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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이런 전쟁이라면 할 만합니다. 열왕기하 6:8-23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저희 기도팀은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의 기도 덕 분에 말레시아 선교 잘 다녀왔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선교를 멕시코 만 해안에서 있었던 일로 비유해보겠습니다. 해안가에 파도에 휩쓸려온 수많은 불가사리들이 있었습니다. 한 어부가 해질녘의 해안을 거닐며 백사장의 불가사리들을 다시 바다로 던져 넣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한 남자가 물었습니다. “그렇게 불가사리를 살려줘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어차피 당신 혼자서는 여기 있는 불가사리를 전부 살려줄 수 없습니다.” 어부는 불가사리 하나를 다시 집어 바다에 던지며 되물었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다고요? 내가 방금 바다로 던진 불가사리한테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내가 여기 있는 불가사리 전부를 살려줄 수는 없지만 방금 내가 던진 불가사리는 나로 인해 생명을 구했습니다.” 저는 이 어부와 같은 심정으로 선교를 나갑니다. 우리가 한 말레시아 선교를 통해서 말레시아의 국왕을 바꾸거나 총리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우리의 사역으로 말레시아 전체에 거대한 영적인 태풍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드린 기도가 많은데 그 많은 기도 가운데 단 한 가지만이라도 응답이 된다면 우리는 그것으로도 감사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어버립니다. 우리의 선교는 작은 물 한 방울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 한 사건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옆에 아람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시리아입니다. 아람의 왕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위하여 자신의 신복들과 의논하여 작전 계획을 세우면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방비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람 왕은 자신의 신복들 중에서 이스라엘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잡아내려고 하였습니다.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왕에게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우리 중에 첩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가 왕이 은밀하게 세운 계획을 다 알아서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기 때문입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놈을 잡아야 겠구나. 너희는 엘리사가 어디 있나 알아보라. 그를 먼저 잡아야 겠다” 그래서 신하들이 엘리사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니 도단성에 있었습니다. 아람 왕은 많은 군사를 보내 한 밤 중에 도단성을 에워쌌습니다. 다음 날, 엘리사의 사환이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성을 포위하고 있는 아람군대를 보고 놀라서 엘리사에게 달려가 말했습니다. 이미 상황을 파악한 엘리사는 사환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엘리사가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사환의 눈을 열어서 영적인 세계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습니다. 눈이 열리지 않았을 때는 아람 군대만 보였는데 눈이 열리고 보니 아람군대를 능히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군대가 보인 것입니다. 엘리사는 아람군대의 눈을 어둡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눈이 어두어지자 엘리사는 그들을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로 인도했습니다. 사마리아에 도착한 엘리사가 하나님께 기도하니 다시 그들이 눈이 열렸습니다. 그들이 보니 자기들이 사마리아성 가운데 있고 이스라엘 군대에게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국방이 안정되고 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가 왕에게 그들을 치지 말고 그들에게 떡과 물을 대접하고 그들의 나라로 돌려보내라고 말했습니다. 왕은 어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좋은 기회인데 그냥 돌려보내려니 아까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왕은 엘리사의 영적 권위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의 말대로 아람군대에게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의 나라로 돌려보내었습니다. 참 놀라운 전쟁입니다. 이런 전쟁은 할 만하지요.
