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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이전(吏典) 제4조 거현(擧賢)
4. 중국 과거의 법은 지극히 상세하고 치밀하니, 그것을 본받아 시행하게 된다면
천거하는 일은 수령의 직책이다.
명(明)ㆍ청(淸) 시대의 제도에는 학정(學政)을 제독하는 제학(提學)을 17성(省)에 각각 한 명씩 두었는데, 3년이 되면 임기가 만료된다. 이부(吏部)에서는 문학이 훌륭한 사람의 성명을 열거해 놓고 황제에게 청해서 뽑아 쓴다. 또는 부승(府丞)이 겸해 다스리기도 하고 - 봉천부(奉天府) - 순도(巡道)가 겸해 다스리게도 한다. - 복건(福建)ㆍ대만(臺灣) 등 - 그리고 이들이 모두 직접 임석하여 고시(考試)하도록 하되, 금년에 세과(歲科)를 실시하면 명년에는 향시(鄕試)를 실시하고, 또 후명년에는 회시(會試)를 실시하는데, 시험은 양장(兩場)으로 하여 초장(初場)에서는 사서문(四書文) 2편과 경해(經解) 2편으로 하고, 이장(二場)에서는 책(策) 1편과 논(論) 1편, 그리고 오언팔운배율시(五言八韻排律詩) 3수(首)로 한다. 이런 과정이 한바퀴 돌아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데, 3년이 되면 제학의 임기는 교체가 된다.
모든 현(縣)의 교관(敎官)은 이부(吏部)에서 가려서 본성(本省)으로 부임하게 하면 무신(撫臣)이 그들을 고시하여 성적이 1ㆍ2ㆍ3등에 든 자는 부임을 인준하고, 4ㆍ5등에 든 자는 돌아가서 학습하여 3년 후에 다시 시험보게 하고, 6등에 든 자는 직책을 갈아 버린다.
그 부임한 자는 생도들을 가르쳐 직접 시험보이되, 사서문 1편과 배율시(排律詩) 1수, 그리고 책(策)이나 논(論) 중에서 1수를 하는 것이 통례이다. 등차를 공평하게 정한 후에 학정(學政) - 곧 제학(提學)이다. - 에게 올린다.
살펴보건대, 우리나라에는 교관도 없고 제학도 없다. 생원 응시자를 뽑는 일은 오직 군수와 현령이 그 책임을 맡고 있을 뿐이다. - 거액(擧額)을 분정(分定)하는 법은 과제고(科制考)에서 상세히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우선 생략한다. -
예부칙례(禮部則例)에 의하면, 봉천부(奉天府)의 부학(府學)은 액진(額進)이 6명, 승덕현(承德縣)의 현학은 액진이 7명에 늠생(廩生)이 10명, 증생(增生)이 10명인데, 2년에 한 번 공진(貢進)한다.
순천부(順天府)의 부학은 액진이 25명, 대흥현(大興縣)은 액진이 25명, 완평현(宛平縣)은 액진이 25명에 늠생이 80명, 증생이 80명인데 1년에 두 번 공진한다.
17성(省)의 모든 부(府)와 모든 현(縣)은 액진ㆍ늠생ㆍ증생의 수가 각각 다소의 차이가 있으며, 3년에 한 번 공진하기도 하고, 5년에 한 번 공진하기도 한다. - 멀리 떨어져 있는 학문이 없는 곳 - 또 동생(童生)이니 청생(靑生)이니 사생(社生)이니 하는 여러 명목이 있는데 공진의 대상에는 들지 않는다.
