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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치? 천재?
전 영 택
1
나는 성년도 되기 전부터 못 해본 것이 없이 별것을 다 하였나이다. 어려서는 학교도 다녔나이다. 그리고는 주사 노릇(관리)도 하였나이다. 예수 믿고 전도도 하였나이다. 어떤 회사에 가서 월급쟁이 노릇도 하였나이다. 그뿐이겠어요? 어떤 친구와 작반해서 ‘오입쟁이 노릇’도 하였나이다. 떨어져서 엿장사도 하였나이다. 밥 객주¹도 하였나이다. 교사 노릇도 하였나이다. 전차 차장 노릇도 하였나이다. 뛰어서 일본 유학생 노릇도 하였나이다. 촌에 가서 농군 노릇도 하였나이다. 네― 한때는 열렬한 애국자 노릇도 하였지요. 어떤 때는 광객 (鑛客) 노릇도 하였나이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어 나는 세번째 소학교 교사 노릇을 하게 되었나이다.
나는 평생에 교사 노릇은 끔찍이 싫어하였나이다. 더구나 소학교 교사 노릇은 어려서부터 죽어도 아니하려고 하였나이다. 초학훈장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도 있거니와, 실상 소학교 교사 노릇이야말로 사람은 못 할 노릇이외다. 더구나 혈기 있는 청년은 참말 못 할 노릇이외다. 내가 기왕에 별 ‘노릇’을 다 해보았으나, 소학교 교사같이 못 할 ‘노릇’은 없더이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에 노릇이 많은 가운데 훈장 노릇이 가장 어렵다’ 하는 정의를 내리고, 저 혼자 늘 그 생각을 하고 있나이다.
내가 세번째 갔던 학교는 평안도 중화군 서면에 있는 득영학교(得英學校)이었나이다. 그렇게 싫어하고, 그렇게 못할 소학교 교사 노릇을 다만 십이 원 월급에 팔려서 세번째나 다시 하게 된 것은 사실 어찌할 수 없음이었나이다.
득영학교는 중화 서면에서 꽤 세력 있는 박씨 일문이 사는 촌중에서 세운 것이었나이다. 교실은 본래 서당으로 쓰던 기와집 인데, 동리 뒷산등에 들썩하게 지은 것인 고로, 그 근처 한 수십 리 안에서는 어디서 보든지 우뚝 솟은 득영 학교가 눈에 얼른 띄나이다.
내가 맨 처음에 교사로 고빙되어 봇짐을 지고 득영학교를 찾아오다가, 멀리서 보이는 회칠한 기와집을 보고 벌써 ‘저것이 학교로구나’ 짐작이 될 때에 여러 가지로 상상을 하였나이다. 저 학교에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 저 학교에는 나같이 할 수 없이 되어 마지막 수단으로 몇 푼 월급애 팔려서 왔던 속 썩어진 훈장이 몇 놈이나 될까? 그래도 그 가운데에도 제법 교육의 사명을 깨닫고 왔던 사람이 있을까? 무얼 있어? ……훈장 노릇! 에구, 또 해? 이전에 ‘씩씩’ 하던 생각이 나서 이마를 찌푸렸습니다.
저 학교 생도가 적어도 열다섯 명은 되겠지, 그 가운데는 꽤 재간이 있는 ‘천재’도 있으렷다. 못나디 못난 ‘천치’도 있으렷다. 또는 흉악한 불량아도 있으렷다. 손을 댈 수가 없이 사나운 아이가 있어서, 내 말을 안 듣고 속이 썩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해보았습니다. 아니다 내가 잘못하면 불량아를 만들어놓기도 하고, 잘하면 천재나 홀륭한 인재를 만들어놓을 수도 있고, 불량아가 변해서 우량아가 되도록 할 수도 있다. 옛날부터 농촌에서 시인 문사가 많이 나고, 위인 걸사가 많이 났다더라. 저 촌이 어디 ‘코커마우브’나 ‘플랭크푸트’²가 되지 말며, ‘켄터키’ 나 ‘아이슬레벤’ 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으랴. 이런 생각을 하니까, 책임감으로 갑자기 짐이 무거워짐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돌아보았습니다. 나는 문득 얼굴이 확확 달아짐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평시에 교육학은 한 페이지도 공부해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아동심리학 같은 것은 구경도 못했습니다. 아이들의 성격과 개성을 가려볼만한 총명한 눈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다만 일찍 우리 아버지 덕에 쉬운 일어와 산술을 좀 (겨우 분수까지) 배웠을 따름이외다. 이것을 본전 삼고, 남의 귀한 자제를 맡아 가르치려고, 아니 돈 십이 원을 거저먹으려고 남이 땀 흘려 농사지은 곡식을 편안히 앉아서 먹으러 간다고 생각을 하니, 부끄럽기가 끝이 없는 것을 염치없이 그날 저녁 여덟 시에 교감 댁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박교감’ 의 인도로 학교로 올라갔습니다. 저녁은 교감의 집에서 얻어먹었습니다. 밥은 교감의 집에서 먹고, 거처는 학교에서 하기로 하였습니다.
