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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이집트 신화(Egyptian Myth)
∎ 이집트의 역사의 시작, 나일강
누(Nu) - 생명의 근원인 강물이자 모든 신의 아버지. 그리스 신화에서 말하는 카오스(Khaos, 우주의 혼돈 상태). 나일 강을 상징한다.
라(Ra) - 헬리오폴리스의 최고신인 태양신. 아침에는 풍뎅이 모양을 한 케프리(Khepri), 낮에는 매의 머리를 한 라(Ra), 저녁에는 숫양의 머리를 한 아툼(Atum)이 된다. 혼자 힘으로 슈(Su)와 테프누트(Tefnut)를 낳았다.
프타(Ptah) - 이집트의 창조의 신. 또한, 기술자, 설계자, 건축자, 금속 노동자, 목수, 석공 등의 신이기도 하다. 프타신은 그들의 기술을 창조했다고 말해진다. 주된 숭배중심지는 멤피스(Memphis)에 있었다. 멤피스와 테베(Thebae)에서는 프타의 배우자는 사자-여신인 세크메트(Sekhmet)였다. 세크메트와, 아들인 네페르툼(Nefertem)과 함께 셋은 ‘멤피스의 트라이어드’라 불리 운다. 그의 성수(聖獸)는 황소이며, 특히 멤피스의 아피스(Apis) 황소로 나타내진다. 아피스 황소는 신과 인간 사이에 중재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라 처럼 꽉 조여지고 면도가 된 머리에, 딱 맞는 해골형의 모자를 쓰고 있으며, 꼭대기에 생명의 상징(Ankh)이 달려있는 지배력을 상징하는 왕홀을 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묘사되다. 한 전설에 따르자면 창조에 있어 가장 근원적인 동력(動力)은 질서(co-smos)가 존재하도록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다.(다른 지역에서는 프타는 진흙으로부터 질서를 창조해내었다고 말해진다.) 이 전설에 따르면 그의 사제가 증가하면서 프타가 신들 중 뛰어난 신이라고 믿어졌다고 한다. 프타는 신들의 이브(Eve, 심장, 心) 위에서 행함으로써 사자(死者)들에게 생명력을 되돌려주는 ‘이브(心)를 여는’ 의식을 만들어내었다고 한다.
슈 & 테프누트(Su & Tefnut) - 라에게서 태어난 오누이이자 부부. 슈는 공기의 신이고 테프누트는 그 안에 있는 습기다.
게브 & 누트(Geb & Nut) - 슈와 테프누트에게서 난 오누이이자 부부. 금슬이 너무 좋아 늘 붙어 있자 슈가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땅의 신 게브(Geb)가 길게 누워 있고 하늘의 여신 누트(Nut)가 머리는 동쪽에 다리는 서쪽에 둔 채 활처럼 구부리고 있다.
오시리스(Osiris) - 게브와 누트의 맏아들. 이시스의 오빠이자 남편. 이집트 첫 번째 파라오였으나 동생 세트에 의해 살해되어 죽은 자들의 왕이 되었다.
이시스(Isis) - 뛰어난 마술사이자 라의 숨겨진 이름을 아는 유일한 여신. 남편인 오시리스를 부활시켜 아들 호루스를 낳는다.
세트(Set) - 천둥과 사막, 싸움의 신. 몸은 인간이지만 얼굴은 늑대나 개, 자칼 비슷한 네 발 짐승의 모습이다.
호루스(Horus) - 매의 머리를 가진 신.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로 삼촌인 세트와 숙명적인 대결을 해야만 하는 운명
하토르(Hathor) - 사랑의 여신. 머리 위에 뿔이 두 개 있고 그 사이에 금빛 원반이 있다. 때로는 사자의 모습으로 변해 사람들을 해치기도 한다. 호루스와 결혼한다.
토트(Thoth) - 지혜의 신. 헤르모폴리스(Hermopolis)에서 세상을 창조한 신으로 숭배된다. 따오기나 비비원숭이의 머리를 하고 있다. 신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신이다.
