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중요 이슈를 미국과 중국 그리고 중동지역에 빼앗겼던 유럽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유럽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 각국의 농민들의 주장은 거의 일치합니다. 농가의 소득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친환경을 명분으로 각종 규제가 밀어 닥치는데다 수입 농산물까지 밀물듯이 들어오자 농민들의 참을성에 한계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제 전쟁 발발 2년을 향해가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후유증이 유럽 각국의 농민들에게도 심각한 여파를 남기고 있습니다. 유럽뿐 아니라 세계 농업국 가운데 대표 국가인 프랑스 농민들이 먼저 농민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부당한 것을 보면 참지 못한다면서 셋만 모이면 혁명을 논한다는 프랑스인답게 지난 1월 18일 농민시위가 시작됐습니다. 프랑스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는 벌써 열흘을 넘기고 보름을 향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남서부에서 처음 시작된 농민 시위는 점차 범위가 넓어지더니 드디어 수도권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와 EU의 농업정책에 항의하는 프랑스 농민 시위대는 현지 시간으로 29일 오후 트랙터 800대를 동원해 고속도로 8곳을 모두 봉쇄했습니다. 이 고속도로들은 수도 파리로 이어지는 주요 간선도로로 이 일대 교통은 마비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프랑스 농민 시위대는 도로 곳곳에 바리케이트를 설치해 사실상 파리 진입 자체를 봉쇄해 버린 상태입니다. 시위대는 장기화를 예상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들이 준비한 텐트와 이동식 화장실, 발전기 등에서 농민 시위대의 각오를 잘 읽을 수 있습니다.
농민 시위대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친환경을 이유로 정부가 비도로용 경유 면제 폐지를 예고하고 있는 데다 최근 30년간 농가 소득이 거의 40%나 감소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뿐 아니라 비료값도 급등해서 농민들이 대단한 곤경에 처해 있다고 말합니다. 농민 5명중 1명이 빈곤선 아래로 생활고를 겪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또한 농민들은 프랑스 정부와 EU가 과도한 농업 규제와 그와 관련된 제도를 펴고 있어 농업 운영에 한계를 느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일부 농민시위대는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로 몰려가 항의 시위도 벌이고 있습니다. 농민 시위대는 정부가 농민들의 주장에 귀를 닫을 경우에는 파리를 비롯한 수도권 전체를 봉쇄하겠다는 강경 주장을 내놓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이런 농민들의 시위는 프랑스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 농민들도 한 달이상 트랙터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생물 다양성을 이유로 농지 보조금 조건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폴란드와 루마니아 농민들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값싼 우크라이나 농산물 유입을 막기위해 국경에서 우크라이나와 대치 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폴란드 농민들은 그동안 프랑스 등 다른 나라 농민들의 시위를 그냥 지켜만 봤지만 이제는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판단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리투아니아 등지에서도 농부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않게 변하고 있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농민들의 성난 분노가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해당 국가에서는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습니다. 핵심 시위국가인 프랑스 정부는 긴급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주요 내각 장관을 소집하고 긴급 비상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가 총동원됐다면서 조만간 긴급 대책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상 유럽 각국의 농민 불만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유럽 농민들의 시위는 오랜 기간 깊은 분노가 적체된 결과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이번 유럽의 농민 시위에 대해 오랜 기간 적체된 다양하고 깊은 분노의 결과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야기된 에너지와 비료 가격의 폭등, 대형 유통업체의 마진 폭리와 원가 인하 전가 부담 게다가 해외 농산물과 자국 농산물에 대한 이중잣대 등이 대표적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EU차원에서 이른바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 달성을 목표로한 이른바 그린딜 정책이 도입되면서 트랙터 등 농업용 차량 작동에 필요한 디젤 가격이 상승하는 것도 주요 사안입니다. 여기에 유기농 재배 의무 강화와 경작지 최소 4% 휴경 의무화 등의 규제가 겹쳐지면서 농민들은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프랑스 농민들은 규제는 증가하고 생산 비용은 폭등하고 있으며 소득은 감소되는 등 생활고가 누적되는 감내하기 힘든 상황을 맞고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농민들은 도시 직장인들에 비해 쉴새없이 일하지만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농민 시위는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많습니다.
프랑스와 유럽의 농민들은 그 잘났다는 미국과 세계 패권국을 차지하기 위해 난리를 치는 중국은 환경문제에 신경도 쓰지 않는데 왜 유럽만 환경문제를 걱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농민 시위를 바라보는 프랑스 국민들의 여론도 농민들 편인 것으로 보입니다. 시위는 격화되고 있지만 시위에 대한 프랑스 인들의 지지율은 거의 80% 수준입니다. 프랑스 농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올만한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 농민들을 비롯한 유럽 농민들의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프랑스 정부가 농민들의 요구를 상당히 수용할 그런 상황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자신의 주장과 정책을 그대로 밀어부치는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의 태도를 감안할 때 프랑스 농민 시위는 상당 시간 계속되고 유럽 농민들의 시위는 상당 기간 유럽을 넘어서 전세계에 파급효과를 끼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2024년 1월 30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