗口語)를 댔다. 그날 밤 전군(全軍)에 하달된 암구어의 문어(問語)는 ‘고양이’, 답어(答語)는 ‘풍산개’였다.
“고양이!”
“……”
"고양이!“
“……”
두 번 연속된 공 상병의 문어(問語)에도 대대장은 묵묵부답, 답어(答語)를 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서 있었다. 막막하고 다급해진 공 상병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문어를 댔다.
“고양이!”
“……”
“……?”
“……”
“……!”
“……”
경계근무 규정상 세 번의 문어에 답어를 대지 않으면 수상한 자나 적(敵)으로 간주하여 체포 내지는 사살할 수 있는 권한이 경계병에게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경계지역 내에서 적으로 간주하여 사살하는 것은 금기로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세 번 연속된 암구어에 아무런 반응이 없자 공 상병은 갑자기 방아쇠에 끼여 있던 버팀목을 뺐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고 노리쇠를 뒤로 한 번 제친 후 앞으로 힘차게 밀치면서 놓아버렸다.
“철커덕!”
적막한 밤하늘에 육중한 쇳소리가 날카롭게 퍼져나갔다. 이제 방아쇠만 당기면 총탄이 발사되는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그때까지 서 있기만 하던 호통장은 갑자기 왔던 길로 몸을 돌리더니 내빼기 시작했다. 호통장을 수행했던 통신병은 갑자기 벌어진 황당한 장면이 믿기지 않는 듯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상황을 간파했는지 호통장이 내뺀 그 길을 따라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절체절명의 위급한 순간에 등짝에 달라붙은 고철 무전기가 거북이를 짓누르고 있는 등껍질만큼이나 무거워 보였다. 그렇게 해서 지난 밤에 호통장 순찰은 독수리초소 앞에서 종료가 된 셈이었다.
당시 나는 상황병으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초 상황실에서 잠시 전에 발생한 상황을 공 상병으로부터 보고받은 즉시 소초장에게 보고했다.
“대대장님 지나 가시겠다는데 조용히 보내 드리지…… 왜 또 시비를 걸었담? 허허, 공 상병은 융통성 없이 너무 열심인 게 흠이라면 흠이여.”
시큰둥한 표정으로 소초장은 ‘그분은 원래 습관상 암구어에 늦게 반응하시는 거 뻔히 알면서 왜 긁어 부스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속으로 투덜대는 듯했다. 그러면서 혹시 대대장한테서 전화 오면 상황을 잘 설명하라면서 소초장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나는 소초장에게 잠시 후에 일어날 사태를 뻔히 알면서 왜 그냥 들어가느냐, 먼저 대대장님께 전화라도 해서 당시 정황을 보고하고 용서를 빌어야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규정대로 하자면 오히려 FM(Field Manual, 야전교범(野戰敎範)의 영어식 표현으로, 군대의 교육 및 훈련에 관한 일반적이고 기초적인 지식을 내용으로 하는 군사용(軍事用) 야전 교과서)대로 근무를 선 공 상병에게 포상 휴가장이라도 줘야 하는 게 아닌감? 하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실 공 상병의 행동은 그 자체로 보면 잘못이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나름대로 규정에 나와 있는 근무 수칙대로 성실하게 근무를 서다가 생긴 우발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초장은 대대장 성질 뻔히 알면서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나는 상황근무를 서는 동안 혹시라도 대대장한테서 전화나 걸려오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동이 틀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바로 앞에서 육성으로 듣는 호통보다 더 고약한 것이 전화통에 대고 질러대는 고막을 파열시킬 듯한 호통소리 때문이었다. 지난밤은 다른 날보다도 몇 배는 신경이 곤두서고 힘 빠지는 근무였다. 몇 날 밤을 지샌 듯이 몽롱하고 멍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동이 트고 초소 근무자들이 철수하고 아침을 먹고 나서도 대대 상황실로부터 아무런 기별이 없었다. 이번엔 그냥 유야무야(有耶無耶) 넘어가려나보다 하고 마음을 놓고 싶었다. 하지만 내심으론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대대장의 기습과 호통을 생각만 하면 결코 방심할 계제(階梯)가 아니었다. 소초장도 아침을 먹은 후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면서, 왜 이리 오늘 따라 내무실 분위기가 저기압인지 모르겠다면서
“어젯밤에 대대장님이 제대로 겁을 먹었나봐. 헤헤, 예전 같으면 당장 소초로 달려와서 난리법석을 폈을 텐데 말이야, 그래도 왠지…… 불안한 건……”
라면서 말끝을 얼버무렸다. 그러더니 어젯밤 사건의 주역이었던 공 상병이 누워 있는 침상에 가서 잠시 공 상병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더니 다시 소초장실로 들어갔다. 소초장이 들어가고 10여 분이 지났을까. 모두가 왠지 찜찜하고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하고 노심초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조 소위! 조 소위! 조 소위 어딨어! 이 새끼 빨리 안 나와?”
