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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좋은글 하나님이 계신 천상옥경에 다녀온 김형렬
동그라미 추천 0 조회 41 25.09.13 11:16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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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5.09.13 11:21 새글

    첫댓글 道典 2:60) 없는 말로 조작하는 난법자들의 종말

    참된 말은 하늘도 부수지 못하나 없는 말을 거짓으로 꾸며대면 부서질 때는 여지가 없나니
    내 도(道)에 없는 법으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난법난도(亂法亂道)하는 자는 이후에 날 볼 낯이 없으리라.
    과거에는 도통이 나지 않았으므로 도가(道家)에서 음해(陰害)를 이기지 못하여 성사되는 일이 적었으나
    이 뒤에는 도통이 나므로 음해하려는 자가 도리어 해를 입으리라.


    道典 6:21) 난법자 멸망 공사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나의 도(道)를 열어 갈 때에 난도자(亂道者)들이 나타나리니 많이도 죽을 것이니라.” 하시고 가르침을 내리시니 이러하니라.

    不知赤子入暴井하니 九十家眷總沒死라
    부지적자입폭정 구십가권총몰사
    알지 못하는 갓난아이가 깊은 우물에 빠지니, 구십 가솔들이 모두 떼죽음을 당하는구나.
    또 말씀하시기를 “난법난도하는 사람 날 볼 낯이 무엇이며, 남을 속인 그 죄악 자손까지 멸망이라.” 하시니라.

  • 작성자 25.09.13 11:25 새글

    난법난도(亂法亂道): 난법난도자들의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첫째, 상제님의 종통을 계승한 고수부님을 부정하고
    둘째, 자신들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종통 및 역사를 왜곡·날조하며
    셋째, 보편적·객관적인 진리 체계를 갖지 못하고
    넷째, 때가 되면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난다는 등의 논리로 성사재인(成事在人)의 인사(人事)적 섭리를 부정한다.



    道典 6:88) 옥황상제라 자칭하는 난법자 심판 공사

    대흥리에 계실 때 하루는 양지 몇 조각에 각기 ‘옥황상제’라 쓰시고 측간에 가시어 후지(后紙)로 사용하시니라.
    이에 한 성도가 여쭈기를 “지금 옥황상제라 쓰시어 후지로 쓰시니 어인 연고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천지에 감히 누가 이와 같이 할 수 있겠느냐?

    만일 옥황상제라 자칭하는 자가 나타나면 천지신명이 그 목을 베고 몸을 찢어 죽일 것이니라.
    이 뒤에 대도(大道)를 거스르고 패역하는 자가 있어 세상을 그르치며 백성을 상하게 할 것을 경계하는 것이니라.” 하시니라.

  • 작성자 25.09.13 11:26 새글

    @동그라미
    옥황상제라 자칭하는 자: 조철제가 자기보다 스무 살이나 나이가 많은, 상제님의 누이동생 선돌부인을 꾀어 따로 교단을 열고서, 후에 ‘음양합덕’의 논지로 자신이 ‘옥황상제’이고 증산 상제님은 ‘구천상제’라 날조하더니, 근래에 대순진리회에서는 박한경 사후 ‘삼위상제’의 논지로 ‘박성상제’라 날조했다.

  • 작성자 25.09.13 11:30 새글

    @동그라미

    道典 11:52) 통사동 재실에 들러 난법자를 꾸짖으심

    무오년에 조철제(趙哲濟)가 도통할 욕심으로 김형렬의 교단에 들어가 추종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니
    기미년에 심복 여러 명을 데리고 통사동 영모재에 찾아가 ‘도통 공부’를 시작하니라.
    조철제는 일찍이 경석이 태모님을 모시고 포교하여 그 교세가 날로 커지는 것을 보고
    자신도 태모님을 모시면 도통을 하고 신도들이 구름처럼 모여들 것이라 생각하여 조종리로 사람을 보내 시봉하기를 소원하더니

    하루는 태모님께서 연지평 박노일의 집에 가시는 길에 영모재에 들러 철제를 보시고 크게 노하여 꾸짖으시기를
    “저 개만도 못한 놈! 내가 개 죽은 자리에 앉을지언정 저놈이 저기 앉았는데 여기서 하룻밤인들 쉬어갈 수 있나.” 하시며 담뱃대로 이마를 때리시니

    철제가 이를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가며 “차경석 같은 사람이나 감당할까, 우리 같은 사람은 감당하지 못하겠다.” 하고 모시기를 포기하더라.
    그 뒤 신유(辛酉 : 道紀 51, 1921)년 삼월 삼짇날에 조철제가 다시 도통할 욕심으로 심복 여덟 사람을 시켜 상제님 성골을 도굴해 가니라.