엘리사 선지자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부터 요아스 시대까지 사역 했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후계자로 엘리야가 승천할 때 엘리야의 겉옷을 받았고 엘리야보다 더 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가 행한 기적이 성경에 14가지나 나옵니다. 사실 엘리사는 기름부음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그는 다양한 기적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보여준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건과 예수님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의 모든 사건은 예수님과 상관있습니다. 요한복음 5:39에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여기에 성경의 특징 세 가지가 나옵니다. ①성경은 영생의 책입니다. ②성경은 연구해야 하는 책입니다. ③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만약 성경이 과학 책이거나 윤리와 도덕의 책이라면 성경을 통해서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영생을 얻는 것은 성경이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인물과 사건과 교훈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본문에서는 엘리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1. 모든 것을 살피시는 예수 그리스도
엘리사를 통해서 보여지는 주님의 모습은 모든 것을 살피시는 주님입니다. 주님은 인간의 모든 것을 살피십니다. 본문에 보면 아람의 왕은 은밀하게 작전을 세웠는데 그때마다 엘리사는 그 모든 작전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침상에서 한 말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은밀한 일들까지 알았을까요?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모든 것을 살피시는 주님을 보여줍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것을 살피십니다. 은밀히 행하는 모든 것도 다 살피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고통도 아십니다. 하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하갈은 사라의 몸종이었는데 아브라함의 첩이 되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갈은 이스마엘을 임신하자 교만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주인 사라를 자식을 낳지 못한다고 멸시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사라가 하갈을 학대했습니다. 하갈은 사라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가출하여 광야에서 방황 하다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하갈이 임신한 아기가 번성할 것을 약속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기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들으심’이라는 뜻입니다. 하갈이 고통 중에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고통의 울부짖음을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하갈은 정말 외롭고 불쌍한 상황에 있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하갈의 기도를 들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갈이 창세기 16:13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입으로 고백했습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여기 보면 하갈이 하나님을 ‘엘로이’라고 고백합니다. 엘로이라는 말은 ‘살피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이 고백은 ‘내가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셨다’는 말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내가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시고 나를 위로해주셨고, 나에게 소망을 주셨다’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어려움을 만난 사람들을 살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 부르짖을 때 외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를 만났을 때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 중에 기도할 때 살펴주시는 분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살피시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숨길 것이 없습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99세 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1년 후에 사라를 통해서 아들이 태어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때 사라는 장막 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장막 뒤에 있는 사라가 웃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라가 왜 웃으며,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라고 하느냐” 하나님은 사라가 보이지 않는 장막 뒤에서 웃는 것까지 아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모든 것을 살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살피시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의식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내 옆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인간적으로 좀 무시해도 되는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가 무시해도 되는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만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예를 든 것입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내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감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 두 사람 중에서 누구의 눈치를 더 보겠습니까? 당연히 두 번째 사람이겠죠. 그런 이치로 따지면 우리는 사람의 눈치보다 하나님의 눈치를 더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살피시는데 특별히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중심을 바르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셔서 사무엘을 보내셨습니다. 왕으로 기름을 붓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사무엘은 다윗의 형들의 외모를 보고 기름 부을 자를 결정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보시는지 말씀해주셨습니다. 사무엘상 16:7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외모도 깔끔하게 하고 다녀야 하지만 더욱 마음과 생각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겉만 가지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과일도 그렇습니다. 이번에 말레시아 선교를 가서 과일을 많이 먹었습니다. 망고는 필리핀 망고보다 맛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두리안도 별로였습니다. 용과가 제일 좋았습니다. 아쉬운 것은 제가 성도들에게 잭푸르트라는 과일을 사주고 싶었는데 못 샀습니다. 말레시아 성민교회 성도가 사온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결국은 사오지 않아서 못 먹었습니다. 잭푸르트의 모양은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생긴 것은 좀 그렇습니다. 두리안과 비슷하게 생겼고, 혹부리 영감이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큰 혹처럼 보입니다. 비주얼은 별로입니다. 그런데 이 과일은 겉보기와는 다릅니다. 껍질을 벗겨내고 보면 황금색의 과일이 가득합니다. 향이 좋습니다. 마치 설탕을 졸인 듯한 달콤한 향이 납니다. 맛은 달짝지근하면서도 담백합니다. 저는 두리안보다는 이 과일이 더 좋습니다. 잭프루트는 슈퍼 과일입니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기 때문입니다. 비타민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피부 미용과 피로 회복에 좋습니다. 미네랄이 풍부해서 혈당을 조정하여 당뇨병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칼슘 성분이 풍부해서 뼈와 치아를 튼튼하게 하고, 골다공증과 아이들 성장발육에도 좋습니다. 이뇨 작용을 촉진해 부종도 개선하고 장기에 있는 노폐물을 배출하여 피부 건강을 개선하는데 탁월합니다. 그리고 식이섬유가 많아 변비와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입니다. 완전히 겉과 다른 효능입니다. 과일은 겉을 보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먹은 과일 중에 스타푸르트라는 과일이 있었습니다. 겉모습은 참 보기 좋습니다. 잘라보면 별 모양입니다. 그래서 스타푸르트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람이가 스타푸르트를 보더니 “와~~, 이게 무슨 과일이야”라고 감탄을 했습니다. 그런데 맛을 보더니 실망을 하더군요. 맛이 청포도 껍질 덩어리 같다고 말하고는 더 먹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겉보기와 달리 맛이 없습니다. 과일은 겉모양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람은 겉도 중요합니다. 외모도 경쟁력입니다. 회사에서 직원 한 명을 뽑는데 최종적으로 두 사람이 남았습니다. 두 사람은 학벌이나 실력이 비슷합니다. 둘 중에 한 명을 뽑는다면 아무래도 외모가 깔끔한 사람을 뽑겠지요. 인물은 바꿀 수 없어도 이미지는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노력해야 합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외모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중심입니다. 내면이 중요합니다. 마음과 생각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살피시기 때문입니다.
