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를 통해 본 대선 정국의 흐름
I
한나라당의 경선참여문제를 두고 손학규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손학규는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서 세 번째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한나라당 대권후보 3인중 한 인물이다. 손학규 자신은 내심으로 “내가 왜 이명박이나 박근혜에 비해서 지명도가 3위 밖에 안되는가?”하는 분개할지 모르지만 모든 결과는 그럴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보수우익에서도 손학규를 바라보는 시선과 평가는 그가 지나온 발자취와 변화무쌍한 경력만큼 다양하고 기복이 심하다. “한번 빨갱이는 영원히 빨갱이”라는 논리로 한국사회의 좌경화를 경고해온 지만원과 같은 우익논객은 손학규의 轉向을 철저하게 不信하고 있으며, 부지런한 우익논객이며 치과의사인 양영태 박사는 손학규를 “개혁성이 강한 정통 우파 한나라당 대선주자”라면서, 그를 변호내지 홍보하는 일이라면 환자의 이빨을 뽑다가도 헐레벌떡 컴퓨터에 달려오는 열성을 보이고 있고, 장문의 칼럼으로 유명한 논객 ‘올인코리아’의 김영환은 손학규의 햇볕정책이 김대중의 그것과는 과연 얼마나 다른 가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부드러운 시선으로 평가를 유보하고 있다. 보수언론 매체도 손학규의 정체성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다. 2월 10일, 동아일보가 사설에서 손학규의 햇볕정책론 계승(8일 기자간담회)에 대해서 "여론의 지지도가 크게 뒤지는 상황에서 차별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려는 안간힘", "아무리 다급해도 대북문제에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된다"고 충고하였던 것을 보면, 손학규의 햇볕정책 지지 선언이 마치 일시적 인기를 얻거나 정략적 차원에서 급조된 것으로 인식하는 언론의 시각도 있다. 참으로 손학규의 발언은 냉철하게 보지 않으면 그 진의를 판단하기 어렵다. 그는 김정일 체제에 대한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보여 보수우익을 실망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의 김정일에 대한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면, 가수 이은하의 노래, ‘아리송해’가 생각난다. “아리송해, 아리송해, 어제 한 너의 말이 아리송해...”
그렇지만 손학규의 진정한 속내는 그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2007.3)에서 분명하게 나타나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친북좌파정부들의 햇볕정책을 옹호하면서, 더 화끈한 대북지원을 주장하여 조건부 대북지원에 반대하였으며, 對北送金 特檢까지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는커녕 “손학규에게 어떤 사람이 감히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합니까? 웃기는 사람입니다. 이 나라가 반공․ 수구꼴통의 나라입니까? 우리가 지금 권위주의․개발시대에 살고 있습니까?”고 反問했다.
II
손학규의 프로필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는 경기고, 서울대(정치학과)를 나와서 영국 옥스퍼드 정치학 박사를 받고 교수에 다시 정치인, 행정가로 변신에 성공한 秀才라고 불 수 있다. 이만하면 재주가 다재재능하고 언변이 뛰어난 인물이다. 손학규는 이명박과 박근혜에 비해서 학식과 재주, CEO의 경력면에서 두 주자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두뇌가 명석하고 우수한 秀才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그의 인기도는 10%내에서 오르락내리락 할까? 유권자라면 이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에서 약간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 “1947년생인 손학규는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중 한일회담 반대,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 규탄, 학원자유화 투쟁 등을 벌이며 서울법대의 조영래, 서울상대의 동갑친구 김근태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삼총사로 불렸다. 1년 넘게 수감생활을 한 후 풀려난 뒤 그는 군 입대를 했다. 제대 후 그는 노동판, 철공소 좌파운동을 벌이다 수배대상이 됐다. 그는 또 지독한 위장취업자로 수배되어 경찰을 피해 도피생활 중 모친의 장례식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어 다시 수감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풀려난 후 1981년 영국으로 유학, 1988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서강대 교수를 거쳐 14, 15, 16대(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복지부장관과 경기도지사를 거쳤다. 저서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길’ 등이 있다.”
III
정치인 손학규는 우익과 좌익을 마음대로 넘나들었던 한국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多才多能한 인물이다. 그는 경기도지사로서 외자유치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또 현대자동차의 과격한 노동운동을 거침없이 비판하였고, 작년 7월 북한 미사일발사후, 용감하게 북을 비판했다. 이런 행보와는 달리, 그의 친북행정과 친북발언은 보수애국세력에게는 결코 소홀히 넘길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는 경기도 지사로 200억원을 만들어 그냥 북한에 준 것이 아니라 평양시장의 역할을 자임했다. 스스로 평양시를 여러 차례 방문하여 무엇이 부족한지를 일일이 살펴 10개 내외에 달하는 사업을 시행한 사람이다. 이런 것들은 그가 과연 진정으로 전향을 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의 친북발언, 대북관, 그리고 친북행각을 정리해 보았다,
그의 최근에 행한 친북 발언 요지를 살펴보자. 그는 2006년 11월 24일 한국발전연구원에서 이런 강연을 했다. “저는 실제로 대학을 졸업하면서 취직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소설가 황석영씨와 같이 구로동 수출공단에 들어가서 일을 했습니다. 제가 거기에 취직을 하려고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이 사회를 뒤엎을까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공장에 취직해서 다니다가 친구에게 들킬 형편이 되어서 다른 공장을 찾고 있던 중에 박형규 목사님께서 노동운동보다 더 중요한 것이 빈민운동이라고 해서 청계천 판자촌에 가서 살았습니다.” “저는 북한의 경제적인 기반, 특히 농업기반을 어떻게 세워주는가 하는 것을 좀 더 주력하면서 지난 봄에는 경기도에서 북한 토양에 맞는 볍씨를 개발해서 북한에 심어주고 추수를 했습니다.”