아누비스(Anubis) - 이집트 신화에서 망자를 미라의 형태로 만들어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신으로서, 자칼의 머리를 하고 있다. 이집트에서도 비교적 오래 전부터 숭배되고 있던 신으로, 망자의 신이며 개 또는 자칼의 머리 부분을 가지는 반수의 모습이거나 또는 자칼 그 자체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 모습은 세트의 모델이 된 동물들과 닮고 있다. 망자의 신이라는 이미지는, 고대 이집트에서 사체의 고기를 요구해 묘지의 주의를 배회하는 개나 자칼의 모습이 마치 망자를 지켜주는 것이라고 착각되어 전해져 왔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또한 그 몸은 미라를 만들 때에 방부 처리를 위해서 사체에 타르(Tar)를 바르기 때문에 그와 관련해 검게 표현한다.
파라오(Pharaoh) - 고대 이집트의 정치적·종교적 최고 통치자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집트의 왕 또는 왕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원래는 “큰 집”이라는 뜻으로 이집트 왕의 궁정, 왕궁을 나타내는 말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왕과 동격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호루스의 현신으로 받아들여진다. “페르-오”라는 “성스러운 권좌”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파라오는 인간이 아닌 신으로서 숭배되기도 하며, 이 때문에 파라오가 죽으면 육체를 모두 소진하고 영혼으로서 다스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파라오가 영원히 사는 궁궐의 의미로서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어원은 처음에 파라오는 왕궁을 나타내는 말이었지만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가 파라오로 즉위하여 이집트를 통치한 이후의 모든 이집트 군주들은 군주의 명칭을 파라오라고 불리었다.
크눔(Khnum) - 폭포 지대의 신으로서 굽은 뿔이 난 수양의 머리를 한 남성으로 표현되고 있다. 크눔은 다산(多産)과 창조의 신으로서, 그 초기에는 수양 또는 수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스페로에 의하면 크눔은 같은 부류의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기름지게 하고 지상을 낙원으로 만드는 나일강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의 주된 성소는 폭포 지대 근처인 ‘상아의 섬’에 있었다. 그는 신전에서 두 아내 시티스(Cities) 및 아누키스(Anubis)와 함께 제물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 신전에서 그는 나일강의 원천을 지키고 있었는데, 사제들이 작성한 거짓 서류에 의하면 제 3왕조의 왕 조제르가 7년 동안의 가뭄을 겪은 후 풍년을 맞은 것을 신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열두 군데의 토지를 크눔과 그 성소의 소유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크눔이란 ‘소상(塑像) 제작자’를 뜻하는데, 그는 이 세상의 원형을 녹로 위에서 빚어냈다고 한다. 또 그는 피라에에서 ‘인간을 만든 도공, 신들의 형상을 만든 자’라 자칭했다. 모든 살을 반죽한자, 신들과 인간을 낳은 자야말로 크눔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그는 그럼 자격으로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는 어린이들의 발육과 관련이 있는 신으로 숭배 받았다. 그의 신전에는 미래의 국왕을 조각대 위에서 빚고 있는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에르멘트 신전에 그 모습이 새겨져 있는 국왕은 바로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아들인 소(小)프톨레마이오스 카에자리온, 즉 여기서는 신의 아들과 일체화된 하르솜투스(Harsomtus)인 것이다. 예로부터 크눔의 명성은 이집트의 변경을 넘어 누비아(Nubia)에까지 떨쳤었다. 누비아에는 양의 머리를 한 두둔이라는 신이 있었으므로 크눔과 두둔의 일체화가 쉽게 이루어졌고, 엘리판티네(Elephantine)의 우두머리로서 많은 숭배자를 갖게 되었다
마트(Ma'at) - 법과 정의, 조화, 진리, 지혜의 여신이다. 그녀의 머리 위에 꽂힌 깃털이 마트의 상징이다. 태양신 라의 딸로 나오며, 지식과 달의 신인 토트의 아내이다. 머리에 깃털장식을 한 모습이나 새의 날개를 양손에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집트 창조 신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신으로 법과 정의, 조화의 법칙 그 자체를 인격화한 존재로서, 이집트의 지상 신 파라오조차 그녀를 거스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고대 이집트 전 지역에서 숭배되었다. 깃털은 《사자의 서》에 나온 심장 무게 달기 의식에서 사람이 죄가 있는지 없는지 저울에 마트의 깃털을 놓고 심장의 무게를 제어 판단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선(善)의 무게를 상징한다.
