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빈슨매시프 등정…14좌,7대륙 최고봉 등정 마쳐
이제 남은 건 광활한 남,북극의 설원뿐 글 김형우 사진 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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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슨매시프 정상에 꽂힌 스키 스톡. 빈슨매시프 정상엔 3개의 연봉이 이어져 있다. |
11월 12일 LG화재 구자원 회장과 친구, 직원 2명, 박영석 대장과 필자는 서울을 떠나 머나먼 여정의 길에 나섰다.
LA에 도착해 부족한 장비를 보충하고 16일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오가는 배들의 길목인 푼타아레나스는 예전 굉장히 번성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수에즈운하가 연결된 후 남극으로 가는 가교의 역할만 수행하고 있었다.
공항을 빠져 나와 ANI(Adventure Network International) 직원의 안내로 호텔로 이동했다.
안내자는 패트리어트 힐에 날씨가 좋지 않아 일정이 4일 정도 뒤로 미루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번 등반팀들도 날씨가 안 좋아 10일간이나 기다렸다고 한다.
우린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파이네국립공원에 다녀오기 위해 여행사에 예약을 한 채 기다렸다.
17일 저녁, 현지 날씨가 좋아져 내일 오후에 남극으로 출발을 한다는 연락이 왔다. 정말 남극의 날씨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나 보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내일 출발을 위한 준비에 나섰다.
18일 아침, ANI 직원들이 보여주는 슬라이드를 통해 남극 생활에 대한 사전설명을 듣고 장비점검에 나섰다.
우리 장비 중 문제가 될 것은 없었지만 신발이 문제가 돼 ANI에서 대여를 받았다. 비행기에 짐을 갖고 들어갈 수 있는 무게는 개인당 23kg이며 빈슨매시프 등반자들은 46kg까지 가능했다. ANI 직원들은 저울로 짐을 하나 하나씩 재어본다.
우린 의류만 갖고 들어갔기에 짐이 초과되진 않았지만 만일 짐이 더 나간다면 kg당 66달러의 오버차지를 지불해야만 했다. 오후 2시 공항에 도착해 검색대를 통과한 후 출국 절차를 밟지 않고 통과했다.
푼타아레나스에선 칠레 공군의 수송기를 타고 남극기지로 이동하게 된다.
마침 세종기지 대원들도 교체 시기라 몇 분의 대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들어가니 러시아제 수송기엔 내부가 텅 빈 상태로 30여 개의 간이 의자가 설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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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캠프에서 2캠프로 이어진 설원지대를 오르고 있는 박영석씨. 박씨는 8천미터급 14좌 이은 7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했다. |
영하 40도에 이르는 남극 추위
의자 외의 공간은 우리들의 짐과 패트리어트 힐로 갖고 갈 식량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기내는 방음장치가 되어 있지 않아 엔진소리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다. 더욱이 창문도 몇 개 없어 밖을 볼 수도 없었다. 패트리어트 힐로 가는 비행기는 러시아 비행기를 임대한 것으로 조종사와 승무원들도 전부 러시아인들이다. 4시간 30분을 비행해 패트리어트 힐에 착륙했다. 굉음을 내며 내려앉긴 했지만 언제 앉았는지 모르게 사뿐히 내려앉았다.
일반 활주로도 아닌 얼음 위에 내려앉는 그들의 비행기술에 놀랄 뿐이다. 기체가 멈춰, 문을 열고 나서니 남극의 차가운 바람에 숨을 쉬지 못할 정도다.
온통 눈으로 덮여있는 평원지대 옆에 나지막한 언덕이 있어 검은색의 바위들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박영석 선배와 난 다시 경비행기를 타고 빈슨매시프 베이스캠프로 가야 했기에 다른 팀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경비행기에 올랐다.
러시아 조종사들은 프로펠러를 몇 번 돌리며 준비를 하는가 싶더니 베이스캠프의 날씨가 좋지 않아 오늘은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현지 시간으로 오후 10시. 남극의 시간은 칠레의 시간을 따르지만 이곳은 현재 백야현상으로 인해 하루 24시간 해가 떠 있었다.
