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雞林歷史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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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사랑방 鼈淵寺古迹記 ㅡ 惺所覆瓿稿
계림 추천 0 조회 32 26.08.19 06:25 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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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8.19 19:07

    첫댓글 《고려사》에서 단 몇 줄로 요약되어 있던 명주가의 짧은 ‘잉어 편지(신어, 神魚)’ 이야기는 허균(許筠)의《발연사고적기(發淵寺古蹟記)》를 통해 비로소 구체적이고 생생한 서사로 완성되어 전해지게 된다.

  • 26.08.19 19:10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강릉 출신 문장가인 허균은 강릉의 금강산 발연사(또는 별연사)의 내력을 적은 《발연사고적기》에서 이 설화를 기록했다.

  • 26.08.19 19:10

    신라 경덕왕 때, 서라벌에서 온 화랑 무월랑(김유정)이 명주(강릉)에 사관으로 파견되었다가, 연화봉 아래 못(發淵)에서 잉어에게 먹이를 주던 연화낭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훗날을 기약한다.

  • 26.08.19 19:11

    임기가 끝난 무월랑이 서라벌로 돌아간 뒤 소식이 끊기고, 연화낭자의 부모가 다른 곳으로 시집보내려 하자 낭자는 슬픔에 빠진다.

  • 26.08.19 19:11

    낭자는 안타까운 마음을 비단에 적어 못 속의 황금 잉어에게 주며 하소연했는데, 잉어가 이 편지를 물고 바다를 건너 서라벌의 양어장(또는 시장)까지 넘어간다.

  • 26.08.19 19:12

    서라벌에서 잡힌 잉어 배 속에서 비단 편지가 발견되고, 이 사연을 알게 된 신라 임금과 무월랑의 부모가 둘의 인연을 "신령스러운 물고기가 맺어준 천생연분"이라 여겨 혼인을 허락한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강릉 김씨의 시조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이다.

  • 26.08.19 19:12

    《고려사》 악지 등 국가 정사에는 사관들이 핵심 줄거리("아내가 남편을 그리워해 노래를 지었다")만 짧게 요약해 실었지만, 허균의 《발연사고적기》나 《동국여지승람》 같은 지역 고적기/읍지류 자료에는 백성들 사이에 전승되던 '잉어 배 속 편지'라는 기이하고 드라마틱한 소설적 서사가 완전한 형태로 담겨 있다.

  • 26.08.19 19:14

    오늘날 강릉의 명소인 월화거리와 월화정(月花亭) 역시 무월랑의 '월(月)'자와 연화낭자의 '화(花)'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결국 《고려사》 속 <명주가>의 짧은 기록 뒤에 숨어 있던 길고 아름다운 로맨스의 본체가 바로 허균의 《발연사고적기》를 통해 전해져 내려온 셈이다.

  • 26.08.19 19:16

    허균은 원래 민간에 떠돌던 "잉어 편지" 이야기를 단순한 허구나 야사로 보고 의심하였다.
    ​그러나 선조 29년(1596년) 한강 정구 선생이 가져온 옛 기록(이거인이 쓴 고적)을 접하고, 이것이 단순히 전설이 아니라 신라 태종무열왕의 후손 무월랑(김유정)과 연화낭자(박씨) 사이에 실제로 있었던 드라마틱한 역사적 배경이자 강릉 김씨의 시조 김주원(명주군왕)의 탄생 설화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 26.08.19 19:17

    이 문헌 덕분에 《고려사》 악지에 단 2줄로 짧게만 전하던 <명주가>의 유래가 완전한 서사시 형태로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해질 수 있었다.

  • 26.08.19 19:18

    발연사 / 별연사 (鼈淵寺·發淵寺)는
    ​강릉 남대천 남쪽 연화봉(현재 강릉시 노암동/강남동 일대)에 있던 절이다.
    ​본래 신라 명주군왕 김주원의 어머니인 연화부인(박씨낭자)이 살던 집터였으나, 훗날 김주원이 부모의 명복과 인연을 기리기 위해 사찰(招提)로 바꾼 곳이라 한다.

  • 26.08.19 19:19

    본래 한자 표기는 자라/자라못을 뜻하는 별연사(鼈淵寺)였으나, 세월이 흐르며 발음이 비슷한 발연사(發淵寺)로 와전되어 기록·전승되었다.

  • 26.08.19 19:20

    ‘잉어 편지’를 뜻하는 잉어 전서(鯉魚傳書), 혹은 어서(魚書), 어중척소(魚中尺素)는 동양 고전 문학에서 "멀리 있는 그리운 사람에게 기적처럼 전해지는 편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고사이다.
    ​강릉의 <명주가> 설화 속 연화낭자의 편지가 서라벌의 무월랑에게 닿은 배경에도 바로 이 '잉어 전서'라는 고대 문학적 모티브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 26.08.19 19:24

    중국 한나라 시절의 한악부(漢樂府) 시 《음마장성굴행(飲馬長城窟行)》은 잉어전서(鯉魚傳書)의 대표 유래라 할 수 있다.

