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공부할 때 "원년"이란 말을 종종 만난다. 실제 예를 들어보자. <삼국사기>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30대 문무왕 원년 8월 8일에 김흠돌, 흥원, 진공 등이 반란을 도모하다 발각되어 처형 당하였다."
원년의 뜻
역사서에는 이렇게 원년이란 말을 많이 쓴다. 무슨 뜻일까?
○ 元(원) : 으뜸의, 첫째의
○ 年(년) : 해
한자를 풀이하면 이렇게 쉽다. 원년은 첫해(1년)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게 왜 중요한 문제가 될까? 왕의 임기 첫해를 언제로 볼 것인가의 기준이 역사서마다, 시대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우리 나이를 생각하면 간단히 이해된다. 2025년 11월 11일 아기가 태어났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올해를 1세로 할 것인가, 아니면 1년을 무사히 잘 살아낸 후인 2026년 11월 12일을 1세로 할 것인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만 나이로 할 것인가, 서양식 나이로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조선 9대 성종은 1469년에 왕이 되었다. 그렇다면 1469년을 1년(원년)으로 할 것인가, 1470년을 1년으로 할 것인가?
이렇게 원년(1년)을 정하는 법을 칭원법이라고도 하는데, 역사서마다 그 방식이 다르다.
즉위년 칭원법과 유년 칭원법
○ 稱(칭) : 정하는, 계산하는
○ 元(원) : 첫해를
○ 法(법) : 방법
그러니까 칭원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즉위 당해 연도를 원년으로 할 수도 있고, 즉위 1년 후를 원년으로 할 수도 있다.
전자를 즉위년 칭원법, 후자를 유년 칭원법이라 한다.
○ 즉위년 칭원법 : 즉위한 해를 그 왕 재위 1년으로 칭하는 방법
○ 유년 칭원법 : 즉위 1년 후를 그 왕 재위 1년으로 칭하는 법(우리 만 나이 방식)
여기서 踰年(유년)이란 다음 해를 말한다. 踰는 뛰어넘을 유 자. 말이 복잡하므로 예를 들어가며 찬찬히 들여다보자.
즉위년 칭원법
413년 10월, 고구려의 최고 명군 광개토왕이 사망했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장남이 20대 장수왕으로 즉위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장수왕은 413년에 즉위한 것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이렇게 칭원한다.
413년 = 장수왕 원년(1년)
414년 = 장수왕 2년
415년 = 장수왕 3년
앞서 원년은 1년과 같은 말이라 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는 장수왕이 즉위한 바로 그 해를 원년(1년)으로 칭한 것이 된다. 따라서 <삼국사기>는 즉위년 칭원법을 기준으로 했구나. 알 수 있다.
<삼국사기>와 같이, 이보다 조금 훗날 편찬된 <삼국유사>역시 즉위년 칭원법을 따르고 있다.
유년 칭원법
1. 고려사
4대 광종은 949년에 즉위했다. 그런데 <고려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949년 = 광종 즉위년
950년 = 광종 1년
951년 = 광종 2년
광종 즉위 1년 후를 원년이라 한 <고려사> 기록
즉위는 949년에 했는데, 그 이듬해인 950년을 광종 1년 즉, 광종 원년으로 잡고 있다. 그래서 아... <고려사>는 유년 칭원법을 따르고 있구나... 라고 판단할 수 있다.
2. 조선왕조실록
1468년 9월, 조선 7대 세조가 사망했다. 그러자 그의 아들이 곧바로 왕위에 올라 8대 예종이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다음과 같이 칭원하고 있다.
1468년 = 예종 즉위년
1469년 = 예종 1년
조선왕조실록도 <고려사>와 마찬가지로 즉위 1년 후를 예종 1년, 즉 원년으로 칭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유년 칭원법을 따른 것이다. 이것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
우리 역사서의 칭원법
○ 즉위년 칭원법 : <삼국사기> <삼국유사>
○ 유년 칭원법 :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그런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고려 중기 이후에 차례로 편찬되었다. 반면,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시대에 쓰인 책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역사서들은 전통적으로 즉위년 칭원법을 따르다가, 고려 중기 이후부터 유년 칭원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이런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고려 후기 원간 섭 기를 거치면서 이때 중국의 영향을 받아, 유년 칭원법을 널리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유년 칭원법을 많이 사용해 왔다.
훙년 칭원법(薨年 稱元法)
끝으로 한 가지 참고할 것은, 즉위년 칭원법은 "훙년 칭원법"이라 하기도 한다. 훙(薨)은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사서를 보면 "언제 언제 왕이 훙(薨)했다."는 식으로 많이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 왕들은 전임 왕이 훙(사망)한 바로 그 해 왕위에 오른다. 즉위년 칭원법은, 전왕이 사망한 해를 새 왕의 원년으로 칭하므로 훙년 칭원법이라 하는 것. 많이 쓰이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경주 첨성대 ⓒ 옥당 서원
100년에 즉위하여 110년에 사망한 왕이 있다면, 즉위년 칭원법에 따르면 11년을 재위한 것이 된다. 그러나 유년 칭원법을 따르면 10년 재위로 기록된다.
이처럼 그 사서가 어떤 칭원법을 따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시차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견훤 등 후삼국 시대 인물들은 <삼국사기>에도 나오고 <고려사>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두 사서가 칭원법을 달리하므로 기년에 차이가 나기도 한다.
칭원법이란 개념의 실익은, 이런 혼란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상으로 즉위년 칭원법과 유년 칭원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일반인들에겐 크게 필요치 않는 개념이지만, 필요하신 분도 있을 것 같아 간단히 설명을 남긴다.
<글 ⓒ 옥당 서원> 블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