교감이 팔십 원이나 들여 수리를 해서 이제는 훌륭한 학교가 되었다고 자랑을 하는 교실은, 밤이면 교사가 거처하는 방까지 합하여 두 칸 반이요, 깨진 유리창 한 개가 달린 것이 가장 신식이더이다.
교감이 내려간 후에 혼자서 자려니까 미상불 좀 무서운 생각이 나더이다. 나보다 먼저 왔던 선생이 혼자 자다가 승냥이한테 물려가지나 아니하였나, 혹은 이 반 칸 방에서 밤에 대들보에 목을 매고 죽지나 아니하였나, 목매 죽은 귀신이 퍽 무섭다는데…… 교감이라는 영감이 벌써 얼른 보기에 천하 깍쟁이 같더라. 꼭 괭이 수염같이 노오란 것이 몇 오라기가 까부라진 매부리코 밑에 밭디밭은 입술 위에 빳빳 뻗치고, 눈은 연해 핼금핼금하고, 공연히 헛기침을 자주 하는 것은 아무가 보아도 깍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나는 처음 보고 이내 ‘네가 아전 노릇으로 늙어서 털이 노래졌구나’ 하였습니다. 이 동리 양반들은 모두 다 몹시 교만하다는 말과 교사를 거지같이 여겨 괄시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들까지도 그 감화를 받아서 교사 따위는 우습게 알고, 제법 업신여긴다는 말과, 학교가 겨울에는 지독히 춥다는 말도 듣고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분명히 목매 죽거나 얼어 죽은 놈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얼어 죽은 놈은 반드시 있으리라 하였습니다. 당장 숭굴숭굴 터진 담 틈으로 하늘의 별이 보이고, 산산한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오더이다. 목매 죽은 귀신이 오면 어떡하나, 금년 겨울에 얼어 죽지나 않을까 별생각을 다 하고, 나같이 못난 놈을 하늘같이 믿고 있는 우리 어머님과 동생들 생각을 하다가 모르는 새에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오후에 나는 컴컴한 방 안에 있기가 싫어서 혼자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가을 하늘이 마치 잔잔한 호수같이 맑고, 넘어가던 석양빛은 먼 산 가까운 촌을 자홍색으로 물들여놓았더이다. 나는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아랫동네를 내려보다가, 저 건너편 읍내에 대문은 기울어지고 담이 무너지고 기와가 떨어진 한편 쪽을 저문 햇빛에 목욕시키는 향교를 보고 감개한 느낌을 못이겨하는데, 내 발밑에서 “선산님!” 하는 소리가 들리더이다. 나는 깜짝 놀라서 쳐다본즉 어디서 잠깐 본 듯한 아이가 숨이 헐떡헐떡하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더이다. 얼굴은 둥그렇고 머얼건데, 눈에 흰자위가 많고 빙글빙글 웃는 것이 어째 수상하게 보이더이다. 그 웃음은 나를 반기는 것이 아니요, 알 수 없는 이상한 웃음이더이다.
“밥 먹으래!” 하는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였으나, 그 애가 박교감 집 아이인 줄은 얼른 짐작했습니다. 나는, “오냐 가자” 하고 내려가면서, “네 이름이 무어냐?” 하고 물었습니다. “칠성이.” 이것이 그 대답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럼 박칠성이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머리를 한번 끄떡하더니 다시 흔들고는 입을 벌리고 나를 쳐다보더이다. 나는 속으로 짐작되는 것이 있어서 다시 더 묻지 아니하고 그 손을 잡고 슬금슬금 내려갔습니다.
내려가면서, “나이는 몇 살이냐?” 물은즉 얼굴이 갑자기 이상해지면서 대답을 아니하기에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그때에야 입술을 쭝긋쭝긋하뎌니 겨우 입을 열어, “응, 열세 나서.” 하고 소리를 치더이다.