  • 작성자 25.09.13 11:33 새글

    @동그라미
    조철제(趙哲濟, 1895∼1958): 본관 함안(咸安). 본명 철순(哲順), 호는 정산(鼎山). 경남 함안 출생. 만주 유하현에 이주하여 살다가 ‘차경석 교단’의 신도 김혁을 만나 상제님 진리를 접하고 귀국하여 보천교에 입교했다. 1918년에 김형렬 교단에 가입하였다가 그 후 도통과 도판을 석권할 욕심이 발동하여 상제님의 성골을 파헤쳐 도굴까지 범하고, 1925년 4월에 태인에서 독자적으로 무극대도교를 설립하였다.

    저 개만도 못한 놈: 조철제가 상제님의 성골을 강도질하여 대역무도한 짓을 일삼을 것을 내다보시고 하신 말씀이다.



    道典 10:138) 조철제의 상제님 성골 도굴 만행

    신유(辛酉 : 道紀 51, 1921)년 삼월 삼짇날에 이르러 조철제가 ‘상제님의 성골(聖骨)을 모시고 수도하면 큰 기운이 붙어 도통하고 교단이 크게 번창한다.’는 소문에 현혹되어
    그의 심복 권태로(權泰魯), 손진방(孫進邦) 등 장정 여덟 사람을 시켜 밤을 타서 구릿골 장탯날에 모신 상제님 성골을 도굴하니라.
    이 때 형렬은 서울에 가고 그 아내 김호연이 딸을 출산한 지 갓 사흘이 되어 사랑방에 누워 있는데
    고요한 밤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번갯불이 방안으로 들어오며 몸을 휘감

  • 작성자 25.09.13 11:36 새글

    @동그라미

    휘감는지라. 호연이 놀라 일어나 정신을 차리니 “내 몸을 도둑질해 가고 있는데 뭣들 하고 자빠졌느냐!” 하는 상제님 성령의 불호령이 떨어지거늘, 방문을 열고 형렬의 큰아들 찬문을 불러 이르기를 “불칼이 방안으로 들어와 대니 어쩐 일인지 선생님의 묘소에 좀 가 보고 오소.” 하므로, 찬문이 서둘러 장탯날에 가 보니 과연 묘소가 다 파헤쳐져 있고 도굴범들은 횃불을 들고 멀리 도망하는 중이라 쫓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니라.

    이는 조철제의 짓이라

    이 때 서울에 있는 형렬에게도 “내 몸이 이렇게 흔들리는데 너희들은 잠만 자고 있느냐!” 하시는 상제님의 호령이 들리거늘
    형렬이 즉시 김덕찬(金德燦)과 몇 명을 데리고 출발하여 이튿날 동이 틀 무렵에 집에 당도하니라.
    형렬이 대문에 들어서며 다급한 목소리로 “어젯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고 물으니
    호연이 간밤에 있었던 일을 말하매 형렬이 곧장 묘소로 달려가 구덩이를 보더니 “이는 조철제의 짓이라.” 하니라.

  • 작성자 25.09.13 11:37 새글

    @동그라미

    2절 138:2 여덟 사람. 권태로(權泰魯), 손진방(孫進邦), 김윤진(金胤鎭), 권영수(權寧秀)와 그 외 네 명. 대부분이 차력하던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다. 비가 부슬부슬 오던 이 날 김형렬 성도 종인 허연산이 기역자 손전등 불빛이 장탯날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한다.(김현식 증언)

    2절 138:2 삼월 삼짇날 저녁에 비가 좀 왔어. 그날 허연산이 저녁에 놀러 왔는디, 도둑등(기역자 후레쉬)이 그리 가. 그 아래 저수지 가생이 거가, 감나무 있는 데가 그 전에는 상여집 자리여. 고리 들어가는 길이여. 근디 거기서 불이 그렇게 가. 그래서 별일이다, 하고 인저 우리집에 와서 인자 저녁에 그 말을 안하고, 식전에 그 말을 해서 가 보니께 파 가 버렸어.(김현식 증언)

    3절 138:3 딸. 이 때 태어난 딸이 첫째 딸 소지다.

  • 작성자 25.09.13 11:44 새글

    道典 10:140) 임술(壬戌 : 道紀 52, 1922)년 정월 23일에 그 두 사람이 다시 공신을 찾아와 “조철제가 상제님의 성골을 도굴하여 영모재에 숨겨 두었는데 내일 새벽에 북간도로 모셔 간다.” 하거늘

    일찍이 공신이 고부경찰서에 갇혀 있을 때 ‘공신아, 내 몸이 조선을 떠나면 안 되느니라.’ 하신 상제님 말씀이 불현듯 되살아나는지라
    법적 절차를 밟아 성체를 모셔오려고 하니, 공신의 제자 양주선, 민영두, 박노규, 이기선 등이 서둘러 영모재를 습격하자고 강력히 주장하매
    20여 명을 거느리고 석 자가 넘는 각목을 챙겨 통사동으로 찾아가니라.