∎ 태양신 라(Ra)
입김으로 물과 공기를 만들다. 땅이 기름진 하(下)이집트 중에서도 헬리오폴리스는 가장 번성한 도시였으며 도시의 막강한 세력에 따라 신화도 발달되었다. 헬리오폴리스에서 전해지는 창세신화는 태양신 라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주 먼 옛날, 세상에는 검은 물만이 일렁이고 있었다. 소리도 없고 빛도 없는 무한의 공간에 죽은 듯 누워 있는 물을 누 혹은 눈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바로 나일 강이다.
어느 날, 고요한 누의 저편에서 언덕이 하나 불쑥 튀어나왔다. 이 태초의 언덕은 견고한 피라미드 형태였다. 그 언덕 너머에서 붉은 태양이 솟아올랐다. 그러자 세상은 곧 환한 빛으로 가득 찼다. 태양신이 태어난 것이다. 태양신은 아침에는 케프리, 한낮에는 라, 해질녘에는 아툼이라고도 불리는데, 이집트인들이 가장 숭배하는 신이다.
태초의 언덕 위에 있던 라가 긴 숨을 내쉬자 슈와 테프누트가 태어났다. 슈는 공기라는 뜻이고 테프누트는 물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슈가 태어나자마자 그만 어둠의 물속으로 빠져버렸다. 라는 놀라서 얼른 자신의 눈 하나를 빼서 또 다른 딸 하토르를 만들었다. 하토르는 물속으로 들어가 슈를 구해왔다. 하토르는 그 대가로 영원히 아버지 라 곁에서 라의 명령을 집행하는 여신이 되었다. 하토르는 갓 태어난 아기들을 지켜주는 여신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라가 만들어진 신화는 다양하다. 물속에서 태초의 언덕이 솟았을 때 연꽃이 같이 피어났는데, 연꽃이 벌어지자 거기에 눈부신 아기 모습으로 라가 있었다. 라는 연꽃에 살면서 세상을 창조했다. 한숨으로 슈를 만들고 재채기로 테프누트를 만들었다. 눈물로는 인간을 만들었는데, 인간이 눈물이 많은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그런가 하면 꽃잎에서 나온 풍뎅이가 점차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라가 되었다는 설도 있고, 아침이면 피라미드 너머에서 일어나 세상을 비추는 거룩한 새 베누(Bennu)로 묘사되기도 한다.
∎ 태양신의 상징 베누(Bennu)
불사조 베누는 눈부심 속에 일어서다라는 뜻으로, 헬리오폴리스 신화의 태양신 라의 상징이다. 긴 머리 깃털이 있는 해오라기 새의 모습인데 머리에는 항상 해를 상징하는 둥근 공을 올려놓고 있다. 이 베누는 그리스로 건너가 불사조 피닉스(phoenix)의 전설이 된다.
∎ 하늘과 땅을 떼어놓다
공기의 신 슈와 물기의 신 테프누트는 오누이지만 결혼해서 부부가 되었다. 신들의 사이에서는 남매끼리 결혼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일이었고, 슈와 테프누트가 오누이 부부 1호로 탄생한 것이다. 둘 사이에서 게브와 누트 남매가 태어났는데, 그들도 곧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땅의 신 게브와 하늘의 신 누트는 금슬이 얼마나 좋은지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게브는 길게 바닥에 눕고 누트는 게브 위에 몸을 포갠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어느 날 라가 너무 답답해서 세상을 돌아보니 게브와 누트가 너무 꼭 붙어 있었다. 그러니 그 사이에서 다른 생물들이 자라지 못하고 빛이 들어갈 수도 없었다. 라는 생각다 못해 아들 슈를 불러 그 둘을 떼어놓으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슈는 자신의 아이들인 게브와 누트 사이로 들어가 게브를 꾹꾹 밟아 바닥으로 붙이고, 누트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그러자 하늘과 땅 사이에 빛과 공기가 가득 찼다. 라는 게브와 누트가 다시 만나 세상이 무너지게 될까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라는 1년을 360일로 정하고 게브와 누트는 단 하루도 만나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다.
