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교신
이하석
하루에도 수백의 나비들 벌들 활주로 뜨고 내리느라 꽃의 관제탑은 쉴 틈이 없지만, 종일 밝게 펴놓은 교신들로 오늘도 단 한 건의 항공사고가 없었다.
----이하석, {기억의 미래}에서
현실주의자(사실주의자)들은 모든 사물을 현미경으로 바라보고, 낭만주의자들은 모든 사물을 망원경으로 바라본다. 현실주의자들은 머나먼 하늘과 참되고 밝은 이상세계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고, 끊임없이 고통을 받고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적과 동지, 주인과 노예, 자본가와 노동자 등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이 세상의 그 모든 삶의 질서, 즉, 도덕과 역사와 전통을 물어뜯는다. 부유한 자, 힘 있는 자, 지배하는 자는 사악하고, 가난한 자, 힘 없는 자, 지배받는 자는 착하다는 믿음과 신앙으로 그들의 동지들을 불러모으고, 그 거대한 다수의 힘으로 사회변혁을 꿈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본디 학문이나 예술의 존재론적 토대에는 무지하기 때문에, 그 어떠한 타개책이나 희망과 목표를 제시하지 않으며, 그 모든 잘못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원한 맺힌 저주감정이 그들의 근본정서이자 존재 이유가 되며, 따라서 원한 맺힌 저주감정의 포로가 되어 그 비극적인 생애를 마감한다. 이에 반하여, 낭만주의자들은 그들이 두 발을 딛고 선 현실을 무시하며, 머나먼 하늘과 참되고 밝은 이상세계를 동경하며, 뜬구름 잡는 식으로 그 모든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생떽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소행성과 달나라의 토끼 등이 그것을 말해주며, 그들의 망원경은 반사회적인 현실도피의 수단이 되어 준다. 이 현실주의자와 낭만주의자들이 다같이 의견일치를 보고 있는 것은 시와 예술이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 수단, 즉, 이 세상의 삶의 고통에 대한 치료수단으로서의 사회적 기능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시와 예술은 꿈과 희망의 산물이며,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킨 것이다.
현실주의자들은 인간의 꿈과 낭만을 질식시키고, 낭만주의자들은 인간이 처한 현실과 사회개혁의 모든 노력들을 무화시킨다. 이하석 시인은 현실주의자로서 ‘문명비판의 칼날’을 내려놓고, 잠시 자연예찬의 시를 쓴 것처럼 보인다. “하루에도 수백의 나비들 벌들 활주로 뜨고 내리느라 꽃의 관제탑은 쉴 틈이 없지만, 종일 밝게 펴놓은 교신들로 오늘도 단 한 건의 항공사고가 없었다”라는 [밝은 교신]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는 [밝은 교신]의 자연주의자이지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낭만주의자의 망원경으로 꽃밭을 바라보고, 수많은 나비와 벌들을 관찰한다. 높디 높은 관제탑, 즉, 높디 높은 하늘에서 바라보면 달동네의 판잣집들도 아름답고, 무차별적인 총격전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듯이, 그의 아름다움은 환상이나 착시 속의 아름다움이지, 사실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현미경은 사물의 실핏줄과 그 찢김만을 바라보고, 망원경은 머나먼 곳의 풍경과 그 아름다움만을 바라본다.
수많은 벌과 나비들도 무리를 짓는 곤충들이며, 그 곤충들의 사회도 약육강식의 사회에 지나지 않는다. 날이면 날마다 수많은 새와 개구리와 포식성의 천적들 앞에서 부들부들 떨기도 하고, 하나의 꽃밭과 하나의 꿀샘을 더 차지하기 위하여 수많은 동종들과 이종들간의 피눈물 나는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온갖 질병과 독성과 먹이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제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죽어갈 뿐만 아니라, 짝짓기의 어려움 때문에 쓰디 쓴 좌절과 절망 속에서 그 비참한 생애를 끝낸다. 수많은 꽃밭은 벌과 나비들의 무덤이며, 벌과 나비들의 시체로 그 꽃밭을 가꾸어 나간다. 이 세상에서 어렵고 힘들지 않은 것은 반자연적이고 반생물학적이며, 이 세상에서 어렵고 힘들지 않은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 먹이사슬의 구조는 삶의 구조이며, 이 삶의 구조가 아주 단순하고 평화롭고 이상적이라면 그 어떤 종들도 존재할 수가 없다.
아름다움은 자기 자신의 살과 뼈를 깎아내는 듯한 처절한 고통과 자기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지, 그냥 저절로 우연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천 년의 소나무에게도 그 소나무의 고통과 투쟁의 역사가 담겨 있고, 히말라야의고산영봉들에게도 히말라야 고산영봉의 고통과 투쟁의 역사가 담겨 있고, 모든 벌과 나비들에게도 그 벌과 나비의 고통과 투쟁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이 세상에서의 고통과의 싸움은 모든 생명체들을 비정하고 잔인하게 만들지만, 그러나 그들의 삶의 절정, 즉, 그들이 피워낸 꽃의 아름다움은 모든 저주와 분노와 슬픔들을 승화시킨 것이다.
현실주의자들의 꽃밭에는 수많은 벌과 나비들의 시체가 즐비하고, 자연주의자(낭만주의자)들의 꽃밭에는 단 한 건의 분쟁사고(항공사고)도 없이 모든 것이 저절로 자라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이 만발한다. 현실주의자들에게는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하고, 낭만주의자들에게는 미시적인 안목이 필요하지만, 그러나 그것보다는 그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낙천주의적인 사상이 더 필요하다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