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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롤즈 '정의론' |
1. 소개 하버드대학의 철학 교수인 존 롤즈(John Rawls.1921-)는 근 20여년 동안 '정의(正義)의 문제'라는 단일 주제만을 파고든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 는 1958년에 '공정(公正)으로서의 정의(正義)'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래, 정의의 문제와 관련된 주요 논문들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 러한 글들에서 단편적으로 제시되었던 생각들을 정리하여 그야말로 20여년 에 걸친 각고의 결실로서 나타난 것이 바로 그의 대저 '정의론(正義論, A Theory of Justice, 1971)'이다.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고 상아탑 속에서 언의 의미에 대한 논리적 분석 만을 일삼던 현대 영미 철학의 분위기 속에서, 롤즈의 '정의론'은 그야말 로 하나의 이변(異變)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예상 외의 수확에 대해 영미 철학계는 이를 세기적 대작(世紀的 大作)으로 평가하면서 최고의 찬 사를 아끼지 않았다. '양차 세계대전 이후 도덕 철학에 있어서 가장 중대 한 성과' '현대에 있어서의 정의 개념에 대한 가장 심오한 연구' '철학에 있어서 현대적 고전' 등의 찬사는 롤즈가 그간 받았던 평가를 잘 나타내 주는 말들이다. 이러한 '正義論'의 파문은 단지 학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 동 안 학계에서 아무리 대단한 평가를 받은 학자일지라도 롤즈처럼 '뉴욕타임 스' '런던타임스'를 위시하여 각종 일반 잡지들과 신문들이 경쟁하듯 서평 과 특집을 싣는 등 실로 파격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이는 없었을 것이다 . 그래서인지 요즘의 사회 철학자들이나 사회 윤리학자들은 일단 롤즈의 '正義論'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뜻에서 '롤즈 이후의 사람들(Post-Rawl sian)'이라 불릴 정도이다. 2. 읽어보기 그렇다면 과연 롤즈의 무엇이 그리 대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 게 된 것일까? 그 중 하나는 정의의 문제에 접근하는 그의 방법론에 있어 서의 탁월성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방법을 통해 이끌어낸 실질적인 정 의관(正義觀)의 설득력이다. 물론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 방법론을 받아들이면서 정의관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며, 그 의 정의관에는 동조하면서 방법론은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철학에서는 일정한 소신이나 신념을 갖는 일 못지 않게 그러한 소신이나 신념에 대해 서 어떤 논거(論據, 논설이나 이론의 근거)를 제시하고 어떤 논변(論辯, 사리의 옳고 그름을 밝혀 말함)을 전개할 수 있는가가 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롤즈의 방법, 그의 논변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근세의 철학자 들 가운데 흡스, 로크, 루소, 칸트 등 일련의 사회계약론자들을 알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합리적인 인간들은 자연 상태와 같은 무정부 상태로부터 자유로운 논의와 합의에 의해 어떤 정부나 국가를 선택할 것을 결정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 논의와 합의, 즉 계약에 의거하여 우리가 살아가게 될 사회나 국가의 기본 헌장을 선택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롤즈 는 바로 이러한 계약론적 논변(契約論的 論辯)을 통해 사회의 기본헌장으 로서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고자 한다. 그의 논의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 로 하자. (1)원초적 상황 롤즈의 방법은 참으로 특이한 데가 있다. 그는 우리에게 정의에 관한 기 본적인 문제를 다루고자 할 경우, 즉 정의로운 사회의 기본 골격과 관련된 원칙을 찾아내려 할 경우, 다음과 같은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그는 우리에게 동화(童話) 같은 하나의 픽션(fiction, 허구)을 상 상해 보게끔 한다. 즉, 아직 어떤 사회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장차 하 나의 사회를 세우기 위해 기본 규칙을 결정하려는 일종의 위원회 같은 모 임을 구성했다고 상상해 보라는 것이다. 이때, 위원회의 구성원들은 모두 가 서로 비슷비슷하다고 가정된다. 