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훈, 남아공에서 KO승으로 세계챔피언

[이소룡]

한국 프로 복싱의 유망주 김지훈이 적지인 남아공화국에서 세계 챔피언 벨트를 획득했다.

김지훈은 13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켐프턴파크에서 열린 국제복싱기구(IBO) 슈퍼페더급 원정 타이틀매치에서 챔피언 졸라니 마랄리(32.남아공)를 9라운드 KO로 꺾고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다.

이로써 김지훈은 생애 첫 세계 타이틀 도전에 성공하는 동시에 현재 한국 남자 프로 복싱에서 유일한 세계 챔피언이 됐다. 한국 복싱은 지인진이 2007년 7월 격투기 전향으로 챔피언 벨트를 자진 반납한 이후 2년2개월 동안 세계챔피언을 배출하지 못했으나 김지훈의 승리로 드디어 챔피언 보유국이 되면서 복싱왕국의 재건에 나설 발판을 마련했다.

이날 경기는 빠른 스피드와 좌우 연타를 앞세운 김지훈이 적지에서 한 수 위의 기량을 보여준 한판이었다. 경기 초반에는 사우스포(왼손잡이)인 챔피언 마랄 리가 홈링의 잇점과 경력을 앞세워 점수에서 앞서나갔다. 그러나 마랄리와의 탐색전을 끝낸 김지훈은 5라운드부터 서서히 주도권을 잡아 나가다가 상대 움직임이 느려진 9라운드 중반 김지훈은 마침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9라운드 시작 1분여 뒤 김지훈이 오른손 펀치를 마랄리 왼쪽 관자놀이에 적중시키자 상대가 휘청거렸고 김지훈은 바로 이어 왼손 어퍼컷을 날렸다. 이 어퍼컷이 마랄리의 턱을 스치자 기세를 몰아 강력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다시 상대 안면에 정확히 꽂았다. 김지훈의 펀치에 그대로 캔버스에 쓰러진 마랄리는 카운트다운 막바지에 일어서기는 했지만 심판은 더 이상 경기를 재개하기 어렵다고 판단, 결국 김지훈의 손을 들어줬다.

2006년 12월부터 9경기 연속 KO 승을 이어간 김지훈의 프로 통산 전적도 19승(16KO)5패로 올라갔다. 반면 지난 4월 가마리엘 디아즈(미국)를 판정으로 꺾고 챔피언에 올랐던 마랄리는 이번 1차 방어전에 실패하며 김지훈에게 타이틀을 내주며, 통산 전적은 20승(13KO)3패를 기록했다.

한편 이날 경기는 현지시간 토요일 밤 7시45분부터 밤11시까지 슈퍼 스포츠 채널 5로 남아프리카 전 지역에 생방송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는데, 김지훈은 '4전 5기' 신화의 주인공 홍수환(59)이 1974년 세계 챔피언 아널드 테일러를 물리치고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타이틀을 차지했던 그 남아공 땅에서 35년 만에 또 다시 승전보를 전하며 세계 복싱계에 커다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사실은 시합 전부터 김지훈 선수 측에서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고 복싱 전문가들도 그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의 열혈 복싱팬들은 현지에서는 아프리카 전역으로 중계방송이 예고되어 있지만, 한국에서는 생중계로는 볼 수가 없는 복싱의 현실을 깨보이기 위해 생중계 탄원을 케이블 방송에 내는 에피소드도 연출되었다.

김지훈은 다듬어지지 않은 옥석처럼 부딪히고 깨지면서도 꿋꿋이 앞만 보고 뛰어온 선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23차례 링에 올라 5차례 졌지만, 18승 중 케이오(KO)승이 16차례나 되고 이번 승리까지 9연속 KO승 행진을 벌이고 있는 라이트급 최강자다.