소초장을 연신 부르면서 대대장은 보란 듯이 순식간에 내무실을 점거했다. 그의 주특기였던 호통과 함께! 그것이 불과 몇 시간 전에 일어난 소초장 폭행 사건의 전말이었다.
한바탕 씻김굿으로 사병들의 어설픈 하극상(下剋上)에 대한 책임을 소초장이 몸으로 때우긴 했지만 그것으로 모든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었다. 이후에 언제 어떤 식으로든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의 뇌관(雷管)은 사병들의 몸과 마음을 더욱 죽음으로 몰고 가는 암적인 존재였다.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제한된 공간 안에서 소통(疏通)이 없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창살 없는 감옥살이와 진배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남과 북의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서해로 유유히 흐르고 있는 임진강 부근의 후방에서의 군생활은 교육과 훈련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철책근무라고도 부르는 비무장지대를 경계하는 방책선(防柵線, 말뚝을 박아서 만든, 적을 막기 위한 울타리. 일명 GOP(전방관측소)라 부름)에 투입되는 일은 군 생활 중 좀처럼 오지 않는 특수한 기회였다. 하지만 내가 속해 있던 부대는 낭만에 초쳐먹는 시대에 투입된 부대는 아니었다. 부대원들은 강도 높은 투입 준비와 교육훈련 탓에 투입하기도 전에 체력이 소진(消盡)되어 있었다.
그나마 주말엔 면회나 외출, 외박이 자유로웠지만 일단 방책선에 투입되는 순간부터 휴가 외엔 외부와의 접촉은 허용되지 않았다. 민간인의 통행이 금지된 민통선(民統線) 구역인데다 비무장지대를 경계하기 때문에 군 기밀유지와 보호를 위해 외부와 철저히 차단되어 통제를 받는 곳이기도 했다. 사방팔방이 막혀 있는데다 야간근무로 인해 언제나 잠이 부족했고, 숙면(熟眠)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신경이 곤두 서 있었다. 웬만해선 고참이라도 후임병이나 신참을 함부로 대하거나 건들지 않는 게 암묵적인 규칙으로 굳어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소통(疏通)은 마비되어 있고 근무수칙과 규율만이 서슬 퍼런 날처럼 번득이는 곳이기도 했다.
비록 늦게 찾아오긴 했지만 어김없이 비무장지대까지 야금야금 올라온 봄은 사람들을 나른하게 하는 야릇한 재주가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여기저기서 따사로운 햇살에 자신의 방식대로 병사들은 해바라기를 했다. 근무 중에라도 새싹이 파릇파릇 돋는 초소 주변에 잠시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병사도 있었다. 게다가 내무실에서는 오디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유행가나 팝송에 몸과 마음을 리드미컬하게 내맡기기도 했다. 가끔 외국의 여가수 셀린 디옹이 절규하는 듯, 사무치는 듯 불러대던 ‘The Power of Love'는 방책선에 갇혀 사는 병사들에게 바깥 세계를 동경하게 했다.
하지만 비무장지대의 봄은 늦게 왔다가 재빨리 가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마른버짐처럼 희꾸무레하게 멍울지던 봄빛은 빠른 속도로 짙푸른 초록세상으로 물들어갔다. 내무실 분위기도 초여름으로 넘어가면서 봄과는 사뭇 다른 생기와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호통장과의 불편한 동거(同居)나 불화(不和) 속에서도 소초원들은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경계 임무로 하루하루 국방부 시계를 착실하게 돌려나갔다.
