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 바른 귀신을 쫓고
아내를 얻다 (粉鬼娶妻)
조선 시대 초,
남이(南怡 : 1441~1468) 장군과
연관된 이야기로
그가 소년 시절에
길가에서 놀고 있으니
한 어린 여종이 보자기로 싼
작은 상자를 머리에 이고 가는데,
그 위에 뽀얀 분을 바른
여귀(女鬼)가 올라앉아 있었다.
그런데 이 여귀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남이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었다.
.
이에 남이가
그 여종의 뒤를 따라가 보니,
어느 재상 댁 높다란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가는지라,
그 집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
얼마쯤 지나자 갑자기
재상 댁에서
사람들 울음소리가 크게 들리고
집안이 온통 소란해졌다.
그리하여
밖으로 나온 종에게 물었다.
"이 댁에 무슨 일이 있기에,
갑자기 이토록 울음소리가
진동을 하는 거요?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소?"
"우리 집 작은 아씨가
갑자기 숨을 거두는 바람에
온통 난리가 났습니다요."
.
그러자 남이는 앞서
그 여귀의 소행으로 짐작하고,
안에 들어가
이렇게 전하라고 일렀다.
.
"내가 집안으로 들어가면
낭자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요."
곧 여종은 안으로 들어가
안방마님에게 그대로 전했다.
"대문 앞에
어떤 소년이 와 있사온데,
작은 아씨 얘기를 듣고는
자기가 들어오면 아씨를
소생시킬
수 있다고 하옵니다."
.
이에 안방마님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외간 남자를
안으로 들일 수는 없느니라.
그렇지 않아도 이렇게 복잡한데,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물러가라 하라."
.
여종이 나와서 그대로 전하니,
남이는 웃으면서 잠자코 서 있었다.
얼마 후 의원이 왔다 돌아가고
여러 사람들이 들락거리더니,
여종이 나와서
남이를 보고 말했다.
"안방마님께서 진정
우리 아씨를 살릴 수 있다면
집안으로 들어오라 하셨사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
이에 남이가
여종을 따라 들어가
죽은 낭자를 보니,
앞서의 그 여귀가
낭자의 가슴
위에 걸터앉아 있는데,
남이를 보고는
얼른 달아나 버리는 것이었다.
.
그 때 낭자가 큰 숨을
내쉬면서 깨어났다.
그 모습을 본 남이는
곧 돌아서서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다시 집안에서
울음소리가 나고,
앞서 그런 것처럼 낭자가
숨이 막혀
죽었다는 것이었다.
.
이에 남이가
급히 안으로 들어가니,
역시 그 여귀가
낭자의 가슴 위에 걸터앉아
있다가 얼른 달아나,
낭자는 또한 숨을
크게 쉬면서 깨어났다.
.
그래서 남이가 물었다.
"조금 전 이 댁의 어린 여종이
보자기로 싼 상자를 머리에
이고 가던데,
그 속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요?"
이 물음에 나이 든 여종이
그것은 홍시(紅枾)라면서,
낭자가 펼쳐서
제일 먼저 먹는 순간
갑자기 숨이 막혀
그대로 쓰러지더라고
설명해 주었다.
.
이에 남이는 아까 길가에서
그것을 머리에 이고 갈 때 보니
분을 바른 여귀가
올라앉아 있었다고 말해 주고,
그 여귀가 낭자의 가슴 위에
앉아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
그리고는 집안사람들과
의논해서
귀신을 쫓는 약을 구한 뒤,
낭자를 완전히 소생시켰다.
이 재상 댁은 바로
좌의정 권람
(權擥 : 1416~1465)의
집이었다.
재상이 그 말을 듣고
신기하게 여기면서,
남이가 자신의 딸과
인연이 있다고 믿어 두 사람을
혼인시키기로 마음먹었다.
.
그리하여 부인에게
어떠한지 점을 쳐보라고 하자
곧 점쟁이를 불렀는데,
점쟁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
"이 소년은 제 명에 죽지 못하고,
장차 죄를 지어 벌을 받고
죽음을 당할 운수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 운명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에 부인은 걱정을 하면서
자기 딸의 점을 봐달라고 했다.
그러자 점쟁이는 한숨을
쉬면서 천천히 말했다.
.
"따님은 명이 아주 짧고
자식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는 동안은
복록을 누릴 것이며
남편이 화를 당하기 전에
세상을 떠나니,
그 소년과 혼인을 시켜도
무방하옵니다."
.
그리하여 재상 댁에서는
딸이 얼마 후
죽을 것을 예측하고,
또한 앞서 여귀에 의해
죽었던 일을 상기시키며,
결과를 지켜보기로 하고
남이와 혼인을 시켰다.
이후 남이는 17세에
당당히 무과에 장원 급제했고,
그 용기가 뛰어나
아무도 따를 자가 없었다.
게다가 북쪽 지역에서
이시애(李施愛)가 난을 일으키니
왕명을 받아 출정하여
그 난을 평정했고,
건주위(建州衛) 정벌 때는
선봉장이 되어 공을 세우니
훈공(勳功) 일등에 오르게 되었다.
.
그 때 그가
공을 세우고 돌아오면서,
감개 어린 시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이 하고
(백두산석마도진)
.
豆滿江水飮馬無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말렸네.
(두만강수음마무)
.
男兒二十未平國 남아 이십
대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한다면
(남아이십미평국)
.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겠는가?
(후세수칭대장부)
그때 조정에서는
간신배들이
세력을 다투던 시기라,
이 시를 들어
모반(謀反)을 꾀한다고 몰아붙여
참형을 당하게 했으니,
당시 남이의 나이 28세였다.
.
한편 권람의 딸은
남이가 참형을 당하기
몇 해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으므로,
화를 당할 때는
함께 있지 않았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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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粉鬼娶妻)분 바른 귀신을 쫓고 아내를 얻다
윤 호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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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6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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