챔피언을 국내에 끌어들여 타이틀전을 벌이던 대부분의 선수들과는 달리 그는 2007년 11월 3년 계약을 맺고 프로복서 꿈의 무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직접 진출하는 대담성을 보이기도 해서 주목을 끌었다. 지난해 5월16일 처음 오른 라스베이거스 링에서 무명선수였던 그는 세계복싱기구(WBO) 슈퍼페더급 세계타이틀 경험도 있는 그루지야의 코바 고골라지를 1라운드에 때려눕히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1982년 김득구 사망 이후 라스베이거스가 깜짝 놀란 빅뉴스였지만 그것이 상품가치를 높이기는커녕 악재로 작용했다. 무명이지만 강한 김지훈과 맞붙어서 지면 망신이고, 이겨야 본전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김지훈은 지난 3월, 어렵게 성사된 경기에서 미국의 노장 길버트 살리나스를 8회 케이오로 눕히고 귀국한 뒤 국내에서 계속된 '코리안 콘텐더' 라이트급 경기에서도 연승을 거두며 결승전에 진출한 상태다. 결승전에서 승리한다면 WBC 타이틀전을 성사시켜주겠다는 약속에 따라 나선 대회였다. 그가 얼마나 타이틀전에 갈망해 있었는지 알만한 에피소드였다.

이처럼 김지훈은 현역 한국 복서 중 세계챔피언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너무 뛰어난 실력 때문에 오히려 챔피언이 되지 못하는 불운한 선수라는 소리를 듣던 중 마침내 졸라니 마랄리(32·남아공)와의 타이틀 전이 성사된 것이다. 김지훈은 정말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라며 일주일에 두세 차례씩 4명의 상대와 차례대로 3라운드씩 12라운드의 스파링을 해왔으며, 이미 마랄리를 넘어 더 큰 목표를 세워놓았다. 김 관장은 “지훈이는 두 체급, 세 체급도 석권할 수 있는 선수”라고 장담하면서 최종 목표를 동양인 최초로 네 체급을 석권한 현역 세계 최고의 복서 매니 파퀴아오(31·필리핀)로 잡고 있었다.

시합전 “벨트만 있다고 챔피언이 아니죠. 내 체급에서 챔피언은 오직 나 하나라는 걸 반드시 보여주겠습니다”라고 당차고도 다부진 각오를 보였던 김지훈의 승리는 어쩜 당연했고, 더 큰 목표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는 몰라도 경기 뒤 전해진 현지 소식에 따르면 이번 시합을 앞두고 호텔 휘트니스 룸은 그야말로 완전 김지훈 전용 체육관이었다고 한다. 이날 12시에 있었던 계체량에서도 김 선수는 시종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다 체중이 오버되어 계체를 다시 하는 등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해서 화제가 됐다.

미리 자체 계체를 통해 한계체중을 맞춘 채 계체량 장소에 미리 등장한 그는 해설위원으로 초정된 리키 해튼과 사진도 찍는 등 여유를 보였지만 12시 정각에 시작된 계체량에서 모든 선수 중 가장 먼저 저울에 올라간 김지훈 선수으; 체중이 59.02Kg으로 한계체중을 넘어서 10분 뒤 다시 올라가 가까스로 통과를 한 것이다.

관계자들은 시합을 위한 계체량에 추가 달린 수동식 저울이 아니라 고도에 따라(참고로 요하네스버그는 고지대임) 오차가 생길 수 있는 전자저울을 쓴다는 것도 이상하고 저울 자체가 삐딱하게 놓여있어 문제가 생긴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상대 선수인 마랄리는 한 번에 통과한 탓에 할 말이 없었고, 라이트급으로 뛰던 탓에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던 것으로 정리했다.

아무튼 라이트급으로 뛰다가 한 체급 내린 체중에 적응하려니 근육마저 빼야 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았지만 계체량 뒤 김형열 관장이 직접 쑨 닭죽으로 기운을 보충하고 4시 30분부터 마지막 컨디션 조절 훈련을 했다고 한다.

계체량 뒤 있었던 에피소드 중 하나는 김지훈 선수가 1차에서 통과를 못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해설위원인 리키 해튼이 “빨리 소변을 보고 와라. 겨우 49g 오버다. 소변만 봐도 충분히 빠진다”고 농담을 하자, 김 관장도 당황하지 않고 “헤이 리키, 너 저울에 올라가 봐”라고 농담을 했고, 그러자 일명 돼지 해튼이 얼굴이 빨개져서 웃음바닥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또 다른 해프닝으로는 김지훈 선수의 체중이 오버해서 팬티를 벗고 체중을 다시 잴 때 자켓으로 가려주던 현지 교포가 다급한 나머지 옷을 너무 들어 몸만 가리고 중요부위는 안 가리는 사태가 연출됐는데, 순간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거기에 모인 여자들이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았다는 후문이다.

[엽기관장뉨]

가장 멋진 드라마를 연출한 김지훈 챔프님 축하한다. 역시 김지훈임을 증명한 쾌거로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