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아스팔트를 잘 달려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럼 오프로드는 어떨까? 온로드를 잘 달리는 차가 거친 노면에서도 잘 달릴까?
HYUNDAI TUCSON
투싼은 ‘다이내믹 SUV’라는 슬로건 아래 개발된 온로드용 SUV다(심지어 현대차 공식 홈페이지엔 오프로드를 달리는 투싼 사진이 한 장도 없다). 랭글러나 디스커버리처럼 목적성이 뚜렷한 모델이 아니고야 요즘 출시한 SUV 대부분이 온로드를 주력으로 삼는다. 패밀리카인 세단의 자리를 SUV가 꿰차면서 SUV의 쓰임도 많이 변했다. 하지만 아무리 온로드에 맞춰졌다고 해도 태생은 달라지지 않는다. 투싼도 키가 큰 SUV다. 오프로드 승차감이 어떨지 궁금해 산으로 끌고 갔다.
투싼의 서스펜션 세팅은 오묘하다. 너무 단단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물렁하지도 않다. 온로드와 오프로드의 중간을 정말 잘 잡는다. 사실 중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조금이라도 한쪽에 치중하면 밸런스는 깨져버린다. 오프로드로 진입할 때 걱정이 없을 수 없었다. 짧은 스트로크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날 줄 알았다. 서스펜션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범위가 좁으니 노면 충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오묘한 서스펜션 세팅 덕분에 그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하면서도 노면을 단단히 움켜쥐고 달릴 수 있다.
서스펜션만 ‘열일’을 하는 건 아니다. 투싼에 처음 들어간 H트랙 역시 탑승객들의 승차감을 사수하고자 발을 맞춘다. 안정적인 주행은 탑승객의 승차감에 직결돼 있다. H트랙은 앞바퀴와 뒷바퀴 구동력을 나눌 뿐 아니라 노면 상태와 속도를 감지해 좌우 바퀴에 토크 배분을 가변으로 제어하는데 어떤 노면에서도 안정적인 주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뒷바퀴가 흐르거나 스티어링이 불안하다는 느낌은 거의 없었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은 알 거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을. 투싼의 기어레버 아래엔 경사로 저속주행 장치(DBC) 버튼이 있다. 이 버튼을 누르면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필요 없이 일정한 속도로 경사로를 따라 ABS를 걸어준다. 사람이 직접 운전석에 앉은 것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안정적이라 믿어볼 만하다. 안전과 승차감을 위해.
글_김선관
PEUGEOT 5008
5008은 오프로드에 잘 어울린다. 생긴 모습만 보면 말이다. 밀림의 왕 사자의 모습을 디자인에 녹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사냥감을 노려보는 것 같은 날렵한 디자인의 헤드램프와 발톱으로 할퀸 테일램프, 근육질의 옆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자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단, 7인승인 5008은 같은 사자 패밀리인 3008보다 C 필러 뒷부분이 더 길다. 상대적으로 덜 민첩해 보이는 이유다.
그래서 험로로 떠날 때 5008의 키를 선뜻 집어 들기는 쉽지 않다. 덩치보다 부족해 보이는 출력 때문이 아니다. 사실 굽이치는 좁은 산길에서 120마력은 크게 모자람이 없다. 문제는 5008이 오늘 모인 다섯 대 중 유일하게 앞바퀴굴림이라는 거다. 언제 갑자기 차가 미끄러질지 모르는 오프로드에선 접지력 확보에 네바퀴굴림이 유리하다. 행여 차가 진흙탕에 빠지기라도 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난 5008의 운전석에 올랐다. 믿는 구석은 있었다. 푸조의 그립 컨트롤.
그립 컨트롤은 총 다섯 개로 나뉘는데 노멀, 눈, 진흙, 모래, ESP 오프 순이다. 한쪽 바퀴가 헛돌기 시작하면 다른 쪽 바퀴로 최대 100퍼센트까지 구동력을 보낸다. 산길을 달려야 할 때 진흙과 모래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지만 정답은 진흙 쪽에 가까웠다. 앞바퀴 좌우 구동력을 적절히 분배해 주행 중 접지력을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진흙에 비해 모래는 최소한의 힘을 앞바퀴로 보내 위험지역을 탈출할 때 유용하다.
시승 내내 가장 뒤에서 달렸는데, 랭글러를 필두로 한 앞선 차들을 쫓아가기에 거의 부족함이 없었다. 속도를 높이면 엉덩이가 살랑살랑 미끄러지는 재미가 쏠쏠했다. 물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작고 가벼운 운전대는 꽉 쥐고 있어야 한다. 앞뒤 스키드 플레이트와 측면에 덧댄 검정 패널도 흠집 걱정 없이 오프로드를 즐길 수 있게 돕는다. 이번 시승에는 써볼 기회가 없었지만 5008의 경사로 감속 장치 역시 푸조가 자랑하는 5008의 오프로드 기능 중 하나다.
글_박호준
AUDI Q7
자동차는 움직이는 물건이다. 달리는 도중 아주 다양한 상황에 직면한다. 그중에는 서로 충돌해 해결이 어려운, 그러나 반드시 모두 해결해야 할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 조종성과 승차감이 좋은 예다. 이 둘은 서스펜션이 결정짓는다. 매끈한 아스팔트 위에서는 안정감을 위해 차체 무게를 지탱해야 하며 거친 임도에서는 탑승자의 안녕을 위해 충격을 유연하게 소화해야 한다. 자동차 회사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난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고, 그중 몇몇은 상황에 따라 반응을 바꿀 수 있는 가변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아우디는 가변 서스펜션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회사 중 하나다. 우리가 이번 시승에 Q7을 불러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SUV라고는 해도 Q7과 같은 7인승에게 오프로드는 무리다. 하지만 Q7은 온로드에서는 빠릿빠릿하고 오프로드에서는 나긋하다. 드라이브 모드를 오프로드에 두면 네 개의 바퀴가 모두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게 느껴질 정도다. 앞뒤 서스펜션 모두 충격 분산에 유리한 멀티링크 구조로 엮은 데다 수축은 물론 이완할 때의 압력마저 자유자재로 바꾸는 에어 서스펜션을 단 결과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Q7은 감당이 벅찰 것 같은 충격도 아주 유연하게 삼킨다. 2세대로 거듭나며 전체적으로 300킬로그램 이상을 덜어낸 후 비틀림 강성은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물론 Q7의 한계는 흙길이나 자갈길까지다. 3미터에 육박하는 휠베이스와 낮게 깔린 범퍼 때문에 바위를 타고 넘진 못한다. 사실 이건 별로 흠잡을 거리도 아니다. Q7 같은 7인승 프리미엄 모노코크 SUV를 타고 ‘진짜’ 오프로드를 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벤테이가와 우루스가 사막 모래언덕 뛰어넘기를 즐기는 아랍 부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