그의 대북관도 그냥 넘길 수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친북성향 일색이다. 손 지사는 2005년 6월 초 남북협력 사업에 따른 모내기를 마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은 압박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며 정치색을 배제한 협력을 하면 북한 스스로 자생의 모델을 찾게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손 지사는 "북한도 살 길을 찾으려면 개혁과 개방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남북이 상생협력하면서 북한의 인식 변화를 통해 차츰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달 뒤 9월 29일 좌파매체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친북발언을 여지없이 들어내었다. 일부의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1. 햇볕정책 지지; “6.15의 업적과 햇볕정책은 계승해야 한다.” “정전체제를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 “북한의 만성적 식량난은 한국이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남북이 하나 되는 수준을 높여가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당은 달리하지만 찬성했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어떠한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2.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 냉전체제의 산물인 국가보안법을 갖고는 새로운 6⋅15 이후의 상황에 적극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는 폐지해야 한다.”
3. 한나라당의 우경화 비판;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원인 중 하나는 대북포용과 평화체제를 구축하는데 전향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나 통일문제에 대해서 전향적인 자세를 갖춰야 한다.”
4. 열우당의 대북정책 지지;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매우 잘 하고 있다. 지금 남북 화해협력과 평화체제를 만드는데 주무장관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격려해줘야 한다.”
5. 북한 핵 옹호와 남북평화공존 체제 지지; “북한의 평화적인 핵 이용권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핵이 제거된 상태에서는 어떤 나라나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주권적인 사항이다.” “북한을 압박한다고 해서 북한이 바뀌는 것이 아니며 협력을 하면 북한 스스로 자생의 모델을 찾게 될 것이다. 북한에 대한 협력이 북한을 개방과 개혁으로 이끄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남북교류협력과 평화공존은 시대적 대세다.”.”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체제로 가면서 공동으로 번영하고 통일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들을 종합적으로 같이 만들어야 한다.”
경기도지사 시절에 했던 손 지사의 친북행각을 정리해 보았다. 그는 2005년 8월 2일, 임진각 언덕에 통일을 염원하는 바람개비 수만 개를 꽃처럼 수놓았다. 대규모 촛불행사도 벌이고 1,00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동원되어 각종 공연, 강강술래, 불꽃놀이, 풍물놀이를 42일간 벌였다.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버스가 운행됐고, 서울과 임진각역을 오가는 열차 편도 증설했다. 파주에는 「경기도에선 남과 북이 하나입니다」라는 대형간판들이 즐비해 있었다.
2006년 5월 2일, 그는 임진각에서 또 어린이 평화축제를 열었다. 경기문화재단을 동원하여 유치원생 5,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어린이 평화축제’를 열었다. 행사는 일산역~임진각역 구간 ‘평화열차 탑승’, 북한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매달기, 통일한반도 지도 만들기, 사랑의 저금통 전달식, 어린이날 축하공연, 붉은 악마와 함께하는 월드컵 응원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날 모아진 사랑의 저금통은 북한 식량난 돕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월드비전’을 통해 북쪽에 전달됐다. 그는 200억 원의 남북협력기금을 조성, 이미 2004년 경운기·치과장비·환자수송용 차량 등을 10억 원 상당의 물량을 북한에 제공했고, 2005년 1월 북한에 남북합작 벼농사시범농장을 제안하며 20억 원 상당의 지원을 약속하였다. 2006년에는 100명을 인솔하여 북한을 방문하여 자기가 재배한 모내기를 하고 심었다. 거기서 열우당 임종인 의원과 민화협 부회장을 함께 만났다. 또 2006년 4월 개성공업지구 소방대에 공기호흡기 등 9천400만원 상당의 장비를 전달했다. 얼핏 보기에는, 그의 대북지원에 대한 열성과 통일에 대한 염원이 남다르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손학규는 이미 2002년도에도 당내에서 다른 좌파의원들과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 대표적 인물이다. 유일하게 북한에 분노를 표현한 경우는 한번 있었는데, 북한 미사일의 발사시에 북한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였고, 갑자기 ‘100일민심대장정’에 돌입하는 정치이벤트를 연출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인기도와 지명도가 소폭 상향하였다.
