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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교사 아볼로
사도행전 18:24~28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사도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을 마무리하고 3차 전도 여행을 시작한 것을 기록한 후에 본격적으로 사도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을 기록하기 전에 잠깐 삽화처럼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을 때 보았듯이, 이 기록은 청년 사역자 아볼로의 사역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누가가 이렇게 아볼로의 사역을 기록한 이유는 삼차 전도 여행 후반부에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쓴 편지들 속에서 고린도교회의 분쟁과 관련되어 아볼로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그 전후 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사도행전 저자 누가를 통하여 여기서 잠깐 기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볼로는 매우 흥미로운 사역자입니다. 그는 통상적인 사역자들과 달리 전혀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앙적 근거지인 예루살렘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입니다.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지라”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그는 이집트 북부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입니다.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 연안 항구 도시로서 로마 다음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대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그리스 마케도냐 왕이었던 알렉산더가 정복하여 세운 도시로서 그리스인 곧 헬라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 이집트 내에서 특별한 세계 도시였습니다. 이 알렉산드리아 도시에는 당대 가장 큰 도서관이 주전 300년경에부터 존재하였는데 이 도서관에는 약 70만 권 정도의 책들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학문 연구와 가르침이 계속되었으므로, 가장 지성적인 도시로 그 명성이 대단하였습니다. 이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일찍이 그 애굽의 통치자 프톨레마이오스 황제가 주전 300년 경에 유대인의 경전인 히브리어로 쓴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해달라고 청하여 그 요청에 따라 유대인 학자 70명이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만들었습니다. 주전 300년경부터 주전 100년경까지 약 200년에 걸쳐 구약 성경 전체를 헬라어로 번역했기 때문에,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과 그 후 사도들은 바로 70인역 구약 성경을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활동할 그 당시 알렉산드리아에는 필로라는 유명한 종교철학자가 활동하였습니다. 필로는 모세 오경을 헬라의 이분법적인 철학으로 해석하려고 힘써서 많은 책을 쓰고 추종자를 얻었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러한 학문적, 종교적 분위기의 알렉산드리아 시에 살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볼로는 어린 시절부터 그 도시의 종교적, 학문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나면서, 어렸을 때부터 유대교의 신앙과 기독교적 신앙에 접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라나면서 천성적인 은사와 더불어 자라난 환경 속에서 특별한 재능을 갖고 구약 성경에 심히 능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비록 혈통으로는 유대인이지만 그는 유대의 히브리말보다는 헬라어를 모국어처럼 더 친숙하게 사용하고 정신적으로도 헬라 문화가 더 익숙한 젊은이로 자라났을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은 애굽의 한 도시에 거주하지만 자기들이 애굽 사람이라는 생각보다 헬라인이라고 생각하고자 했고 자기들은 세계적 시민이라고 자부했기 때문입니다. 아볼로는 학문적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에서 학문적 훈련을 잘 받았기 때문에 언변이 좋았습니다. 그는 사고도 논리적이었고 그것을 표현하는 화술에서도 매우 능통하였습니다. 특별히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이었는데, 그는 성경에 아주 능통하였습니다. 여기서 성경은 구약 성경이요 아볼로가 자주 접하고 읽고 연구한 성경은 바로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 성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볼로의 특이점은 그가 구약 성경을 읽고 연구하였는데 동시에 예수님에 대하여 아주 잘 안다는 것입니다. 25절 전반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그가 어떻게 주의 도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했는지는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 부모님이 예루살렘에 순례를 갔거나 주변에 예루살렘에 다녀온 분들에 의하여 전도가 되어서 그 부모와 함께 기독교 복음을 듣고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사회에 기독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의 모임이 산발적으로 생기기 시작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시기는 주후 50년 초반이니까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에 