  • 26.08.19 19:26

    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나그네 멀리서 찾아와 나에게 쌍리어를 전해주었네.)
    呼兒烹鯉魚, 中有尺素書.
    (아이 불러 잉어를 배 가르게 하니, 그 속에서 한 자 크기의 비단 편지가 나왔다네.)
    長跪讀素書, 書中竟何如?
    (무릎 꿇고 앉아 그 비단 편지를 읽으니, 그 편지에 과연 무슨 글이 쓰였던가?)
    上言加餐飯, 下言長相憶.
    (위에는 부디 '밥 잘 챙겨 드시오'라 하였고, 아래에는 '늘 그리워합니다'라 적혔었네.)

  • 26.08.19 19:26

    ​중국 한나라 시절, 만리장성을 쌓으러 부역을 떠난 남편을 그리는 아내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인 《음마장성굴행》에 나오는 구절이다.

  • 26.08.19 19:28

    이 시에서 '잉어의 배를 갈랐다(烹鯉魚)'는 표현은 물고기를 실제로 요리했다기보다, '잉어 모양으로 접거나 wooden 잉어 모양 함(魚盒)에 담아 끈으로 묶어 보낸 비밀 편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26.08.19 19:29

    ​비단 편지(尺素)는 한 자(尺) 크기의 하얀 비단(素)에 적은 편지라는 뜻으로, 오늘날 편지를 뜻하는 '서신(書信)'이나 '척소(尺素)'라는 한자어의 유래가 되었다.

  • 26.08.19 19:30

    새(기러기)나 물고기가 편지를 전한다는 관용어는 한나라의 충신 소무(蘇武)의 고사에서도 등장한다.

  • 26.08.19 19:31

    ​한나라 신하 소무가 북방 흉노에게 사로잡혀 19년 동안 한파 속에서 절개를 지키며 갇혀 있었다.
    ​한나라 사신이 흉노의 왕(선우)에게 소무를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흉노 왕은 "소무는 이미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 26.08.19 19:32

    이때 사신이 지혜를 내어 "우리 임금께서 사냥하시다가 상림원에서 기러기 한 마리를 잡으셨는데, 그 기러기 발에 소무가 살아있다는 편지(雁帛書)가 매여 있었다"라고 거짓을 고했다.
    ​흉노 왕은 신의 기적에 놀라 속임수가 들통난 줄 알고 결국 소무를 풀어주었다.

  • 26.08.19 19:32

    이 일로 인해 한자어로 안서(雁書, 기러기 편지), 어서(魚書, 물고기 편지), 혹은 두 말을 합쳐 안서어신(雁書魚信)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 26.08.19 19:33

    ​이처럼 동양 문화권에서 '잉어'는 단순한 물고기가 아니라,
    ​물속 깊은 곳과 세상 위를 연결하는 신령스러운 매개체이자,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지극한 정성이 하늘에 닿아 기적적인 소식을 전해주는 상징으로 쓰였다.

  • 26.08.19 19:34

    따라서 강릉 김씨 문중과 허균의 기록에 등장하는 박연화 낭자가 "옛날에 기러기와 잉어가 편지를 전했다는 말이 있으니, 너도 나의 사연을 무월랑에게 전해다오"라고 기도하며 잉어를 남대천에 풀어준 장면은, 고대 동양의 아름다운 시적 관습과 기적을 향한 바램이 민담 형태로 형상화된 최고의 장면이다.

  • 26.08.19 19:34

    연화낭자가 잉어에게 한 그 말은 고사성어 '잉어전서(鯉魚傳書)'와 '안서(雁書)'의 전통적인 관용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 26.08.19 19:36

    《발연사고적기》 원문 속 연화낭자의 대사를 보면 이 유래가 한문으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語池中所養金鯉曰: "古有雙鯉傳書之言。你受吾養多矣。不可致吾意郞所否。"
    ​(연못 속에서 키우던 금빛 잉어에게 말하기를, "옛날에 두 마리 잉어가 편지를 전했다는 말(雙鯉傳書)이 있다. 너는 나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으니, 나의 뜻을 무월랑 계신 곳에 전달해 줄 수 없겠느냐?" 하였다.)

  • 26.08.19 19:37

    ​원문의 '쌍리전서(雙鯉傳書)'라는 표현 자체가 중국 고시 《음마장성굴행》의 첫 구절인 "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나그네 멀리서 와 나에게 두 마리 잉어를 전해주었네)"에서 직접 온 말이다.

  • 26.08.19 19:38

    연화낭자는 단순히 동물에게 하소연을 한 것이 아니라, 당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던 고전고사('잉어가 편지를 전해 인연을 맺어주었다')를 떠올리며 "고전 속 이야기처럼 너도 기적을 일으켜 내 사연을 낭군에게 전해다오" 하고 절박하게 빌었던 것이다.

  • 26.08.19 19:39

    당시의 시대적·사회적 상황을 고려해 보면, 연화낭자의 모습은 단순히 구전 설화 속 요조숙녀를 넘어 상당한 지식과 교양을 갖춘 ‘시대의 엘리트 여성’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 26.08.19 19:39

    절박한 위기의 순간에 당대의 클래식 고전인 ‘쌍리전서(雙鯉傳書)’나 ‘안서(雁書)’ 같은 고사를 떠올리고, 이를 물고기에게 비유하여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정도로 문학적 소양이 깊었다.