IV
이상의 손학규에 관한 프로필, 도지사 시절의 친북행각을 살펴보면, 손학규가 어떤 인물인지 분간할 수 있다. 사상적 성향으로 보아, 그는 보수애국세력에게 신뢰감을 줄 인물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무엇보다도, 민청학련사건의 배후조종자로 수배를 받았는데, 검거-투옥-석방과정에서 전향의 과정이 오리무중이다. “과거의 끈”과 무엇을 단절하고 무엇을 계승했다는 냉철한 자기반성이나 고백을 정리한 기록이 없다. 대권후보자면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은 누구든지 사상범이 전향각서를 썼다고 해서, 박사학위를 땃다고 해서, 대학교수가 되었다고 해서,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다고 해서, 장관이 되었다고 해서, 도지사가 되었다고 해서, 심지어 대통령이 되었다고 사상검증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바람을 피우다가 들통이 난 남편이 아내에게 “앞으로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할 것을 약속한다”는 맹세각서를 썼다고 해서 신뢰의 검증이 끝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낮에 부지런히 일해서 생활비를 벌어오고, 밤에 열심히 사랑의 봉사를 하는 과정이 차곡차곡 쌓여야 아내는 난봉꾼이었던 남편의 과거를 용서하게 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손학규는 북한인권이나 납북자에 대한 문제의 제기도 없이 대북원조를 해주면, 북한의 김정일은 개혁개방으로 갈 것이라는 논리이다. 김대중의 햇볕정책과 별 차이가 없다. 핵문제에 대해서도 특별한 것이 없다. 그는 김정일에게 맞서 싸울 대항마는 결코 아닌 것이다. 그는 한나라당내의 친북좌파 중에서 가장 巨物級으로서 한나라당의 우경화를 저지하는데 오랫동안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는 이념적으로 열우당 후보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그는 경선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경선에 불참할 수 있다는 명분을 잡았다. 아직 손학규는 탈당은 없을 것이라고는 장담하나 한나라당 지도부에 대한 그의 불만이 눈덩이처럼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미 경선불참의 가능성을 언급한 손학규는 “남한이 북한 경제 재건사업에 주도적으로 나서야만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이 함께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최근 북미간 해빙무드 등 한반도 주변 정세에 한나라당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당 지도부에 불만을 토로했다. 손의 대리인 정문헌 의원(속초-고성-양양)도 3월 13일, 탈당가능성의 운을 띄고 있다는 점은 예사롭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반대로 말하면, 손학규의 경선불참은 탈당에 대한 명분축적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든다는 지적도 있다.
손학규는 범여권의 후보 선호도를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김근태계의 정봉주 의원이 "손학규는 우리와 뿌리가 같다."며 민주화 세력에서 태어난 `뻐꾸기`론을 들어 영입의 손짓을 한 데 이어, 2월 8일에는 정동영 전 의장마저 "손학규는 탈당하라"고 권고하고 나섰다. 손학규의 고민은 탈당이 자칫하면 ‘제2의 이인제’꼴이 되지 않을까에 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경선과정에서 이명박과 박근혜진영의 대결구도 과정을 지켜본 뒤에 행동을 취할 것으로 예측이 된다. 만약 야권에 빅뱅이 온다면, 새로운 둥지를 틀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문제는 열우당 내에서 범여권 후보의 단일화에 대해서 의견통일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손학규는 여러 영입대상자 중에서 한명일 뿐이다. 아직 구체적인 조건이나 환영 카페트가 깔린 것은 아니다, 지금은 정운찬, 진대제, 박원순, 등의 영입 후보군들이 도사리고 있는 암중모색의 과정이다. 특히 정운찬은 대권행보에 미련이 있는 듯한 발언과 행보를 하고 있어서, 다른 대권주자들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동교동 김대중의 의향도 중요 변수이다. 이번 대선에서 야당에서 이명박, 박근혜가 분열하여 모두 야당후보로 나오고, 헤쳐모여식 범여권에서 ‘한반도의 未來.平和.改革세력의 범국민후보’라는 아름다운 간판으로 위장하여 손학규를 옹립하여 3자구도의 대결이라면, 친북좌파의 재집권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승리의 확률이 그만큼 더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집권층에서 여러 각도에서 손학규에게 求愛의 손길을 뻗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의 김정일도 손학규가 여권의 후보가 된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두더지가 進路가 차단되면, 땅속에서 나와야한다. 봄철에 아지랑이가 끼면, 논밭에서 따스한 햇볕을 쬐는 두더지를 가끔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오랫동안 감추는 것은 자신의 정신건강에도 해롭고, 소속된 정당에도 좋을 턱이 없다. 차라리 이제까지의 가면과 위장을 걷어치우고 사나이답게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이고 독자적 길을 걷는 것도 진정한 용기가 있는 당당한 대권후보의 모습이 아닐까? 왜냐하면 손학규는 한나라당에서 보수세력과 뒤섞기에는 그의 才能이 너무 아까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주천 원광대 교수(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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