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총림 해인사
1695년부터 일곱차례 큰 불
이후 가야산 곳곳 소금단지
100년 이상 이어온 전통
산정상 오방에 묻고 의식도
영축총림 통도사
1756년 중로전 全 전각 전소
이후 단오절마다 용왕재 의식
전각 주두에 소금단지 올리고
단옷날 양기 화기 누그러뜨려
지난 13일 해인총림 해인사 대중 스님들이 남산제일봉 일대와 해인사 경내에 소금을 비장하는 의식을 봉행했다. 해인사 주지 선해스님은 “가야산 산림과 팔만대장경을 보유한 해인사를 보존하는 의미있는 의식”이라고 강조했다. |
음력5월5일인 지난 13일은 단오절이다.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五節) 단양(端陽) 등으로 불리는 단오는 일년 중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날이다. 사찰에서도 매년 단오절마다 독특한 풍습을 잇고 있다. 해인사 대중 스님들은 남산에 소금을 묻는데 화기를 누른다는 뜻이다. 통도사에서는 이날 구룡지에 단을 차려놓고 그 위에 수많은 소금 단지를 진열하고 용왕재를 지낸 다음에 각 전각의 주두 위에 놓여 있던 이전의 소금단지를 내리고 새것으로 올리는 의식을 한다. 해인사와 통도사의 단오행사 현장을 찾아갔다.
해인총림 해인사(주지 선해스님)에서는 음력 5월5일 단오를 맞아 화마로부터 산림과 사찰을 지키자는 염원이 담긴 ‘화재 액막이’ 소금단지를 묻는 의식을 치렀다. 지난 13일 아침 6시30분. 주지 선해스님을 비롯한 해인사 스님들은 대적광전 앞에서 오랜 세시풍속인 소금단지 묻기 의식을 시작하여 경내 우화당과 봉황문 등에 이어, 큰절 경외인 원당암 입구와 가야산마애불, 매화산 남산제일봉 등 총 12곳에 소금단지를 묻었다. 100년 이상 이어져온 이 행사는 장소가 외부에 알려지면 효험이 없어진다고 해 그동안 외부에 알리지 않고 사중에서 비의(秘儀)로 진행하다 몇 년 전부터 일반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화마로부터 산림.가람안녕 염원
해인사 스님들이 지난 13일 남산제일봉에서 소금단지를 묻는 의식을 올리는 모습. |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해인사 큰절과 마주하고 있는 매화산의 남산제일봉. 해인사 대중과 가야산국립공원관리소 직원, 가야면민, 근래 이 행사가 알려지면서 관심을 갖고 일부러 찾아온 불자 등 200여 명이 해발 1010m의 매화산 남산제일봉에 올랐다. 봉우리 정상 5곳 오방(五方)에 소금단지 묻기와 함께, 불꽃이 피어나는 형상의 남산제일봉 화강암 바위 사이사이에 한지로 감싼 소금봉투를 곳곳에 비장하는 의식을 치렀고, 특히 금년행사에서는 '남산제일봉' 표지석을 건립해 제막식을 갖기도 하였다. 표지석 석재는 가야면청년회에서, 글씨는 주지 선해스님이, 이날 필요한 물품과 다과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각각 맡았다.
의식을 마친 후 해인사 주지 선해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비전되어온 이 의식을 공개하고 공유하는 까닭은 전통적으로는 가야산 산림과 팔만대장경을 간직한 해인사를 화마로부터 보호하려는 염원에서이지만, 바람직한 세시풍속의 재해석으로 해인사와 지역민, 그리고 가야산국립공원을 지키는 관리공단 직원들이 모두 대동단결하는 다양한 축제의 문화행사로 적극 확대발전 시키고자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새로운 지역문화행사로 재창출”
해인사 홍보국장 종현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해마다 해인사에서 단옷날 소금단지를 곳곳에 묻는 유래는 해인사 창건 이후 사찰 역사를 기록한 ‘해인사지(海印寺誌)’에 있다. 해인사는 1695년부터 1871년까지 176년 동안 7차례에 걸쳐 큰 불이 나 피해를 입었다. 풍수지리에 따르면 해인사 남쪽에 위치한 남산제일봉이 불꽃 형세의 화산(火山)이기 때문에 정면으로 위치한 해인사로 화기가 날아들어 불이 자주 났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1817년 여섯 번째 화재 이후 대적광전을 재건할 때 좌향이었던 건물 방향을 서쪽으로 돌리기도 했다. 이즈음부터 남산제일봉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바닷물로 불기운을 잡는다는 뜻에서 소금 단지를 묻었다. 이후 큰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단오에 소금을 묻는 것도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에 소금을 묻어 화기를 누르기 위해서다.
