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알파 = 유주영 기자] 2013 수능결과는 이공계 영재교육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냈다. 한국교육평가원이 내놓은 2013학년
대학수학능력평가 결과를 보면 이공계 영재의 산실인 과학고 영재학교의 운영이 미래창조를 겨냥한 정책방향이나 학교의 설립목적과는 상관없이 자연계
최상위권의 대명사로 불리는 ‘의치한’(의대 치대 한의대)으로 쏠리는, 심각한 영재유출상황을 반영했다.
2013수능결과 전국 과학고 영재학교 가운데 가장 많이 수능을 응시한 학교는 164명이 응시한 세종과고였다. 다음이 한성과고(161명)
광주과고(125명) 경기북과고(113명) 서울과고(103명)이 톱5였다. 이어 대전과고(91명) 울산과고(88명) 부산과고(75명)
경기과고(70명) 전북과고(62명)가 톱10에 들었다.
과학고 영재학교의 수능응시자 숫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과고 영재학교의 수능응시인원은 의치한 정시를 겨냥한 수요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공계 특성화대학 진학을 전제로 공부하는 탓에 교과과정에서 수능을 공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수능을 볼 이유도 거의 없다. 이공계
특성화대학은 대부분 수시에서 입학 사정관제로 과고 영재학교 학생들을 대거 흡수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이공계열 조차 수능을 공부하지 않는 과고
영재학교 인원 흡수를 위해 83%를 선발하는 올해 수시에서 수능최저등급이 아예 없애기 까지 했다.
과고 영재학교 학생들의 수능 응시는
의치한 수시에서 실패한 학생들의 패자부활전격인 셈이다.
현재 의치한 입시가 수시와 정시가 절반씩 포진된 상황에서 수시는 주로
올림피아드 수상등 스펙이 화려한 일부 영재학교 과학고 출신들이 몫이고 정시를 이공계특성화대학 진학이후 반수생들이 주로 활용할 것으로 추정한다.
과고 영재학교는 대부분 진학률이 높아 재수생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규모에 있다. 가장 수능을 많이 본
세종과고는 입학정원이 140명 안팎, 2위 한성과고가 160명 안팎으로 좀 많은 편이지만 대부분 과고 영재학교 정원이 100명 안팎임을 감안하면
톱5까지는 입학한 인원만큼 수능을 본다는 얘기가 된다. 결국 졸업연도에 직접 수시로 겨냥하거나 다음해 수능으로 정시를 겨냥하는 형식으로 시차가
있을 뿐 대부분 의치한으로 빠져 나간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 최고의 영재학교로 알려진 서울과고는 120명 정원에 105명이 수능을
응시해 심각성을 더해주었다. 서울과고의 지난해 의대진학실적은 수시에서만 23명이었다. 2012학년 21명보다 오히려 두 명 늘었다. 서울과고의
졸업생 대비 의대진학 비율은 20% 안팎으로 알려졌다. 2012학년엔 21.4%(졸업생 98명)였고, 2013학년엔 19.2%(졸업예정자
120명)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서울대 수시에서 의예과에 17명이 지원해 10명이 합격했다. 서울대 의예과는 95명 가운데 수시에서 75명을
선발했다. 서울대 수시 합격생의 13%가 서울과고출신인 셈이다. 전국 고교 가운데 의대 진학명문으로 알려진 상산고(2명)와 대구경신고(3명)가
초라해 보일 정도로 독보적 실적이다.
나머지 3개 영재학교는 서울과고보다는 상황이 나아보인다. 경기과고는 지난해 70명이 수능에
응시해 2012학년 24명에서 대폭 늘어 아쉬움을 남겼고 대구과고 49명으로 과고시절( 142명 )보다 훨씬 축소됐다. 가장 설립목적에 맞게
운영되는 학교는 역시 카이스트 부설 한국영재였다. 2012학년 23명에서 2013학년 18명으로 더욱 줄었다. 수능응시인원과 영재학교의 선호도는
거의 일치해 주목을 끌었다. 통상 영재학교는 서울과고 경기과고 대구과고 한국영재순의 선호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고
상황은 영재학교보다 더욱 심각해 보인다. 특히 서울과고의 영재학교 전환으로 전국과학고 수위를 다투는 한성 세종 서울지역 과고의 상황이 가장
심각했다.
수능 응시인원 164명으로 1위를 차지한 세종과학고의 3학년 졸업생은 29명(2012년 4월 학교알리미 기준) 29명의
학생이 2013학년 수능을 봤다면 그 4배가 넘는 135명은 재수이상인 학생이다.
수능응시인원 2위인 한성과고는 161명이 수능을
응시했다. 2012 학년 210명보다 줄었지만 한성과고의 정원은 140명이고 2012년 기준 학교알리미의 3학년 재학생은 32명임을 감안하면
졸업생의 5배가 넘는 인원이 수능을 쳤다는 얘기가 된다.
과학고는 2학년 때 조기졸업을 하는 학생이 약 80%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매년 수능 응시인원은 과학고의 입학정원을 웃도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013 수능 결과에 반영된 영재학교는 4개, 과학고19개교였다. 올해 신입생을 모집하는 2014학년 숫자와는 다르다. 올해 영재학교는
대전 광주과고가 합류하면서 6개로 늘었고 과학고는 지난해 21개교에서 대전 광주가 빠져나간 대신 대전동신이 합류해 20개교가 됐다.
과고와 영재학교는 애초 과학인재 양성을 위해 만들어진 학교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과학영재들의 가장 큰 고민은 진로다. 과고에서
근무했던 한 교사는 “과고의 많은 학생들이 적성에 맞는 이공계열과 부모와 사회가 원하는 의대를 두고 고민한다”며 “부모들은 의대를 원하고, 대학
의대마다 영재학교 학생을 선점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어린 학생들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과고 영재학교
출신 영재들의 의치한 진학은 국정감사나 토론회의 단골 메뉴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태.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영재는 의대 진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교칙을 대폭 강화했다. 학교 몰래 의대진학을 결정한 것이 드러나면 국고의 지원을 받아 다녀온 해외위탁교육비 등을 전액 환수
조치한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출범이후 무언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부서이름도 미래의치한부로 바꿔야할 지 모른다. 국고 지원이
이뤄지는 만큼 엄정한 관리가 필요하고 학생 학부모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의 인식, 연구인력에 대한 태도와
발상의 전환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