약 20년 후이므로, 국제적 도시인 알렉산드리아 시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 사이에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가운데 자라난 아볼로는 어린 시절부터 구약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에 대한 구절들이 곧 나사렛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볼로는 이제 청년의 때가 되고 마음 속에 기독교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종교적 열정이 충만해지자, 더 이상 고향 알렉산드리아에 머물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하여 배를 타고 몇 천리 떨어진 소아시아의 대도시 에베소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에베소에서 자기의 동족 유대인의 회당에서 자기의 열정을 다하여 그가 배우고 알고 확신한 종교적 진리를 회중들에게 열렬히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볼로의 열정적인 가르침은 에베소 회당에서 어떤 반응을 가져왔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5절과 26절을 함께 다시 읽겠습니다.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여기서 보면 아볼로라는 청년은 일찍의 주의 도 곧 예수님의 복음을 배웠기 때문에 그의 천부적인 달변의 능력과 열정을 가지고 예수님에 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다고 누가가 언급합니다. (사도행전 저자 누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마도 누가가 이 당시에 에베소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 누가는 이 기록 앞선 부분에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머물게 하고 자기만 가이사랴에 도착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사도들과 교제하고 시리아 안디옥에 도착하여 얼마간 머물렀다가 3차 전도를 시작한 일정에 대하여는 극히 간략한 필체로 기록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아볼로라는 청년의 에베소 사역 당시의 모습을 좀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것을 볼진대, 의사 누가가 그 당시에 에베소 시에 아굴라 부부와 함께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볼로가 예수에 관한 말씀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지만 그의 부족한 점도 드러났는데 그것은 아볼로가 세례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하였다는 점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앞서 사역하였던 선지자로서 오실 그리스도를 준비하며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던 사람입니다. 물론 세례 요한도 자기 뒤에 오실 그리스도가 예수님이라는 것도 증언하였고, 그를 맞이하기 위하여 진실한 회개가 필요하다고 가르쳤던 분입니다. 그래서 아볼로는 예수님을 알기는 하지만 복음의 충만한 부분은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뒤의 그의 영광스러운 부활과 승천과 성령의 보내심과 각종 성령의 은사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영적 영광에 대한 부분에 대하여 충분한 지식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아볼로의 가르침은 분명히 구약 성경에 바탕을 둔 성경에 맞는 진리의 가르침이었지만 그의 가르침은 한계가 있었고 복음의 충만한 은혜와 그 복음의 영광에 대하여는 다 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볼로의 가르침은 매우 성경에 맞게 논리적인 데다가 매우 열정적인 달변의 혀까지 겸하여서 그의 가르침을 듣는 에베소 회당의 유대인 청중들은 매우 마음이 흡족하였고 모두 기쁘고 즐거운 호응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유대인 청중들은 아볼로에게 다음 주 안식일에도 다시 와서 우리를 가르쳐 달라는 뜨거운 요청을 아볼로에게 했음이 분명합니다. 아볼로 역시 흡족하고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안식일 예배를 마치고 흩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청중 가운데에서 아볼로 형제의 미숙한 점을 발견한 사람이 있었으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과 함께 고린도 교회에서 이년 정도 함께 머물면서 사도의 가르침과 사역을 곁에서 깊이 배웠던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에베소 유대인 회당에서 저 이방 지역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젊은 청년 아볼로가 구약 성경을 그렇게 잘 이해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자세히 잘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큰 놀라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볼로가 여전히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지 못함을 느끼고 아쉬웠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대속의 의미, 그의 부활이 가져온 구원의 풍성함,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그의 성령이 오셔서 행하시는 놀라운 사역들, 유대인 교회와 이방인 교회 간의 복음 안에서 하나 됨 그리고 주님의 재림과 장차 임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의 영적인 비전 등에 대하여 그 젊은 사역자 아볼로는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어떻게 이 청년 사역자에게 이 점을 어떻게 알려줄까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를 조용히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얘기해보기로 했습니다. 