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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1월28일 수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수도회] 절망은 없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프란치스코회 신부 -
† 제1독서 히브 10,11-18
† 복음 마르 4,1-20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1225년 무렵 이탈리아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몬테카시노 수도원과 나폴리 대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여 대 알베르토
성인의 제자가 되었다. 1245년부터 파리에서 공부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3년 뒤 독일 쾰른에서 사제품을 받고 그곳 신학교의 교수로 활동하였다.
그는 철학과 신학에 관한 훌륭한 저서를 많이 남겼는데, 특히
『신학 대전』은 그의 기념비적인 저술로 꼽힌다. 1274년에
선종하였으며, 1323년에 시성되었다.
★ 히브리서는, 유다교 사제는 날마다 같은 제물을 바치지만 대사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상의 단 한 번의 제사로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고
완성시키셨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죄에서 완전하게 해방되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제1독서).
★ 죄가 사해졌다면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내게 될 것이다. 내 안에 떨어진
자비의 씨앗이 무성하게 열매 맺으려면 밭을 가꾸고 돌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세상사에 몸과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복음).
◈ 오늘의 묵상
부부, 자녀,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소공동체 모임이나 직장 등 생활을 함께
나누는 이들에게는 대화의 기술이 참 중요하다. ‘대화란 게 뭐 따로 있나?’
숨 쉬는 것만큼 쉽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돌아보면,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20년 동안 대화법에 대해서 단 한 과목도 배워 본
적이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국민 교육이다. 유교적 윤리의 집성촌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나는 특별히 윗사람과의 대화를 어려워한다. 지금의
공동체 마을에 살면서부터 대화와 소통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
늦었지만 다행이기도 하다. 서로 생각을 내놓고 이해하며 좋은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진정한 대화일 것이다.
대화에 대해 깨친 것이 하나 있는데, 소통에는 사실 대화 이전의 환경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대화하는 이와 어떤 관계였는지가 대화의 좋은 기능도
되고 걸림돌도 된다는 말이다. 공자는 소통의 중요한 것 세 가지를
‘믿음과 예의와 존중’이라 했다. “군자는 믿음을 얻은 뒤에 간(諫)해야 한다.
믿음 없이 충고하면 비방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은 솔직하고 분명하게 말했다고 해도 듣는 귀가 막혀 있다면 소용이
없다. 속으로 ‘너나 잘해!’ 하면 그만 아니던가? 공자의 말에 더 귀 기울여
보자. “군자는 용감하기만 하고 예를 갖추지 못한 자를 신뢰하지 않는다.”
“사람의 안색을 살피지 않고 말하는 자는 장님이다.” 솔직함만 있고
존중함이 없이는 소통이 불가능하다. 듣는 이의 표정도 살피면서 말하는
것과 물러설 것을 아는 것도 존중이고 대화의 지혜다.
씨를 뿌렸는데 결과를 얻지 못하면 땅의 책임만이 아니라 농부의 책임도
크다. 땅을 보지 않고 씨만 뿌렸기 때문이다.
- 매일 미사 -
◈ [수도회]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1월28일 수요일(뉴튼수도원 79일째),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1225-1274) 기념일
히브10,11-18 마르4,1-20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1-18
복음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20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내 한평생을 예수님 안에, 내 온전하게 그 말씀 안에
내 결코 뒤를 바라 봄 없이, 그분만을 따릅니다.-
오늘 아침미사시 입당성가 445장이 새삼 감회에 젖게 합니다.
1989.7.11일 성 베네딕도 대축일, 왜관수도원에서 제 사제서품식 미사 때
입당성가입니다.
당시 입당성가에 주르르 흘렀던 눈물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온전한 사랑, 온전한 믿음으로 그분만을 따를 때, 길바닥이든 돌밭이든
가시덤불이든 좋은 땅이든 환경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은 성 토마스 사제 학자 기념일입니다. 성인들의 기념일을 맞이할 때
마다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감동하며 위로와 힘을 받습니다.
신선한 자극에 내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는 생생한 증거인 성인들은 말그대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성인들의 축일을 지낼 때 마다 확인하는 것이 생몰연대입니다.
예외 없이 죽지 않은 성인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 또한 위로입니다.