또 소금단지를 묻되 화재를 진압하는 것은 역시 바닷물이므로 준비한 물을 충분히 부어 소금물 즉 바닷물로 만드는 발상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남산제일봉에서 의식을 마친 스님들은 해인사에서 하안거 정진중인 선원스님들과 가야산국립공원사무소, 가야면청년회원들과 함께 이곳 매화산에 위치한 해인사 말사 청량사로 향하여 선방 대중공양을 행한 뒤, 다시 해인사 대운동장에서 회동해 친선 축구경기를 가졌다.
해인사선원에서 하안거 정진중인 수좌 원전스님은 남산제일봉에서의 의식을 지켜본 뒤 “전통을 합리라는 이름으로 무시하기보다는 ‘전통보존의 전통’의 중요성을 인식해, 우리 전통문화가 건재한 사찰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보루 혹은 귀결처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권순학 경남지사장
용왕재 마치면 전각 주두에 소금단지
영축총림 통도사 대광명전에는 화마를 다스리는 게송이 걸려 있다. 소금을 가리켜 ‘바닷속에 계시는 분’이라는 표현으로 빗대고 있다. |
‘우리집에 한분의 손님이 계시니(吾家有一客), 바로 바닷속에 계시는 분이다.(定是海中人) 하늘에 넘치는 물을 입에 머금어(口呑天漲水), 능히 불을 소멸할 정신이다.(能殺火精神)’ 영축총림 통도사 대광명전의 평방 중앙에는 화마를 다스리는 이같은 게송이 수호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영축총림 통도사(주지 원산스님)는 1756년 10월 중로전의 대광명전을 비롯해 법당4위, 숙소4동, 창고10칸 등 중로전의 모든 건축물이 전소돼 잿더미만 남게 됐다. 화마가 휩쓸고 간 뒤 잿더미로 변한 가람을 바라보면서, 당시 스님들은 망연자실하여 감히 다시 지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천신만고 끝에 대광명전과 전소된 모든 도량을 2년만에 다시 중수하고 단청불사까지 마쳤다. 통도사 기록에 따르면 “이는 인력(人力)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불보살님과 신장님이 도와서 가능한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화마로 큰 대가를 치른 통도사는 언제부턴가 음력 5월5일 단오절이 되면 화마로부터 사찰의 목조건축물을 지키기 위해 소금단지를 전각의 주두 위에 모시는 용왕재 의식을 봉행해왔다. 통도사 창건설화에서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구룡지에 재단을 차려놓고 그 위에 소금단지를 진열한 다음 용왕재를 치르고 난 뒤 통도사 전 전각의 네 모서리 주두 위에 소금단지를 올려놓는다. 이 행사는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단옷날에 화기를 누르기 위한 행사로 통도사 주지 원산스님을 비롯하여 사부대중과 신도들이 동참하여 정성껏 용왕재를 마치고 따로 마련한 소금봉지를 나눠 갖기도 한다.
이처럼 용왕이 물을 머금어 화기를 누르고 용왕재를 지내온 이후로는 통도사에서 큰 화재의 기록이 없다. 화재로부터 통도사의 건물이 소실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바닷물로 불기운을 잡는다는 전통이 계속 이어져온 이유다.
신도들 집집마다 소금봉지 걸어
통도사 전각마다 주두에 새 소금단지를 봉안하는 의식을 올린다. |
통도사 주지 원산스님은 “최근 엄청난 댓가를 치르고 복원한 숭례문의 화재를 교훈으로 삼아 사찰의 목조건축물은 화재로부터 예방이 최상의 보존방식이다”며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을 계승함으로써 옛 조상들의 지혜로운 삶과 화재예방의 경각심을 항상 일깨워서 우리 문화유산을 온전히 보존하고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용왕재에 참석한 보현화 씨(54, 울산)는 “재를 지내는 동안 숭례문 화재와 같은 불행한 재앙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며 “오늘 받은 소금봉지를 집에도 걸어두고 항상 불조심을 상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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