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대학 입학을 눈앞에 두고 있던 94년 초.
장소는 청주의 어느 조그만 소극장.
친구와 함께 길을 걷다가 올려다 본 극장간판. 어떤 야한 영화가 상영중이었고, 그 영화가 끝나고 동시상영으로 이어졌던 영화.
영화관안엔 나와 내친구, 앞쪽에 남자 한명, 맨 뒤쪽에 남자하나.. 이렇게 총 4명.
드라마를 보면서도 툭하면 울고, 책보다가도 울고, 만화보다가도 우는.. 나름 감수성이 풍부한 나지만..
영화관에선 울어본 기억이 없는데, 그건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의식때문인듯.
그러나 영화관에서 유일하게 눈물을 찔끔거렸던 영화. 아마도 다른 관객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에서도 졸딱 망한 영화이지만.. 이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의 배경은 그야말로 엄청났었다.
당대 최고의 감독과 배우의 조합이라는 이유로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이 영화 직전에 찍었던 <용서받지 못한 자>로 클린트 이스트우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으면서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최고의 평가를 받게 된다.
그리고 주연으로 참여한 케빈 코스트너. <용서받지 못한 자>가 아카데미를 받았던 1년전. <늑대와 함께 춤을>이란 영화로 역시 아카데미를 싹쓸이하며 일약 당대 최고의 남자배우로 떠오르게 된다.
당시 그의 인기는 꽤나 좋았는데.. 오죽했으면 그 혹평을 받은 <보디가드>가 1억불 이상의 흥행을 기록했던 원인이.. O.S.T와 케빈 코스트너덕이라는 말까지 있었을까..
이 영화는 미국보단 유럽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권위있는 영화잡지로 유명한 프랑스의 '까이에 뒤 시네마'는 올해의 영화 1위로 '퍼펙트 월드'를 선정하기도 했다.
영화의 스토리는 무척 단순하다. '아버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낸 케빈 코스트너는 어려서부터 사고를 치면서 소년원에 들락거렸고, 이번에도 감옥에 수감되있는데.. 동료와 함께 탈옥에 성공, 헤어져서 도망을 치던중 가정집에 들어가게되는데.. 거기엔 역시나 '아버지가 없이'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자아해가 있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그 아해를 인질로 삼게 되고 둘은 여행(?)을 떠나게 된다. 물론 결말은 정해져있는 여행이지만..
케빈 코스트너를 뒤쫓는 보안관으로 나오는 사람이 클린트옹.. 그를 보좌하는 역할로 나오는 사람이 로라 던.
케빈 코스트너가 탈옥에 성공해서 남자아해와 도망가는 길은.. 바로 텍사스주.
때는 아마도 1963년(?...!!).
평론가들은 케네디의 암살과 연관지어 .. 아버지 없는 아해, 아버지 없는 탈옥자, 아버지 없는 미국.. 머 어쩌구 이러면서 말을 하던데..
그런건 둘째치고 그냥 단순히 스토리만 따라가도 상당히 재미있는 영화임.
어머니에 의해 제대로된 어린시절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남자아이. 아버지없이 커왔지만 언제나 꿈꾸는 완벽한 세상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하는' 세상이라는 케빈 코스트너.
그런 그를 어려서부터 지켜봐왔지만 결국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이 안타깝게 쳐다만 보는 클린트옹.
영화는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보는 사람들이 그리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해주면서 진행이 된다.
거기에다 로드무비형식을 띠고 있는 터라 지나가는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당시 어리고 철없던 나는..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날줄 알았다. 분위기는 잔뜩 그렇게 흘러가지만 한순간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 아픔.
총잡이의 거시기에 분노의 니킥을 날리던 로라 던의 심정은.. 영화를 지켜보던 관객이라면 다들 동감할 것이다.
본지 10년이 넘은 영화. 또한 그뒤로 한번도 다시 보지 않았던 영화.
그러나 희미한듯하면서도 기억이 나는 영화. 나의 올타임 베스트에 세손가락에 끼는 영화.
클린트옹... 오래오래 살아서 좋은 영화 계속 만들어주길 바랍네다.
p.s:당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일밤의 <인생극장>(이휘재의 '그래 결심했어!'로 양극의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던 그 코너)에서 .. 이 케빈 코스트너가 죽는 장면을 패러디했었죠.
친구랑 일밤을 보다가 그장면을 보고.. 아니 저건! 하고 소리쳤던 기억이..
첫댓글 크흠, 느림보님 남자친구랑 야한 영화보러다니는 취미가...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