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향기를 품은 진관사는, 예로부터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손꼽힌다.
고려,
제8대 현종이 궁에서 쫓겨나 북
한산의 암자에 거처할 당시 자신
을 안전하게 지켜준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 했다.
진관대사의,
이름을 따서 진관사로 명하고 마
을 이름도 진관동이라 부르게 되
었다.
일주문을,
지나 오르는데 한글길이 보이고
세종대왕 재위 24년(1442년)에 지
었던 ‘津寬寺賜暇讀書址 진관사사
가독서터’ 가 자리하고 있다.
훗날,
한글을 창제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집현전 학자 박팽년, 성삼
문, 신숙주, 이개, 하위지, 이석형
등 6인을 진관사에 들어가 독서하
게 했다.
세종은,
학자들에게 휴가를 주어 처음에
는 집에서 독서를 장려했으나,학
문에만 전념할 수 없는 폐단이 발
생하여 절에서 독서하도록 했다.
예나,
지금이나 집에서 혼자 독서한다
는 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절에다
독서당을 지어 上寺讀書(상사독서)
시켰을까.
이 독서당은,
한글 창제에 반대하는 무리들의
눈을 피해 한글을 비밀리에 연구
토록 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한글을 만들어
내, 필자도 세종대왕에게 고마움
을 느끼며 이 글을 쓰는 중이다.
힘차게,
오르는데 ‘종교를 넘어...’란 글귀
가 돌에 새겨져 있다.
하긴,
어느 특정한 계층이나 그 특성이
나타나는 집단, 종교를 넘어 모두
가 한마음으로 화합해야지.
‘당신은 부처님 이십니다’
진관사 연지원에서 손자와 팥빙수.
아,
저 두 건물 사이로 보이는 건물이
2009년 해체 복원하던 중, 오래된
태극기와 함께 독립 신문 류가 발
견된 칠성각이다.
불교계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
께서 일제의 감시를 피해 후세에
그 뜻을 전하고자 숨겨놓은 것이다.
백초월 스님이 태극기를 숨겨놓았던 칠성각.
이 태극기는,
거센 독립운동의 불길과 함께 불
에 타고 색이 바랬으나 스님의 노
력으로 형태가 잘 보존 되어 있다.
돌에,
새겨진 ‘진관사 태극기’가 항일 독
립 운동에 실제 상용된 것이다.
강인한,
의지와 불굴의 정신이 보여주는
인간 승리의 메시지다.
한 인간의,
끈질긴 투지로 나라를 위해 싸운
분들이 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
만큼 이라도 잘 살고 있는지도 모
른다.
역사는,
늘 살아서 움직이는 것.
북한산,
자락의 진관사는, 누구의 간섭도
허락되지 않는 경건한 시간이다.
자연의,
순리에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순응
하면서.
조용히,
자리하게 되어 큰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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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와 역사탐방[34] 진관사 칠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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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0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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