    영모재에 도착하여 문지기 넷을 때려눕히고 방으로 들어가니 조철제는 이미 도망하고 피우던 담뱃불이 채 꺼지지 않았거늘
    공신이 이중벽 속에 숨겨 둔 성골을 찾아 집으로 모시고 와 보니 뜻하지 않게 현금 만여 원이 들어 있더라.


    공신이 현금은 경찰서에 가져다 주고 찾아온 성골을 천장 위에 은밀히 모시다가 운산리 신경수의 집으로 옮겨 용마루 속에 모시거늘
    이 과정에서 성골 가운데 왼팔 뼈가 없음을 확인한 공신이 정우 등으로 하여금 다시 철제를 추격하게 하여 서대전역에서 그 일행을 붙잡으니

  • 작성자 25.09.13 11:46 새글


    철제가 왼팔 뼈를 심복 김윤진에게 주어 도망치게 하매 정우 등은 철제가 가진 현금을 빼앗으니라.
    이에 철제가 대전 경찰서에 정우 일행을 강도로 고소하매 경찰이 철제와 정우 일행을 취조하니 성골 도굴 사실이 모두 드러나는지라
    공신과 장남 광옥(光玉)을 비롯한 정우와 철제 등 20여 명이 검거되어 공신은 7년 징역에 처해지고 철제는 되찾은 돈으로 뇌물을 주어 곧 풀려나니라.
    이 때 수산도 독립 자금 후원의 죄로 공신과 함께 대전 형무소에서 7년을 복역하니라.


    조철제는 서대전역을 거쳐 경상도로 가려고 하였는데 서대전 가서 늘 쉬는 시간이 많으니까 쫓아와서 기차 안과 광장에서 싸움이 났었다. 그러다 일경한테 전부 폭력집단으로 붙잡혀 갔다. 그러니까 조철제 쪽에서 사람을 패고 돈을 뺏아갔다고 신고를 하니 문공신은 거기에는 가지 않았는데도 주모자로 끌려갔다.(이우인 증언)

    15절 140:15 문광옥(文光玉, 1902∼1983). 본명 기남(奇男). 문공신 성도의 장남. 광옥은 이 사건으로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16절 140:16 7년을 복역. 문왕이 유리(羑里)에 7년간 유배된 것처럼 문왕 도수를 맡은 문공신 성도는 7년 동안 서대전 형무소에서 영어(囹

  • 작성자 25.09.13 11:52 새글

    @동그라미 圄)의 몸이 된 것이다.


    道典 5:222) 공신에게 어천 후 성체를 부탁하심

    이 때 다른 사람은 모두 석방하고 상제님과 공신만 남겨 두니 공신은 구둣발에 채인 곳이 덜 나은 까닭이라.
    상제님과 공신이 함께 고채에 채워져 있는데 하루는 상제님께서 문득 눈물을 흘리시며
    “공신아, 너는 자식이라도 있지 않으냐. 나는 죽어서 뼈가 일본으로 갈지, 만주로 갈지…. 나는 자식이 없으니 누가 찾을 것이냐.

    내 몸이 조선을 떠나면 안 되느니라. 내가 죽은 뒤에 백골이라도 전라도에 묻혀야 할 것 아니냐.” 하시니라.
    이에 공신이 “아들 없는 게 무슨 걱정입니까. 제가 있지 않습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그럴런가나.” 하시고 더 말씀치 않으시니라.

    앞으로 시두(천연두)로 4,5년 과정에서 난법단체들이 뿌리 뽑히게 된다. 우주1년에 한번있는 우주의 여름과 가을로 바뀔때 영원히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그들 단체가 중고등학교가 있고, 대학교가 있고, 병원이 있고 해서 떵떵거리지만, 그들 뿐만아니라 그들 조상들까지도 뿌리뽑히게 되는 것이다.

  • 작성자 25.09.13 11:54 새글

    @동그라미

    道典 6:21) “나의 도(道)를 열어 갈 때에 난도자(亂道者)들이 나타나리니 많이도 죽을 것이니라.” 하시고 가르침을 내리시니 이러하니라.

    不知赤子入暴井하니 九十家眷總沒死라
    부지적자입폭정 구십가권총몰사

    알지 못하는 갓난아이가 깊은 우물에 빠지니, 구십 가솔들이 모두 떼죽음을 당하는구나.
    또 말씀하시기를 “난법난도하는 사람 날 볼 낯이 무엇이며, 남을 속인 그 죄악 자손까지 멸망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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