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혜원법사(盧山慧源法師)의 백련결사(白蓮結社) 전통을 계승해 꺼져 가는 법등(法燈)을 밝히며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청계산 정토사에서 만일염불결사도량을 개창합니다. 대중불교의 기치를 내세웠던 원효성사의 뜻을 받들어 일념으로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해 바르게 사는 염불행자가 되기를 발원합니다.”
염불수행을 통한 불교 대중화의 원력 하에 2000년 성남 청계산 정토사(주지 보광)에서 출범한 만일염불결사회가 6월 6일 창립 11주년을 맞았다. 10년의 결사운동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10년 결사의지를 새롭게 다지기 위한 이날 기념법회에는 조계종 원로의원 월서 스님을 비롯해 만일염불회 회원인 이재명 성남시장을 비롯해, 신상진 국회의원,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등 100여 대중이 참석해 결사 의미를 되새겼다.
그동안 염불수행은 삼국시대부터 원효(617~686) 대사가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권장한 이래 간화선에 비해 그 수행방법의 편이성과 대중성이란 장점으로 가장 친숙한 수행법의 하나로 자리해왔다.
예로부터 사찰에서는 특별한 기간을 정해놓고 염불수행을 진행해 왔다. 특히 사부대중이 ‘염불결사’라는 조직을 결성해 20여 년 동안 정진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신라 경덕왕 때 발징스님이 고성 원각사(현 건봉사)에서 사부대중 1800여 명이 동참한 가운데 결성한 ‘만일염불회’가 최초의 결사로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그 명맥이 이어졌다.
성남 정토사가 조직한 만일염불결사회는 이런 전통을 이어 염불수행의 생활화를 통해 불법홍포를 도모하는 신앙결사체로 1600여 회원들이 참여해 생활 속 수행문화 진작에 앞장서왔다.
이들은 ‘아침에 염불하고 저녁에 감사하자’는 불교바르게 믿기운동의 기치 하에 매월 첫째 일요일에 법회를 봉행하고 세 번째 토요일에 철야정진을 봉행해왔다. 또 각각 10명을 한 팀으로하루 열 번 ‘나무아미타불’ 염송, 하루 20분 염불선 실참 등을 진행하고 불교호스피스 활동과 불교장례문화 정착을 위한 봉사 활동에 나서고 있다.
특히 만일염불결사회 만의 독특한 기부문화인 염불전(念佛錢) 기부와 활용은 신앙결사체를 넘어 불교의 사회적 역량 확대라는 과제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염불전 기부는 매일 염불수행에 앞서 100원을 기부하는 것으로 만일염불결사회는 염불전 모금을 통해 마련된 재원을 정토교학 출판사업 및 정토학 연구 및 학술 지원, 호스피스 활동 등에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기부 내역은 사부대중이 참여하는 재정운영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된다.
이날 기념법회에서 법사로 나선 월서 스님은 만일염불결사회의 신앙결사를 격려하고 수행열기가 한국불교 중흥의 토대가 되기를 발원했다.
월서 스님은 “찾으려고 하면 찾아도 없다”며 “염불을 통해 일념삼매에 들고 생각을 다해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 그 일념조차 버리는 순간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아미타불 염송 뿐만 아니라 그 공덕을 사회에 환원하는 단체로 더욱더 활기차고 지속적인 활동을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구자선 염불만일결사회 고문은 이날 결사문을 통해 “작금의 불교현실은 위신이 날로 땅에 떨어지며 종단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수행풍토가 날로 사라지고 있다”며 “이러한 위기에 부족한 신심에도 금강과 같은 신심과 불퇴의 원력으로 불법이 흥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매일 염불 통해 사회변화를 이끕시다.” 만일염불결사회 회주 보광 스님
오랜 시간 동안 불자들은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합니다’는 염불을 일상적으로 수행해 왔다. 이처럼 염불은 선(禪)과 더불어 불자들이 가장 많이 실천해 온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일반인들에게 까지 친숙하다.
<아미타경〉에는 “하루나 이틀 사흘 닷세 엿세 이렛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미타불 이름을 외우되 조금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면 임종할 때에 아미타불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반주삼매경〉에도 “칠일 밤낮으로 아미타불을 염송하면 꿈속에라도 친견하게된다”는 구절이 있다.
신라시대에는 전국적으로 만일염불결사가 유행했으며 고려시대에는 타락한 불교를 살리기 위한 백련결사가 일어났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을 맞아 나라가 어렵자 사명대사가 동갑계(同甲契)를 조직, 사찰을 복원하는데 재정적인 도움을 받았다.
구한말에는 강원도 건봉사(乾鳳寺)에서 염불만일회가 융성하게 일어나 지금도 한국 정토신앙의 성지로 손꼽힌다. 해방 후 간화선 중심의 선불교가 융성하면서 주춤해졌던 염불만일회는 1985년 대구에서 수산 스님이 새로 시작하면서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보광 스님이 정토신앙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와 더불어 만일회를 조직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청계산 정토사는 한국정토신앙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보광 스님은 “한국의 염불결사는 신라시대의 귀족화된 불교를 대중불교로 전환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사찰의 경제적 후원 역할도 톡톡히 했다. 무엇보다 국가로부터 불교가 탄압받아 교단이 위축되거나 국가가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는 종교 사회개혁을 주도하는 종교운동이 됐다”고 말했다.
스님은 만일염불결사회 결성과 관련해 “21세기 올바른 불교신앙과 새로운 수행의 방향을 제시하고 신심을 더욱 굳건히 하는 신앙공동체의 결성은 우리 모두가 갈망하던 일”이라며 “매일 가정과 직장에서의 염불을 통해 자신과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염불행자가 되도록 서로를 탁마하자”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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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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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염불결사회의 염불전 모금재원을 정토교학 출판사업 및 정토학 연구 및 학술 지원,
호스피스 활동 등에 활용하고 있다는 소식에 더 없이 반가움을 느낍니다...
앞으로 정토신앙이 바르게 자리잡고 불교 중흥의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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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명만 다르고 절이름은 모두 '정토사'내지 '정토원'으로 통일한다면? 그와 같이 염불수행이 불같이 일어난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염불행자들은 어디서나 같은 신행체계에 따라 '신해행증'을 할 수 있고... 절마다 다르고, 스님따라 다르고... 초심자들 알게 모르게 헷갈리며 힘든 줄 아셨으며 좋으련만...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찾으려고 하면 찾아도 없다.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입니다.
긴 세월동안 염불이 그렇게 이어오고 있군요.
바른 수행체계를 배우고 수행하게 되니 다행이고 행운입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 아미타파 _()()()_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 입니다..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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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으려고 하면 찾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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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면 수행체계도 가르치고 발심을 한 유념유상의 염불이기를 원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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