나는 다정하게 말을 이어 물었습니다.
“너 학교에 다니니?”
“응.”
“몇 년급이냐?”
이 말에는 대답을 아니 하고 히히 웃더니, 내 손을 뿌리치고 갑자기 큰 소리를 내서,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
노래를 부르고 먼저 막 달아나더니 보이지 아니 하더이다.
내가 장차 가르칠 득영학교 학생으로 처음 만난 것이, 이 이상한 아이 칠성이었습니다. 나는 하도 우습기도 하고 이상해서, 이리저리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박교감 집으로 내려가 저녁을 먹었습니다.
2
내려가서 알아보니까, 칠성이는 박교감의 누이 되는 과부의 아들이라 합니다.
이튿날 아치에 밥을 먹는데, 지난 저녁에 나를 부르러 와서 만났던 ‘칠성이’가 방문 밖에서 나를 보고, 반가운 듯이 벌쭉벌쭉 웃으며 문지방을 손톱으로 뜯고 서 있더이다.
나도 반가워서 “칠성이냐, 밥 먹었니?” 물어도 대답을 아니하고 그냥 웃기만 하더이다.
나는 이리저리 주의도 하고 말을 들어서, 하루 이틀 지내는 새에 칠성이의 사정을 차차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칠성이의 성은 정씨인데 어려서부터 천치로 났다 합니다. 그 모친은 청춘에 그 남편을 잃고 본가로 돌아와서, 칠성이와 그 위로 열여섯 살 된 딸 하나와 두 아이를 데리고 그 오라버니 박교감을 의지하고 한집에 같이 사는 것이더이다.
박교감도 처음에는 천치란 것을 감추고 있더니, 하루는 종내 그 생질이 천치인 것을 말하고, 가르쳐야 쓸데없어 단념을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박교감의 말을 들은즉, 그 매부 되는 사람이 본래는 그 집이 읍내의 갑부로서, 열두 살에 혼인을 했는데, 그때부터 몹시 잡기를 좋아해서 며칠씩 밤을 새워가면서 투전을 하는 것이 보통이요, 그 어머니는 마음이 약해서 번번이 돈을 당해주는데, 그것을 그 부친이 알면 벼락같이 노해서 야단을 하기 때문에, 자기 누이는 출가한 후로 하루도 옷 벗고 편안히 잠을 자본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매부는 차차 술 먹기를 배워서 나중에는 아주 큰 술꾼이 돼버려서, 술을 잔뜩 먹고 들어와서는 돈 내라고 야단하여 무죄한 그 아내를 함부로 꼬집고 때리니, 그 누이는 청춘 시절을 장 눈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계집질까지 하고 돌아다니다가, 종내 주색의 여독으로 무서운 병이 들어 생명까지 잃었다 합니다. 그 부친도 술을 몹시 먹었는데 젊어서 죽은 후에, 칠성의 부친이 이리하여 가산은 탕진되었다 합니다.
박교감에게 이런 말을 들은 뒤에 한 주일 지난 일요일 날인데, 나는 갑갑해서 박교감하고 이야기나 하려고, 오후에 저녁때는 아직 이르나, 슬금슬금 내려갔습니다. 박교감은 없고 한 삼십 될락말락한 아직 젊은 부인이 안으로 향한 문을 열더니 밥상을 들고 들어오더이다. 나는 얼른 칠성의 모친인 줄을 알았습니다.
나는 젊은 부인이 밥상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 황송하기도 하려니와, 수줍은 생각에 그 얼굴을 바로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는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하다가 머리를 숙이고 그냥 나가버렸습니다.
내가 밥을 다 먹고 나니까, 칠성이의 어머니가 다시 들어오더니 이번에는 문 안에 앉더이다. 머리를 숙이고 한참이나 있더니 말을 꺼내더이다.
“선산님.”
“네.” 하고 나는 공손히 대답하였습니다.
부인은 그 아래를 이어,
“이렇게 발씀드리기는 어려워도…….”
하고 또 말을 그치더니 조금 있다가,
“저것을 하나 믿고 사는데, 암만 일러도 하라는 공부는 아니 하고 장난만 합네다가래. 공부를 할래두 배와주는 것을 암만해도 깨치지 못해요. 그래서 선산님들이 내종엔 화가 나서 내던지군 합네다가레. 저걸 어띠합네까.”
두 눈에 눈물이 핑 돌고 목이 메어,
“선산님이 저걸 어떻게 좀 가라쳐서 사람을 맨들어주…….”