분명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은 그냥 그들의 직업대로 허름한 천막 집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천막 집 안팎으로는 만들고 있는 가죽 천막들과 천막 만드는 작업대들, 그리고 가죽 신발들, 포도주를 담는 가죽 부대들과 그리고 생활을 위한 가재 도구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외적으로 보면 너무나 평범한 생활인이었습니다. 어디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러한 평범한 수공업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창 열심을 내고 있는 유명 도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젊은 성경 교사에게 식사를 대접한 후에 조용히 자기가 느꼈던 바를 말하고 아볼로가 아직 모르는 바 복음의 깊은 진리들을 그에게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 알려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에 아볼로 입장에서 얼마나 당황했을까 생각했을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기 딴에는 자기는 최고의 도시에서 최고의 학문적 훈련을 쌓았고 구약 성경에 대하여 달통하였고 예수에 관한 가르침도 충분히 자세히 알고 있어서 이미 준비는 성경 교사로서 충분히 준비되었다고 생각하고서 고향을 떠나 성경 교사가 되어 먼 곳 에베소 회당에서 자기의 지적 기량을 다 드러내어서 많은 호응을 얻었는데, 갑자기 그 회중 가운데 너무 초라한 평범한 천막 장사꾼에게 지금 도리어 한 수 배우고 있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수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들을 다시 배워야 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자존심이 매우 상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먼저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와서 가르쳐주는 브리시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매우 지혜로운 조언자였습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아볼로의 부족함을 드러내어 면박을 주거나 사역자가 형편없다고, 자기들보다 더 모른다고 큰 소리치면서 아볼로를 깎아내리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은밀하고 조용하게 자기 집에 따로 불러서 조용히 자기들이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되어서 부활의 주님을 직접 뵈었던 사도 바울로부터 이러이러한 복음의 진리를 자세히 배운 점과 성령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행하신 모든 사역들과 고린도교회와 그 이전에 사도 바울과 그 전도단이 이방 지역에서 세운 여러 교회들의 열매들과 그들이 주님을 위하여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헌신했던 일들을 차근차근하게 전하면서 사도 바울이 가르친 바 복음의 놀라운 풍성함을 아볼로에게 신뢰성 있게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청년 아볼로는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자기가 알고 있는 바 지식 위에 더 깊고 넓은 복음의 지식을 더하여 가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아볼로는 재능이 있는 훌륭한 주의 종이었지만 그에게 있는 더 훌륭한 점은 그가 일반 평신도에게서조차 기꺼이 진리의 가르침을 배울 줄 아는 겸손한 사역자였다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재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기꺼이 배우려 하는 겸손함과 배움의 열정인 것입니다. 유명해지고 성공하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겸손함과 배우려는 열정과 성숙을 지향하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이렇게 에베소에 와서 가르치는 교사의 사역을 계속하였는데 그의 마음은 더 큰 사역지를 향하여 마음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이번에 아볼로가 가고자 하는 곳은 아가야였습니다. 그곳은 바로 사도 바울이 금방 아굴라 브리스길라와 함께 떠나왔던 고린도 교회와 겐그리아 교회, 아덴 지역이 있는 곳입니다. 아볼로가 이처럼 아가야 지역 곧 고린도 교회로 가고자 하는 까닭은 아마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하여 전해 들은바 고린도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소원이 생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27절로부터 28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아볼로가 아가야 도의 고린도 교회 등으로 가서 사역하려는 포부를 말하자 에베소의 기독교 성도들은 격려하면서 추천 편지를 써 주었습니다. 그가 배를 타고 멀리 바다 건너 사도 바울의 이차 전도 여행의 최종 기착지였던 고린도 시에 도착하여 그곳의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큰 영적 유익을 주었습니다. 