∎ 1년이 365일이 된 사연
게브와 누트는 라의 명령을 어기고 밤에 몰래 만나곤 했다. 그러다 누트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안 라는 불같이 화를 냈다.
내 명령 없이는 어떤 날에도 애들을 낳을 수 없다.
뱃속에서는 아이가 점점 커지는데 출산해서는 안 된다니, 게브와 누트에게는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누트는 생각다 못해 지혜의 신 토트에게 상의했다. 토트는 달의 신 콘수를 찾아가 내기를 하자고 했다.
우리 체스 게임을 해서 내가 이기면 당신의 빛을 나눠주고 당신이 이기면 내 지혜를 나눠주도록 합시다.
평소 토트의 지혜가 부러웠던 콘수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러나 지혜의 신 토트를 이길 수는 없었다. 결국 콘수는 꽤 많은 빛을 잃었는데 5일 정도 비출 만한 양이었다. 이렇게 해서 1년이 365일이 되었고, 이전까지는 늘 보름달 형태였던 달이 15일 간격으로 점점 작아져 빛을 잃었다가 다시 커지는 주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게브와 누트의 다섯 쌍둥이
라가 정한 360일 외에 5일을 번 토트는 그 기간에 누트에게 아이를 낳도록 해주었다. 누트는 첫 날에 오시리스(Osiris)를 낳았다. 잘 생긴 얼굴에 눈빛도 온화하고 피부도 아름다운 오시리스는 한눈에도 멋져 보였다. 첫째 오시리스가 태어나던 날, 전 이집트에는 하늘의 목소리가 들렸다.
만물의 주인인 오시리스 왕이 태어났다!
둘째 날에는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Horus)를 낳았는데, 나중에 전쟁의 신이 된다. 이시스와 오시리스가 낳은 아들도 호루스인데, 그와 구별하기 위해 누트가 낳은 둘째 아들을 대(大)호루스라고 부른다.
연 이틀을 출산한 누트는 좀 지쳤다. 그래서 잠시 쉬고 있는데 난폭하고 성질 급한 아기가 옆구리를 찢고 튀어나왔다. 바로 셋째 아들 세트(Set)였다. 세트는 얼굴이 붉고 머리에 뿔이 두 개 달린 모습으로 질투심도 많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다혈질이었다.
넷째 날에는 이시스(Isis)를 낳았다. 그녀는 우아하고 사랑스럽고 향기로웠다. 말솜씨도 뛰어나고 눈빛도 매혹적이라서 누구든 그녀를 보고 있으면 마법에 걸린 것처럼 좋아하게 되었다.
다섯째 날에는 네프티스(Nephthys)를 낳았는데 그녀는 언니 이시스와 참 많이 닮았다. 우아하고 아름다웠고 곱고 향기로운 머릿결을 가졌다. 그러나 이시스보다는 조용한 편으로 남의 눈에 띄는 것을 꺼려했다.
이들 다섯 쌍둥이는 어릴 때 사이가 참 좋았다. 특히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뱃속에서부터 손을 잡고 있었다. 그 둘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고 커서 결혼을 한다. 그리고 세트는 막내 동생 네프티스와 결혼한다.
처음에는 사이가 좋았던 오시리스와 세트는 자라면서 조금씩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오시리스는 세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에게 사랑받는 형 오시리스를 동생인 세트가 일방적으로 시기하고 미워하기 시작한다. 이집트 신화의 절정은 바로 세트의 질투로부터 시작된다.
∎ 태초의 물을 만든 오그도드(Ogdoad)
중(中)이집트에 자리잡은 헤르모폴리스의 이집트식 이름은 켐누이다. 켐누는 8개의 도시라는 뜻으로 이 중에는 지혜의 신 토트를 모신 신전이 있었는데, 나중에 그리스인들이 토트를 자신들의 신인 헤르메스와 같은 신으로 생각해서 이 지역을 헤르모폴리스라 부르기 시작했다.