그런데 장마철이 지났는데도 유독 올해엔 비도 오지 않은 채 폭염이 계속되었다. 장기간 계속되는 가뭄과 폭염에 소초원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급수 상황은 날이 갈수록 열악해졌다. 개인에게 허용된 일일 용수량도 양동이 하나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7월 25일에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발표되자 부대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개성시를 바라보고 있는 남측 ‘도라산 전망대’에서 군사용 도로를 재정비하고 확포장하는 공사가 진행되었다. 한반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불바다 발언’이 엊그제 일만 같은데, 불과 3개월 사이에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난다는 소식은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우리에겐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당장 도로작업이나 초소작업 시 총구(銃口)를 북쪽을 향해 겨누지 말라는 등의 지시사항들이 소초에 속속 하달되었기 때문이다. 7월로 접어들면서 작업의 양도 늘었고 강도도 세졌다.
나는 오피 투입할 때부터 지금까지 소초 상황실에서 상황병으로 근무를 서 왔는데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그것은 대대장이나 연대장 그리고 사단장이나 군단장 같은 높으신 별들의 불시(不時) 방문이 은근히 스트레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장마철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름이 되면서 나는 소초장에게 초소 근무를 자청하고 나섰다. 초소 근무에 몸은 더 힘들겠지만 마음만큼은 여유를 누리고 싶었던 것이다. 작업하라고 하면 작업하고, 근무 나가라고 하면 근무 나가서 시간을 죽이고 돌아오면 그만이었다. 소초장은 의외로 간단하게 내 청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 동안의 상황실 근무를 접고 초소 근무에 투입되었다. 밤을 지새우며 경계를 서다가 동이 트면 내무실로 돌아와서 아침부터 점심 무렵까지 취침을 하는 생활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밤이었다. 오랫동안 내리지 않던 빗줄기가 자정 무렵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근무 투입할 때 상황병이 판초우의(판초牛衣, 원래 중남미 원주민들의 민속의상이었던 판초가 스페인 통치자들의 북상과 함께 지금 미국의 서부로 전해졌고 2차대전 당시 군에서 판초형 우의를 사용하면서 판초(Poncho-폰초)는 중남미 민속의상을 가리키고, 동시에 그러한 모양으로 생긴 비옷을 나타내는 말)를 챙겨서 나가라고 일러준 덕분에 간만에 퍼붓는 빗줄기는 피할 수 있었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근래에 입지 않았던 판초우의까지 껴입었더니 평소에도 무겁게 느껴지던 소총 실탄과 수류탄, 군장(軍裝)의 무게가 오늘은 갑절이나 더 무겁게 짓눌렀다. 자연스레 몸놀림이 둔해지고 뒤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비가 와서 그런지 을씨년스럽고 음산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어느 부대건 경계초소와 관련된 괴담(怪談)이나 귀신 이야기 한 두 가지는 돌기 마련이었다. 우리처럼 최전방에 있는 부대에서는 북측 인민군이 밤에 몰래 내려와서 아군의 목을 베어갔다는 둥, 부슬부슬 가랑비만 오면 목 없는 귀신들이 초소 근무자들보다 먼저 와서 초소에 진을 치고 경계를 서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이겠지, 하고 못들은 척하고 애써 잊어버리려고 해도 사람의 마음이란 참 요상한 데가 있었다. 특히 오늘밤처럼 비라도 내리면 초소에 들어설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먼저 초소 안을 한 번 힐끗 들여다보는 거였다. 혹시라도 목 없는 병사가 남의 초소에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윽고 시간은 자정을 넘어 대기초소(待機哨所, 주야간 근무자들이 잠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초소)에서 50분 정도 휴식을 취한 후에 다음 초소로 이동을 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리기라도 했는지 한 번 퍼붓기 시작한 빗줄기는 그칠 줄 모르고 줄기차게 퍼부어 댔다. 초소와 초소 사이가 그리 멀지 않은데도 오늘따라 유별나게 멀었다. 그래도 신참 때는 하늘같은 고참의 뒤를 아무 생각 없이 쭐레쭐레 잘 따라만 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고참이 되고 보니 아무리 쫄따구가 충직한 개처럼 내 뒤에 잘 붙어 있어도 한 번 무섬증이 드니까 내색도 못하고 은근히 속으로 떨어야하는 입장이 되었다. 게다가 빗줄기에 젖은 실탄과 군장의 무게가 보통이 아니었다. 가파른 계단을 속보로 오르내리다보니 숨은 턱밑까지 차올랐고, 들려오는 것은 헉헉대며 내쉬는 가뿐 숨소리뿐이었다. 오늘 따라 방탄모(防彈冒)에 툭툭 부딪히면서 내는 빗방울 소리는 심장의 박동만큼이나 귓가에 가깝게 들려왔다. 숨소리와 빗방울소리를 장단 삼아 다음 진돗개 초소 가까이에 거의 다 왔을 무렵이었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까마귀!”