2.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제가 조정민씨의 글을 읽었습니다. 주제는 ‘요한계시록은 쉽습니다!’입니다. 계시록을 다 읽고 난 아이가 책을 덮으며 아빠한테 말했습니다. “아빠, 예수님이 이기신데요!” ‘예수님이 이기신다!’가 계시록의 주제이자 결론입니다. 이 아이는 대단한 통찰력을 가졌습니다. 계시록의 결론을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이 승리하신다.’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승리자이십니다. 그런데 최후의 승리자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힘입니다.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은 아람을 이길 힘이 없었습니다. 아람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약한 이스라엘이 강한 아람에게 번번이 승리했습니다. 마땅히 져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이긴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때문이었습니다. 아람 왕이 전쟁을 위한 작전을 세우면 엘리사가 그것을 왕에게 알렸고 이스라엘의 왕은 엘리사의 말을 믿고 전쟁에 대비해서 이겼습니다. 이 사건을 겉으로 볼 때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힘이 된 것 같지만 사실은 엘리사의 배후에 주님이 계셨습니다.
열왕기하 13:14을 봅시다.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엘리사가 죽게 되자 요아스 왕이 울면서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엘리사가 국방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영성이 깊은 사람이 국가를 지킨다는 의미도 있지만 엘리사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켜주셨고, 아람과의 전쟁에서 이기게 하셨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힘이 되셨습니다.
아람 군대가 도단성을 포위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엘리사의 사환은 두려워하며 그 사실을 엘리사에게 알렸습니다. 엘리사가 사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고 말한 후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사환의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사환이 보니 도단성을 포위하고 있는 아람군대보다 더 강력한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힘이 되셨고 엘리사의 힘이 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들에게 힘이 되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우리 교회의 힘이 되십니다. 우리나라의 힘이 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힘이 되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의 힘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여 언제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번 말레시아 중보기도 사역 중에 바투사원이라는 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기 전에 선교사님께서 영적 전쟁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우리 중에 몇 명이 영적인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교사님은 성도들을 긴장시키기 위하여 좋은 의도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교사님의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약한 분들이 두려워하게 되면 귀신들이 두려움을 통로로 그들에게 역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마이크를 잡고 주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우리의 능력이 되시고 우리의 힘이 되심을 입으로 고백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은 강하십니다. 우리는 미련하지만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은 지혜로우십니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우리의 힘이 되시는 주님은 부요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약함이 아닙니다. 강하신 주님이 우리의 힘이 되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사역은 기도여행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중보기도 사역입니다. 우리는 사역기간 내내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루에 8시간 이상은 기도 했을 것입니다. 특히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중보기도 사역은 당장 나타나는 열매를 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레시아 성민교회 마가렛집사님을 통해서 우리를 격려하셨습니다. 집사님이 우리와 함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뱀이 자동차 안으로 들어와서 삼킬 자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계속된 기도에 견디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말레시아에는 이슬람이 강하고 불교와 힌두교 그리고 도교의 영들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가렛 집사님이 보니 그런 영들이 계속해서 우리가 기도하는 자동차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우리 팀은 기도로 계속해서 영적 싸움을 싸웠고 그런 영들은 힘을 잃고 작아져서 결국은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승리한 것을 본 것입니다. 마가렛집사님이 저에게는 제 사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제가 목요일 밤에 성민교회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설교를 하고 치유 집회를 했습니다. 그 자매는 제 사역이 다른 목사님들과 다른 차원의 사역이라고 말하더군요. 너무 쉽게 성도들이 잘 알아듣게 사역을 하고 치유를 한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이겼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승리의 배후에는 주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은 우리가 가진 능력이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 때문에 승리합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고,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말씀을 실천하고,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비록 부족해도 주님이 나의 힘이라는 사실을 믿고 힘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있고, 남보다 뛰어난 면이 있어도 교만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힘이 되셔서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힘이십니다.
