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0월 23일 수요일 오전5시28분
고모부 김치근 안수집사께서 45년생 이시니 80의 생을 잘 보내고 고향인 주님 품에 돌아가셨습니다.
내 나이 대여섯살 이전 고모랑 연애하는 중 베트남 파병 다녀오고 결혼을 하셨지요.
감사한 것은 믿음의 집안이어서 고모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모 집안에 딸은 나 혼자 뿐이라 엄청 예뻐하셨고, 설날이면 세뱃돈을 제일 많이 주셨더랬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같은 동네 살아서 늘 가까웠고, 중학생 때 풍동에서도 한 동네 살아서 주말이면 함께 막걸리에 밀가루 부풀리고, 팥고물 만들어 찐빵 만들어 먹고
야채 썰어서 토스트 만들어 먹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택시 기사를 하시던 때인데 어느 주말에 찐 빵 만들다 걸려 온 한통의 전화로 고모의 오해가 있어서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도망치셨던 기억도....😂
어느 여자 손님이 전화를 걸어 온 것이 고모한테 딱 걸렸지요..
고모부가 워낙 미남이셔서~~
남편과 제가 겹사돈이 되어 더욱 살뜰이 저희 가정을 챙겨주셨습니다.
시어머니가 고모부 이종사촌누나 이고 저는 고모의 조카이니 집안 잔치를 했었습니다.
고모부는 워낙 유순했지만 고모는 성격이 불 같아서....박씨 집안 여인들 내력 인 듯...😂
신혼 여행 다녀오니 시어머니랑 고모가 결혼식 피로연 마치는 시간에 사소한 오해로 한바탕 싸우고 난리가 나기도 했었습니다.
성격이 보통이 아닌 고모를 어찌나 사랑하는지 시간만 나면 두 내외가 여행을 다니셨습니다.
정말 후회도 원도 없을 만큼 즐겁고 재미있게 사셨지요.
97년 8월 4일 둘째 아들 문성이가 6개월 된 아들 두고 부대에서 사고로 사망하는 슬픔도 잘 견뎌 내셨지요..
저희 가정이 어려움 당할 때 친부모님 이상으로 카드 전부를 내어 주어 십여년간 사업을 돕기도 하셨습니다.
시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고 우리 집에 오셨을 때에도 곁에서 사촌누나를 잘 챙겨주셨습니다.
그러던 중...
고모부와 고모도 치매 진단을 받았고,
계단을 헛디뎌 수술하고 병원 다니기를 2-3년..
데이케어센터에 고모 손잡고 다니시다 결국 병원에 입원하고 요양원에 몇달을 계셨습니다.
돌아보니 늘 함께 있던 고모가 고모부가 갑자기 곁을 떠나면 힘들 것을 아시니 미리 훈련 시켜주신 듯 합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신 모습을 남편이 병문안 갔다 찍어 온 사진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주여!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이미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얼마나 살게 하시렵니까...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3일 후 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르바이트 가는 길이라 마치고 저녁에 조문하고..
목요일은 늘푸른학교 마치고 오후에 조문하고..
금요일인 오늘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5시 발인예식에 참석했습니다.
벽제 승화원에 가서 예배 드리고, 동화경모공원까지는 함께 가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오늘부터 1박2일 5060 힐링캠프가 예정 되어 있어서요..
돌아보니 이 또한 은혜 입니다.
고모부 별세가 하루만 앞당겨졌거나 혹은 뒤로 늦쳐졌어도 난감한 상황이었으니까요..
고모부는 천국 입성하시면서까지 저와 저희 가정에 잘하고 가셨습니다.
장례 내내 은혜였고
특히 문성이가 남기고 간 유복자 한솔이가 어엿한 성인이 되고 좋은 직장에 다녀서 아빠 몫을 다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은혜입니다.
고모부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중환자실에 계실 때도
치매가 심해졌을 때도
기도하면 아멘! 하시고
천국 소망 놓치 않았으니
이 모든 것 주님께 감사와 영광 올려 드립니다!!!
한사람의 인생이 마감되는 것을 보며
저도 주님 뵈올 준비 잘해야겠다 다시한번 다집합니다.
그러나 그 또한 주님의 계획과 은혜임을 믿습니다.
이제 남은 삶을 살아내야하는 고모와 가족들 모두 위에 우리 주님 크신 은혜를 베푸사 굳건한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천국에 소망을 두게 하소서!!!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