말을 마치지 못하더이다. 나는 그만 같이 눈물을 흘리고 앉았다가,
“네, 걱정 마십시오. 내 기어이 가르쳐놓지요.”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기 애가…….”
하고 부인이 다시 말을 꺼냅디다.
“장난을 해도 별하게 해요. 무엇이든지 눈에 보이는 대로 깨뜨리고 찢고 뜯어놓아요. 그래서 저의 외삼촌한테 늘 매를 맞군 합네다가레. 또 어떤 때는 무엇을 제법 맨들어놓아요. 한번은 칼을 가지고 무엇을 자꾸 깎더니 총을 맨들었는데 모양은 제법 되었어요. 또 한번은 무자위라는 것을 맨드느라고 눈만 뜨면 부슬부슬 애를 씁데다가레. 남들은 공부하는데 공부는 아니하고 장난만 하는 것이 너무 성화가 나서, 하루는 밤에 그것을 감초았디요. 그랬더니 아침에 그것을 찾다가 없으니까 밥도 안 먹고 자꾸 울어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도루 내주었디요. 그리구 또 별한 버릇이 있어요. 무엇이든지 네모난 함이나 곽이 있으면 그것은 한사하고 모아들였다가 방에 그득하게 쌓아놓아요.”
나는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칠성이의 머리 뒷덜미가 쑥 나온 것을 생각하고, 평범한 아이는 아닌 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지 잘 가르쳐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부인은 젊은 사나이 혼자 있는 데 들어와서 길게 이야기한 것이 부끄러운 생각이 났던지, 얼굴이 버얼게서 일어서 밥상을 들고 나가는데, 오래 갖은 고생을 겪은 흔적이 얼굴에 분명히 드러나 보이더이다. 그러나 귀 밑에 조금 나온 그 옻칠한 듯한 머리털이며, 그 밝은 눈과 붉은 입술은 오히려 청춘을 못 잊어 하는 빛이 보이며, 처녀 때, 아씨 때에 동리 젊은이의 속을 태우던 한때는 부잣집 며느리였다는 모양이 넉넉히 드러나더이다.
3
나는 그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부탁하는 말을 들은 뒤에는, 특별히 힘을 써서 칠성이를 가르치려고 하였습니다. 내게 있는 온갖 지식을 쥐어짜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시간을 바쳐서 살살 달래 가면서 가르쳤습니다.
나는 혼자 갑갑하기도 하려니와, 칠성이가 너무 불쌍해서 매일 산보할 적마다 늘 손목을 잡고 다니면서, 정다운 말로 이야기를 해주고 한 번도 책망을 하지 아니하니까, 다른 사람은 다 무서워 흠칠흠칠하건마는, 나만 보면 늘 싱글싱글 웃고 제 동무같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 말은 매우 잘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내가 어디 갔다가 학교로 올라가서 내 방에 들어가니까, 칠성이가 내 방에 혼자 있더이다. 내가 오는 것을 보고 무엇을 얼른얼른 감추더니 싱글싱글 웃더이다.
“너 무엇을 감추니? 나 좀 보자꾼.”
웃으면서 이렇게 달랬습니다. 칠성이는 자리 밑에 감추었던 것을 꺼내면서 ,
“이거야, 누수필³이야.”
내게 만일 재산이 있다고 하면 오직 하나의 재산일 뿐 아니라, 내가 끔찍이 귀애하는 만년필―내가 동경 가서 ○○대학 × ×과를 졸업할 때에, 내 의동생 누이가 영원히 잊지 말자고 사 보낸 워터맨 만년필은 벌써 원형을 잃어버리고 다시 소용 못 되게 조각조각 해부를 하고 동강동강 꺾어졌더이다.
나는 하도 기가 막혀서 입맛만 다시고 아무 말도 아니하였습니다. 속으로는 몹시 분하고 성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았습니다.
그다음 날 나는 웃으면서,
“너 누수필 왜 뜯어서 꺾었니?”
물었습니 다.
“꺾어 볼라구, 물감이 왜 자꾸 나오나 볼라구.”
이렇게 대답하고 이상스럽게 나를 쳐다보더이다. 그래 나는 할 수 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담에는 무엇이든지 나하고 같이 뜯어보자. 너 혼자 하면 안 돼!”