헤르모폴리스의 창조 신화는 짝을 이룬 8명의 신들로부터 시작된다. 이들 8신을 오그도드라고 부른다. 8이라는 숫자는 이집트 신화에서 완전한 숫자로 통한다. 헤르모폴리스의 8신 신화는 헬리오폴리스보다 앞서서 태초의 물 안에 있던 언덕에서 시작된다. 언덕에 아직 태양신 라가 생겨나기 전, 뱀의 얼굴을 한 4명의 남신과 개구리 얼굴을 한 4명의 여신이 먼저 태어났다.
누와 나우네트는 태초의 물, 우주의 근원을 상징한다. 헤와 하우에트는 나일 강이 범람하는 힘을 상징하고, 케크와 카우케트는 어둠과 혼돈의 상태를, 아문과 아마우네트는 보이지 않는 힘, 형체도 냄새도 없는 공기를 상징한다.
그 언덕에는 따오기 얼굴을 한 지혜의 신 토트가 알을 품고 있었다. 8명의 신들이 그 알의 부화를 도와 태양을 만들었고, 알 껍질로는 신전을 만들었다. 이들 오그도드는 창조의 행위가 끝나자 움직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 지하 세계로 돌아간다. 아문과 아마우네트만 남아서 테베의 최고 신이 되었다.
∎ 라에게 이름을 준 프타(Ptah)
샤바카 비석의 내용에 의하면 프타가 신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창조한 최고의 창조신이라고 한다. 태초의 물인 누와 나우네트, 태양신 라(아툰)가 프타로부터 나왔는데, 생각으로 그들을 품고 말씀으로 그들을 만들어냈다고 전해진다.
헬리오폴리스 윗쪽에 위치한 멤피스에서는 프타의 창조 신화가 전해 내려온다. 프타의 신화 역시 누의 바다에 떠오른 언덕에서 시작된다. 그 언덕에 위대한 창조자인 프타가 살고 있었다. 프타의 가슴 속에는 모든 신들과 인간, 식물, 동물 등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에게 입을 열어 이름을 붙여주면 생명들이 하나씩 태어났다. 그가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생명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프타는 헤르모폴리스의 누와 나우네트,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라를 비롯한 모든 신들과 생명체를 만들었고 그들을 위해 신전과 도시, 제사 의식과 양식 보관법 등을 전수해 주었다. 프타는 후에 모든 생명이 비롯된 자라는 뜻의 타-테넨이 되었다.
프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붕대를 칭칭 감은 미라의 모습이다. 머리에는 꼭 달라붙는 모자를 쓰고 유지, 지속 을 상징하는 지팡이 제드를 들고 다닌다. 프타에 관한 이런 창조 신화는 샤바카 돌각주1) 에 자세히 전해져 있다. 기원전 710년 샤바카 왕이 멤피스의 한 신전을 돌아보던 중 낡아서 부스러져 있는 파피루스 하나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프타의 창조 신화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샤바카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건이니 돌에 새겨서 길이 남기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샤바카 돌은 안타깝게도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가운데 구멍이 뚫린 채 한 농가에서 발견되었는데 아마도 맷돌로 이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드러내지 않는 창조자 아문(Amun)
상(上)이집트 테베의 창조자는 헤르모폴리스에서 건너간 아문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역동적인 힘인 공기와 결합된 모습으로 드러난다. 아문이란 숨겨진 자라는 뜻인데, 이름에서처럼 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신이지만 때로는 거위로, 때로는 숫양으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문이 검은 물 누를 휘저어 소용돌이를 만들자 그 가운데서 언덕이 나타난다. 후! 하고 숨결을 불어 넣어주자 고요한 언덕 위로 꽥꽥거리는 거위 울음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운 울음소리에 우주 만물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거위를 위대한 수다쟁이라고 부르는데, 아문을 수다쟁이 새와 동일시한 것은 그 생명력과 관련이 있다. 아문은 후에 하늘로 올라가 태양의 신이 된다.