힘차면서 묵직하게 저음(低音)으로 깔리는 암구어 소리였다. 나는 순간 그 자리에 서서
“고등어!”
하고 답어를 했다.
“누구냐!”
“밀어내기 근무자.”
내 정체를 밝히고 나서 가까이 가보니 수하(誰何)를 한 근무자는 초소 밖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박 이병이었다.
“충성.”
박 이병은 내게 나지막이 인사를 건넨 후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안에 있는 초소장은 누구냐.”
“천경호 상병입니다.”“그래? 수고 해.”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초소 문을 천천히 열었다. 초소 안에서는 천 상병이 전방을 주시한 채 허수아비처럼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다행히 목은 붙어 있었다. 하지만 빗줄기가 연신 방탄모를 두들겨대는 소리 외에는 초소 주변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천 상병 얼른 나와, 밀어내기 해야지.”
“……”
“천 상병! 뭐하고 있어. 다음 초소로 가.”
“……”
두 번이나 밀어내기를 하라고 해도 초소 안의 천 상병은 꿈쩍도 안 했다. 전방만 주시하고 있었다.
“천경호! 뭐해 임마. 얼른 나오라니까!”
“……”
“천경호!”“……”
“야 임마! 뭐 해. 빨리 안 나오고!”
“……”
불러도 대꾸하지 않는 천 상병 때문에 짜증이 나려는 순간이었다. 난데없이 눈앞에 머리통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상황 판단을 하기도 전에
“따악!”
하고 방탄모에 가해지는 둔탁한 충격음이 고막을 먹먹하게 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가늘고 단단한 쇠 지시봉(指示棒)으로 방탄모를 가격한 것은 다름 아닌 대대장이었다.
“이런 시건방진 놈을 보았나! 너 이 새끼, 너 누구야? 아니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이 다 있어.”
“충성! 병장 김종범. 근무 중 이상 무!”
“뭐? 근무 중 이상 없다고? 지금 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나 지껄이는 소리야!”
“……”
“너 이 새끼! 너는 상관에 대한 기본 예의도 몰라?"
이번엔 지시봉이 오른쪽 가슴을 푸욱 화살촉처럼 후비고 들어왔다. 쇠막대기가 살을 파고드는 엄청난 고통과 함께 나는 뒤로 움찔 한 걸음 물러났다.
“대대장님! 저는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단지 천 상병에게 밀어내기 하라고 했을 뿐입니다.”
“이 새끼가 지금 나를 가지고 놀라고 그러네? 이 자식아, 내가 천 상병하고 이야기하는 게 안 보이나? 일개 사병 따위가 감히 대대장님의 대화를 훼방해? 그런 버르장머리는 어디서 배워먹었나? 니가 그러고도 군인이야?”
“정말 몰랐습니다. 대대장님이 천 상병과 대화를 하고 계신 것을 못 봤습니다!”
“니가 장님이야? 그러면 어떻게 여기까지 기어왔어!”
“밖에서 봤을 때 분명히 천 상병만 보였고, 빗소리 때문에 이야기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대대장님.”
“이놈 새끼가 입은 살아가지고 슬그머니 빠져나가려고 하네? 이젠 거짓말까지 해? 이봐 천 상병! 소초 상황실로 연결해서 소초장 바꿔!”
“예, 알겠습니다.”
사태가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더욱 꼬여가는 형국이었다. 막무가내 밀어붙이는 호통장의 위세 앞에서 더 이상의 해명은 무의미했다. 인터폰을 통해 소초 상황실에서 상황병의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흘러나왔다. 이어서 잠시 후에 잠에서 막 깬 듯한 소초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 소위! 너 내일 아침까지 김종범 병장의 신상보고서를 대대 상황실에 제출해라. 도대체 어떤 놈인지 내가 납득이 가게 보고해라! 뭐 이런 개 같은 자식이 있어!”
인터폰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지시하던 호통장이 초소 밖을 나갔다. 그리고 다음 초소로 발길을 돌리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힐끗 노려보았다.