이는 그가 에베소에 있을 때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서 배운 바 그리스도와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을 그곳에 가서 확신과 열정을 가지고 성경을 가지고 잘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얼마 전에 계셨다가 간 고린도교회의 기초를 놓은 사도 바울과 선지자 실라 청년 디모데와 의사 누가의 선교단 일행의 사역 후에 새로운 젊은 성경 교사 아볼로를 통하여 큰 유익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아볼로는 교회 밖에 나가서 복음을 변증하는 데에서도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곧 아볼로는 공중에서 복음을 변증하는 일에도 크게 성과를 거두었으니, 고린도 광장 아고라 시장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 광장에 있던 골수 유대교 신자들인 유대인들이 흥분하면서 아볼로에게 논쟁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아볼로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구약 성경을 가지고 풀어서 예수님이 바로 구약 성경이 예언하신 그리스도라고 확실하게 입증함으로써 유대인들을 입을 막아버리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사도 바울 때에도 고린도 시에서 기독 교회를 핍박하려고 재판을 걸었던 유대인들은 또 다시 젊은 사역자 아볼로의 변증에 의하여 코가 납작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아볼로의 고린도 시에서의 사역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렇듯 훌륭한 복음 교사로서와 복음 변증 사역에서 큰 성과를 거둔 젊은 설교자 아볼로는 고린도교회 내에서 많은 영적인 유익을 주었고 교회 밖의 기독교의 위상도 높이고 영혼들도 교회로 돌아오는 열매도 더 많아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볼로의 이러한 사역은 뜻밖의 부작용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고린도교회 내부에 파당이 생겨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회 내부의 분쟁이 일어나게 된 까닭은 아볼로 개인의 잘못은 아니었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미성숙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찾아온 아볼로가 크게 영적 유익을 끼치는 설교자, 영적 교사의 사역을 감당하니까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서 사도 바울과 비교하면서 사도 바울을 깎아내리고 자기들은 아볼로에게 속한 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러한 파당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이전에 사도 바울이 개척하여 사역하면서 크게 영적인 감화를 입었던 이들은 자기들이 사도 바울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어떤 성도들은 게바 곧 베드로파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이 파도 싫고 저 파도 싫고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그리스도파라고 주장하는 자도 생겨나고 말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11 이하에 사도 바울이 쓴 내용이 그것을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는 그가 3차 전도 여행차 와서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때이니 주후 55년 경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볼로가 고린도에 가서 사역한 지 2년 내지 3년 후의 일이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사역한 지 약 3년 내지 4년 후의 일이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뒤에 아볼로가 그곳에서 이년 내지 삼년 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고린도교회에 심한 내부 분쟁이 생기면서 하나 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한창 사역하는 중에 고린도교회의 성도였던 글로에라는 사람과 소스데네라는 성도가 와서 전해줌으로써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의 그러한 분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편지를 쓸 당시에 보면 그 청년 사역자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의 사역을 마치고 그곳을 떠나와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사도 바울에게 와서 동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교회 내부에서는 계속하여 그렇게 내부 분쟁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 문제를 심각히 여기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동일하게 죄사함을 받은 용서받은 죄인들이므로 오직 예수님 한분만을 붙들고 인간의 파당들을 다 버리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라고 간곡하고 엄중하게 명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아볼로는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분명히 의도한 바는 아니고 그의 사역은 큰 은혜 가운데 복음을 잘 변증하며 성도들의 유익을 끼치는 데 헌신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교회 내부의 분쟁을 일으키는 단서를 제공했으니 아볼로 입장에서는 참 곤혹스럽고 당황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비록 선하게 사역할지라도 때로는 결과적으로 기이하게 나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열심을 다하고 교회를 힘있게 섬겼지만 결과적으로 좋지 못한 결과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간교한 술책과 인간의 내부의 부패한 본성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아볼로 잘못이 아니듯이, 우리의 잘못도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아볼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볼로는 최선을 다하였고 하나님의 교회에서 자기가 받은 천부적인 재능인 학자로서의 깊은 연구와 달변의 언변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크게 헌신했는데, 그 일로 유익도 있었지만 본의 아니게 교회의 분쟁의 단초를 제공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난감하고 