그런가 하면 공기의 신 슈가 제발 밖으로 나오라고 간청하자 숫양으로 변장해서 자신을 드러냈다는 설도 있다. 아문이 숫양으로 자신을 드러낸 후 숫양은 아문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동물이 되었다. 아문은 나중에 파라오의 모습으로 환생한다. 기원전 1386년에 태어난 아멘호테프 3세가 바로 아문의 환생이라고 믿었다. 아멘호테프 3세는 이집트 번성기에 다스리던 파라오로, 태양신을 유일신으로 섬겼던 아크나톤의 아버지다.
헬리오폴리스의 라, 헤르모폴리스의 오그도드, 멤피스의 프타, 테베의 아문 등 지역별로 다양한 창조 신화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나중에 생긴 헬리오폴리스의 창조 신화가 모든 지역의 신화를 아우르고 있다.
∎ 인간을 빚은 크눔(Khnum)
상(上)이집트 아스완 지역은 해마다 강물이 범람해서 들이 물에 잠기곤했다. 물이 빠지고 나면 기름지고 고운 진흙층이 남는데, 이 땅에 보리와 밀을 경작하면 늘 풍년이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엘레판티네 섬에는 양의 머리를 한 크눔 신이 살고 있었다. 크눔 신은 나일 강의 발원지를 지키며 해마다 반복되는 범람을 관리하는 신이었다.
크눔은 나일 강의 범람 외에도 인간에 대한 관심이 넘쳤다. 그는 진흙과 짚을 섞은 반죽을 물레에 넣고 돌려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인간을 만들기로 했다. 물레 위에서 인간을 만든 크눔의 솜씨는 놀라웠다. 혈액이 뼈 위로 흐르고 그 뼈 위에 살을 붙였다. 몸 안에 호흡기관을 만들었고 아름다운 몸을 지탱할 수 있도록 척추도 만들었다. 신진대사를 위해 소화기관도 만들었다.
남녀의 성기를 만들 때도 최대한 자연스러우면서 알맞은 형태로 디자인해서 자손을 퍼뜨리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여자의 몸에 자궁을 만들어 아기를 가질 수 있게 했고, 출산의 고통도 함께 만들었다.
물레 위의 기적을 통해 마침내 다갈색의 완벽한 몸을 가진 남자와 여자가 태어났다. 인간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크눔은 끊임없이 물레를 돌려 이집트인들뿐 아니라 다른 이방인들도 만들었다. 인간을 만든 후에는 새, 물고기, 동물들을 골고루 만들어냈다. 신을 만들어 인간이 경작하기 좋도록 자연 조건들을 관리하기도 했다.
∎ 인간의 정신을 이루는 카와 바
크눔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육체를 다 만든 후 정신을 이루는 두 가지 요소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것은 생명의 힘을 의미하는 카와 영혼을 의미하는 바이다. 이 두 가지가 육체에 함께 깃들어야 비로소 살아있는 인간이 된다. 카가 없으면 힘이 없는 것이고, 바가 없으면 혼이 없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 미라를 만든 후에는 입을 여는 의식을 통해 카가 다시 죽은 육신에 머물도록 했다.
그래야 저승에 가서도 활동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미라에 데드 마스크를 씌워 영혼인 바가 자신의 육신을 잘 찾을 수 있게 했다. 카는 꼿꼿이 세운 두 팔의 모양을 하고 있고 바는 머리는 사람, 몸은 새의 모양을 하고 날아다닌다.
라의 후계자 오시리스(Osiris)
오시리스는 농사를 가르쳐준 신이다. 보통 흰 옷을 입고 도리깨를 가지고 등장하며, 훗날 지하를 다스리는 신이 된다. 오시리스의 몸의 색은 녹색을 띠고 있는데, 이는 오시리스가 한 번 죽고 다시 부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이집트 최고의 신이 되다
오누이들끼리 결혼하는 신들의 전통에 따라 오시리스는 첫 번째 누이동생인 이시스와 결혼했고 세트는 막내 네프티스와 결혼했다. 토트는 오시리스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여러 지혜와 학문을 가르쳐 주었다. 앞으로 부부가 시련을 겪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오시리스와 이시스에게 마법도 가르쳐 주었다.