가장 확실한 죽음인데 살다보면 까맣게 잊고 지냅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1225년에 태어나 1274년에 돌아가심으로 49세까지 사셨으니,
현재의 저는 성인보다 무려 17년을 더 살고 있는 셈입니다.
성인은 49세까지 인생 숙제를 마쳤으나,
저는 아직 마치지 못해 17년 이상 계속 연장되는 나날 같습니다.
이런 묵상이 더욱 자신을 분발, 겸손하게 만듭니다. 성인의 말년에 대한
삶의 묘사가 독특하고 아름다워 많은 부분을 인용하여 나눕니다.
-아퀴나스는 매일 가르쳤고, 글을 썼고, 토론을 했으며, 강의를 했다.
참으로 그는 부지런했으며 위대한 작품인 신학대전을 작업했다.
그는 대주교로 또 아빠스로 초대되었을 때도 모두 거절했다. 그는
당대인들에게 사고의 깊이는 물론 '순수한 사람, 소박하고 단순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관상가, 온건한 사람, 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정 받았다. 그는 한 때 어눌하여 '벙어리 황소(The Dumb Ox)라는
별명도 지녔다.-
얼마나 매력적인 인품에 대가(大家)의 풍모인지요.
얼마전 현대의 영성가라 일컬어지는 안셀름 그륀 신부에 대한
인터뷰 때의 묘사(분도계간지 2014. 겨울호 8쪽)와도 흡사합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예상만큼 입담이 좋거나 말주변이 좋지 않았다.
말보다는 글이, 글보다는 삶이 돋보이는 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대로 토마스 아퀴나스에 적용되는 묘사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스승 성 알벨토는 이를 강력히 반박합니다.
-"너희들은 그를 '벙어리 황소'라 부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 앞에서
선언하마. 그는 머지않아 교의로 크게 명성을 떨칠 것이고, 그의 소리는
온 세상에 울려 퍼질 것이다."-
그 스승에 그 제자입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천재성을 알아본 성 대
알벨토의 혜안(慧眼)이 놀랍습니다.
이어 계속되는 성인에 대한 묘사입니다.
-아퀴나스의 외관을 보면 어둔 안색, 큰 머리에 약간 대머리였고 몸은
몹시 비만했다. 그는 품위있고 온화하고 사랑스러웠으며 식성 또한
단순했다. 생애 말년 그는 자신의 작품에 깊이 불만을 지녔다.
1273.12.6.일 그의 마지막 말이 전해진다.
"이런 비밀이 나에게 계시되었다.
내가 썼던 모든 것이 지금 보니 많은 지푸라기들(much straw)에 불과했다.“-
하여 1323.7.18.일 교황 요한 22세는 그를 성인으로 선포했고, 이어
1567년 교황 비오 5세는 그를 위대한 4대 라틴교부들(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노, 예로니모, 그레고리오)의 반열에 올려 놓았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물론 모든 성인들의 특징은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라는 명언 그대로의 삶을 사셨던 성인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 중 '씨뿌리는 사람'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대로 예수님의 낙관적 면모를 반영합니다.
어떤 것은 길에, 어떤 것은 돌밭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풍부한 열매들의 수확입니다.
추호도 밭을, 환경을 탓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무엇을 요구하거나 피하지도 않습니다.
결과는 하느님께 맡기고 묵묵히 최선을 다해 이밭 저밭 가리지 않고 다만
씨를 뿌릴 뿐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측량할 수 없는 믿음과 희망, 사랑의 깊이를 감지합니다.
완벽한 삶은 없습니다. 언제나 화창한 날씨만도 아닙니다.
위의 다양한 밭들이 상징하는바
우리의 삶일 수도, 우리의 내면일 수도, 공동체의 현실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공동체를, 나라를 보면 절망할 때도 많지만 하느님을 보면 희망이,
사랑이, 믿음이 샘솟습니다. 어제의 깨달음도 새롭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 안식년 중에 썼던 매일강론을 점검해 봤습니다.
2014.3.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에 요셉수도원을 떠난 후
2015.1.27일 까지 안식년의 여정이 참 파란만장(?)했습니다. 20일 동안의
단식피정, 수녀원 피정지도, 국내 성지순례, 산티야고 순례에 이은
뉴튼수도원에서의 내적순례 등 오늘 복음의 씨뿌리는 비유에 나오는
밭들처럼 참 다양한 환경의 밭들이었습니다.