나는 아무에게도 이 말을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오후에 아이들을 보내고 책을 좀 보다가, 동리로 내려가서 칠성이를 찾으니까 벌써 어디 나가고 없더이다. 혼자서 천천히 동리 밖으로 나갔습니다. 거기는 조그만 개울물이 흘러가는데 늙은 버드나무가 하나 서 있습니다.
늦은 가을 석양이라, 하늘은 맑고 새소리 하나 아니 들리고 사방이 고요한데, 누가 고운 목소리로 창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이다. 그 소리는 꼭 내가 열일곱 살 된 해 여름에 평양 사랑고을이라는 데 갔을 때, 옆의 방에서 들리던 어떤 어린 여학생의 찬미소리 같더이다. 그야말로 옥을 옥판에 굴리는 소리같이 맑고 고운 소리였습니다. 놀랐습니다. 그 소리의 주인이 칠성인 줄을 어찌 알았으리까. 칠성이의 목소리가 그렇게 좋은 줄은 몰랐습니다.
하늘빛, 석양볕, 밝은 개울, 늙은 버드나무, 거기에 천진스러운 소년, 꼭 그림이외다. 소년은 천사외다.
나는 가만가만히 수양버들 옆으로 가까이 가보았나이다. 칠성이는 모래밭에 펄쩍 주저앉았는데, 마침 떼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를 바라보고 혼자서 흥이 나서 노래를 부르던 것이더이다. 내 눈에는 아무리 하여도 칠성이가 천치같이는 보이지 아니하더이다. 나는 속으로 ‘너는 자연의 아이로구나, 네가 시인이로구나’
하고 한참 생각에 잠겼나이다.
나는 두번째 놀란 일이 있습니다.
칠성이가 나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면서,
“선산님!”
부르더이다.
나는 웬일인가 하고 칠성이의 옆으로 “무얼 하고 있니?” 물으면서 갔습니다.
“젓지 않고 저 혼자 가는 배를 만들었는데, 가요! 가요!”
입을 벌리고 손뼉을 치면서 뛰놀더이다.
나는 가장 반갑고 기쁜 듯이, 실상은 한 호기심으르 무엇을 가지고 그러는지 보았습니다, 과연 칠성이의 옆에 장난감 같은 조그만 배가 놓여 있더이다. 나는 그 내용을 살펴보려고도 아니하고 한번 다시 실험해보기를 청하였습니다. 칠성이는 자기 배를 가지고, “썩 잘 가는데!” 하면서 물가로 가더이다. 돌아서서 잠깐 꾸물꾸물하더니 어느새 물에 띄웠는지 벌써 찌르르 하면서 달아나더이다.
나는 칠성 이와 같이 손뼉을 치고 기뻐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젓지 않고 가는 배’의 장치는 양철과 쇠줄 같은 것으로 만든 모양인데, 보자고 하여도 보이지는 아니하더이다. 그래 억지로 보려고도 아니하고 내버려두었습니다.
4
나는 불쌍한 칠성이를 위하여 힘도 많이 써보고, 여러 가지로 연구도 많이 해보았으나, 별로 시원한 결과가 생기지 않고, 칠성이는 여전히 한 알 수 없는 아이였나이다.
그러나 칠성이의 모친은 때때로 나를 보고 아들을 위하여 부탁을 하고, 의복과 음식을 아주 집안사람같이 친절히 해주었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즉 박교감은 분명히 자기 아들과 누이의 아들을 무엇이나 차별 있게 한다고 하고, 칠성이가 하루에 한 번씩은 으레 매를 맞는다 합니다.
그럭저럭 하는 새에 겨울이 되고 눈이 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떤 날 저녁에 책을 보기에 재미가 나서 시간이 좀 늦어서 박교감 집으로 갔습니다. 갔더니 칠성이가 아침부터 없어졌다고 온 동리를 온통 찾아보고 야단법석이 났습니다.
“아차!”
나는 놀랐습니다.
“선산님, 칠성이가 없어졌어요.”
어머니의 호소를 듣고 나는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무엇으로 대갈빼기를 얻어맞은 것같이 골이 아팠습니다. 나는 박교감 집 머슴을 하나 데리고 그 어머니와 같이 등불을 가지고 개울로 나가보았습니다. 그 모친은 어쩔 줄을 모르고 울면서,
“칠성아! 칠성아!”
부르짖었습니다.
