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 3호실
새벽에 머리가 욱신거려 상처 부위를 닦아내니 어제와 별다른 게 없었다.
여전히 고름이 많이 나왔다. 감염 부위가 손바닥만 해서 통증도 꽤 심하다.
소독만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항생제도 못 먹는데 약을 지을 수도 없고 걱정이다.
머리가 너무 아프니 구내염은 아픈 체를 못 하고 조용히 있다.
어지러운 머리를 억지로나마 차리려고 바로 앉았다.
눈도 흐릿하고 아직 멍한 기분이다.
화두를 챙겨보지만 아내 아픈 곳으로 신경이 쓰인다.
그래,
아직도 내가 감내해야 할 고통이 남았다면
내 기꺼이 모두 치러내고 결국은 이겨내리라.
아픈 몸과 마음을 식히려고 문살 가까이 얼굴을 대고 밖을 내다보았다.
하얀 배추나비 한 마리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토끼풀 꽃에 앉았다.
초등학교 시절,
저렇게 고운 나비가 한때는 배추 잎에 붙어서
잎을 갉어 먹는 흉한 애벌레였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알에서 애벌레로, 다시 번데기로,성충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탈바꿈하는 것이 나비의 일생이다.
한 시절 내내 애써 이룬 자기 몸을 기꺼이 껍질로 벗어버려야
결국에는 아름다운 저 나비가 되는 것이다.
저 미물인 벌레 한 마리도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초주검이 될 정도로 마지막 힘을 다해 질긴 고치를 찢어내야 한다.
어느 곤충학자가 그 모습이 안타까워 고치를 살짝 찢어줬더니,
그 나비는 며칠 살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한다.
아무리 힘든 고통일지라도 스스로 극복해야만
그 고통에 대한 면역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고운 실을 내뿜는 누에도 허물을 네 번이나 벗어야 고치를 짓는다.
끊임없는 자기 변신. 뼈를 바꾸고 살을 벗는 고통의 시간들이 없다면.
해탈의 자리는 머나먼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맞배지붕으로 된 무문관 건물은 전부 다섯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중 3호실은 가운데 있는 방으로
강진만이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제일 좋은 방이다.
다른 방들은 후박나무에 가려 조금씩밖에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3호실은 좌우에 커다란 후박나무 네 그루와 아기 후박나무 한 그루,
동백나무 몇 그루를 보처(補處)로 데리고 있다.
양쪽 방에서 소음이 들리니까 다소 신경이 쓰이긴 해도 그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처음 왔을 때는 1호실에 걸망을 풀었는데
그날따라 방에 난방이 되질 않아 3호실에서 잔 것이 그냥 인연이 됐다.
1호실은 어차피 대중 가운데
한 사람이 문을 잠그지 않고( 비상 대기용) 정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여간 3호실에서 정진하는 게 참 좋다.
6.17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