길바닥 같은 때도 있었고, 돌밭 같은 때도 있었고,
가시덤불 같은 때도 있었고, 좋은 땅의 때도 있었지만,
저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환경에 개의치 않고 매일 새벽 마다 그날의 강론을 쓰며,
말 그대로 '하루하루' 힘껏 살았기 때문입니다.
지나고 보니 모두가 좋은 땅의 나날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은 우리 모두의 깨달음을 촉구하십니다.
이어지는 비유해설 역시 풍부한 묵상감입니다. 초대교회 깊은 영성가들이
예수님의 비유를 렉시오디비나 한 결과임이 분명합니다. 결국 비유를
결론하면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절망은 없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대로 예수님 삶의 요약이요,
이런 예수님의 삶을 고스란히 인정하신 하느님은 그를 부활시키시어
당신의 오른쪽에 앉히셨고 우리의 영원한 대사제로 삼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의 은총이,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마음 밭을 옥토로
변화시켜 주시며, '씨뿌리는 삶'의 평범한 일상에 항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 씨뿌리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을 찾는 사람은 모두 영원히 살리라."(오늘 복음 환호송).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요셉 수도원 신부 -
◈ [수도회]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절망은 없다.
2015년 나해 1월28일 수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기념
마르 4,1-20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다.”(마르 4,8)
절망은 없다.
우리는 누구 할 것 없이 모두가 행복을 원하지만 인생살이가 쉬운 게 없고
고통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우환이
끊이질 않고 실패를 거듭할 때, 아무리 몸부림쳐 보아도 길이 없어 보이는
순간 좌절하곤 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하여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희망이 있음을 가르치신다.
오늘 복음에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이어 그에 대한 풀이가
이어진다(4,13-20). 그러나 이 해설은 마르코 복음사가와 초대교회의
우의적 해설이지 예수님 자신의 해설은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뜻으로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까? 예수님께서는 27년경부터
활약하셨는데 초기에는 대단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어디를 가나 군중이
몰려들어 심지어는 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인기는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해서 헤로데와 유다인 지도자들로의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30년경 말기로 접어들면서부터 적대자들의 방해와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점차 인기를 잃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는 겨우 열두 제자와 몇몇 여인들만이 그분을
따라갔다. 이런 상황은 겉으로는 명백히 실패한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제자들마저도 이런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이제 모든 것을 다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시라고 했을 것이다. 이때 그분은 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어 당신의 뜻을 단호히 밝히신 것이리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사람들이 가로질러 다니는 지름길이나 흙이 깊지
않고 가시덤불로 덮인 밭에 씨를 뿌려봐야 결실이 없을 수 있겠지만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내는 씨도 있으므로 씨 뿌리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농부에 비유하신다. 사람들의 눈에 예수님께서는 인기를
잃고 신성모독죄를 범하였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박해를 받는 처지에
몰려 실패한 자로 비쳤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절대적 희망과 기대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신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함에 있어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 안에도 희망의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굳게 믿도록 하자.
인생의 한 순간 순간이 쓸모없지 않으며, 실패 자체도 백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씨앗이지 않은가! 삶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늘 성공만을 바랄 수
있을까? 실패 안에도 고통 안에도 생명과 희망이신 하느님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보는 영의 눈을 청해보자. 우리 인생도 신앙여정도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 십자가와 부활의 연속이다. 모두가 이 길을 걷지만 왜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할까? 그 열쇠는 내 마음에 희망이신 하느님을
모시고 그분의 눈으로 실패나 고통을 바라보는 데 있으리라! 오늘도 비록
쓸모없어 보이고 절망스러운 순간들을 맞는다 해도, 길가든 돌밭이든
가시덤불이든 좋은 땅이든 풍성한 열매를 맺어주시는 희망의 하느님께
나의 삶을 내맡기도록 하자!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인천] 주님의 기쁜 소식이 너무나 귀한 씨라는 것
2015년 나해 1월 28일 수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1-18
복음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20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의 강병화 교수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지요. 산삼도 원래는 잡초였을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들풀이나 유용한 작물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잡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문득 예전에 갑곶성지에 있을 때가
생각나더군요. 당시에 저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이 바깥일을 혼자
도맡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삽질도 제대로 못하는 제가
바깥일을 해야 하니 얼마나 실수가 많았겠습니까? 그 중 하나가 잡초
사건입니다.