  • 26.08.19 19:40

    당시는 한글이 없던 신라 시대라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고난도의 한문(漢文)과 이두/향찰을 자유자재로 구사해야 함을 의미한다.
    ​부모의 정혼 소식을 듣고 당황하여 울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곧바로 비단을 찢어 자신의 주체적인 의사와 절절한 마음을 직접 한문 편지로 적어 보낼 만큼 정교한 문장력을 갖추고 있었다.

  • 26.08.19 19:41

    무월랑을 처음 만났을 때도 무작정 정을 통하려는 시도에 대해 "저는 토착 가문의 딸이니, 예의(六禮)를 갖추어 당당하게 맞이하십시오"라며 명확한 주관과 예법을 들어 타일렀다.

  • 26.08.19 19:41

    신라 시대 강릉(명주)이라는 지방에 살면서도 고전을 통달하고, 스스로 편지를 써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만큼 당차고 똑똑했던 고대의 문학적 지식인(인텔리) 여성이었기에, 지금까지도 ‘신어(神魚)가 맺어준 전설의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게 아닐까?

  • 26.08.19 19:51

    옛 고사나 설화들은 단 몇 줄의 글자, 혹은 '잉어 배 속의 비단 편지' 같은 아련한 모티브 하나만 던져놓고는, 읽는 사람이 스스로 그 뒤의 서사와 감정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 26.08.19 19:53

    ​"잉어가 편지를 물고 바다를 건넜다"라는 한 줄 뒤에, '연화낭자가 남대천가에서 보낸 수많은 밤들', '서라벌 시장 한복판에서 잉어를 마주친 무월랑의 놀라움' 같은 수많은 장면이 여백으로 남아 우리 마음을 흔든다.​

  • 26.08.19 19:53

    ​잉어나 기러기처럼 자연물을 매개로 마음을 전한다는 설정 자체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이 감응하는 기적’ 같은 신비롭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 26.08.19 19:54

    '그 뒤의 이야기'를 자꾸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고사를 읽고 나면 "두 사람은 그 뒤로 강릉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궁궐 연못으로 간 그 금빛 잉어는 오래도록 잘 살았을까?" 하고 그 뒷이야기를 혼자 상상해보는 즐거움이 남는다.

  • 26.08.19 19:56

    중국 한나라 때의 악부시(漢樂府詩)인 음마장성굴행(飲馬長城窟行)은 만리장성에 부역을 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마음을 담은 시이다.

  • 26.08.19 19:57

    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나그네 멀리서 찾아와 나에게 두 마리 잉어를 전해주었네.)
    呼兒烹鯉魚, 中有尺素書.
    (아이 불러 잉어 배를 가르게 하니, 그 속에서 한 자 크기의 비단 편지가 나왔다네[魚中尺素].)
    長跪讀素書, 書中竟何如?
    (무릎 꿇고 앉아 그 비단 편지를 읽으니, 편지에는 과연 무슨 글이 쓰였던가?)
    上言加餐飯, 下言長相憶.
    (위에는 부디 '밥 잘 챙겨 드시오'라 하였고, 아래에는 '늘 그리워합니다'라 적혔었네.)

  • 26.08.19 19:59

    ​鯉魚傳書 / 魚書는 이 시 전체의 내용(잉어가 편지를 전해준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편지'나 '소식'을 뜻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魚中尺素는 시 구절 중 "中有尺素書(그 속에 한 자 크기의 비단 편지가 있네)"에서 직접적으로 나온 표현이다.

  • 26.08.19 20:01

    雁書魚信(안서어신)
    ​은 기러기가 전하는 편지(雁書)와 물고기가 전하는 편지(魚信)가 합쳐진 말이다.
    ​이 중 '안서(雁書)'의 직접적인 출전은 반고(班固)가 집필한 역사서《한서(漢書)》 권54 <소무전(蘇武傳)>이다.

  • 26.08.19 20:01

    흉노에 19년 동안 사로잡혀 있던 한나라의 충신 소무(蘇武)를 구하기 위해, 한나라 사신이 흉노의 왕(선우)에게 지혜를 내어 말하는 대목이다.

  • 26.08.19 20:02

    ​漢天子獵上林苑, 得白雁, 足有繫帛書, 言武等在某澤中.
    (한나라 천자께서 상림원에서 사냥하시다가 흰 기러기를 잡으셨는데, 그 발에 비단 편지가 매여 있었소[雁足繫帛書]. 거기에는 소무 등이 아무 못가에 살아있다고 적혀 있었소.)

  • 26.08.19 20:03

    ​雁書 (안서)는 이 소무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기러기가 전하는 소식(편지)'을 뜻하게 되었다.
    ​雁書魚信 (안서어신)은 소무전의 안서(雁書)와 음마장성굴행의 어신/어서(魚信/魚書)가 결합하여 '멀리서 주고받는 서신이나 아련한 소식'을 종합적으로 이르는 성어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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