3. 원수도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아람 사람이 엘리사를 잡으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돌려보내었습니다. 아람군대가 눈이 어두워서 사마리아성에 들어와서 이스라엘 군대에게 포위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람군대를 멸망시킬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엘리사는 왕에게 이스라엘의 적인 아람군대를 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먹을 것을 주어 대접을 하고 아람으로 돌려보내게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랑의 주님을 봐야 합니다. 엘리사는 원수도 사랑하시는 주님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구원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 주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로마서 5:10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들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구원 받기 전에 어떤 상태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원수 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원수 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원수였던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실까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랑하라’입니다. 요한복음 13:34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사랑은 새 계명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실 사랑은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미국 하버드대학 심리학 교실이 흥미 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일련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테레사 수녀가 연약한 사람들을 친절히 돌보는 테잎을 보여주고 비슷한 경험을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곧 IG-A 검사 즉, 감기 바이러스와 싸우는 ‘저항력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장면을 테잎으로 보여주고 그룹 안에서도 갈등을 경험하도록 한 다음 똑같은 저항력 검사를 했습니다. 이때 사랑의 경험이 갈등의 경험보다 무려 수배나 더 높게 저항력 수치가 나왔습니다. 사랑은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건강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리를 따라 사랑하면 영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에 큰 도움이 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랑의 힘입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사회학과 교수가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볼티모어의 유명한 빈민가로 가서 청소년 2백 명의 생활환경을 조사하라는 숙제였습니다. 학생들은 빈민촌으로 들어가서 청소년들을 조사하여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조사서를 만들어 제출하였습니다. 평가서는 거의 동일하였습니다. "이 아이들에게는 전혀 미래가 없다. 너무 가난하여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25년이 지났습니다. 이 학교에 사회학과 교수가 우연히 이 연구 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는 학생들에게 2백 명의 청소년들이 25년이 지난 현재 모습을 조사하여 오라는 숙제를 냈습니다. 조사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동안 죽은 아이와 이사 간 아이가 20명이었습니다. 나머지 180명 중에서 176명이 대단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변호사, 의사와 사업가등 상류층이 많았습니다. 교수는 놀라서 그 조사를 더 진행시켰습니다. 교수는 그들을 한 사람씩 만나 직접 물어 보았습니다. ”당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답은 모두 한결같았습니다. 자기를 지도해준 한 여 선생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여교사가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교수는 수소문 끝에 그 여교사를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쳤기에 빈민가의 청소년들을 이처럼 성공적인 인생으로 이끌었습니까?” 늙었지만 아직도 빛나는 눈으로 여교사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비결은 정말 간단합니다. 그 아이들을 사랑했답니다.” 사랑은 놀라운 능력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가족을 변화시키려면 가족을 사랑하십시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가졌지만 가족들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가 생명이 되지 못하고 날카로운 칼이 되어 가족들을 찌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로 무장된 사랑을 하면 그 사랑이 가족들을 세울 것입니다.
사랑보다 좋은 보약은 없습니다. 어느 부부 이야기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각 방을 따로 썼습니다. 남자가 밖으로 돌다가 에이즈에 걸렸습니다. 에이즈 진단이 나오자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에이즈에 걸린 것은 내 책임입니다. 내가 감싸지 못 하여 밖으로 돌다가 에이즈에 걸렸습니다. 우리는 결혼할 때 같이 살고 같이 죽기로 서약했습니다. 당신만 죽고 나만 살기 싫습니다. 같이 죽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한 방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전보다 남편을 더 사랑했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같이 사는 데도 아내는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남편의 에이즈가 나았습니다. 의사들이 말했습니다. 사랑이 엔돌핀을 많이 배출하여 불치병이 낫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에 치료의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사랑은 질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질병만 치료하겠습니까? 마음도 치료하고, 관계도 치료하고, 악한 습관도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의 비결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먼저’입니다. 주님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너희가 먼저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사랑 받기를 원하면 먼저 사랑하십시오. 다윗과 요나단의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1절만 가사를 보겠습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 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 내밀길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 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먼저 사랑하고 먼저 손 내밉시다.
오늘 엘리사를 통해서 우리가 믿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가 나눴습니다. 1. 모든 것을 살피시는 예수 그리스도. 2.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3. 원수도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함께 고백합시다. “나는 모든 것을 살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나는 바른 중심을 가지고 살겠습니다. 나는 나에게 힘이 되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으로 믿고 의지합니다. 나는 원수도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나는 먼저 사랑하고 먼저 손 내밀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