어느 날 성지의 화단을 보니 너무나 지저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지 미사
후에 쪼그려 앉아서 화단에 자라고 있는 잡초들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뽑고 있는데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세요.
“신부님, 지금 뽑으시는 것 잡초가 아니라 야생화에요. 아이고, 이 귀한
할미꽃도 그냥 뽑아버리셨네.”
아무것도 모르니 예쁘고 귀한 야생화도 과감하게 뽑아 버린 것이었지요.
뿌리를 잘못 내려서 뽑아 버려야 할 잡초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어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기도 또 산삼도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큰 공감이 갑니다. 필요 없는 잡초가 아닌 귀한 꽃이 되기
위해서는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오늘 복음말씀이 특히 마음에 와 닿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이지요. 이 씨가 길에, 돌밭에,
가시덤불 속에,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떨어집니다. 어떤 것만 열매를
맺습니까? 당연히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이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제자리를 찾은 씨만이 좋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늘나라의 기쁜 말씀이 어떤 사람에게 들어가야 좋고
많은 열매를 맺는가를 말씀하시지요.
좋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제자리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과연 나의 마음은 그런 상황을
만들고 있을까요? 더군다나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무식하고 과감하게
그냥 확 뽑아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의 기쁜 소식이 너무나 귀한 씨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귀한 씨가 좋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제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기도, 봉사, 희생 등을 통해서 비옥한 옥토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주님 말씀이 내 마음에서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나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막스 뮐러).
라디오 스튜디오 안입니다. 어제 평화방송 녹음하고 왔거든요. 별 것 없죠?
서품 16주년을 맞이하며....
오늘은 저한테 무척이나 의미 있는 날입니다. 16년 전 오늘, 사제로 새롭게
태어난 날이거든요. 물론 다른 평범한 날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제까지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면서 더욱 더 열심히 살아야
함을 깨닫는 오늘이 됩니다.
며칠 전에 한 권으로 제본한 2014년 새벽을 열며 묵상 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책꽂이에 꽂으면서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참 오랫동안 글을
썼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처음에 이 묵상 글을 시작할 때, 주변에서 얼마나
오래 갈까 싶었을 것입니다. 제가 의지가 깊은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글재주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늦게까지 술자리를
이어지는 모임에서 사람들은 제게 “하루쯤 새벽을 안 열면 어때?”라는
말을 하신 분들도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느 정도 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새벽을 열기 위해서 일찍 들어가야지.”
오랫동안 변함없이 새벽을 열었다는 사실에 이제는 저를 인정해주시고
또 도움도 주시는 것입니다.
변함없는 모습이 사제 생활에서 제일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사제서품을
받으면서 가졌던 다짐들, 그 다짐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그리고 주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도 새벽을 열며 저를
되돌아봅니다.
14권의 새벽묵상글. 그리고 서품기념일을 맞이해서 지인이 제 서품성구를
직접 써주셨습니다.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서울]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2015년 나해 1월28일 수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1-18
복음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20
이번 엠이 주말 봉사를 하면서 많은 부부들을 보았습니다. 어떤 형제님은
20분 동안 쉬지도 않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무엇이 틀린 것인지, 무엇이
맞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아내에 대해서도 아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화려한 언변에도 마음을 열지 못하였습니다. 남편의
논리와 언변은 아내의 마음에 수도 없이 떨어졌지만 싹이 트기는커녕 곧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마치 지동설을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프로그램을
마치는 날이었습니다. 남편은 짤막하게 아무조건 없이 ‘미안해’라고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이 한마디의 말이 얼음처럼 차가웠던 아내의 마음을 열었고
그 마음에는 용서와 사랑이 꽃을 피웠습니다. 부부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오랜 숙제가 해결된 것처럼 시원했습니다.
