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사 삼층석탑의 장엄과 규모
백장사삼층석탑은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기단부는 약화된 구조로 넓은 판석을 지대석으로 하는 단층기단의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다. 그러나 1998년 1988년 8월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석탑의 기단 면석 부재로 추정되는 석재가 출토되었다. 출토된 5점의 석재는 모두 석탑의 북편에서 발굴되었으며, 안상 내에 팔부신장상이 새겨진 것으로 전체 길이는 확인할 수 없으나 높이는 140∼150㎜ 정도로 일정하다.
발견된 면석이 백장사 삼층석탑의 것인지는 더 조사를 해봐야 할 것이나 백장사석탑의 기단 면석이라면 단층기단이 아닌 복층기단이 이 될 것이다.
기단석
지대석 위에 기단석은 호각형 2단의 탑신받침이 있고 그 위에는 난간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에 난간이 형성되어 있으마 환조로 탑신을 둘러싸고 있으나 부조의 형태로 완전한 난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는 백장암 석탑이 유일하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면 부도(승탑)의 하단부에서 보았을 것이다. 기단부는 네모난 지대석 위에 별개의 돌로 탑신 굄대를 조성하여 얹고 그 위에 바로 1층 탑신석이 놓여 있다. 그런데 굄대의 상면에는 별다른 조각이 없으나 측면에는 사방에 난간형을 돋을새김으로 둘러놓았다.
1층탑신
1층 몸돌의 장엄
1층 탑신석은 너비에 비하여 높으며 2·3층의 탑신도 체감비율이 낮아 탑의 전체모양이 길쭉하게 보인다.
탑신의 네 면에 각각 문비가 있는데 일반적인 경우, 문비의 양쪽에 금강역사상이나 인왕상이 대칭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에 비해 이 탑의 문비에서는 사천왕상과 그 권속으로 보이는 소인(小人)의 비대칭적인 구성을 하고 있는 점이 다른 탑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즉 남면에는 문비(門扉)가 새겨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문비의 왼쪽은 보살입상, 오른쪽은 사천왕상이 문지기를 하고 있다. 또 다른 동,서,북측면은 사천왕상과 동자상(제천상이라는 주장도 있음)이 좌우에 서 있다.
1층 지붕돌과 받침
남면(좌), 북면(우)
동면(좌), 서면(우)
남면-보살상. 사천왕상 동면-사천왕상. 동자상
이와 같이 각 부 구조에서 전형적인 양식에 구애되지 않은 자유로운 설계를 볼 수 있고 각 부재의표면조각에서도 특이한 의장을 찾을 수 있는 점이 신라시대 굴지의 아름답고도 특수한 형식의 탑이라 하겠다.
1층 지붕돌과 받침
1층 옥개받침석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아래 위로 1단씩 단을 형성하고 가운데 단에 연화문장식이 있다. 끝부분을 말아올려 귀꽃과 같은 형태로 되어있으며 원형의 테두리 내에 4잎의 화문(花紋)을 조각하였다.연화문 장식은 대부분 9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석탑이 연화문 등으로 장식된 예로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보물 제223호), 정읍 천곡사지 칠층석탑(보물제309호)을 들 수 있는데 도피안사삼층석탑은 기단부에, 천곡사지칠층석탑은 각 층 옥개받침부에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으며 경주 남산 망월사의 삼층석탑에서도 볼 수 있다.
2층탑신
2층 탑신석에는 아랫부분에 난간, 모서리에 기둥과 주두가 표현되어 있고 창방이 기둥을 연결하고 있다.
2층탑신(몸돌)
남면(좌), 북면(우)
동면(좌), 서면(우)
옥개받침석은 별석으로 연화문 장식의 형태는 1층의 문양과 동일하다. 2층 탑신에는 각 면에 2구씩 모두 8구의 주악상이 조각되어 있다. 마모가 심한 2구를 제외하고 동쪽면에는 박판(拍板), 서쪽면에는 요고(腰鼓), 남쪽면에는 생황(笙簧)과 동발(銅鉢), 북쪽면에는 향비파(鄕琵琶), 횡적(橫笛)의 악기를 든 주악천인상이다.
2층 옥개받침의 연화문
석탑에 주악상이 조각된 예로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과 진전사지삼층석탑(국보 제122호), 선림원지삼층석탑(보물 제444호) 등과 고려시대의 보원사지오층석탑(보물 제104호), 승안사지삼층석탑(보물 제294호) 등이 있으나 모두 기단부에 조각이 되어 있다는 점이 백장사 삼층석탑의 주악상과 구별된다.
3층탑신
3층 탑신석의 건축적 표현은 2층과 거의 비슷하며, 각 면에는 공양천인상이 조각되어 있다. 동쪽면과 서쪽면은 연꽃봉우리를 든 천인상이고, 남쪽면과 북쪽면은 보주를 든 천인상으로 볼 수 있다. 3층은 옥개받침석은 옥개석과 한 돌로 이루어져 있다.
3층 탑신
남면(좌), 북면(우)
동면(좌), 서면(우)
3층 옥개받침에 있는 조각은 1,2층과 달리 연화문이 아니고 삼존불이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래에 한 단을 구성하고 경사면에 삼존불을 배치하였는데 각 면 중앙의 본존불은 결국 사방불을 이루고 있다. 연화좌대 위에 좌상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본존불의 두광은 굴곡이 완만한 보주형 거신광(擧身光)으로 표현되어 있다.
옥개받침의 삼존불
옥개 낙수면
각 층 옥개석은 귀마루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1단의 호형(弧形) 탑신받침이 귀마루와 연결되어 있다. 귀마루가 끝나는 부분과 옥개석 전각부 각 처마면에 1개씩 모두 3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서 풍경이나 또 다른 장식물 달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처마 선은 수평이나 전각부에서 살짝 반전한다.
상륜부
상륜부는 전체의 높이가 약 1,880㎜이며 노반, 복발, 보개, 3개의 보륜, 수연이 철제찰주에 꽂혀 있다.
노반은 방형으로 갑석과 부연이 있다. 복발은 아무런 장식이 없는 편구형(片球形)이다. 복발 위에 앙화는 없고, 특이한 모양의 부재가 놓여있고 그 위에 보개가 있어 상륜부의 일반적인 순서와는 맞지 않는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보개는 8개의 귀꽃을 갖고 있으며 고사리 문양이 새겨져 있다. 보개 위로 3개의 보륜이 남아있는데, 위가 볼록하고 가장자리에는 각각 4개의 고사리문양이 새겨진 귀꽃이 달려 있으나 대부분 파손되었다. 수연은 평면 ‘十’자 모양이다.
1972년 해체복원을 시행하였으며, 1980년 1월에는 사리기를 노린 불법자들에 의하여 석탑이 도괴되는 일이 있어 완전해체복원 공사가 이루어졌다. 1998년 이루어졌던 석탑 주변의 발굴조사 결과, 삼층석탑의 북쪽에 금당지로 추정되는 건물지와 그 양쪽으로 시기를 달리하는 여러 개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또한 발굴조사 중 삼층석탑 기단부 부재로 추정되는 팔부신장상이 조각된 석재가 출토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석탑에 표현된 장엄조식을 볼 때 전체적으로 목조건축의 양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으며, 석탑에 구현된 양식 중 옥개석의 합각선을 두툼하게 처리한 점은 석탑의 건립시기가 통일신라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백제석탑의 양식을 부분적으로 채용했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석탑은 획일적인 양식을 지닌 신라석탑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새로운 예술의욕과 창조정신이 발현된 소산물이자, 백제문화의 계승이라는 측면을 지닌 석탑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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