그 사람들은 각기 특정한 신분과 재능 그리고 장점과 단점 및 나름대로의 이해관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참으 로 기막힌 사실은 그들이 모두가 치명적인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다는 것이 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으며, 자신의 나이라든가 성, 혹 은 피부색깔,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떤 삶이 가치있는 삶인가 하는 데 대한 자신의 생각, 스스로의 가치관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상과 같이 무언가 모르고 있다는 것은 롤즈의 표현에 따르면, 각자는 무지(無知)의 베일(veil of ignorance)에 의해 자신의 신분이 누구인지 모 르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억 상실증 환자들이 자기 나라의 기 본원칙에 대해 합의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롤즈의 주장은 그와 같은 이상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이 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할 때 과연 어떤 기본 헌장, 즉 어떠한 정의의 원칙 에 합의하게 될지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라는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집회나 위원회가 실제로 열린 적이 있다거나, 혹은 열릴 수도 있다고 가정 하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요지(要旨, 글 등에서 핵 심이 되는 중요한 뜻)는 서로간에 이해 관계를 분간할 수 없는 처지에서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를 상상해보라는 것으로서 (=사고의 실험) 그러한 요구를 극적인 표현으로 나타내 본 것이다. 그와 같은 요구는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에 대해 어떤 평등의 개념을 적용해 보려는 한 가지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이야기 자체에 도 논의의 여지가 있기는 하나, 롤즈의 견해에 따라 우리는 그와 같은 상 황에 처한 사람들이 어떤 합의에 이르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2)정의의 두 원칙 이상과 같은 방법에 따라 생각할 경우 어떤 결론이 나올 것인가? 두 가 지 결론이 나온다고 하는데, 롤즈는 그것을 정의의 두 원칙이라 부르고 있 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 원칙들은 어느 정도 경제적인 발 전을 이룩하여, 이를테면 모든 사람이 각기 물질적인 생활에 있어 어느 정 도 충족된 사회를 염두에 두고 선택하는 원칙이라는 점이다. 일단 그러한 단계에 도달하면 앞서 논의한 상황, 즉 원초적 상황(原初的 狀況)에 처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정의의 두 원칙에 합의하게 된다는 것이다. 첫째는 모든 사람들이 각기 롤즈가 열거하고 있는 기본적인 자유를 평등 하게 그리고 최대한으로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최대의 평등한 자유의 원칙 ). 그와 같은 기본적 자유에는 선거의 자유,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 정치적 자유가 포함되며, 사유재산을 가질 자유, 신체(인신)의 자유, 부당 하게 체포되지 않을 자유 등이 포함된다. 이른바 종래의 자유주의자들이 내세워 온 자유들이 이런 식으로 보장되는 셈이다. 둘째로 사회에서(천부 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혜택을 받지 못한 자, 즉 최소 수혜자 계층에 서 유익한 결과가 오지 않는 한 부의 차등적 분배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차등의 원칙). 물론 이러한 차등이 용납되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서 모든 사회적 직책과 직위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야 한다는 조건, 즉 가 치 균등의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원칙은 상당히 평등지향적인 원칙으로서 '가장 불우한 계층의 처 지를 살펴 보라. 모든 사회 개혁은 그러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최대의 혜택 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상 두 가지 원칙은 롤즈의 이른바 '우선순위의 원칙'에 의해 상호관련을 맺고 있다. 즉 첫번째 원칙이 두번째 원칙보다 우선한다는 것 이다. 이를테면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더라 도 언론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과 같이 정치적 자유를 위축시키는 사회변화 는 용납될 수 없다. 일단 자유를 완벽하게 보호한 다음에야 비로소 두번째 원칙에 의해 제기되는 경제적 분배 문제를 고려할 자격이 생긴다는 것이다 . 