살피건대, 오늘날 과거의 폐단을 바로잡는 방법은 오직 ‘천거하는 인원수를 정한다〔定擧額〕’는 세 글자에 있을 뿐이니, 천거하는 인원수를 정한다면 지극히 공명하게 해야 하는 것이 수령이 힘써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주-D001] 제학(提學) : 명 영종(明英宗) 정통(正統) 2년(1437)에 각 성(省)의 학사(學事)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한 벼슬이다. 그 직권은 부(府)ㆍ주(州)ㆍ현(縣) 학교의 교관(敎官)과 과거 예비시험을 감독하였다. 청나라 말기에는 학정사(學政使)로 고치고 순천(順天)ㆍ산동(山東)ㆍ산서(山西)ㆍ하남(河南)ㆍ강소(江蘇)ㆍ안휘(安徽)ㆍ강서(江西)ㆍ복건(福建)ㆍ절강(浙江)ㆍ호북(湖北)ㆍ호남(湖南)ㆍ섬서(陜西)ㆍ감숙(甘肅)ㆍ사천(四川)ㆍ광동(廣東)ㆍ광서(廣西)ㆍ운남(雲南) 등에 각각 한 사람씩 두었다.
[주-D002] 세과(歲科)를 …… 실시하는데 : 명(明)ㆍ청(淸) 시대의 고시제도(考試制度)는 동시(童試)ㆍ향시(鄕試)ㆍ회시(會試)ㆍ전시(殿試)의 순으로 일관적인 체계를 이루었다. 부ㆍ주ㆍ현학(府州縣學)의 재학생에게 시험보이는 것을 동시라고 하는데, 그것을 세과(歲科) 또는 세고(歲考)라고도 하였다. 이 세과에서 성적이 우수한 사람은 국자감(國子監)에 입학하거나 향시(鄕試)에 응시할 수 있었다. 향시는 자(子)ㆍ오(午)ㆍ묘(卯)ㆍ유(酉)가 드는 해에 성(省)에서 실시하는데, 향시에 합격한 자가 바로 거인(擧人)이다. 이들은 진(辰)ㆍ술(戌)ㆍ축(丑)ㆍ미(未)가 드는 해에 예부(禮部)에 가서 회시(會試)에 응시한다. 회시에 합격한 자는 진사(進士)라 하는데, 이들은 천자가 주재하는 전시(殿試)에 응시한다. 세과ㆍ향시ㆍ회시(전시는 회시와 같은 해에 실시한다)는 순차별로 매 3년마다 돌아가며 실시되었다. 《明史 選擧志》 《淸史 選擧志》
[주-D003] 양장(兩場) : 과거에 고시는 반드시 세 차례에 걸쳐서 실시하였으니, 곧 초장(初場)ㆍ이장(二場)ㆍ삼장(三場)이었다. 여기서는 초장과 이장을 가리킨 것이다. 《명사(明史)》선거지(選擧志)에 의하면, 처음 과거를 설시할 때 초장에서는 경의(經義) 1편, 사서의(四書義) 1편을, 이장에서는 논(論) 1편을, 삼장에서는 책(策) 1편을 시험보였다 한다.
[주-D004] 거액(擧額) : 천거 대상자의 수를 말한다.
[주-D005] 예부칙례(禮部則例) : 예부의 법칙 관례를 말한다.
[주-D006] 액진(額進) : 원액 진사(元額進士)인 듯하나 미상이다.