해가 머리 위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빙글빙글 돌뿐이지만 시각의 차이에 따라 약간의 온도 변화는 있었다. 특히 구름에 해가 가릴 때에는 급격하게 온도가 떨어졌다.
패트리어트 힐에는 ANI에서 설치해 놓은 대형 텐트들이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설치돼 있었다. 개인 텐트에는 간이침대도 있고 독서실, 식당, 무전기실, 기계실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등반 시즌이 끝나면 이 텐트들을 전부 분해해 얼음 속에 묻어 놓았다가 다음 해에 와서 파내 설치한다고 한다.
텐트 옆에는 날개가 부서져 끼우뚱하게 기울어진 경비행기도 한대 놓여 있었다. 이곳에선 환경보호를 위해 소변과 대변을 구별해 모아 두었다가 다시 칠레로 갖고 나간다.
다음날 아침 10시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날씨가 좋지 않아 2시간 단위로 연기 되다가 저녁 6시에야 베이스캠프로 떠날 수 있었다. 1시간 20분 가량 비행을 했지만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망망대해의 설원 밖에 없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지대을 바라보니 내년으로 예정된 남극점 탐험의 길이 흥분으로 다가온다. 저 설원을 200kg 정도의 짐을 썰매에 담고 60여일간 쉼도 없이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부르르 떨린다.
비행기는 빈슨매시프 캠프의 설원에 미끄러져 가며 내려앉는다. 이곳엔 대형텐트 몇 동이 설치되어 있을 뿐이고 며칠 전에 떠난 등반팀의 썰매자국만이 남았다.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두 명의 호주인은 빈슨매시프 옆의 봉우리에 GPS 수신기를 설치하러 왔다고 한다.
강풍에 뼛속까지 시릴 정도
우선 베이스캠프에 텐트를 설치하고 알파미와 컵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해가 지진 않았지만 늦은 시간이라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대낮 같은 여명과 침낭 밑에서 올라오는 냉기로 인해 잠시 눈을 붙일 뿐이다.
텐트 안에 버너를 켜 놓아도 윗부분만 따뜻해질 뿐 바닥엔 하얗게 성의가 낀다.
같은 텐트 안에서도 온도 차이가 심한 것이다. 베이스캠프의 맑은 날씨와 달리 빈슨매시프 정상 부위는 버섯구름이 낄 정도로 좋지 않다. 이틀을 더 기다리다 11월 23일 썰매에다 짐을 싣고 출발했다.
중간중간 표식기를 꽂아 놓아 길을 찾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잠깐 바람만 불어와도 러셀 자국이 묻혀 다시 러셀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끝간 데 없는 백설의 설원지대는 거리를 가늠하기가 어렵고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인다. 강렬한 햇빛을 막기 위해 선크림을 바르고 운행을 하지만 얼굴이 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햇빛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불어오는 찬바람은 이길 수가 없나보다. 바람이 불면 두툼한 다운재킷을 입었어도 뼛속까지 시릴 정도이다. 얼굴이 얼어붙고 손과 발이 굳어진다. 얼굴을 목출모와 늑대털이 달린 모자로 감싸고 어렴풋이 보이는 표식기만을 바라보며 걸어갈 수밖에 없다.
3시간 정도면 된다던 1캠프 사이트는 5시간을 걸었는데도 나오지 않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캠프지가 사용한지 오래된 터라 눈에 묻혀버려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다. 박영석 선배와 난 전면에 보이는 아이스폴 지대의 직등 루트를 등반할까 했으나 마지막 부분이 어렵고 갖고 온 장비가 부실해 그곳을 포기하고 노멀 루트를 등반하기로 했다.
