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분수를 알아야 한다
양파를 낱개가 아닌 자루로 사다 보면 절반도 먹지 못하여 싹이 돋고 빈 쭉정이가 된다. 그냥 쓰레기로 나갈 수밖에 없다. 많이 사면 도맷값으로 싸다고 그러는데 소비를 못하고 중간에 버리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 비싸다. 감자도 박스로 사고 수박도 제일 큰 덩이로 사다보면 감자는 결국 중간에 싹이 트고 점점 길쭉하게 올라와 시들시들해져서 버려라 한다. 수박도 냉장고 속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구박받다가 폐기처분 된다. 그러다 보면 우스운 사람 실없는 사람이 된다. 헛똑똑이가 된다. 구입과 소비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소비능력과 어느 정도는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분수를 알아야 한다. 지나친 무리수는 좋을 리가 없다. 가족이 많으면 괜찮겠지만 딸랑 두 식구로 많이 사면 싸게 살 수 있다고 한꺼번에 사들이는 것은 결과적으로 볼 때 싼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너무 약삭빠르다 한눈파는 줄을 몰랐다. 하나는 알면서 둘은 모르는 것과 다름 아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돌아앉으면 뒤통수에 눈이 없어 보이지 않는다. 멀고 먼 장벽이나 다를 것 없다. 적당한 거리에서 똑바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마음을 굳게 닫으면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말도 들어오지 않는다. 한 쪽이 닫히면 진심도 통할 수가 없다. 말하는 사람도 중하지만 듣는 사람도 중하다.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가 오가야 서로 이해하며 소통이 된다. 마음과 마음이 통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귀를 막으면 들릴 리가 없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어도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데 곁눈질에 대충대충 보고 들으면 제대로 들어올 리 없다. 삐딱하게 보면 삐딱하게 보이기 십상으로 올곧게 보이고 보아야 한다. 그래야 참모습을 보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야 제대로 전달되고 받아들여 다음 수순으로 넘어가기 쉽다. 눈을 가리면 귀를 막으면 가까워도 가까운 것이 아니다. 다만 감을 잡거나 추측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되면 서로 답답해서 헤매게 된다.
아무리 좋은 재료에 훌륭한 솜씨로 음식을 만들어도 너무 짜거나 싱거워서 간이 제대로 맞지 않으면 제 맛이 나지 않는다. 사람마다 식성이나 취향이 달라서 똑같지 않다. 매운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심한 국물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기본바탕은 있어야 한다. 갖출 것은 갖추어야 한다. 음식이 마음만으로 만족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솜씨만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의 기준치에 구색을 맞춘다고 한다. 때로는 큰 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때보다 작은 속삭임이 더 똑똑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만큼 긴장하고 마음을 모으면서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귓속말을 한다고 한다. 군더더기는 빼고 꼭 필요한 말만 오고 간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들리면 대수롭지 않거나 당연한 것처럼 여기면서 건성건성 지나치며 무관심하기 쉽다. 그러나 속삭이듯 하면 오히려 궁금하여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말은 강약의 파장에 따라 사뭇 달라진다.
그래서 같은 말이지 싶어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면서 때로는 말 한마디가 씻을 수 없는 큰 상처가 되기도 하고, 이해와 감동적으로 큰 위로가 되어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도 한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감는다고 했다. 대중에는 감언이설이 있고 권모술수가 있다. 이처럼 같은 세 치 혓바닥이 그 어느 것 못지않은 큰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직접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 최상급이라고 했다. 소위 언변에 의한 담판인 셈이다. 소인배는 말이 많아 말꼬리를 잡느라 시끌시끌하지만 진짜 대장부는 남아일언중천금으로 말을 아끼고 아낀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긍지를 지녀야 한다. 하여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자진해서 한다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 할까 말까하는 마음처럼 오락가락 할 때는 어느 쪽에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사뭇 달라진다.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일 수는 있지만 내가 필요해 하는 것이지 필요치 않은데도 억지로 하는 것은 좋다고 할 수 없다. - 2019. 05. 22.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