“김종범이…… 기다리고 있거라! 너의 그 못된 버르장머리를 내가 곧 고쳐 주마!”
라고 으름장을 놓고 가는 눈빛이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이상 두려울 건 없었다. 얼마 전에 내무실에서 개구리처럼 뻗어나간 소초장의 몸뚱이가 뇌리를 스쳤지만 그야말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니겠는가. 아침을 먹기도 전에 대대 상황실에 불려가든지, 아니면 접때처럼 친절하게 호통장이 내무실까지 왕림해 주시든지, 어차피 둘 중의 하나였다.
‘6주 동안의 신병교육을 마치고 자대에 막 들어왔을 때 중대에서는 어깨에 노란 견장(肩章)을 달아 주었다. 입대 후 100일이 안 되었으니 아직은 삐악삐악 대는 햇병아리라는 표지였다. 그래도 하루가 열흘처럼 느껴지던 신참 생활의 100일이 되던 날, 드디어 노란 견장을 떼고 3박 4일짜리 백일 휴가를 다녀왔다. 그리고 지금 초록 견장을 차는 분대장이 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신참 때 보았던 고참들의 초록 견장은 그 어떤 장군들의 금빛 은빛 훈장보다도 위대하고 절실하게 각인되었다. 초록 견장을 차는 날이 기필코 오리라!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오늘까지 오지 않았던가.’
호통장과의 대면을 앞두고 두려움보다는 이런저런 별의별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잠시 후에 벌어질 상황을 여러 가지로 그려보자니 착잡하기만 했다. 호통장이 나타난 것은 아침을 먹은 소초원들이 침상에 정렬해 앉아 침묵 속에 대기한 지 20여 분이 지나서였다. 다행한 것은 나 혼자 대대장실에 불려가 호통장을 독대(獨對)해야 하는 사면초가(四面楚歌)는 피했다는 사실이다. 호통장이 직접 내무실에 온 이상 함께 있어만 줘도 힘이 되는 소초장과 소초원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전체 차렷. 충성!”
내무실 가운데 선 소초장이 호통장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하지만 호통자의 오른손은 눈높이까지 올라가지 않고 겨우 가슴까지만 올라갔다 얼른 내려와 버렸다.
“……”
“○○소초, 교육 준비 끝!”
“조 소위는 옆에 서 있고, 김종범이 침상 앞으로 나와.”
“병장 김종범!”
나는 반사적으로 앞으로 튕겨나가듯 일어나 내무실 한 가운데 섰다.
“서지 말고 그냥 침상에 앉아!”
선 상태로 대면을 할 줄 알았는데 앉으라고 하니 의아하면서도 덜컥 겁이 났다. 서서 당하는 것보다 앉아서 대책 없이 당하는 게 더 강도가 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상 맨 앞쪽에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앉았다. 그리고 호통장을 바라보았다.
“다들 지난 밤에 초소에서 일어난 김종범 병장의 불미스럽고도 무례한 행동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부대에서, 그것도 적들과 코앞에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취한 그런 파렴치한 행동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이적행위다!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실로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예상했던 대로 호통장은 장광설(長廣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간밤에 일어난 일을 용납될 수 없는 이적행위(利敵行爲)라고 규정하고 시작된 호통장의 호통은 소초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기에 충분했다.
“봄에 이곳에 투입한 날부터 대대장은 예의 주시하며 너희들을 지켜보았다. 경계근무에 임하는 너희들을 지켜보면서 내 속에서 끊임없이 회의(懷疑)가 일어났다. 과연 너희들이 대한민국 최전방을 경계하는 군인이 맞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나는 정말 의도하고 그랬다고는 지금도 믿고 싶지 않지만 수하(誰何)를 빌미로 대대장을 사살을 시도한 공 상병의 하극상을 그냥 눈감고 넘어간 것이 화근(禍根)이 되지 않았나 오늘에야 판단했다.”
순간 맞은 편 침상에 앉아 있던 공 상병의 얼굴이 상기되면서 위로 향하고 있던 시선은 아래로 맥없이 쳐졌다. 호통의 대상이 내가 아니라 애매하게 공 상병으로 바뀌는 듯한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평상심을 잃지 않으려고 시선을 유지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이번 일은 용납할 수 없다! 그것도 내무실에서 최고 선임병이라고 하는 김종범 병장이 내게 취했던 무례한 행동은 군인이기에 앞서 김종범의 인간성 자체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김종범 병장! 초등학교 때부터 예절교육을 많이 받았을 텐데, 어른에 대한 예의가 그 수준 밖에 안 되나?”