이시스는 특히 마법 공부에 많은 흥미를 느껴 달의 신 콘수에게도 마법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 결과 이시스는 이집트 최고의 마법사가 되었다. 그들이 결혼할 즈음 이집트를 다스리던 태양신 라는 이미 나이가 수천 살에 달했다. 머리는 다 빠지고 귀는 어두워졌고 왕좌에 앉아서 침을 질질 흘리며 졸기 일쑤였다. 이시스는 남편 오시리스를 라의 후계자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날 이시스는 진흙으로 코브라 모형을 만들어 라가 매일 다니는 길가에 놔두었다. 산책하다가 이상한 물체를 발견한 라가 그것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순간, 라의 눈빛에서 나온 생명의 빛을 받아 코브라가 살아 꿈틀거리더니 눈 깜짝할 새에 라의 뒤꿈치를 꽉 물어버렸다. 독사에게 물린 라가 비명을 지르자 이시스를 비롯한 신들이 달려왔다. 그러나 어떤 뱀인지 알지 못하니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때 이시스가 라 앞에 나섰다.
제가 마법으로 치료해 볼께요. 그러려면 당신 이름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대지와 산, 대지 위에 있는 모든 것의 창조자, 물과 하늘의 창조자이며 신들의 영혼을 만든 자다. 내가 눈을 뜨면 낮이 시작되고 내가 눈을 감으면 밤이 온 세상을 덮는다. 나일 강의 범람을 주도하는 자, 시간을 창조한 자, 새벽에는 케프리, 한낮에는 라, 석양에는 아툼이니라.
이시스가 라의 이름을 넣어 주문을 걸어보았지만 독은 사라지지 않았다.
위대하신 아버지시여, 그 이름들로는 주문이 걸리지 않습니다. 당신의 진짜 비밀 이름을 알아야 합니다.
라는 그 이름만은 말해줄 수 없었다. 비밀 이름을 말하는 순간 더 이상 지상에서 지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이 점점 퍼져 그 고통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좋다. 그러면 절대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라. 그러면 알려주마.
맹세합니다.
라가 이시스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자 라의 비밀 이름이 이시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시스는 머릿속을 맴도는 비밀 이름을 넣어 주문을 걸었다. 그러자 코브라의 독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라의 혈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독에서는 풀려났지만 자신의 비밀 이름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진 이상 라는 더 이상 인간의 모습으로 이집트를 다스릴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파라오라 부르는 왕의 자리를 오시리스에게 물려주고 천상으로 올라갔다.
아누비스가 태어나다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무척이나 사이좋은 부부였다. 잘 생긴 얼굴에 성격이 온순하고 너그러운 오시리스는 백성들의 고충을 귀담아 듣는 왕 중의 왕이었다. 지혜롭고 아름다운 왕비 이시스는 남편이 나라를 잘 통치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조했다. 둘은 무엇이든 의논하고 함께 했다. 이시스는 부드럽고 순하기만 한 오시리스를 늘 챙기고 보호해 주었다. 오시리스는 이시스의 충고를 항상 귀담아 들었다.
오시리스는 남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재주는 타고났지만 남을 의심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가 있는 파라오의 자리는 누가 언제 적으로 돌변해 칼을 들이댈지 모르는 위험한 자리였다. 오시리스는 자신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시련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이집트를 더욱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들기에만 관심이 있었다. 백성들에게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잘 키워 수확하는 법을 가르치고, 밀을 수확해서 저장하거나 가루로 만드는 방법을 전수해 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시스는 그런 오시리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남편을 보호했다. 둘은 금슬도 좋아서 오시리스는 딴 여자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시리스는 처제 네프티스를 아내로 착각하고 말았다. 이시스와 네프티스는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하룻밤의 실수로 네프티스에게 아이가 생기고 말았다. 그 아이가 미라를 만드는 인푸 신이다. 그리스식 이름으로 아누비스라고 하는데, 이 이름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오시리스는 이시스에게 들킬까봐 네프티스를 숨겨두었다. 그러나 이시스는 그 사실을 알고도 화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갈대숲에서 들개처럼 살던 아누비스(Anubis)를 찾아내어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였다. 이시스는 곧 자신의 몸에서도 오시리스의 아들이 태어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그러나 그들 부부에게는 세트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 아누비스 신
긴 꼬리를 가진 검은 늑대나 개의 머리를 얹은 모습으로 주로 묘사된다. 시체를 보존하는 일을 맡은 신으로 시체를 땅에 묻을 때 항상 그에게 기도를 올린다.