늘 무심결에 입는 옷들이 있습니다. 옷장에는 양발, 속옷, 손수건이
가지런히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옷걸이에는 바지와 겉옷들이 걸려
있습니다. 옷들은 제가 선택하지 않으면 언제나 어두운 옷장에 있어야
합니다. 늘 말없이 저를 기다려 주는 옷들입니다. 한 번도 그 옷들에 대해서
고맙다거나,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당연히 저는 옷을
입는 것이고, 옷들은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니 옷들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내가 다른 것들을
선택해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옷은 1년이 되어도 바깥
구경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만일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참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다른 것들과 비교 당해야 하고, 오랜 시간 혼자만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방안을 둘러보면 고마운 것들이 참 많습니다. 지친 몸을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침대, 매일 세상과 소통하게 해 주는 컴퓨터,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프린터, 이른 아침 정신을 맑게 해 주는 차, 갈증을
풀어주는 물이 있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둘러보니 세상은 온통 감사하고,
고마운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다만 내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생각해서
그 소중함과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을 뿐입니다.
스티븐 코비는 ‘인생을 효과적으로 사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라고 말을 했습니다. 2015년도에 나에게
가장 소중한 일들은 무엇인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과의 대화,
기도, 나눔, 독서, 여행’과 같은 것들은 소중한 것들입니다. 작년 1년을
돌아보면서 나는 과연 소중한 것들을 먼저 했는지, 아니면 급하고 중요한
일들을 먼저 했는지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24시간은
똑같습니다. 모든 사람은 24시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24시간을 쓰레기와 같은 것들로 채우곤 합니다. ‘남을 속이는 일, 건강을
해치는 일, 누군가를 미워하고 질투하는 일’들로 채운다면 24시간은 참으로
허망하게 지나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24시간을 소중한 것들로 채우곤
합니다. ‘남을 돕는 일, 가족들과 함께 하는 일, 기도하고 사랑하는 일,
웃으면 남을 칭찬하는 일’들로 채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24시간은 풍성한
결실을 맺으면서 지나 갈 것입니다. 우리는 소중하고, 중요한 일들로
하루를 채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루를 소중하고 알차게 보낼 수는
있습니다. 이렇게 알찬 하루들이 모여서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명한 ‘씨 뿌리는 이의 비유’를 말씀
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들 마음의 밭에 뿌려졌습니다. 말씀이
결실을 맺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들 마음의 밭이 비옥해야
합니다. 우리들 마음의 밭에 기도의 비료를 뿌려야 합니다. 사랑의 물을
주어야 합니다. 친절과 온유, 겸손과 나눔의 하우스를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느님 말씀은 우리들 마음의 밭에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수십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나와 가족은 물론
이웃과 세상을 환하게 밝혀줄 수 있는 말씀의 열매들이 전해 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 마음의 밭을 가꾸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도회] 2015년 나해 1월28일 수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마르 4,3)
인생은 농사에 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농꾼들은 땅을 기름지게 만들고나서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물을 주고 가지치기를 하고 북을 돋아주기도 하고
지줏대를 세우기도 합니다.
병충해와 싸우고 가뭄과 싸우고 모진 풍파와도 싸우면서
수확 때까지 늘 노심초사하며 인내합니다.
여러분은 인생농사를 잘 지으셨나요?
땅이 기름지게 되도록 거름을 주고 퇴비를 넣으셨나요?
씨를 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작업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씨앗도 좋은 땅이 아니고서는
좋은 결실을 기대할 수 없으니까요.
이 겨울이 지나면 곧 봄이 찾아옵니다. 씨뿌리는 계절이 다가옵니다.
그러니 지금은 텃밭을 기름지게 잘 가꾸어야겠지요.
나눔과 봉사의 거름과 말씀과 기도의 퇴비를 많이 만들어야겠습니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서울] 돈도 권력도 좋은 땅이 아니고
2015년 나해 1월28일 수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1-18
복음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20
돈도 권력도 좋은 땅이 아니고
부자 집에 태어나 온갖 부를 누리며 잘 살고 재산상속도 받아 좋겠다고요?
큰 회사 사장님의 자녀라서 어린 나이에 부사장도 되고 끝발 좋겠다고요?
가난한 집에 태어나 어려움 겪으며 소박하게 사는 사람도 잘 웃고 살데요.
부자로 돈만 알고 사람을 괄시하다 벗이 없어 외로워 죽겠다던데요?
어린 나이에 큰 소리 치다가 영창가고 창피할텐데 이제 살맛 날까요?