‘군인이기에 앞서 인간성 자체를 의심한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속으로 중얼거리던 나는 가만히 침묵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때다 싶어,
“대대장님! 인간성 자체를 의심하게까지 대대장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린 저의 무례함을 인정합니다. 대대장님이 어떤 처분을 내리시더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대대장님께 개인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평소에 저희들을 감시와 통제만 하시지 말고, 아버지처럼 때론 큰형님처럼, 자상하고 듬직한 대대장님이 되어 주십시오. 맨날 호통만 치지 마시고 가끔씩 저희와 다정한 대화를 통한 소통을 해주실 것을 건의합니다. 저희가 요구하는 그것뿐입니다!”
“소통? 내가 너희와 언제 소통하지 않았나? 평소 내무실이나 초소에서 너희들과 나눈 이야기는 소통이 아니고 뭔가?"
"지금까지 대대장님이 해오신 것들은 엄밀하게 말하면 소통이 아니라 호통이었습니다. 저희들을 주눅 들게 하고 힘을 빼놓고 급기야 대대장님을 불신하고 증오하게 하는 호통은 저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김종범! 지금 너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냐! 이 새끼가 터진 입이라고 다 같은 입인 줄 아나? 말을 섞어주니까 이젠 못하는 말이 없어!”
“……”
“조 소위! 전체 완전군장으로 10시까지 대대 연병장에 집합!”
“……”
소초장은 즉답이 없었으나 재차 다짐받으려는 호통장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우리는 7월 초의 뙤약볕 아래서 야간근무 전까지 대대 연병장을 완전군장(完全軍裝)으로 돌아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날 점심 경,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의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전갈이 소초에 전해졌고, 부대원 전체가 전시준비태세에 돌입했다. 그러자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호통장의 호통도 하늘을 찌를 듯이 커졌고 횟수 또한 늘었다. 일주일 분량의 전투식량과 탄박스를 지고 초소에 투입되어 거기서 먹고 자고 하기를 5일째 되던 날 아침이었다. 지난 번 수하 사건이 일어났던 독수리초소에서 공호철 상병이 소총으로 자신의 턱을 쏴 자살을 해버렸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공 상병은 결국 호통장이 죽인 거야. 그렇지 않아도 가뭄에다 폭염, 전시준비태세로 다들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잖아. 그런데도 호통장은 쉴 새 없이 쏘다니면서 호통을 쳐대고 윽박질렀으니…… 이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야 타살!”
“그놈의 호통소리가 어찌나 귓구멍을 날카롭게 쪼아대는지, 나도 가끔은 확! 총구멍을 물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니까. 죽은 놈만 서럽지. 쯧쯧.”
병사들은 오 상병과 박 상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먼 데 하늘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런 생각을 자신들도 한 번은 해봤다는 동의의 표시였다.
병사들과의 소통을 끝까지 거부한 호통장의 고집과 독선은 결국 공 상병의 자살에까지 치닫게 했다. 하지만 상급부대에서는 호통장에게 어떤 책임도 묻지 않은 채 흐지부지 넘어가버렸다. 병사들은 억울하고 답답했지만 부대가 또 소란스러워지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인지 다들 침묵으로 일관했다. 지난 번 내무실에서 호통장과의 대면(對面) 이후 나는 제대할 때까지 포상휴가 한 번 없이 씁쓸했던 군생활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통상적으로 실시되던 호통장과의 마지막 제대 면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대하던 날, 개와 고양이가 한바탕 싸우는 소리처럼 겨울비가 임진각 자유의 다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첫댓글 지금 바빠유..POSS 나중에 차분히 감상할께요..정성이 대단하십니다. 건강하세요
오메 관용어구 나와서 호기심에 읽다보니 기요잉 공호철이 까지 봤응께 낼 또 반 볼라요^^
ㅋㅋ 해남에서 발간되는 [땅끝문학6호]에 실을 단편소설이라 좀 깁니다. 호흡을 길고 깊게 하시고...강진님들! 차분한 성탄과 연말 연시 맞으시길...
전 개와 고양이가 국어책에 보면 구슬을 찾아온 그것때문에 사이가 나빠진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였군요 다음 내용은 다음에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