[주-D007] 늠생(廩生) : 늠선생원(廩膳生員)의 약칭이다. 《명사(明史)》 〈선거지(選擧志)〉와 《청사(淸史)》 〈선거지〉에 의하면, 중앙 학교인 국학(國學 국자감(國子監)임)과 지방 학교인 부ㆍ주ㆍ현학(府州縣學) 두 가지가 있었다. 지방 학교 학생〔生員〕의 경우는 국학에 들어가야 벼슬할 수가 있었다. 국학에 들어간 학생은 감생(監生)이라 하는데, 매년 뽑혀 갔으니, 이것을 세공(歲貢)이라 했다. 학생의 종류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명대(明代) 초기에는 각 학교의 학생 수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었더니, 얼마 후에는 정원 외에 증원〔增廣〕을 마구 하였다. 그러다가 선덕(宣德 명 선종(明宣宗)의 연호) 연간에 와서는 증원의 수도 정하는 동시에 학생들에게 늠료(廩料)를 지급하였으니, 이를 늠선생원(廩膳生員)이라 하고, 증원된 학생은 증광생원(增廣生員)이라 하였으며, 인재가 많아짐에 따라 정원 외에 더 뽑아 말석에서 청강하게 하였으니 이를 부학생원(附學生員)이라 하였다. 처음 입학한 부학생원을 제외한 이들 학생은 모두 국학에 뽑아 올리는 세공의 대상이 되었다. 이밖에 아직 입학하지 못한 사자(士子)들은 통틀어 동생(童生)이라 하였는데, 향시(鄕試)가 실시되는 해에 이들 중에서 한두 명의 우수한 자를 뽑아 여러 학생들과 함께 시장(試場)에 들어가게 하였으니 이를 충장유생(充場儒生)이라 하였다. 이들은 이 시장에서 합격할 경우 곧 거인(擧人)이 될 수도 있었지만, 합격하지 못할 경우는 제학관(提學官)이 실시하는 시험이 있을 때를 기다려야만 하였다. 그래서 그 시험에 합격하면 입학자격을 얻게 되었다. 제학관은 재임 3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여러 학생들의 학업 성적을 고시하는데 6등급으로 그들의 우열을 정하였으니, 이를 세고(歲考)라 하였다. 그들의 성적을 고시한 결과 1등일 경우는 늠선생원이 궐원될 때 그로 충원하고 그 다음은 증광생원에 보충하였으며, 5등일 경우에는 늠선생원과 증광생원은 한 등급씩 강등시키고 부학생원은 청의(靑衣 조례(皁隷)의 옷을 입혔기 때문에 청의라 한다.)로 삼고, 6등일 경우는 학생에서 내쫓았다. 《明史 選擧志》 청의의 경우는 사(社 사학(社學)임)로 내보냈으니 이를 사생(社生)이라 한다. 사학에서도 성적이 여전히 낮을 경우는 평민으로 내쳤다. 청대(淸代)에는 사학(社學)과 의학(義學)이란 것이 있었으니, 사학은 각 향(鄕)에 세워 학문과 품행이 우수한 자를 뽑아 사사(社師)로 삼고 12세 이상인 그 고을 자제들을 가르치게 하였으며, 의학은 성(省)ㆍ부(府)ㆍ주(州)ㆍ현(縣)에 세워서 빈한한 집 자제들을 가르쳤다. 《淸史 選擧志》
[주-D008] 증생(增生) : 증광생원(增廣生員)의 약칭이다.
[주-D009] 공진(貢進) : 국학(國學)에 뽑아 올리는 일로 공(貢)은 세공(歲貢)의 공과 같다.