개울에는 아무리 찾아보아야 없더이다. 칠성 이가 배를 띄우던 개울물은 여전히 말없이 흘러가지마는, 칠성이의 간 곳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지난가을에 칠성이가 모래 위에 앉아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생각을 하고, 그 어머니가 “칠성아! 칠성아!” 아들 찾는 소리가 학교 뒷산에 울리는 처량한 소리를 듣고, 눈물을 아니 흘리지 못했습니다. 나는 저녁도 못 먹고 밤에 잠도 못 자고 칠성이의 일을 곰곰 생각했습니다.
그 이튿날 오후에야 칠성이를 찾았습니다. 찾기는 찾았으나 말 못하고 차디찬 칠성이를 찾았습니다.
이튿날 새벽에 동리 사람이 평양으로 가다가 길가 버드나무 밑에 앉아서 죽은 시체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박교감의 조카 칠성인 줄 알고, 도로 와서 알려주어서 사람을 보내 시체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내가 학교에서 내려가니까, 칠성이의 어머니는 아들의 시체 위에 엎드려서 아무 정신을 못 차리고 흑흑 느끼기만 하다가 이따금 하는 말은, 죽은 칠성이를 흔들면서,
“칠성아! 칠성아! 일어나 밥 먹어라.”
그 어머니는 거의 다 미쳤더이다. 과연 못 볼 것은 외아들 잃어버린 과부의 설워함이더이다.
마지막에 내가 말 아니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꼭 내가 자백하여야 될 일이 있습니다.
칠성이가 없어지기 전날에 학교에서 어떤 큰 학생의 시계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학생을 하나씩 불러서 몸을 뒤져보았습니다. 그 시계가 마침내 칠성이의 몸에서 나왔습니다. 시계는 벌써 다 결딴나버렸더이다. 나는 칠성이의 버릇을 알면서도, 전에 내 만년필 버린 생각도 다시 나고, 내가 여지껏 애쓴 것이 허사로 돌아간 것이 너무도 분해서, 전후를 생각지 아니하고 채찍으로 함부로 때리기를 몹시 하였습니다. 칠성이는 내가 죽인 셈입니다. 칠성은 남이 가진 시계에 욕심을 내어서 훔친 것은 아니외다. 똑딱똑딱 가는 것이 이상해서 깨뜨려보려고 훔친 것인 줄 확실히 아나이다. 칠성에게는 네 것 내 것이 없었나이다. 동무가 가진 시계나 길가에 있는 나뭇개비나 다름이 없었나이다. 그는 무엇이나 이상한 것이 있으면 끝까지 보고야 마는 열심을 가졌었나이다. 내 만년필을 꺾은 것도 그것이외다. 나는 그것을 방해하였나이다. 나뿐 아니라,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은 모두 칠성이의 하는 일을 방해하였습니다. 나도 그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 동네, 그런 세상을 칠성이는 떠났습니다.
그리고 칠성이는 평시에 늘 평양 간다는 말을 하였나이다. 한번은 혼자서 평양을 다녀왔다고 하더이다. 돈 한 푼 안 가지고 길도 모르고 평양을 간다고 가다가, 날이 저물어 그만 나무 아래서 돌을 베고 잤다는 말을 들었나이다. 이번에도 두번째 평양을 가다가 추워서 가지 못하고 앉았다가 길가에서 얼어 죽은 것이더이다.
또 한 가지 말할 것은 자기 어머니의 의롱 속에서 칠성이의 글씨를 발견한 것이외다.
‘내 맘대루 깨뜨려보고, 내 맘대루 맨들고, 그러카구 또 고운 곽 많이 얻을라구 페양 간다.’
이런 말을 쓴 것을 나도 보았습니다.
칠성이가 찬바람 몹시 부는 겨울에 버드나무 밑에서 눈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두 손을 모으고 흐흐 불면서 바들바들 떨다가 죽은 것은, 오직 밤새도록 자지 않고 반짝이던 하늘의 별들이 내려다보았을 줄 아나이다.
가련한 칠성이는 지금 자기 하는 일을 방해하는 어머니도 없고, 자기를 때리는 외삼촌이나 훈장도 없고, 자기를 놀려먹는 동무도 없는 곳으로 저 구름 위로 별 위로 올라가서,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 하고 편안히 있을까 하나이다.
나는 다시 더 득영학교에 있기가 싫어서 겨우 사흘을 지내서, 칠성이의 묘를 한번 찾아보고 봇짐을 꾸려 지고 정처 없이 떠났나이다. 이제는 무슨 노릇을 해먹을지 모르는 길을 떠났나이다.
(산촌에 적적히 계신 사형에게 변변치 못한 작품을 바치나이다.)
-끝-
2016년 6월 13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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