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담초꽃이 피면
-김경숙
햇빛 맑은 4월이다.
시장 옆 횡단보도 앞에서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소리 높여 떠들어대고 몇몇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다. 힐끗 보니 그 아저씨의 앞에는 한 둥치씩 단으로 묶여진 나무줄기에 노릇노릇한 꽃이 몇 개 붙어 있다.
꽃이나 나무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도대체 뭘까 하고 더 자세히 보려고 잽싸게 다가갔다. 아, 나는 그걸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건 골담초 나무였다.
지금껏 나의 마음속에서 고이 잠자고 있던 추억이 화들짝 깨어나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 아저씨는 그 나무가 신경통을 낫게 하는 특효약인 것처럼 소개를 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키운 걸 베어온 거요. 우리 어무이도 그렇고, 신경통으로 고생 고생하다가 효험 본 사람들 많쿠마. 이우제 그런 사람 있으마 사다죠요. 그카믄 빙도 곤치고 인사도 듣구마”
골담초꽃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단발 소녀가 되어 살아생전의 어머니와 만난 것 같았다.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한 성품으로 우리 5남매를 키워주신 분, 생각이 깊으셨던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주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행여나 누가 볼세라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꽃에 대한 기억을 하나하나 더듬어내기에 바빴다.
내 어린 날 고향집 장독대 옆에는 골담초가 더부룩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키가 건들건들하니 커서 잘 휘어지기도 하여 그런 걸 그냥 두지 못하는 아버지는 나무 중간을 새끼줄로 묶어두었다. 잔가시가 많으니 행여나 우리가 찔릴세라 가까이 다가서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다.
초봄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노란 꽃은 마치 나비떼가 내려앉은 듯 예뻤다. 그 꽃은 특별히 신경통에 좋다하여 아주 귀히 여겼으며 꽃떡을 쪄 먹었다. 어머니는 이른 새벽에 꽃을 바가지에 따 담고 쌀가루를 묻혔다. 가마솥 밥 위에 찐 꽃떡은 달짝지근한 맛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건강을 내다 본 영양 간식인 셈이다.
그 뒤 나는 진학을 위해 도시로 나왔으며 그까짓 골담초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고 까맣게 잊은 채 지냈는데 길에서 우연히 본 게 이상하다. 그것도 줄기를 동강내어 꽃이 짓이겨진 채 달려있었으니 애잔한 그리움이 되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어렵사리 그 꽃나무를 구해왔다. 지금은 우리 집 베란다에서 화분에 심어놓고 정성껏 키우고 있는데 키만 삐죽 커 올랐다. 언젠가 꽃 피울 날을 고대하며 애지중지 보살핀다.
골담초(骨擔草)란 글자 그대로 뼈를 책임지는 풀이란 뜻이다. 옛사람들이 이름을 붙일 때부터 나무의 쓰임새를 알고 있었으니 놀랍다. 귀여운 나비모양의 노랑꽃을 감상할 수 있고 약으로 쓸 수 있다. 흔히 민가의 양지바른 돌담 옆에 잘 심는데 콩과식물이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전설에 의하면 이 나무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그 곳 조사당의 처마 밑에 꽂았는데 가지가 돋아나고 잎이 피어났다고 하니 신비로운 나무이다.
골담초가 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화분갈이도 하고 거름을 주어 영양을 북돋우며 잘 가꾸어서 꽃이 피길 기대해야겠다. 이렇듯 아주 작은 기억 한 조각으로 신이 난다. 나이가 듦에 따라 누구나 추억을 곱씹으며 산다더니 딱 맞는 말이다.
내년 봄, 골담초꽃이 피어나면 나는 어머니를 만난 듯한 감회에 빠져 오래오래 그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라.
(수필집 '바지랑대' 중에서)
첫댓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꽃이 감꽃 비슷하네요.잘 읽었습니다
그저께 꽃방에서 골담초를 보다가 이 글이 생각났는데....하늬바람님! 골담초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려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사진도 좋고, 글도 좋고... 하늬바람님 마음이 그대로 짠하게 전해집니다.
좋은그림에 좋은글잘보고갑니다..
끄덕 끄덕,,,,, 그렇구나,,,,
화단엔 심지 마세요. 뿌리 번식력이 너무 좋아서 화단을 망쳐 버려요. 뿌리 채 캐어도 자꾸 올라오는데 감당이 어려워요. 그런데 그 뿌리 다려서 우려낸 물로 단술해 드시면 관절에 좋다고.. 화분에 가꾸시려면 큰 깊이가 있는 화분에 심고 ..손가락 정도 굵기면 꽃이 핀답니다. 생명력이 끈질기죠. 하늬님 기억 속처럼.
아~ 어머님께서 약단술 만드신다고 하시더니 저희집 골담초도 어머님 신경통치료제였군요.
옛날에는 흔했는데 요즘은 도무지 보이지않는 꽃이네요.이름이 골담초인지 오늘에야알았습니다. 어디가면 볼수있죠.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