어질고 순한 오시리스와는 정반대로 세트는 포악하고 질투심이 많은 폭군이었다. 그는 형 오시리스를 몹시 질투했다. 잘 생기고 온화한 성품으로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형이 몹시 미웠다. 세트는 오리시스가 장남이라는 명분으로 기름진 옥토가 모여 있는 하(下)이집트를 상속받고, 자신은 모래사막을 차치하게 된 것이 매우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세트는 나일 강의 축복받은 땅을 다스리며 승승장구하는 데다 이시스같은 예쁘고 현명한 아내도 모자라서 자신의 아내 네프티스까지 형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가 폭발했다. 그는 틈틈이 형 오시리스를 죽일 계략을 세웠지만 그때마다 형수이자 누이인 이시스가 막아내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시리스가 먼 여행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연회를 준비했다. 마침 이시스도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고 없었다. 여흥이 최고로 무르익었을 때 세트는 미리 준비한 상자를 들여오게 했다.
그것은 최고급 삼나무와 흑단으로 짜여진 관으로 금과 은, 상아 등 각종 원석으로 무늬를 새겨 넣어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연회에 모인 손님들은 모두 감탄했다. 그토록 고급스럽고 아름다운 관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상자는 여기 모인 분들 중 한 분에게 드릴 선물입니다. 누구든 들어가 누워봐서 이 관에 딱 맞는 분에게 상자를 드리겠습니다.
취기가 어느 정도 오른 손님들은 앞다투어 관에 누워보았다. 그러나 매번 너무 작거나 너무 좁았다. 모두 실패하자 손님들이 오시리스에게도 들어가 보라고 권했다. 오시리스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들어가 누웠다. 오시리스가 들어가 누우니 맞춘듯 딱 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관은 처음부터 키 크고 마른 오시리스의 몸에 딱 맞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오시리스가 누워서 사람들을 향해 미소 짓는 순간, 세트가 얼른 관 뚜껑을 닫아버렸다. 세트의 부하들이 달려들어 쾅쾅 못질을 하고 납을 녹인 물로 관 뚜껑을 봉해 버렸다. 그리고 관을 들고 나가 나일강에 던져버렸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오시리스는 관 속에서 서서히 숨이 끊어졌다. 세트는 형이 병으로 갑자기 죽었다고 소문을 내고 스스로 파라오의 자리에 앉았다.
세트에게서 도망친 네프티스
비록 세트와 결혼하기는 했지만 네프티스는 형부 오시리스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었다. 어느 깜깜한 밤, 형부가 자신을 언니로 착각하게 만들어 잠자리를 했고 그 결과로 아누비스를 낳았다. 언니에게 미안하고 세트의 복수가 두려워 아이를 갈대숲에 숨겨놓고 몰래 길렀다. 그 사실을 언니에게 털어놓자, 언니 이시스는 네프티스를 용서하고 아누비스(Anubis)를 자신의 아들로 인정했다.
네프티스는 자신의 남편 세트가 오시리스를 죽였다는 걸 알고 그 즉시 왕궁을 떠나 언니에게로 달려갔다. 여행에서 막 돌아온 언니에게 그 사실을 얘기하고 함께 형부를 찾아 나선다. 그때부터 네프티스는 언니를 도와주는 한편 세트의 폭정을 못 견뎌 도망친 사람들을 보호해 주고 깃털이 달린 긴 날개로 죽은 자를 보호하는 여신이 된다.