돈도 권력도 좋은 땅이 아니고 모든 게 썩어 섞인 흙이 비옥한 땅입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마르코 4,8)”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청주] 풍성한 열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1월28일 수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1-18
복음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20
풍성한 열매
소임 이동을 하면서 여러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사람의 뜻은
얼마나 다른가? 저는 매괴성모성당의 오랜 숙원사업인 성모동굴을
건립하여 봉헌하리라 마음먹었지만 건축허가를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인사이동을 할 때 ‘영원히 살 것처럼, 내일 당장 떠날 것처럼’
살라는 선배들의 말씀을 실감하게 됩니다. 씨앗을 뿌리고 열매까지 맛보고
싶어 하는 것은 결국 욕심입니다. 내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서 언제 어떻게
쓰시든지 최선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저의 할입니다.
어떤 열매이든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정성껏 가꾸어야 합니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거둘 수가
없습니다. 혹 씨를 뿌리더라도 아무 정성을 들이지 않는다면 풍성한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더더욱 햇볕을 주시고 비를 주시는 하느님의 안배가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주어도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 살지 않으면 구원의
열매는 맺어질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희망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수고와 땀을 흘려야 합니다. 씨앗이 아무리 좋은들 그 씨앗이 떨어진
토양이 좋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또한 토양이 좋다고
해도 씨앗이 좋지 않으면 역시 기대하는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은 언제나 풍요롭고 능력이 있는 살아있는 좋은 씨앗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토양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상대로 만들고 숨을
불어넣어주었으니 더없이 좋은 밭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언제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풍성히 맺어지길
희망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말씀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씨앗이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부와 권력, 쾌락을 추구하는
세상의 방식에 매달리기 때문에 자비와 용서, 나눔을 추구하는 하느님의
방식이 전혀 스며들지 못함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해도
세상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에 사로잡혀 그 말씀을 무시하고 배척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밥 먹여 주느냐?”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피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말씀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지만 말씀
안에 꾸준히 머무르면서 그 말씀의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시련이 오면
말씀에 의지하기보다 세상 다른 것에 의지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믿는다고 하면서도 수능이나 혼사 등 여러 일이 다가올 때 성당을
찾지 않고 점을 보러 가는 사람들입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은 세상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밖의 여러 가지 욕심에 가득 차 있는 사람입니다. 온갖 종류의 가시덤불,
진학, 결혼, 명예, 더 좋은 것, 미래에 대한 여러 걱정 등 욕심의 가시덤불은
말씀을 따르는 생각을 뒤덮어 버립니다. 하느님의 말씀도 자기 욕심을
채우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 때만 좋은 것으로 인정될 뿐입니다. 가시덤불은
걱정과 욕심, 상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지니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느님
말씀을 늘 최우선에 두고, 삶의 기반과 지침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믿음, 희망, 사랑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등경위의 등불처럼 세상을
환히 비추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모든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말씀을 더욱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깨닫게 되면 풍성한
열매를 맺어 자신과 다른 이에게 유익을 줍니다.
말씀의 열매를 맺는 삶이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결코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마십시오! 사랑합니다.
&& 씨앗의 법칙 7가지
1. 먼저 뿌리고 나중에 거둔다. 거두려면 먼저 씨를 뿌려야 한다. 원하는
것 을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
2. 뿌리기 전에 밭을 갈아야 한다. 씨가 뿌리를 내리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
야 한다. 상대에게 필요한 것과 제공시기 및 방법을 파악하라.
3. 시간이 지나야 거둘 수 있다. 곧바로 거둘 수 없다. 제공 했다고 해서
즉 각 그 결과를 기대하지 마라.
4. 뿌린 씨 전부 열매가 될 수는 없다. 10개를 뿌렸다고 10개 모두를 수확
할 수는 없다. 모든 일에 성공만 있기를 기대하지 마라.
5. 뿌린 것보다 더 많이 거둔다. 모든 씨앗에서 수확을 못해도 결국 뿌린
것보다 많아 거둔다. 너무 이해타산에 급급하지 마라.
6.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면
손해를, 이익을 주면 이익을 얻는다. 심는 대로 거둔다.
7. 종자는 남겨 두어야 한다. 수확한 씨앗 중 일부는 다시 뿌릴 수 있게 종
자로 남겨 두어야 한다. 받았으면 다시 되갚아라. 유비무환, 고진감래!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행정 부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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