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싱겁게 끝난 야구였다. 모든 사람들이 열광하는, 약자가 아둥바둥 거리며 힘겹게 승리한 속칭 '마리한화'의 경기가 아니였다. 선발이 제 몫을 했고, 수준급 불펜이 상대의 공격의지를 막으며 넉넉하게 기아 타선을 제압했다. 공격에서도 집요하게 상대의 에이스를 물고 늘어져, 그를 공략했다. 리그 탑 선발투수인 양현종은 아슬아슬하게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지만, 그 이후에도 적절한 시기에 점수를 뽑아 6점 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한 순간 팀에 생긴 균열을 틈타 빅이닝을 만든 게 아니라, 한 점 한 점. 착실하게 승리를 만들어갔다는 것이.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상대가 누구든 능히 제압해낼 수 있다는 기량을 보인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김성근호가 가고자 하는 강팀의 방향이 아닐까. 타선은 어느정도 완성된 것 같지만, (우리의 타자들은 사실 원래 좀 강하긴 했다.) 투수진은 갈 길이 멀어보인다. 마리한화와 신경안정제를 번갈아 복용하며, 당분간은 좌충우돌 할 것 같다.
사실 요 근래 들어 가장 인상적인 뉴스는 특타에 대한 소식이었다. 부진에 빠진 선수들은 계속해서 특타를 한다. 사실 성적이 나쁜 선수들만 특타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타격폼이 흔들린 선수들이 특타를 하는 것이다. 짧은 연습을 통해서 기량을 추가로 향상시킨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사실 짧은 시간의 특타를 통해서 기량을 향상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원래 가지고 있던 기량을 유지할 수는 있다. 그러니까 타격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타자였던 테드 윌리엄스의 <타격의 과학>을 보면 연습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게 참 재미나다. 슬럼프란 자신이 유지하고 있던 타격 폼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이고,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생겨나는 것이라는 거다. 이것을 이겨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문제를 빨리 알아차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연습을 하는 것이라 말한다. 자율야구가 연습을 많이 하지 않는 야구가 아니다. 엄청난 연습량을 스스로 소화해내는 것이 자율야구인 것인데, 학원식 교육에 익숙한 우리 나라의 선수들이 자율야구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김성근식 훈련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감독님의 훈련량은 많은 편이다. ;;)
김태균에게 기복이 있고, 정근우가 시즌 초반 부진해도. 나는 결국 그 선수들은 부상만 아니라면 제 기량을 발휘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최진행과 김태완이 커리어 하이의 기량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무척 흥미진진하다. 이제 막 포텐셜이 움찔거리고 있는 김회성의 활약도 아주 기대된다. 올시즌 타자쪽은 견적이 대략 나온 것 같다. 감독님이 하위타선을 쥐락펴락 하며 부리는 마법도 상당히 볼만하다.
문제는 투수다. 사실 시즌 초에는 감독님이 아직 우리 투수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우리 투수들을 아직 더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타자들은 사실 원래 갖고 있던 기량만큼만 해줘도 리그 상위권이지만, 객관적인 투수들의 역량은 그렇지 못했다. 투구 폼을 조금씩 수정하며, 다양한 상황에 대처가능한 기량을 갖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다. 그럼에도 늘어난 투수진 뎁스를 보면 배부르다.
선발 : 유먼, 탈보트, 배영수, 안영명
스윙맨 : 유창식, 송은범, 송창식, 이동걸
필승조 : 박정진, 권혁, 윤규진
추격조 : 김기현, 송창식, 이동걸, 정대훈, 김민우
그리고 2군에도 기회를 벼르고 있는 장민제, 송창현, 허유강 등 패기 넘치는 선수들이 그득하다. 투수진은 사실 아직 혼돈의 아노미 상태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것을 뽑아보자면, 4월에 우리는 리그 탑 수준의 마무리 윤규진을 얻었고, 리그 탑 수준의 선발 안영명을 얻었으며, 리그 탑 수준의 중간계투 권혁과 박정진을 얻었다. 사실 우리 선수들이 이런 성적을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감개무량하다.
사실 지금 우리 투수진의 형상은 얇은 머리와 두터운 몸통이라 할 수 있다. 안영명과 유먼으로 요약되는 믿을 맨 2명. 그리고 탈보트, 유창식, 배영수, 송은범, 송창식으로 이어지는 기대주. 5명. 몸통이 두텁긴 해도, 아직은 실속이 없다. 현재로썬 포텐셜 덩어리라고 밖에 평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이 두꺼운 몸통을 보면 자꾸 묘한 기대에 빠진다. 선발이 안정되는대로 우리의 성적에 반영되게 된다. 제일 먼저 기대되는 사람은 아무래도 배영수와 탈보트다. 이 두사람이 자리를 잡으면 4선발이 안정된다. 유리멘탈 은범이는 언제쯤 한화를 제집처럼 느낄까. 7억팔 유창식은 언제쯤 기대받은 포텐셜을 터트릴까. 송창식은 이제 맘 놓고 공을 던져도 될 만큼 건강해 졌을까. 외부에서는 알수 없다. 우리 감독님과 코치진을 믿고 기다리는 수 밖에.
갑툭튀를 말한다. 김성근 감독님이 맡은 팀에서는 갑자기 기량이 쭈욱 올라와서 결정적인 팀의 성적을 상승시키는 투수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투수는 벌써 나왔다. 안영명과 윤규진이다. 송창식의 선전도 사실 시즌 초반에 기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제 기존 선수들만 기대만큼 해주면 된다. 분명한 것은 아직 우리 팀은 만들어가야 할 게 많은 팀이라는 것이다.