정면 벽 바로 앞에서 왼쪽으로 틀어 2캠프로 향했다. 2캠프지가 특별히 지정된 곳도 아니라 9시간정도를 운행하고 1캠프와 2캠프 사이의 얼음 위에 텐트를 쳤다. 태양이 빈슨매시프 정상을 넘어가기 전에 텐트를 쳐야 했기에 부산하게 캠프를 완성했다. 짐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생식으로 먹다보니 식사시간이 되어도 달리 즐거움도 없고 물을 끓여 차 마시듯 생식을 타서 먹었다.
다음날은 10시가 넘어서야 해가 텐트를 비추기 시작했다. 오늘의 목표지점인 3캠프 가는 중간에 급경사의 설벽이 있어 썰매를 놔두고 배낭에 장비와 식량을 챙겨 올라갔다. 60∼70도 경사의 설벽은 크러스트가 된 상태라 별 무리가 없이 올라갈 수 있었지만 마지막 상단부에 이르자 바람이 강해져 몸의 균형을 잡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설벽을 다 올라선 후 한참을 더 전진하니 3캠프지가 나왔다. 이곳엔 ANI의 가이드 2명과 등반대원 1명이 정상을 등정한 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캠프지를 고르던 중 가이드는 용변을 저 멀리 설치해 놓은 화장실에서 볼 것을 권한다.
손끝이 얼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겨우 텐트를 완성하고 버너를 켜 차 한 잔을 마시니 피로가 엄습해 온다.
박영석 선배는 그 동안의 등반일지를 적어 스포츠신문에 이리듐 전화기를 이용해 송고한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침낭을 한 개밖에 가져오지 않은 탓에 모든 옷을 껴입고 침낭 하나로 밤을 지새운다. 남극의 추위는 만만치 않아 밤새 오들오들 떨면서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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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스매시포 루트도 |
무게 줄이기 위해 생식 사용
3캠프지는 해가 좀 일찍 뜬다.
8시에 일어나 물을 끓여 간단히 생식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3캠프를 나섰다. 약간의 설벽을 넘어 플라토 지역을 하염없이 걸어가다 보니 어느 것이 정상인지 가늠할 수 없는 몇 개의 봉우리가 나타났다.
그중 가운데 봉우리로 희미하게 찍혀있는 아이젠 자국과 표식기를 따라 한 발짝 한 발짝 정상으로 올라갔다.
왕복 9시간이 걸리지만 바람과 추위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플라토 끝부분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설벽에서 난 속도가 떨어져 도저히 박영석 선배를 따라 갈 수 없었다. 결국 이곳에서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을 했다. 박영석 선배는 설벽을 3시간 동안 올라 11월 25일 오후 5시 단독 등정에 성공했다.
정상은 3개의 봉우리가 연이어져 있는데 높이가 비슷비슷해 어떤 봉우리가 정상인지 분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끝에 있는 봉우리에 누군가가 꽂아 놓은 스키스틱이 있어 할 수 없이 끝 봉우리까지 오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로써 박영석 선배는 히말라야 14좌 등정에 이어 7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제 목표로 삼은 북극, 남극점만 탐험을 끝내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한 산악그랜드슬램(히말라야 14좌, 7대륙 최고봉, 3극점)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 빈슨매시프 | 남극 빈슨매시프(Vinson Massif·4897m)는 남극 대륙의 최고봉으로, 빈슨이란 이름은 남극탐험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미국의 장관 이름이다.
매시프는 연봉이라는 뜻으로 정상이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남극대륙에 들어서려면 우선 칠레의 제일 남쪽 지역에 있는 푼타아레나스에 가야 한다.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를 지나 푼타아레나스까지 장장 30여 시간을 비행해야 한다. 이곳에서 ANI직원들을 만나 남극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남극대륙은 ANI를 통해야만 들어갈 수 있으며 비용도 만만치 않다.
남극대륙을 며칠 경험하고 오는 금액이 14,000달러이고 빈슨매시프 프로그램 비용은 26,000달러나 된다.
이 비용 안에는 남극대륙 안에서의 모든 체류 비용과 가이드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