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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자유롭게 글쓰기 영화 '天과 地와' 의 전투
카이사르씨 추천 0 조회 319 07.07.19 10:27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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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7.19 12:34

    첫댓글 저도 이영화 소장하고 있는데 자막이 없어 아쉽더군요

  • 07.07.19 19:38

    영화의 단점이라고 하면.. 우선적으로 창병대의 모습이군요.. 예행연습은 하기나 한건지.. 전국시대 기준으로 본다면.. 전혀 훈련받지 못한 부대네요..ㅋㅋㅋ 창병대의 움직임이 허술한것이 단점인것 같습니다.. 캬~ 마지막에 그 유명한 우에스기 겐신의 에치고 기마대 모습이 인상적이군요..

  • 작성자 07.07.19 19:54

    야리는 저렇게 쓰는 것 아닌가요?

  • 07.07.19 21:00

    당시 일본의 장창은 천과지 영화같이 쓰는거 맞는데요 일본전국시대에 관한책을본적있는데 당시 일본장창은 찌르기와 함께 내려치는 동작도 매우중시했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좀 부러운 전쟁영화이긴 하죠 우리나라는 저런 고대전쟁영화가 하나 없으니

  • 07.07.20 01:04

    갑양군감을 보면 내리치기가 주용도입니다. 그것도 집단인 대가 일사분란하게 말이지요.. 영화속에서는 그런 부분이 없어서.. 엉성하다고 평가한것입니다.

  • 07.07.20 02:38

    밀리터리 나그네님이 맞긴 합니다만 사실 신단수님도 제대로 말씀하셨습니다. 장창대가 일사분란하게 할 여건이 위 영화, 하치만바라 전투에서는 아예 할수조차 없었습니다. 2만 가까이의 사람들이 말 그대로 칼질부터 하는 말 그대로 에네르기가 밀집되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데 장창을 일제히 내리찍거나 찌르다간 다 죽고 말 테니까요.

  • 07.07.20 02:23

    그리고 제가 아쉬운 것은 아직 3단철포대 전술이 나오기 8년 전인데 (사실 3단철포대는 오다 노부나가의 독창적인 전술이 아니라 네고로, 사이카 철포대가 1570년 처음 실전응용) 벌써 3단철포대의 모습이 나온다는 점이죠. 또한 하치만바라 혈전은 검술전이 대다수였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동원한 철포 숫자는 아마 실제 전투와 거의 비슷할 겁니다. 양측 합쳐서 한 4백정 이상은 동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만 하더라도 아직 30만정까지는 생산이 안 된 1561년이기 때문)

  • 07.07.20 02:50

    그 3단 철포술에 대해서는.. 좀 말이 많더군요.. 일본에서 말입니다.

  • 07.07.20 02:31

    스와 대명신의 사제단 나름대로 고증이 잘 된 영화입니다. 글 올리신 분께서는 기마전투가 별로인 듯 합니다만. 전 대단히 맘에 드는군요. 뭐 개인 차이긴 합니다만. 확실히 잘 만든 영화 중 하나이고 카케무샤까지 비교한다면 더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우에스기 하타모토 기마대가 적진을 돌파하는 장면은 꼭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시마즈 1천 5백명이 동군 7만 5천명을 돌파해버린 '시마즈의 돌격'을 보는거 같습니다.

  • 07.07.20 02:51

    2천명 병력이 아니었던가요? 세키가하라때 시마즈 요시히로의 그 유명한 시마즈의 후퇴 말입니다. 기록에는 분명하게 시마즈의 후퇴라고 적혀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그렇게 기록한것으로 압니다.

  • 작성자 07.07.20 10:13

    제가 알고 있기로는 적어도 일본 전국시대에는 전장에서 기마돌격이란게 없는 것으로 압니다. 일본 지형이 산지가 많아 기마전투에 불리하다는 점도 있지만, 일본 토종말이 너무 왜소하고 힘도 약해 기마로 쓰기에는 부적합합 한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하더군요. 기마대로 유명한 다케다군도 전장에서 기마를 사용할 때는 예비대로 대기해있다 전투의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타고 목표지점으로 신속히 이동한 다음 下馬해서 싸웠다고 합니다. 신속한 이동과 함께 전장으로 달려가야 할때 들 체력손실을 줄이기 위해서지요.

  • 07.07.21 01:22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시마즈군은 세키가하라 전투에 이주인의 난 때문에 1천 6백명만 파견합니다. 그리고 시마즈의 후퇴가 아니라 돌격이라고 전 들었는데 뭐 서로 용어 파악에 오해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제가 잘못 알았을 수도 있겠고요.

  • 07.07.22 00:41

    시마즈의 후퇴,,라는게 맞을 겁니다. 제가 알기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이었던 시마즈 요시히로가 서군이 우세해지자 상대방 진영을 돌격을 해서 돌파한 뒤에 그대로 자기 영지로 퇴각한 거니까요. 즉 퇴각을 위해서 돌격을 한 것이니 시마즈의 후퇴라는 말이 옳을 겁니다.

  • 07.07.21 01:45

    카이사르님의 말도 사실입니다. 일본의 토종마는 너무 빈약해서 청일전쟁때 평양공략전 당시 기병대가 전멸하는 바람에 정찰없이 전투를 벌였고 결국 오시마 혼성여단이 마옥곤의 의자군에 밀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족이지만.. 또 다케다 군단의 기마대도 평소에는 대체적으로 그 방식대로 싸웠지만 가와나카지마나 나가시노 철포전에서는 예외적으로 기마상태 그대로 전투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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