투수조는 당분간 좌충우돌 할게 뻔하지만, 그럼에도 기대가 된다. 지금 보여준 성적만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7월에 권혁과 박정진의 체력 저하로 퍼져야 하는 팀이 맞다. 하지만 밑에서 근질근질 터질 것 같은 포텐셜을 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툭툭 선수들이 튀어나와 7월에는 지금과 전혀 다른 투수진이 형성되어 있을 것만 같다. 조인성의 복귀와 더불어, 이제 투수진의 윤곽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제 5월이다. 야구하기 정말 좋은 계절이 아닌가.
요즘은 야구 보는게 정말 즐겁다.
첫댓글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김성근 감독이 선수들 여름되가고 퍼질때쯤 되면 벤치에서 파딱 파딱 (정확이 이렇게 말씀함) 선수를 바꿔가면서 돌려막기를 해야한다고 했습니다.그건 벤치에서 해줘야할 책임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려면 뎁스가 당연 되야 가능한데 현재 점점 두꺼워지는걸 느낍니다.두달뒤에는 엄청난 활약을 하는 선수가 지금과 또 다를듯.. 요즘 한화야구보면 호기심이 일어나고 즐겁습니다.
지금까지 경기 운영을 보면, 5~6월에 새로운 선수가 툭 하고 튀어나오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인 듯 합니다. 그런데 이게 다른 팀에서는 몇 년을 고생해서 겨우 만드는 육성인데, 고작 반년 만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비상식적인 일이라는 거에요. ;;; 참나. 이래도 되는 건지원. 저희들은 좋지만 말여요. ^^
한화 야구 중독이지만 나키님의 경기 감상글이 더 중독 되네요..감사하고 사랑합니다 ㅎㅎㅎㅎㅎ
윽. 감사합니다. ㅎㅎㅎ
좋은 글입니다. 저도 투수진에서 포텐 터질 선수들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상태의 운영이라면 박정진, 권혁 선수도 여름에 퍼질것 같지는 않습니다. 무리하는 듯 보여도 절대로 무리하지는 않는것 같습니다.
음. 사실 지금 수준으로 계속 운영된다면, 여름에 힘들 것 같긴 합니다. 뭐 그래도 대비책이 있으시겠죠. ㅎㅎ 제 생각엔 그래요.
지난 sk전에서 실점을 했지만 배영수 공이 좋아보였습니다. 내일 어찌 던질지 기대하고요. 불펜에서 박정진 권혁 쏠림 현상만 해결하면 될 것 같아요. 요즘 정대훈 김기현 등판이 늘어나고 있어 다행입니다. 서산에 있던 최영환 박한길을 데리고 다니며 지도한다는 기사를 봤는데 우완 강속구 불펜투수를 준비 중인 것 같네요.
이래저래, 투수 진은 아직 혼란의 아노미지만. 그 만큼 기대되는 게 많아서 시간 가는게 참 즐겁습니다. ^^ 최영환 선수 터지면 좋겠어요. ㅎㅎ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깊이가 있네요...
감사합니다. ^^
잘 읽었습니다. 이제는 박정진 권혁 선수가 나오면 그냥 오늘 이겼네 하는 익숙함에 놀랬네요. 사람은 참 간사한 것 같아요.
맞아요. 저도 요즘 저의 간사함에 아주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ㅎㅎㅎ
전 5월 중순이후 투수쪽에서 피로감, 날씨로인해 문제가 나올 것 같은데... 감독님도 예상하고 있더군요. ㅎ 그때 어떻게 슬기롭게 넘어갈지 기대가 됩니다.
애초에 144경기를 치룰 선수진을 우리가 만들 수 있느냐. 스프링 캠프 때 부터 이것 부터 먼저 염두하고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6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뎁스 전쟁으로 돌입할 텐데요. 우리팀이 은근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빨리 투수들이 툭툭 튀어나와주면 좋을텐데요. ^^
송창현선수가 갑툭튀가 될수도 있겠다시퍼요ㅎ
윽. 송창현 선수 기대합니다 ㅎㅎ
좋아요 글 너무 좋아요... 날씨도 좋고... 나키님덕분에 더욱 행복한 오늘이에요~~
오늘 날씨 정말 좋네요. ^^ 감사합니다.
나키님 건의 사항 하나 드릴게요. 제목에 나키님만에 색깔을 좀 넣어주시면 좋겠습니다..가능하실런지요 ㅎㅎ;;
2222
음. 처음 건의사항이지만 정중히 거절합니다. ^^;; 그냥 편하게 글 쓰고 그러는게 좋을 거 같아요. 편하게 읽고 편하게 대화하구요. ^^
@나키 ㅠㅠ
@산본이글스 편하게 대화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은 마음 써주신 거 알아요. 감사합니다. ^^;;
고개가 끄덕여지는 글. 좋은 글 감사드려요...^^
투수진에서 유독 돋보이는 기대가 된다는 문구~ 그 기대가 현실이 되는 시점이면 우리 순위는 좀 더 위에 있을 수 있겠죠?^^
김 감독의 릴리스포인트, 니시모토 코치의 중심 이동 및 변화구, 정민태 코치의 변화구 등등 이미 알려진 투수 조련 노하우만 해도 엄청나서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