[주-D010] 동생(童生)이니 청생(靑生)이니 사생(社生) : 《명사(明史)》 〈선거지(選擧志)〉와 《청사(淸史)》 〈선거지〉에 의하면, 중앙 학교인 국학(國學 국자감(國子監)임)과 지방 학교인 부ㆍ주ㆍ현학(府州縣學) 두 가지가 있었다. 지방 학교 학생〔生員〕의 경우는 국학에 들어가야 벼슬할 수가 있었다. 국학에 들어간 학생은 감생(監生)이라 하는데, 매년 뽑혀 갔으니, 이것을 세공(歲貢)이라 했다. 학생의 종류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명대(明代) 초기에는 각 학교의 학생 수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었더니, 얼마 후에는 정원 외에 증원〔增廣〕을 마구 하였다. 그러다가 선덕(宣德 명 선종(明宣宗)의 연호) 연간에 와서는 증원의 수도 정하는 동시에 학생들에게 늠료(廩料)를 지급하였으니, 이를 늠선생원(廩膳生員)이라 하고, 증원된 학생은 증광생원(增廣生員)이라 하였으며, 인재가 많아짐에 따라 정원 외에 더 뽑아 말석에서 청강하게 하였으니 이를 부학생원(附學生員)이라 하였다. 처음 입학한 부학생원을 제외한 이들 학생은 모두 국학에 뽑아 올리는 세공의 대상이 되었다. 이밖에 아직 입학하지 못한 사자(士子)들은 통틀어 동생(童生)이라 하였는데, 향시(鄕試)가 실시되는 해에 이들 중에서 한두 명의 우수한 자를 뽑아 여러 학생들과 함께 시장(試場)에 들어가게 하였으니 이를 충장유생(充場儒生)이라 하였다. 이들은 이 시장에서 합격할 경우 곧 거인(擧人)이 될 수도 있었지만, 합격하지 못할 경우는 제학관(提學官)이 실시하는 시험이 있을 때를 기다려야만 하였다. 그래서 그 시험에 합격하면 입학자격을 얻게 되었다. 제학관은 재임 3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여러 학생들의 학업 성적을 고시하는데 6등급으로 그들의 우열을 정하였으니, 이를 세고(歲考)라 하였다. 그들의 성적을 고시한 결과 1등일 경우는 늠선생원이 궐원될 때 그로 충원하고 그 다음은 증광생원에 보충하였으며, 5등일 경우에는 늠선생원과 증광생원은 한 등급씩 강등시키고 부학생원은 청의(靑衣 조례(皁隷)의 옷을 입혔기 때문에 청의라 한다.)로 삼고, 6등일 경우는 학생에서 내쫓았다. 《明史 選擧志》 청의의 경우는 사(社 사학(社學)임)로 내보냈으니 이를 사생(社生)이라 한다. 사학에서도 성적이 여전히 낮을 경우는 평민으로 내쳤다. 청대(淸代)에는 사학(社學)과 의학(義學)이란 것이 있었으니, 사학은 각 향(鄕)에 세워 학문과 품행이 우수한 자를 뽑아 사사(社師)로 삼고 12세 이상인 그 고을 자제들을 가르치게 하였으며, 의학은 성(省)ㆍ부(府)ㆍ주(州)ㆍ현(縣)에 세워서 빈한한 집 자제들을 가르쳤다. 《淸史 選擧志》
中國科擧之法。至詳至密。效而行之。則薦擧者。牧之職也。
明淸之制。凡提督學政之官。十七省各置一員。三年則瓜滿。吏部開列文學人姓名。請旨簡用。亦或以府丞兼理。奉天府。 或以巡道兼理。福建臺灣等。竝令親臨考試。今年設歲科。明年設鄕試。又明年設會試。試以兩場。初場四書。文二篇經解二篇。二場策一道論一篇。五言八韻排律詩一首。周而復始。三年則遞任也。
〇其諸縣敎官。則吏部選授。令赴本省。撫臣考試。考居一二三等者。準其赴任。四五等。令歸學習。待三年再考。六等者革職。
其赴任者。訓飭士子。面加考試。例用四書。文一篇。排律詩一首。策論中一首。衡定等次。上于學政。卽提學。
〇案吾東無敎官。無提學。其生員選擧之事。唯郡守縣令。任其責而已。其擧額分定之法。竝詳科制考。今姑略之。
禮部則例云。奉天府府學額進六名。承德縣學額進七名。廩生十名。增生十名。二年一貢。
〇順天府學額進二十五名。大興縣額進二十五名。宛平縣額進二十五名。廩生八十名。增生八十名。一年兩貢。
〇十七省諸府諸縣。其額進廩生增生之額。各有多小。或三年一貢。或五年一貢。遐荒無文處。 又有童生靑社諸名。不在貢進中。
〇按今日救弊之策。唯有定擧額三字而已。若定擧額。其選擧之至公至明。非牧之所宜務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