낙심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아볼로는 다시 한번 겸손을 배우게 되었으며, 교회를 섬기는 것이 단지 가르치는 은사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님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는 다시 한번 자기의 부족함을 깊이 자각하고 에베소에서 사역하던 사도 바울에게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권위 아래에 복종하면서 그 권위 아래에서 영적 질서를 배우며 더 깊은 복음 진리를 배워가면서 목회자로서, 전도자로서 더 배워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고린도전서 마지막 부분에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써보낸 안부 내용 중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여기서 보면, 아볼로는 고린도에 있는 사도 바울에게 와서 함께 있으면서 분쟁 중인 고린도교회에 자기가 다시 가면 혹시라도 자기 때문에 또 다시 분파 활동이 거세질까봐 가라는 말을 들어도 사양하고 가지 않는 매우 신중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분쟁이 그치고 질서와 화평 가운데 고린도교회가 잘 세워져 갈 수 있도록 아볼로가 자기를 쳐서 복종하며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보면 아볼로가 또 다시 인격적으로 성숙해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나 주님을 섬기는 사역에 있어서 본의 아니게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겸손하게 자기를 돌아보고 절제하며 배워가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볼로에 대한 성경의 마지막 기록은 사도 바울이 쓴 디도서에 나옵니다. 디도서 3장 마지막 안부 인사와 동역자들에 대한 행동 지침을 크레타 섬에서 사역하는 디도에게 전해주는 대목에서 사도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내가 아네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 율법 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들로 부족함이 없 게 하고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디도서 3:12~14)
이 디도서를 쓸 당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이년 동안 갇혔다가 석방되어 다시 지중해 연안의 수많은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여러 동역자들과 함께 수많은 교회들을 계속하여 격려하며 잘 세워갈 때입니다. 그 때 곧 주후 62년부터 65년경까지의 일이니까 처음 청년 아볼로가 에베소에 등장했던 주후 52년경 정도로부터 계산해보면 십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도 바울 곁에서 동역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볼로라는 청년 사역자를 생각해보면, 그는 처음에는 온 세상을 정복할 것과 같은 독불장군과 같은 기세로 홀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에베소에 찾아온 기세 등등한 젊은 교사였습니다. 아무도 그를 건들 수 없고 조언해줄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될 만큼 지식과 달변과 열정과 학문적 논리로 충만한 변론자요 학자요 탁월한 교사였지만 그에게 더더욱 훌륭한 점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그가 항상 배우기 위하여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기꺼이 허름한 평신도 성도에게도 기꺼이 배웠으며, 후에는 큰 사역의 성공을 거두었으나 자기의 한계를 발견하고는 곧 사도 바울의 권위 아래 순복하며 자기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간섭하여 그 교회의 분쟁을 처리하도록 뒤로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서 이 년 동안 갇히고 또 로마에 가서 이 년 동안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겪는 것을 보고서도 사도 바울 곁을 떠나지 않고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석방된 뒤에서도 그의 사역의 지휘 아래 들어가서 사도를 돕는 동역자로 의리있게 끝까지 충성스럽게 사역을 도운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아볼로라는 청년은 처음보더 점점 더 아름답고 성숙해지는 매우 귀한 사역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처음보다 끝이 더 좋은 사역자였습니다.
어떤 분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목회자, 사역자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기다리신다는 말씀입니다. 모세, 야곱, 요셉, 다윗, 엘리야, 세례 요한, 바울, 베드로, 아볼로 다 오랫동안의 고난과 연단을 통하여 훌륭한 주의 종으로 빚어져간 사역자들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서도 우리의 성숙한 신앙과 인격과 주님을 섬기는 사역에서 진보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릇이 작고 많은 점에서 부족한 우리로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세월이 가면서 주님 안에서 더욱 영글어가는 성도가 되어가는 것은 참으로 복된 것 같습니다. 재능보다 더 복된 것은 배움과 성숙입니다. 우리 모두 항상 겸손하게 배우는 자로 살아갑시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우리 평생에 주님으로부터 배워가는 자로 살아감으로 우리가 점점 더 성숙해져서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평생 아볼로와 같이 겸손하여 누구에게나 겸손히 배우고 또 실수로부터 배우고 또한 권위자 아래 복종함으로 배우고 또 동료들과 함께 동역함으로써 잘 배워서 점점 주님 안에서 원숙함에 이르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