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림토 문자와 신대 문자
여기서 가림토 문자와 신대 문자 이야기를 덧붙일 필요가 있다. 훈민정음과 너무도 많이 닮은 두 문자이기에 그 진위를 떠나서 소개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관심거리가 될 터이기 때문이다.
가림토 문자는 논란이 되고 있는 《환단고기》라는 책에 등장하는 고대 한국의 문자이다. 이 책이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기원전 2181년에 이미 고대한국의 문자가 만들어졌다는 기록 때문이다.
"당시 풍속이 하나같지 않고,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달랐다.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眞書)가 있다 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백 리 되는 나라의 땅에서도 통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이에 삼랑(三郞)을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게 하니 가림토(加臨土)라 하였다."

가림토 문자
흥미롭게도 이 내용은 훈민정음의 서문이나 신숙주의 《동국정운》의 서문과 너무도 흡사하고 그 어투도 역시 똑같다고 볼 수 있다. 우연 치고는 너무나도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만약 이러한 고대 한국의 문자가 있었다면 왜 우리의 고대 자료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또 일본에서는 훈민정음이 일본의 신대 문자를 본뜬 것이라는 주장이 있어 왔다. 두 문자가 모양과 음까지 너무도 닮았고, 신대 문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니 훈민정음이 이 문자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주장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18세기 에도 시대 중엽 이후 애국심에 불타는 일본 국학자들이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진위를 다시 한번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신대 문자는 17~18세기에 훈민정음이 일본에 전파된 이후 이를 본따 만들었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신대 문자로 쓰여졌다는 문헌의 조사 결과 그 내용이 황당무계하다는 평가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학계에서도 그러한 문자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내용은 접어둔다 하더라도 어학적으로 보면, 신대 문자 주장에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발견된다(《세계의 문자》 참조).

신대 문자
첫째, 만약 신대 문자가 고대 일본에 있었다면 오늘날처럼 굳이 한자를 빌려 표기하는 문자체계를 갖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둘째, 신대 문자는 모두 단음 문자로 되어 있어, 오늘날의 음절 문자인 가나보다도 더 발전된 형태를 취하고 있으므로 발전 과정이 반대라는 점이다. 셋째, 신대 문자는 47음에서 50음밖에 분리될 수 없는데, 가나가 발달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어의 음절은 47자 가지고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것이었다. 따라서, 신대 문자가 일본에서 가나나 《만엽집》에 등장하는 만엽가나 보다도 더 이전에 존재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우리의 가림토 문자도 이와 비슷한 문제점을 갖고 있으니 언어학적으로는 그리 의미가 없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