경제적인 문제가 논의될 경우 반드시 가장 불우한 계층에게 혜택이 돌아 가게 해야 하나, 그것도 모든 사람의 권리가 충분히 보호받은 후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라는 뜻이다. (3)계약 당사자의 조건 세상에는 천부적 자질(天賦的 資質)이나 사회적 지위에 있어 각양각색의 사람이 살고 있다. 그리고 가치있는 인생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생각, 즉 가치관(價値觀)도 천차만별이다. 이같이 능력이나 지위 그리고 가치관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정의의 원칙에 합의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테면 아마데우스 같은 천재와 바보 천치, 재벌 2 세와 거지 2세가 함께 정의의 원칙을 두고 의논을 한다고 해 보자. 각기 자기에게 유리한 원칙을 내세우는 나머지 합의는 결렬되고 말 것이다. 따 라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기득권(旣得權)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원 칙을 채택하지 못하게끔 그리고 쌍방이 합의할 수 있게끔 정보를 제한하는 어떤 장치가 불가피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롤즈가 내세운 '무지의 베일' 이 의도하는 바이다. 무지의 베일이란 천부적 재능과 사회적 지위, 즉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원칙을 선택하게 하는 우연적이고 운명적인 변수를 괄호 속에 넣거나, 그 에 대해서 판단 중지를 하게 하는 장치이다. 그것은 사적인 이해 관계를 버리고 공적인 입장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그야말로 공정성 흑은 공평무사 함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상 생활에 있어서도 우리는 어 떤 이해관계의 갈등이나 송사(訟事, 소송)를 판정하게 될 경우, 공평무사 함을 강조하거나 제3자적인 입장에 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결국 어떤 무지의 베일을 써야 한다는 요구를 함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있어서도 그와 비슷한 시사(示唆)를 받을 수 있다. 정의 (혹은 법)의 여신은 오른쪽엔 칼을, 왼쪽엔 저울(천평칭: 가운데 세운 줏 대의 가로장 양끝에 저울판을 달고, 한쪽에는 달 물건을, 다른 한쪽에는 추를 놓아서 평평하게 함으로써 물건의 무게를 다는 저울)을 들고 있는 것 으로 묘사되고 있다. 저울은 엄정한 정의의 기준을 상징하고, 칼은 그러한 기준에 의거한 판정에 따라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플라톤도 정의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정의의 기준을 아는 지혜와 실현의 능력을 갖춘 힘을 겸비한 철인왕(哲人王, Philosopher Kin g)이 요구된다고 했다. 그런데 정의의 여신은 이외에도 눈이 먼 맹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정의와 불의의 판정에 있어 사사로움을 떠나 공평성 을 유지해야 한다는 상징으로서, 무지의 베일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 다. (4)계약 당사자의 조건 정의의 원칙을 논의하는 원초적 입장(계약 상황)의 당사자가 될 자격 조 건으로서 무지의 베일과 더불어 합리성이라는 조건이 있다(앞의 것이 인지 상(認知上)의 조건이라면 뒤의 것은 동기상(動機上)의 조건이라 할 수 있 다). 즉 당사자들은 주어진 목적을 성취하는 데 있어 최선의 수단이 무엇 인가를 알 수 있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합리성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롤즈에 따르면 당사자들은 합리적인 동시에 지나친 시기심도 지나 친 동정심도 갖지 않은 존재라고 가정한다. 정의는 각자가 자신의 정당한 몫을 요구하고, 그것을 누리는 데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에서 문제가 된다. 사람들이 상당한 정도로 이타적(利他的) 인 존재라면, 그래서 자신의 몫을 챙기기보다는 그것을 타인들을 위해 희 생하고자 하는 자비심(慈悲心)의 소유자라면, 굳이 정의가 심각하게 문제 될 까닭이 없다. 한편 사람들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한갖 도 구로 희생시킬 용의를 가진 극단적 이기주의자(利己主義者)일 경우에도 도 덕적 덕목(德目)으로서 정의는 문제될 수가 없다고 본다. 자신의 이익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이익도 존중하는, 평화공존(平和共存)을 바라는 건전한 개인주의자들 간에만 정의는 의미있게 논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3. 생각하기 1)정의의 여신은 오른손에 칼, 왼손에 저울을 들고 있다고 한다. 이 말 을 현대사회에 적용시켜 '토지공 개념'에 관해 논해보라. 2)'정의'와 '이타심(利他心)'의 관계에 대하여 논해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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